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한 모금
"사령이 담배불을 붙여 올리면 높이 화문석에 기대어 천천히 피우는 어느 고관의 귀격貴格, 앉아서 피우건 누워서 피우건 그 편한 대로 하는 복격福格, 부지런히 입술과 혀를 놀려 한 번 빨고 두 번 빨아들임에 연기가 곧바로 입에서 나오는 묘격妙格, 아리따운 여인이 연인을 만나 애교를 부리고 잠자리를 같이하다가 님의 입 속에서 아직 반도 때우지 않은 담뱃대를 바삐 앵두같은 입술 속에 넣고서 웃으며 피우는 염격艶格, 그리고 농부가 쉬면서 보리막걸리를 한 순배 돌리고 왼손으로는 담배꼬바리를 들고 오른손으로는 부시를 잡고 불을 사르면 연기가 봉홧불처럼 피어올라 곧바로 코를 찌르는 진격眞格이 그것이다."
*조선 사람 이옥李鈺(1760~1815)이 자신의 글 연경烟經에서 흡연의 품격 즉 연취煙趣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다. 담배 피는 것을 죄악시 하는 현대인들이 들으면 기절초풍할 묘사다. 여기에 더하여 한 편의 시를 보자.
"위로는 재상으로부터 아래로는 하인까지
안으로는 규방에서 밖으로는 고을 기생에 이르기까지
입 있는 사람이라면 누가 즐기지 않으리오"
조선에 담배가 들어온 때는 17세기 초엽으로 광해군 때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급속도로 펴져 그야말로 담배 천국이나 다름 없다.
"담배는 사람에게 이롭다. 더울 때 피우면 더위가 물러가고 추울 때 피우면 추위를 막아주고 식사 후에 피우면 소화를 도와준다. 용변을 볼 때는 악취를 없애주며 잠이 오지 않을 때 피우면 잠이 온다. 뿐만 아니라 시나 글을 지을 때, 남들과 대화를 나눌 때, 조용히 앉아 사색에 잠길 때 등 어느 경우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없다."
담배 피는 것을 좋이했던 정조 임금의 글이다. 지독한 애연가였던 정조는 심지어 책문의 시제로 '남령초'를 내걸기도 했다고 한다.
수십 년간 피던 담배를 끊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 올린 담배세 때문이다. 2014년 말 국민건강 증진의 명분을 내세웠지만, 세수부족분을 서민 부담으로 채우려는 정책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담배를 피지 않기로 한 것이다. 두루두루 잘한 일이라 여기면서도 간혹 담배 생각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림은 이교익(李敎翼, 1807~?)의 풍속회다.
이옥의 '담배 피기 좋은 때'라는 문장은 읽고 고개를 끄덕이는 애연가들이 않을 듯 하다.
"달빛 아래서 좋고, 눈 속에서 좋고, 빗속에서 좋고, 꽃 아래서 좋고, 물가에서 좋고, 누각 위에서 좋고, 배 안에서 좋고, 베갯머리에서 좋고, 변소에서 좋고, 홀로 앉아 있을 때 좋고, 벗과 마주 대할 때 좋고, 책을 볼 때 좋고, 바둑을 둘 때 좋고, 붓을 잡았을 때 좋고, 차를 달일 때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