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소백산록新遊小白山錄'
몇 날 며칠을 벼르다 벼르다 멀리 사는 벗들이 모였다. 꽃놀이를 위해 오랜만에 만난 자리다. 산 넘고 물 건너서 심지어 누구는 짠물까지 건너와 모인 벗들이다. 서로를 향한 온기로 양손은 한없이 무겁고 마음은 가볍기가 그지없어 한달음에 죽령을 넘을 기세로 달려온 벗들의 눈가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 웃음 띤 얼군의 속내가 이제 막 피어나는 소백산 철쭉을 닮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찍이 소백산을 유람하고 그 소회를 글로 남겼던 퇴계 이황(1501~1570)의 '유소백산록遊小白山錄'을 들춰보니 이번 벗들의 나들이가 훨씬 아취가 넘치는듯 하다. 그 뿌듯함으로 슬그머니 번지는 미소는 멈출 기미가 없어 보인다.

풍기 군수 시절 퇴계의 소백산 유람은 백운동서원에서 하룻밤 묵고 죽계에서부터 출발하여 초암사. 석륜사를 거쳐 올라가는 이른바 배점리코스를 통해 갔다. 철쭉꽃이 숲을 이룬 때라고 하니 우리보다 조금 늦은듯 하다.

퇴계의 소백산 유람과는 달리 우리의 나들이는 첫날, 죽령 고개를 올라 옛길을 따라 풍기쪽으로 내려오는 길을 택했다. 붉은 뒷태의 노랑제비꽃이 반기는 초입을 벗어나 큰개별꽃, 개별꽃, 연복초, 자주족두리풀과 뫼제비. 꼬깔제비, 남산제비, 태백제비 등 각종 제비꽃들의 환영을 받자마자 이미 늙어버린 처녀치마의 배웅을 받으며 아래로 내려간다. 꽃에 따라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던 벗들의 걸음걸이가 흰괭이눈을 지나며 만난 홀아비바람꽃 군락에 멈춰 일제히 반색인 서로 머리를 보며 웃음이 넘친다. 홀아비꽃의 하얀 뒷태나 반백인 우리들의 머리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아는 까닭이리라. 듬성듬성 핀 노루귀들, 무리지어 터를 잡은 달래, 유독 노랗던 산괴불주머니에 다정한 현호색, 붉은빛의 줄딸기, 바위틈 매화말발도리에 이어 묘역을 점령한 할미꽃까지 이미 봄꽃시즌이 끝나버린 남쪽과는 달리 이곳은 만화방창이다.

익숙하거나 첫 만남의 꽃들과 눈맟춤이라고 허기를 대신해주지는 않는다. 느긋하게 들어간 식당에서 현지 음식으로 저녁을 먹고 벗들을 생각하며 이고지고 바리바리 싸온 맛난 음식이 생각하며 숙소에 들었다. 자연과 노니는 나들이에 술이 빠질순 없다지만 장정 일곱이서 막걸리 두병을 다 비우지도 못한 자리는 이야기꽃이 피어 향기 가득하다. 인생 후반기에 꽃으로 만났으니 가슴에 쌓인 이야기가 얼마나 많을지 짐작하지 않아도 다 알만하다

술로 취한 것보다 더 격조있는 이야기에 취했으니 무엇이 아쉬울 것인가. 내일을 꽃과의 눈맞춤을 위해 잠자리에 든 얼굴마다 벗들을 닮은 꽃들이 피었다.

*이어서 소백산 언화봉에서 죽령으로 내려온 이야기는 다음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