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_읽는_하루

귀가 부끄러워

그늘진 쪽으로 몸이 기운다
모든 사랑은 편애

제철 맞은 꽃들이
분홍과 분홍 너머를 다투는 봄날
사랑에도 제철이 있다는데
북향의 방 사시사철 그늘이 깃들까 머물까
귀가 부끄러워, 방이 운다 웅-웅
얼어붙은 바닷속 목소리

철도 없이 거처를 옮겨온 손이 말한다
혼자 짐 꾸리는 것도 요령
노래나 기도문처럼 저절로 익혀지는 것
점점 물음표를 닮아가는 등
끝은 언제쯤일까 의문문은
봄이 가기 전 완성되어야 한다

내내 겨울인 북극 떠올리기
사람이라는 뜻의 이누이트에게 물을까 배울까
화를 다스리는 요법에 대해 알려줄게
얼음 평원을 향해 걷는다 한다
걷고 걷다보면 해질녘 극점
발이 멈춰 온 길을 되돌아온다 한다
뉘우침과 용서와 화해의 길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도
나는 뉘우치지 않겠습니다
나는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화해하지 않겠습니다
사시사철 환한 그늘이 한창일 북향의 방
얼어붙은 바다를 부술 것, 목소리를 꺼낼 것
끝은 어디쯤일까 봄이 오기 전
의문문은 완성되어야 한다

도처에 꽃말과 뉘우침과 용서와 화해들
귀가 부끄러워, 결별하기 좋은 봄의 시국

*이은규의 시 '귀가 부끄러워'다. 마음이 기우는 동안 그늘과 편애는 같은 감정 안에 머문다. 성급하게 달려온 봄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부끄럽지 않을 귀를 위해 이 봄에 무엇을 보아야할까.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 올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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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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