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스트레스 재설정을 시작합니다 - 몸과 마음을 빠르게 리셋하는 스트레스 제어법
제니퍼 테이츠 지음, 성세희 옮김 / 시그마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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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에 대한 주관적 서평입니다]


경계성 성격장애로 인해 20세 전까지 

심한 자살충동과 실행, 그로인한 정신병동 입원을 

몇번이고 되풀이했던 한 여성이 있었다.

만일 이 반복들로 인생이 끝났다면 이 사람은

그냥 굴곡있는 삶을 살다 간 사람 정도로 

아주 소수의 지인들에게나 추억속에 회자되었을 

불운한 사람으로 남았을지 모른다.

지금 이 사람을 언급하는건 그녀가 바로

DBT(변증법적 행동치료)의 창시자이자 

이 책에서 주요하게 언급되는 마샤 리네한이기 때문이다.

책 내용만으로 보면 이 사실이 그리 중요하진 않지만

DBT를 좀더 흥미롭게 바라보는 요소로써 적어본다.

 

결국 이 책은 DBT를 주요하게 다루기는 하지만 

매우 많은 심리이론들이 필요하에 뒤섞여있고

단순히 DBT만을 위한 책으로도 보이진 않는다.

그러나 변증법적 행동치료는 가장 대중화 된 인지치료술로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창시자도 알고 DBT란 용어를 접한다면

누군가에겐 또다른 감흥을 줄 수 있는 부분같다.

심리학자로써 연구실에서 완성해 낸 DBT체계지만

사실 주요 근거는 명상에서 출발한 행동기법이고

카밧진의 마음챙김명상과는 달리 병원에서

치료용으로 널리 활용되는 기법이기에 

저자가 가장 앞에 언급하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은 심리학을 다루지만 매우 재밌게 구성으로

누구나 알지만 쉽게 해결할 수 없었던 깊숙한 본질을 

다루고 얘기해 나가는데 전혀 어렵지 않은 느낌을 받는다.


책은 여러가지 원인과 결과 그리고 일종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대부분의 책이 그렇듯 해결책은 책의 뒤로 갈수록 진열되듯 실렸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원인을 이해하며 그걸 결과처럼 이해해 볼수도 있었고

결과를 보면서는 역으로 원인을 생각해보게 만드는 환원적 사고가 가능해 

묘한 흐름이 즐거움처럼 다가올 것이다.


먼저, '과잉사고'라는 챕터를 보자.


끊임없이 궁리를 하는 걸 말한다.

이를 책임감 있는 태도로 여기게 되면서 끊임없이 생각하다보면 

어느 순간 해결할 실마리를 발견하기도 하겠지만

이는 스트레스를 자가 생산하는 스트레스 유발 행동이다.

이런 반복 자체로 동기부여나 문제해결 능력이 

고취될 것로 생각하는 내담자도 있다고 하는데

저자는 이를 마법적 사고(magical thinking)이라 칭했다.


일단 이 부분은 살짝 혼란을 줄 수 있다.

왜냐면 끌어당김의 법칙 같은 것들과 

일맥상통해 보일수도 있다는 생각에.

물론 고민과 바램은 다른 영역이지만

마법적 사고라는 측면에선 일치하는 바도 존재하니까.


어쨌건 충분히 걱정하면 결국 해결되리라 믿음은

스트레스로 작용하게 되고 정신적 쳇바퀴에 갇히게 만든다.

과잉사고는 결국 폐해라 정의 내리면서

이 패턴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일단은 

여기에서 벗어나는 걸 목표로 삼으라 충고한다.

 

그럼 이걸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한번에 안할 방법을 찾는 자체도 스트레스가 될 수 있으니

일단 제한적이고 정해진 시간에만 짧게

기존 고민을 반복하고 끝내보는 걸 권한다,


이와 동시에 과잉사고에는 포함되지만

쉽게 알아채기 어려운 동질의 사고방식들도 알려주는데

어쩌면 이게 더 일상적이고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여겨졌다.


바로 공동반추와 자기타당화가 바로 그것.


