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가을을 슬퍼하는 이유'
경금자는 말하였다."내가 저녁을 슬퍼하면서, 가을을 슬퍼하는 것이 없는데도 슬퍼지는 것을 알았다. 서쪽 산이 붉어지고 뜰의 나뭇잎이 잠잠해지고, 날개를 접은 새가 처마를 엿보고, 창연히 어두운 빛이 먼 마을로부터 이른다면 그 광경에 처한 자는 반드시 슬퍼하여 그 기쁨을 잃어버릴 것이니, 지는 해가 아껴서가 아니요, 그 기운을 슬퍼하는 것이다. 하루의 저녁도 오히려 슬퍼할 만한데, 일 년의 저녁을 어찌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 일찍이 사람이 노쇠함을 슬퍼하는 것을 보니, 사십 오십에 머리털이 비로소 희어지고 기혈이 점차 말라간다면 그것을 슬퍼함이 반드시 칠십 팔십이 되어 이미 노쇠한 자의 갑절은 되는 것이다. 아마도 이미 노인된 자는 어찌 할 수 없다고 여겨서 다시 슬퍼하지 않는 것인데 사십 오십에 비로소 쇠약함을 느낀 자는 유독 슬픔을 느끼는 것이니라. 사람이 밤은 슬퍼하지 않으면서 저녁은 슬퍼하고, 겨울은 슬퍼하지 않으면서 유독 가을을 슬퍼 하는 것은, 어쩌면 또한 사십 오십된 자들이 노쇠해감을 슬퍼하는 것과 같으리라!

아! 천지는 사람과 한 몸이요, 십이회十二會는 일 년이다. 내가 천지의 회를 알지못하니, 이미 가을인가 아닌가? 어찌 지나 버렸는가? 내가 가만히 그것을 슬퍼하노라.

*조선시대를 살았던 이옥李鈺(1760~1815)의 글 '남자가 가을을 슬퍼하는 이유'를 일부 옮겨왔다. 지나온 시간에 비추어 자신을 돌아보는 가을이다. 이 가을에 제대로 슬퍼할 수 있어야 겨울을 온전히 건널 수 있은 힘을 얻을 수 있다.

이래저래 뒤숭숭한 몇주가 흘렀다. 그 사이 가을은 이미 이렇게 곁에 와 머문다. 나와 무관한 세상사는 없지만 내 일이라 여기며 공감하는 것은 극히 일부다. 그 일부일망정 제때에 제몫을 해내는 이 역시 드물다. 은행나무 열매가 떨어지는 때가 온 것처럼 물고 뜯고 아우성치는 그 모든 것도 끝날 때가 반드시 온다. 

이제 뚜벅뚜벅 제 길을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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