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대체 뭐라고...
새벽길을 기꺼이 나서게 한다. 한겨울 눈밭을 헤치며 산을 오르게 하고, 가던 길 뒤돌아 오게 하며, 눈이 오는지 비가 오는지 해는 언제 뜨는지 날씨에 민감하게 만든다. 높이와 상관없이 산을 오르게 하며,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들로 강으로 불러낸다.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게 하며, 심지어 드러눕게도 만든다. 이 모든 곳이 지극히 자연스러우며 순식간에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이른 봄 하검마을의 계곡을 서성이게 하고, 불갑사 계곡에 들어 먼저 온 봄소식을 맞이하고, 칼바람 맞으며 백아산 구름다리를 건너게 하며, 때를 기다려 8시간 동안 무등산을 오르게 하고, 먼 길을 달려 안면도 소나무숲을 서성이게 하고, 연달아 3주를 노고단을 찾게 하며, 당일치기로 반야봉 정상에 오르게 하고, 30년 만에 다시 세석평전으로 부르고, 비오는 날 남덕유산의 능선을 걷게 하고, 태풍이 도착한 향적봉을 오르게 한다. 백운산의 정상 바위에 서게 하고, 회문산 서어나무를 껴안게 만들며, 안개 낀 동악산 정상 철계단을 내려가고 하고, 옹성산 바위를 걷게 하며, 호젓한 입암산 산성을 둘러보게 한다. 뒷산에 있는 주인을 알 수 없는 묘지를 수시로 살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낯설고 먼 길을 서슴없이 나선다. 스스로 만든 꽃 달력을 매일 반복해서 살피고, 꽃 피었다는 소식 혹시나 하나라도 놓칠세라 멀고 가까운 곳에 귀를 기울이며, 없는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불원천리 찾아간다. 꽃을 못 보는 때에는 모든 것이 꽃으로 보이는 환각을 감당하게 하고 지난 사진첩을 수도없이 반복해서 보게 만든다.

이처럼 결코 찾아오는 법이 없는 꽃을 찾아 기꺼이 시간과 돈을 들인다. 꽃이 부리는 횡포가 실로 엄청나다. 그렇다고 꽃의 갑질에 당하는 것만은 아니다. 아름다운 꽃 보며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고, 꽃향기 품어 사람과의 만남에 꽃향기를 전한다. 꽃 찾아 산과 들로 나도는 사이 몸은 꽃을 키우는 자연을 닮아 건강해지니 다시 꽃 찾아 나서는데 망설임이 없다.

꽃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매개한다. 꽃으로 인해 인연 맺게 하며, 맺은 인연을 끊게도 한다. 처음 보는 사람도 몇 년씩 알고 지낸 사람처럼 가깝게 만들며, 같은 꽃을 찾아 나섰다는 이유만으로도 벗으로 삼게 한다. 꽃 보다 못한 사람은 멀리하면서도 이내 꽃 마음으로 품어 꽃향기 스미게 한다. 나이, 성별, 직업, 사는 곳을 가리지 않고 꽃 안에서 이미 친구다. 모든 지청구를 감당하며 몸이 힘들어 하면서도 다시 먼 길 나서는 것을 반복하는 이유다.

꽃 닮아 환하고, 꽃 닮아 향기 나며, 꽃 닮아 순수하여 천진난만이 따로 없다. 
꽃 보듯 사람을 본다.

*같은 때 같은 꽃이 불러 1년 만에 세석평전에 올랐다. 새로운 꽃들의 귀한 대접을 받았다. 1년전 세석평전에 다녀온 후 쓴 글을 불러와 그 감회를 돌아본다.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참으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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