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처마 밑이 휑하다.
한겨을 찬바람과 포근한 햇볕에 얼고 녹기를 반복하며 안으로 안으로 단맛을 품었다가 고이 내어주는 곶감을 만들지 못한다. 겨우 이 모양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말았다.
매년 겨울이면 들고나는 때를 맞춰 한두개씩 빼 먹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눈으로 보는 맛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 더 크다. 시간이 지나면서 변해가는 감의 색감이 주는 맛 또한 결코 놓칠 수 없기에 곶감을 건다. 이 두가지도 감을 깎아서 처마 밑에 내다거는 빼놓을 수 없는 이유지만 이것도 핑개에 지나지 않는다.
보다 중요한 것은 집을 찾아오는 사람들과 나누는 정情이다. 보는 맛과 먹는 맛에 대한 기억으로 입맛을 다시며 상상이 더해지는 동안 얼굴 가득 피어오르는 그 미소를 더이상 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몹시 크다.
"한개 먹어도 되요?" 몇번을 말성이며 조심스럽게 건네는 그 한마디에 들어 있는 속깊은 정을 나누고자 함이 곶감을 만드는 궁극적 이유였다.
잘려서 식품건조기 속으로 들어간 감 조각으로는 결코 흉내도 낼 수 없는 그 맛을 올해는 누리지 못하게 생긴 것이다. 이제는 아쉽고 안따까움으로 고스란히 1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막막함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있기는 할까.
아..., 내 곶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