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도지구載道之具
우리 옛그림을 보면 동식물을 그린 그림들이 제법 많다. 이른바 화훼영모화가 그것이다. 선비들은 무엇때문에 이런 그림을 그렸던 것일까.
"유교적 인식체계에서는 예술을 수단으로 보는 관점에서 화훼영모화를 그렸다고 한다. 동식물로 자연의 이치를 드러냄으로써 수신修身의 도구로 이해한 것이다. '재도지구載道之具', 즉 도를 실어 나르는 도구로 본다는 의미다. 일차적으로는 주역이나 논어와 같은 경전을 말하지만 의미를 넓혀 시문詩文을 짓거나 그림을 그리는 문화예술 활동을 포함한다고 보았다.
그림을 재도지구載道之具로 삼은 대표적 화재가 매화ㆍ난초ㆍ국화ㆍ대나무를 대상으로 하는 사군자이다. 선비들은 사군자를 잘 치려면 먼저 인품이 올발라야 하며, 사군자를 치면서 인성을 수양할 수 있다고 믿었다."(한국의 화훼영모화에서 발췌) 영역을 넓혀 동식물을 그리는 행위가 모두 여기에 속한다고 이해해도 될 듯하다.
현대인들이 산과 들로 다니며 꽃과 새, 풍경을 찍는 행위를 선비들이 그림을 그렸던 것에 견주어 이해한다면 어떨까. 알고 모르는 사이에 수신修身에 근본을 두고 인성을 수양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이해한다.
비록 그 취지와 어긋나는 행위를 저지르는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꽃을 보며 마음의 위안과 평안을 얻고 행복해하는 것이 그 증거라 할 수 있다.
조선사람 강희맹(1424~1483)은 "무릇 모든 초목과 화훼를 보면서 눈으로 본 것을 마음으로 이해하고, 마음으로 얻은 진수를 손으로 그려 그림이 신기하게 되면, 하나의 신기한 천기天機가 나타난다."고 했다.
"홀로 마른 가지에 앉아 추위를 견디며 먼곳을 바라보거나 졸고 있는 새를 그린 그림에 담긴 선비들의 자연을 사모하면서도 속세를 떠날 수 없었던" 은일隱逸 정신을 이해한다.
산과 들로 멀고 가까운 길을 나서서 꽃과 새들을 대상으로 한 사진 한장에 담긴 사의思議를 공감하는 벗들의 마음에서 옛 선비들의 마음을 본다. 여기에서 재도지구載道之具를 떠올려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