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갗을 뚫을 듯한 땡볕도 습기가 덜하니 견딜만 하다. 소나기라도 한판 지나갔으면하면서 비를 기다리는 것은 작물뿐 만은 아니다. 날기를 포기한 새들과 그늘에서 일어날줄 모르는 고양이, 그 모습에 눈길을 건네는 길손까지 흰구름 떠가는 하늘을 일부러 외면하고 있다.

마지막 꽃잎을 떨구는 연蓮이다. 색과 모양, 무엇보다 은은한 향기로 모두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잠깐의 시간이었다. 하나 남은 저 잎마져 떠나보내야 비로소 다음으로 건널갈 수 있다. 연실을 튼실하게 키우고 다음 생을 기약하는 일이다.

볕을 더하고 바람을 더하고 비를 더한다. 무게를 더하고 시간을 더하고 마음을 더하는 동안 깊어지고 넓어진다. 무엇인가를 더하는 것은 자연이 열매를 키워 다음 생을 준비하는 사명이다. 어디 풀과 나무 뿐이랴. 존재하는 모든 것은 현재를 살아 다음을 준비하는 것이다. 관계의 결과물이다.

깊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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