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치듯 보았다. 다시 볼 요량으로 고개를 돌리는 사이 바람에 흔들린 나뭇잎에 사라져버린 빛이다. 언제 다시 올지몰라 꼼짝하지 못하고 눈여겨 보지만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모든 기다림이 늘 안타까운 이유다.

가을 속으로 질주하는 숲은 소란스럽다. 수고로움으로 건너온 시간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 더딘 발걸음일망정 멈추지 말아야함을 알기 때문이다. 나무도 풀도 시간과 사간을 이어주는 분주함에 몸을 맡기고 제 할일을 한다.

큰키나무 아래 터를 잡아 바람의 도움으로 어쩌다 볕과 마주하는 꽃무릇이 붉다. 꽃대를 올리기 전부터 붉었을 속내가 잠깐의 빛으로 오롯이 돋보인다. 봐주는 이 없어도 저절로 붉어져야 하는 것이 숙명임을 알기에 찰라의 빛마져 고맙기만 하다.

머물러 있음이 소중한 것은 시간이 지난 후 그 자리가 빛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 빛남을 찾으려해도 다시 기회를 얻기란 쉽지 않다. 하여, 그 순간에 집중해야 함을 배운다.

빛이 내려앉은 순간, 그토록 간절했던 소망을 비로소 불사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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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9-10-26 0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승꽃인가요?

무진無盡 2019-10-28 20:35   좋아요 0 | URL
‘석산‘또는 ‘꽃무릇‘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