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탐라유람기
짠물을 건너는 마음에 장마 온다는 것은 염두에도 없었다. 볕 나면 좋고 비 오면 또 비 오는데로 특별한 맛과 멋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주저없이 나선 길이다.

우산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 정도로 비 내리는 바다는 속내를 다독이기에 안성마춤이다. 땅나리와 눈맞춤하기 위해 땅과 거리를 좁히는 동안 쉴 사이 없이 환영 퍼레이드를 펼치는 비행기가 꽃을 대신 해도 아껴두었던 웃음을 꺼내느라 가는줄 모른다.

거문돌들의 뾰쪽한 마음들이 속내를 감추지 않는 바닷가다. 한라산을 내려온 바람은 바다 특유의 묵직한 기운을 날려주며 조심스런 발걸음을 가볍게 돕는다. 참나리, 갯장구채, 해녀콩, 갯쑥부쟁이, 흰엉겅퀴, 개맥문동ᆢ 피고지는 꽃들 사이에 단연 돋보이는 황근의 은근한 미소가 첫눈맞춤 그때보다 더 환한 미소로 가슴을 뛰게 했다. 지난해 통째로 마음을 훔처간 황근을 본 것만으로도 이번 탐라유람의 팔할은 이룬 셈이다.

곶자왈을 품고 있는 올티스의 길고 긴 여름밤은 벗들과 꽃피운 이야기의 향기는 담장을 넘어 바람과 어울리고, 거문오름을 바라보며 새벽에 시작된 산보는 드넓은 차밭 구석구석 발도장을 남겨야한다는 사명이라도 받은듯 끝날줄을 모른다.

녹차의 향과 맛을 닮은 주인부부의 정갈한 아침상은 한치와 갈치국으로 육지에서 건너온 이들의 입맛을 사로 잡았다.

꽃에 대한 애정은 둘째가라면 서운해할 교래폔션의 뜰은 언제나 정겹다. 유독 이뻣던 지난해 금꿩의 미모를 잊지 못해 지나치지 못했던 마음에 환한 꽃등이 켜진다.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는 화분들은 탐라 특유의 꽃들로 넘치고 꽃을 나눠주는 눈가엔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더 반가운 미소다.

오지 못한 벗들을 잊고 너무 좋아하지는 말라는 뜻이었을까. 쏟아지는 비를 피해 잠시 들렀던 베게엔 낯선 꽃들이 식물을 수준이다. 양치식물과 이끼를 주제로 한 정원과 특유한 구조는 머리속에 담아두었다.

한라산의 속살을 보러 길을 나섰다. 잦아든 비로 한결 가벼워진 걸음을 실꽃풀 무리들이 반긴다. 내린 비로 폭포를 배경으로 서서 쏴, 앉아서 쏴, 누어서 쏴, 연사, 점사ᆢ 꽃사진 찍느라 여념이 없는 마음들이 분주하지만 누구하나 재촉하는 사람이 없다. 누려본 이들만이 갖는 느긋함이다.

꽃쟁이들은 대부분 먹는 것에 대해 주목하지는 않는다. 늦은 점심인지라 탐라 벗들이 마음이 쓰였나 보다. 맛집을 찾았는데 대기열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일요일 쉬는 집들이 많고 두리번거리다 정을 나눈다.

이별은 짧아야 한다고 했던가. 늘 건너 간 것보다 건너 온 것이 더 풍성하다. 비행기 창문으로 인사를 건네는 비를 뒤로하고 오른 하늘은 솜털구름으로 가볍다. 이내 짠물을 건너올 벗들과의 시간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꽃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벗들의 마음이 이토록 장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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