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걸음 하시는 이들을 위해 들고나는 길목에다 두었다. 가녀린 줄기 하나가 담장을 타고 오르더니 제법 튼실해지면서 몇해를 지나는 동안 어느해 보다 풍성하다.

"가슴을 물어라. 뜯어내면 철철 피흘리는
천근 사랑 같은 것"

*김명인의 시 '저 능소화'의 일부다. 속내를 숨기지 않고 하늘을 보는 능소화는 지고 나서야 시든다. 담장을 넘어서 피어야 제 맛인데 그 모습을 그려낸 시 중에서 종종 찾아본다.

"꽃이라면 이쯤은 돼야지

화무 십일홍
비웃으며
두루 안녕하신 세상이여
내내 핏발이 선
나의 눈총을 받으시라"

이원규의 시 '능소화'의 일부다. 담을 넘어서 피어야 제 맛이라 했지만 대놓고 들이대면 능소화가 아니다. 담을 넘는 당돌함은 있지만 동시에 수줍음이 있어야 더 간절한 법이다.

무지막지하게 쏟아붓는 비로 하루를 연다. 능소화 피고지는 동안 여름은 그 열기를 담아 열매를 키워갈 것이다. 덩달아 나도 여물어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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