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세 시의 사람ㆍ3
그는 꽃밭을 만들었다
계절마다 서로 다른 꽃들이 가득 피고 나비와 별들도 찾아온다
달팽이와 지렁이도 함께 산다
누군가 어느 날 이 꽃을 모두 따간다 해도 그는 걱정 없다
꽃 심기 메뉴얼은 그의 머릿속에 다 들어 있다
어느 계절에 어떤 꽃을 어떻게 심어야 할지 그는 잘 알고 있다
그의 방에는 꽃씨 봉지가 가득 든 가방이 있다
그의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또 하나의 꿈이 있다면
누군가가 자기만큼 꽃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거다
그에게 이 가방을 선물할 것이다
여기서 멀지 않은 어디쯤에 그가 꽃밭을 가꾸기를 바란다
같은 바람이 두 꽃밭을 오갈 것이고
같은 나비도 벌도 오갈 것이다
그가 갖고 싶은 것은 아름다운 꽃밭을 가진 이웃이다
그때는 꽃씨가 든 가방을 또 만들 것이다
이 세상이 꽃씨가 담긴 가방을 든 사람들로 넘쳐 나는 것
어디선가 바람이 꽃 냄새를 실어나르는
꽃밭이 새로 생기는 것이 그의 꿈이다
그에게 오후 세 시는 오전 아홉 시이고 오후 다섯 시다
그에게는 꽃이 시계다
 
*최옥정의 '오후 세 시의 사람'에 나오는 '오후 세 시의 사람ㆍ3'의 일부다. 꽃씨 봉투를 받고 보니 이 글이 생각나 하루 종일 이리저리 찾다가 포기했는데 이른 아침에 불쑥 생각이 났다. 마음에 닿는 온기가 남다르지 않아 다소 긴 문장을 옮긴다.
 
눈길 속에서 시작된 꽃이 피고 지는 때를 따라 이곳 저곳을 넘나들며 한해를 살아왔다. 꽃이 궁해진 시간을 건너 다시 꽃 따라 가는 여정 속에 서기까지 다소 틈이 생겼다. 틈은 쉼이고 숨이기에 꽃이 전해준 꽃마음을 조금씩 풀어 내 그 틈을 메꿔갈 것이다.
 
"누군가가 자기만큼 꽃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거다"라는 문장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고 믿는다. 바람과 나비와 벌이 오가는 거리에 있는 그 사람이 내겐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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