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세 시의 사람
최옥정 지음, 최영진 사진 / 삼인행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오후 세 시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볕 좋은 가을날의 오후가 볕바라기를 하다 문득 올려다 본 하늘만큼이나 여유롭다가을이 주는 독특한 햇살의 질감이 얼굴에 닿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이 햇살의 질감은 봄과 여름을 무사히 건너온 여유로움이 있기에 가능한 마음가짐일 것이다계절의 가을과 삶의 가을이 닮은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그 여유로움처럼 넉넉한 책을 만난다.

 

오후 세 시의 사람을 통해 사진작가 최영진과 글 작가 최옥정 남매가 건네는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물음 속을 걷는다삼십 대 중반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한 글 작가 최옥정은 소설은 픽션이지만 한 줄도 삶과 동떨어진 가짜여서는 안 된다는 다짐으로 “'소설은 진짜여야 한다.”고 강조한다그에 걸 맞는 사진작가의 이야기를 담았다.

 

팽팽하게 돌아가는 일상의 긴장을 늦추고 사진과 글 사이를 서성이게 한다다소 느린 속도로 천천히 걸어야만 된다는 의무감마저 느껴질 정도로 여백이 넓고도 깊다정제된 언어로 군더더기 없는 글이 주는 담백함이 긴 호흡을 요구한다문장과 문장 사이를 건너는 속도는 느려지고 멈추길 반복하지만 끊어짐은 없다.사진 한 장에 글이 한 편씩 붙어 저절로 오는 긴장감을 사진이 주는 넉넉한 여백으로 인해 풀어지곤 한다.긴장과 이완의 적절한 조합이 남매의 깊은 정을 바탕으로 한 때문은 아닐까 싶다.

 

얻을 게 없어도 시선을 붙든 것에 마음을 한참 걸어 두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의 눈)

 

눈물을 훔치려 꽃밭에 간 사람이//꽃에게서 웃는 법을 배운다” (꽃의 말)

 

나는 좋아하는 건 너무 좋아하고 싫어하는 건 너무 싫어해서 탈이다//그리고 내 인생은 대체로 너무 좋아하는 것들 때문에 곤란을 겪었다” (비 맞은 풀잎이 되어)

 

뭐가 써 있을까//떨리는 마음으로 펼쳤던 당신의 첫 페이지” (당신의 첫 페이지)

 

사진도 글도 느긋하지만 늘어지지 않고채근하는 듯 하지만 오히려 다정한 미소로 인사를 건넨다오후 세 시, “그림자가 서서히 길어지는 시간이자 볕의 온기가 까칠함은 누그러뜨리는 때다가을날의 오후 세 시는 그렇게 다가온다.

 

이 책에 담긴 사진과 어울리는 글들이 유독 오랫동안 서성이게 하는 이유가 따로 있을까또 너무 늦게 만났는지도 모른다글맛에 이끌려 글 작가 최옥정에 대해 검색을 해보니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2018년 9월 13일 앓던 병으로 인해 세상과 이별을 했다고 한다지극히 안타까운 일이지만 늦게나마 글로 만났으니 다행이라고 억지스러운 위안을 삼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