공동반추는, 

가까운 이들과 브레인스토밍 하는 셈치고 자신의 고민을 

공유하며 들려주고 싶어하는 이들에게서 보여지는 행동으로,

아이디어도 얻고 현재의 힘든 마음도 

털어놓는 행위를 누군가와 함께 함을 말함인데,

이것 때문에 누군가는 부정적 생각의 전염이 생길수도 있어

비슷한 고민스타일을 가진 일상에 빠질 위험도 있겠고,

한편 타자의 고민을 듣기 싫어하고 거부하는 사람들로부터는

고민을 꺼낸 사람자체를 멀리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가 있어

사회적 지지를 놓치게 되는 안타까운 경우도 발생될 수 있다고 기술했다.


한편 자기타당화란,

사실 과잉사고와 전혀 다름을 인지시키기 위해

소개된 용어라고 설명하는게 더 정확하겠지만,

자신의 감정을 정당한 것이라 느끼고 싶어하고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들어주는 누군가의 존재를

중요하게 여기게 된 심리현상으로 볼땐

둘을 혼동하게 만드는 유사성이란게 분명 존재한다.

결국 자기타당화란 어떤 내면적 경험을 

측은한 마음으로 정당화 하고 싶어하는 것을 말함이다.

이로인해 겉으로는 들어나지 않던 고통을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상담심리 등을 통해

자신의 정당함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심리라

심리상담을 찾는내담자의 심리 자체를

바로 이것으로 소개해 놓기도 한다.


결국, 개인적 고통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할 때

곱씹어 생각을 반복하게 만드는 반추가 나타난다는게 

과잉사고와 자기타당화는 유사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유사함은 고통의 시간을 연장할 뿐 

고통스러운 경험을 마주해야 하는 필요 자체는

생각으로 미루게 된다는 측면에서

이를 같은 선상에서 이야기 해보는 게 타당하게 보였다.


스스로 실천해보는 DBT계열의 심리학을 다루는 책이지만

어쩌면 자기계발을 위한 교과서로 읽어봐도 

좋겠단 생각을 들게 하는 책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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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나를 설계하기로 했다 - 독일 최고의 멘탈 코치가 증명한 생각·행동·습관 설계의 핵심 52
마르틴 베를레 지음, 배명자 옮김 / 메이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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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으로 주관적 서평입니다]


사람이 집은 아니기에 설계도가 있어서 

설계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니란 것 쯤은 누구나 안다.

근데 저자는 굳이 '설계'라는 말을 썼다.

이것은 습관인가 아님 생각의 전환인가.

목차에도 있고 책 제목에도 있는 '설계'란 말.

읽다보면 삶의 반전을 설계에 대비시킨 걸 

자연스레 알게되고 현재의 모든 난관들을

불가항력이 아닌 자신이 만든 틀들이 불렀음을 

이해하도록 계속 이끌고 또 이끄는데

난관이 있고 해법을 찾고자 하는 중이라면

모든걸 생각이 아닌 '행동'에서 

해결방향을 찾고자하는 책이 바로 이 책 같다.


어떻게 할까를 묻는 순간 

이미 뇌는 준비를 한다는 구절.


질문은 의심을 불러오기에 어떻게라고만 물으면 

거기서 진일보해 결국 해내는 쪽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이론을 담은 챕터인데,

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어떤 방식과도 동일하다.


그냥 '나는 할 수 있다'거나 '하고 싶다'란 

바램이나 미래형 문장이 아닌,

시작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지 않고

어떻게란 문장이 담은 의미는,

고민이 이미 시작으로 들어섰다는게 전제된 질문이란 것.

이미 시작한지도 모른채 그걸 이뤄나가는 

실천단계를 궁리해보는 말이기에 말이다.

어쩌면 일종의 말장난 같은 부분이지만 분명 일리는 있다.


사실, 이 책은 그렇게 단순한 요령식 설득을 

계속 이어나가는 책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솔직하고 진중해서 끌리는 부분이 많은 

굉장히 잘 쓴 자기계발서 중 하나다.


책의 간단한 도입부분을 읽다보면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처럼 보이던

해답찾기를 구사하는 저자와 딸의 모습이 실려있다.


딸에게 저자는 묻는다.

'누가 널 만들었니?'라고.


딸은 누구나 할 수 있을법한

다양한 측면의 답을 모두 내놓았다.

부모, 학교 등 혈연부터 교육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내놓을 수 있는 모든 답들을 망라한 

자신만의 생각들을 담아서 성실히 말이다.


그러나 결국 아버지이자 저자가 원한 답은

너를 만든 건 '너'라는 대답이었다.


