선덕여왕 - 마음으로 천하를 품은 여인
제성욱 지음 / 영림카디널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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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천하를 품은 여인
선덕여왕하면 가장먼저 생각나는 것이 모란꽃이다. 학창시절 역사시간에 배운 기억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나라 태종이 홍색. 자색. 백색 이 삼색의 모란꽃을 그린 그림과 그 씨앗를 보내왔다. 선덕여왕은 모란꽃 그림을 보고 '이 꽃은 틀림없이 향기가 없을 것이다.' 고 말하면서 그 씨앗을 궁전 뜰에 심어보게 했다. 꽃이 피어서 지기까지 과연 향기라곤 없었다. 이것에서 선덕여왕의 총명함을 말하고자 했다.

선덕여왕은 신라 제27대 왕(재위 632∼647)으로 내정에서는 선정을 베풀어 민생을 향상시켰고 구휼사업에 힘썼으며 불법 등 당나라의 문화를 수입했고 첨성대와·황룡사 구층탑을 건립하는 등의 업적을 남겼다. 호는 성조황고(聖祖皇姑), 시호 선덕이고 본명 휘(諱) 덕만(德曼)이다. 선덕여왕은 삼국통일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7세기 중반 16년 동안 신라를 다스린 동아시아 최초의 여왕이다.

신라 제27대 왕으로 민생을 향상시키고 구휼사업에 힘썼으며 불법 등 당나라의 문화를 수입했다. 첨성대·황룡사 구층탑을 건립하는 등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김유신과 김춘추 등을 키워낸 인물이기도 하다.

선덕여왕은 아버지 진평왕의 뒤를 이을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권력의 중심에 있었던 귀족들과 진골 세력이 자신의 세를 키우고, 많은 궁주들이 암투를 벌이는 상황에서, 어떻게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이 되었을까?

선덕여왕은 여자가 최고 통치자가 된다는 것에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인식과 반발, 같은 여자고 자매였지만 권력에 대한 야심과 사랑 때문에 대립해야 했던 언니 천명, 그리고 고구려의 연개소문, 백제의 무왕과 의자왕등 외부에서 거세게 몰아치는 압박과 공격에 부드럽고 온화하면서도 강인한 추진력과 단호함으로 대응하여 태종 무열왕과 문무왕대의 삼한 통합의 기반을 이루어 놓았다.

과거의 역사적 인물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그 인물에 관한 과거의 기록이 극히 적을 때에는 더욱 그렇다. 기록이 많다면야 그 인물의 성격과 주변 인물들, 그리고 당시의 상황을 교직해내기가 쉬울 것이다.
하지만 정사라고 할 수 있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극히 단편적인 이야기들만 언급되고 있는 선덕여왕과 같은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글을 쓰는 어려움은 짐작하고도 남을만하다.

사랑과 권력을 모두 성취한 여왕
사람마다 타고난 자질은 다 다르다. 시대를 불분하고 타고난 그 자질을 충분히 발휘하여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성취하는 사람들은 타고난 자질에 노력과 열정을 더하여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성공의 길에 이른다. 그 사람이 여성이라면 더 어렵고 지난한 과정을 거쳤을 것이라는 생각은 쉽게 할 수 있다.

절대왕권과 세습적인 왕위 계승 그 속에서 벌어지는 권력에 대한 암투는 역사를 살펴보는 과정에 언제든 등장한다. 그 권력투쟁의 과정에서 승리한 승자는 승자라는 이름으로 권력을 누리며 이름을 남기게 된다. 우리 역사에서 남성중심의 사회 그것도 절대 권력에 대한 투쟁의 과정에 참여하여 당당하게 승리한 여성은 거의 없다. 역사에 이름을 올린 여성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왕의 여자라는 지위를 이용해 권력을 누렸던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 빛나는 영광의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 선덕여왕이다.

역사인물을 살펴는 것은 단순히 흥미거리로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을 통하여 당시 시대적 상황을 알고 올바로 역사의 자리 메김을 하고자 하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또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설계하고자 하는 마음일 것이다.

선덕여왕에 대한 책이 많이 나오고 있다. 모 방송국의 드라마 영향일 것이다. 다양한 책들의 홍수속에 잘 가려봐야 하는 지혜도 필요하리라 여겨진다.


이처럼 선덕여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선덕여왕은 최초 여왕이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왕으로써 이룩한 업적과 그가 남긴 역사의 큰 발자취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얻고자 하는 의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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