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몸살

멀리서 산 기슭만 보여도 가슴이 뛰고 머뭇거리는 발걸음이 차마 떨어지지 않는다. 꽃이 피어날 몸짓을 감지한 까닭이다. 꽃벗들의 꽃소식 들려오기도 전에 몸은 이미 꽃몸살을 앓기 시작한다.

한겨울 눈이 내리면서부터 시작된 매화꽃 향기를 떠올리며 남쪽으로 난 창을 열고 물끄러미 바라보듯, 여름 끝자락에 이슬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땅으로만 내려앉을 때가 되면 서쪽으로만 고개를 돌린다.

이때 쯤이면 아무도 찾지않을 산기슭에 홀로 또는 무리지어 꽃수를 놓고서도 스스로를 비춰볼 물그림자를 찾지 못해 하염없어 해지는 서쪽 하늘만 바라볼 고귀한 꽃이 눈 앞에 어른거리만 한다.

안개가 마을의 아침을 품는 때가 오면 꽃몽우리 맺혀 부풀어 오를 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이제나 필까 저제나 필까 꽃소식 기다리다 고개가 다 틀어질지경에 이르러서야 그곳에 발걸음을 내딛는다. 다 꽃을 마음에 둔 이들이 꽃과 눈맞춤하기 위해 이 꽃몸살은 통과의례다.

몇년을 두고 뜰에 들이고자 애를썼던 꽃이 지난해에 드디에 자리를 잡았다. 올해 싹이나고 그 끝에서 꽃봉우리가 맺혔다. 아침 저녁으로 눈맞춤하며 잘 자라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일상의 큰 즐거움이었다.

사라지는 것은 순시간이더라. 다시, 꿈을 꿔야 하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뒷산 가까이 두고 살피는 꽃의 더딘 움직임이 간절함을 더하는 과정을 누리는 것이 내몫인가 싶기도하다.

이곳 저곳에서 들리는 물매화 피었다는 소식에 자꾸 뒷 산만 바라본다. 오랜 꽃몸살 끝에 첫만남의 그곳에서 봐야 비로소 본 것이기에 아직은 더 꽃몸살을 앓아야 한다.

목이 늘어나는 것은 너 만의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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