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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에서 이 생각 좀 치워주세요 - 불안과 강박을 멈추고 싶은 당신을 위한 뇌과학
클라우스 베른하르트 지음, 추미란 옮김 / 동녘라이프(친구미디어) / 2023년 9월
평점 :
독일에는 한국엔 없는 정신'요법'의사란 직종이 있는듯 한데
저자가 그 직종으로써 스스로를 정신과 의사와는 구분 지으며,
의사라 불리움에도 정신과의사처럼 처방을 내릴 순 없고
상담과 회복만을 돕는 일을 한단 애길 하는데,
아마 한국의 심리상담사와 비슷한 직종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싶다.
처음 읽어나갈 땐, 의사라고 불리는지라
의학적이라 보기엔 특유의 치료과정이 이상하고 놀라웠는데
일종의 심리상담사라 이해하게 되니 와닿는 내용들이 많았다.
이 책은 강박을 다룬다.
공황과 무기력을 다룬 책 두권으로도 국내에 소개됐던 저자인데
그의 책을 읽은 건 처음이라 개인적으로 기대하며 읽게 됐다.
일단, 내용이 매우 창의적이고 훌륭했다.
심리상담사가 창의적으로 일을 한다면
어쩌면 위험한 일일수도 있단 생각도 한다.
하지만, 그가 독일에서 시행하면서 효과를 본 나름의 접근법들은
그 이유와 적용효과를 들었을 때 하나같이 창의적이긴 했지만
상식을 결코 벗어나지 않는 근거하의 시도들이라 여겨졌다.
증상별 방법들이 여러가지 등장하지만
그 모두에 공통되는 사항이 있다.
그건, 유머를 기반으로 하며 빠른 효과를 목표로 한다는 것.
왠 심리치료에 유머냐 싶을 수 있는데,
저자 클라우스 베른하르트의 심리치료에서 유머는 핵심코드다.
사람은 2가지 생각을 동시에
할 수도 지닐 수도 없다는 전제하에,
불안으로 촉발된 강박증에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은
유머스런 생각으로 고착된 생각패턴을 할 수 없게 만들어
그 자리를 유머로 환기시킨 정상적인 생각으로 대체해감에 따라
그게 점차 훈련되어 가며 새로운 신경가소성으로 작용되는 원리다.
즉, 오랜기간 강박을 야기해 온 자동적 사고의 침습은 부정적 생각이었고
새로 유머로써 만들어 들어가는 신경발달은 긍정적 생각을 야기토록 하여
부정적 생각의 자리를 긍정적 생각이 대체되게 만들어 버린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환자들이 가진 특이한 이야기들 속에서
핵심을 포착해 익살스런 이야기꾼처럼 다가가
웃음을 유발하는 동시에 반전을 꾀하면서,
새로운 발상으로 바른 생각의 힘을 키워줄 수 있는
서포트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생각 들었고,
그런 남다른 인지적 처방을 속는셈 치고
잘 따라가보는 환자의 태도도 중요해 보였다.
이론의 핵심적인 설명은 이쯤에서 마치며
책에 등장한 인상적인 사례 하나도 기록해 본다.
K라는 50대 남자, 그는 단순 강박증이 아닌
저장을 목적으로 하는 호더증후군 환자였다.
책에선 이 2가지 병명을 명확하게 구분짓는데,
강박증은 되도록 의미있는 소수의 물건을 간추려 간직하려는 반면
호더증후군은 언제가는 쓸모 있을거라 여기는
불틍정 다수의 물건을 저장하는 증상을 주로 보인다.
아마, TV에서 쓰레기집이라 소개되며
잘 공간도 없이 잡동사니들을 이고지고 사는
물건들로 빼곡한 집을 본 기억이 있다면 이해가 빠를 듯.
이 K라는 남자도 그 분류에 속할텐데
다만 저자는 그의 증세가 말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중증은 아니였기에
여러모로 자신의 처방이 빠른 기간내에 들어맞을 수 있었다고 보고 있었다.
K는 15년 정도 수집강박을 유지해 왔기에
결국 자기집 공간으로도 모자라
옆집 노부부의 차고까지 창고로 쓰고 있었다.
그런 K가 상담을 받으러 왔을 때 동행한 어머니는
K가 어필하고자 하는 여러 변명들을 사실이 아니라 반박하며
저자와 K사이에서 필요한 상황정리도 해내며
그의 치료를 위해 나름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
어쨌거나 K 또한 다른 호더증후군 환자들처럼
자신의 수집이력에 대한 정당성을 피력하느라 열심이다.
얼마전 잔디깎기가 고장났을 때를 예로 들며
미리 간직해 둔 호스가 자기 창고에 있었기에
필요할 때 요긴하게 활용해 수리할 수 있었다 말하는 그.
그 얘기를 들을 그의 어머니는 오히려 이 상황을 반박하면서
아들이 변명할 수 없는 속사정을 저자에게 알려주는고 싶어한다.
사실, 아들은 평소 거의 집안일은 하지 않기에 잔디깎을 일도 없었고
단지 이웃의 불평 때문에 지저분해진 잔디를 깎으려다 벌어진
해프닝 같은 일이었다는 식으로 전후사정을 대신 알려준다.
이렇게나마 K의 치료가 들어갔을 때 저자와 치료진 모두는
그의 수집강박을 중심으로 나무라지 않는다.
대신, 그가 일리있는 수집이라 여기는 오랜 기간의 습관을
상황을 잘못 인식해 온 오류로써 수치적으로 바로잡으며
하나씩 그에게 현실을 환기시켜준게 치료의 핵심.
일종의 생활비를 아끼는 재테크도 됐었다며
15년 정도를 지속해 온 K의 계산방식이 실은
마이너스를 감내해 온 제살깎아먹기 식이였으며,
좀더 일찍 강행해 온 본인의 가치체계를 재고했더라면
현재 50대의 K가 가지고 싶어하는 테슬라 전기차도
훨씬 이전에 소유할 수 있었을거라 얘기해준다.
자신이 상황을 멍하게 인지하기 시작한 그 순간 이후,
K는 주변의 도움을 받아 그동안 모은 물건들을 모두 정리하고
현재 살고 있는 집보다 작은 규모의 집으로 이사했고,
그동안 긴세월 알지 못했고 할 수 없었던 시간을 뒤로 한 채
진정 필요한 소유물들만을 가지고 사는 삶을 시작해 보게 되었다.
이 책을 읽는 과정 중, 350여 페이지에 불과한 두께임에도
읽는 속도가 매우 더디다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이런저런 다양한 사례들이 등장하고
모두를 의미있게 읽어나가려다 보니
당연스레 생각을 겸하게 되는 부분들이 많아
읽는 속도가 더뎌질 수 밖에 없었음도 알게됐다.
비슷한 주제의 책들을 이전에도 몇권 읽어봤는데
내용의 참신함이나 치료과정의 현실적인 실효성 면에서
강박을 다룬 책 중 가장 좋은 책이라 생각이 든다.
강박은 불안으로 시작하고
그 모든게 커지면 우울증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기본을 알고 책을 접해 본다면
꼭 강박만이 아니라 불안, 우울 등
다양한 심리적 이슈들에 대해서도
저자의 혜안을 배워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