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좀 쳐다봐 달라고 아우성 치는
소리가 들리나요?"

나태주 시인은 '능소화'라는 시에서 이렇게 묻는다. 다소 요란스런 색과 모양으로 당돌하게 보이기도 하기에 딱히 탄지 걸 생각은 없다. 능소화를 이미지화 시키는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꽃이라면 이쯤은 돼야지.

화무십일홍
비웃으며
두루 안녕하신 세상이여
내내 핏발선
나의 눈총 받으시라"

무엇인가를 드러내놓고 싶어하는 갈망이 있어 보이는 것에서는 이원규 시인의 '능소화'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다른 무엇이 있어 보여 고개만 끄덕인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주는
찬미의 말보다
침묵 속에도 불타는
당신의 그 눈길 하나가
나에겐 기도입니다
전 생애를 건 사랑입니다."

차마 사립문 나서지 못하기에 담장 너머로 고개를 내밀고 한없이 그리움에 젖어 먼 눈길 건네는 것으로 본다면 이해인의 '능소화'가 더 와 닿는다.

"내안에 아직 누군가
부르고싶은 사람 있는가 보다"

어떤 사람이 어떤 그림을 그리거나 노래를 부르던 모든 능소화에서 뗄 수 없는 본질을 김재란 시인의 '능소화'에서 만난다.

쌓이고 쌓여 매순간 저절로 넘치는 그리움을 두고 능소화는 나 보라고 외치지 않는다. 그저 무심코 담장 너머의 하늘을 바라볼 뿐. 혹, 저만치 오는 가을 속에 묻어올지도 모를 일이기에 마음 속으로만 가만히 안을 뿐이다.

가뭇없는 기다림이라지만 곱기는 처음 그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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