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려터진 여름과는 달리 가을은 급하다. 오는 것도 그렇지만 가는 것은 더 빨라 오는가 싶으면 이미 저만큼 달아나 겨우 꽁무니나 보기 일쑤다. 실제 기온 차이 보다 마음이 느끼는 차이는 더 크다. 한층 가벼워진 공기가 가을로 이끄는 숲에는 이때다 하면서 고개를 내미는 것들이 있다. 버섯, 그중 하나를 만났다.

높은 곳에 올라 먼 곳을 바라보며 가슴 깊숙한 곳에 숨겨 놓았던 속내를 덜어내고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내려오는 길에 만났다. 오묘한 색과 간결한 무늬가 전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싶어 허리를 숙이고 제법 긴 시간을 눈맞춤 한다.

내놓을 말이 없으니 들을 말도 없기에 붙잡지도 잡히지도 않은 시간을 함께 한다. 반쯤 내려 놓고 애써 주장하지 않고 살기를 잘했다고 스스로에게 위로를 전하는 일이 이제는 익숙하다.

가을을 품을 가슴이 한결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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