百花譜序 꽃에 미친 김군
벽癖이 없는 사람은 버림받은 자이다. 벽癖이란 글자는 질병과 치우침으로 구성되어 편벽된 병을 앓는다는 의미가 된다. 벽이 편벽된 병을 의미하지만 고독하게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고, 전문적 기예를 익히는 자는 오직 벽을 가진 사람만이 가능하다.


김군은 늘 화원으로 날래게 달려가서 꽃을 주시한 채 하루 종일 눈 한번 꿈쩍하지 않는다. 꽃 아래 자리를 마련하여 누운 채 꼼짝도 않고 손님이 와도 말 한 마디 건네지 않는다. 그런 김군을 보고 미친 놈 아니면 멍청이라고 생각하여 손가락질하고 비웃는 자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그를 비웃는 웃음 소리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그 웃음 소리는 공허한 메아리만 남긴 채 생기가 싹 가시게 되리라.


김군은 만물을 스승으로 삼고 있다. 김군의 기예는 천고千古의 누구와 비교해도 훌륭하다. 백화보를 그린 그는 '꽃의 역사'에 공헌한 공신의 하나로 기록될 것이며, '향기의 나라'에서 제사를 올리는 위인의 하나가 될 것이다. 벽의 공훈이 참으로 거짓이 아니다!


아아! 벌벌 떨고 게으름이나 피우면서 천하의 대사를 그르치는 위인들은 편벽된 병이 없음을 뻐기고 있다. 그런 자들이 이 그림을 본다면 깜짝 놀랄 것이다.


을사년(1785) 한여름에 초비당苕翡堂 주인이 글을 쓴다.


*박제가朴齊家(1750~1805)의 글 백화보서百花譜序다. 꽃 피는 봄이 오면 어김없이 찾아서 몇번이고 읽는 글이다. 이 글에 나오는 김군은 규장각 검서관을 지냈던 김덕형이다.


지난 주말 꽃보러간 길에서 유난히 하얗게 보이는 꽃을 만나 '옳거니 이것이다'라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아직 펼쳐지지 않은 꽃잎이지만 조금 후 모습이 충분히 그려지기에 베낭을 벗고 눌러앉을 작정을 했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조금씩 벌어지는 꽃잎을 보면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앞에서 뒤에서 밑에서 위에서 옆에서 그렇게 이리보고 저리보고 동안 시간이 멈추듯 두어시간 이상이 훌쩍 지났지만 전혀 지루한줄 몰랐다.


김군은 김군만이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무엇에 벽을 가진 이들의 공통점이다. 봄날 꽃하나 보려고 낮은 자세로 산과 들판을 헤매는 모든 이들이 다 김군이다. 김군들이 펼쳐놓은 꽃이야기들이 화창한 봄날 꽃처럼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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