이런 전개가 독자로써 그리 어려운 추측도 아니고

이 책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내용도 아니지만,

여기에서 출발해 계속되는 이야기들 속에는

같은 내용이라도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더 와닿기가 쉽고 신뢰가 느껴지는가를

저자의 동화같은 화법을 담은 글들속에서 

충분히 느껴볼 수 있던게 더 중요했던거 같다.


결국 행동을 하란 의지를 일깨워주려는 

52가지 이야기들이 각 챕터들마다에 실려있는 책인데

모든 이야기들이 뻔하지 않았다.


쉬운 예시들도 쉽지만 단순하지 않은게, 

건강한 음식을 요리해 먹고 싶다면

일단 그냥 당근이라도 깎아서 요거트에 찍어먹고,

달리기를 해보고 싶다면

일단 운동복을 입고 밖으로 나가는거 부터 하라는 것.


진짜 하고 싶었던 그 자체만 행동이 아니다.

그걸 하게 만드는 모든게 '행동'이라는 말.


원했던 요리나 특정운동 자체만

'행동'의 전부라고 생각하다가

진짜 하고 싶은 걸 여지껏 못했다가 아니라

그 시작자체를 못하고 있는 자신부터 알라는 개념.


이런 부분들이 모여 책전체 스토리가 됐고

그걸 공유하고자 하는게 저자의 신념같다.

거기에 하나더 덧붙이자면,

한번 성공했고 또 그게 멈췄더라도

또 그보다 못하게 시작할 순 있어야 하는게 

진짜 또다른 행동이라는 것도 중요해 보인다.


자기계발서들을 읽으면 겹치는게 많다.

저자는 다르지만 동기부여라는 측면에서

느껴지는 점들일 것이다.

그런면에서 이 책은 분명 다른게 있다.


지속이 아닌 시작을 이야기하는 값진 내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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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와 함께 살아가는 여성들
크리스티네 카를 외 지음, 강민경 옮김 / 북스힐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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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에 주관적인 서평을 씁니다]


한동안 너도나도 우울증이라는 자가판단이

열풍처럼 늘어났던 순간이 기억나는데,

이제는 그 다음 바톤을 ADHD가 넘겨받은듯 하다.

우울증, 공황장애 만큼이나 ADHD가 

일반사람들에게 그만큼 보편화 되어 다가와 버렸다.


책에서는 ADHD와 ADD로 둘로 나눠 설명한 후

간단한 표기법으로 AD(H)D로 합해 병기했다.

주의력 결핍과 과잉행동까지 나타나는 건 ADHD,

주의력 결핍만 있다면 ADD로.


단순히 ADHD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면

나라면 '도파민 부족'이라고 설명하련다.

선천적으로 적은 도파민만을 자가 생산해내는

뇌의 문제를 가졌으니 그걸로 살고 해결하고자

짧은 집중력, 빠른 흥미전환, 

마음대로 되지 않는 불안 등을 경험하는 병.

반대로 이를 감추기 위해 살면서 터득한

나름의 가면들까지 곁들이게 되면

이 모든걸 포함하는게 바로 완성형 ADHD다.


한국내 전문가가 쓴 ADHD책도 봤지만

이 책보다는 내용이 풍부하지 못했다.

풍부하기 위해 쉽게 이해되거나

감별해 낼 수 있는 징조들 뿐만 아니라,

이외로 아닌듯 보이게 감춰진

전혀 ADHD처럼 보이지 않게 만드는 부분들까지 다루기에,

왜 그것들이 전형적인 증상들이나 행동패턴이 아니면서

ADHD에 해당할 수 있는 것들이 이리 폭넓은지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좀더 읽어볼 만한 책이라 느꼈을텐데

이 책이 바로 그런 설명들을 해주고 있어서다.


여성ADHD들을 위한 책이라고 하나

애초에 여성들만을 위한 책이란 생각은 안했다.

왜냐면, 특정 여성호르몬 때문이라면 몰라도

여성만 걸리는 병으로써의 ADHD가 아니고

남녀구분을 떠나 여성성으로 인한 부분으로 인해

ADHD가 겪는 고충을 다뤘다고 봤기 때문에,

일례로 남성들 중에서라도 여성성을 띄거나 내향적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충분히 참고할 만한건 많으리라 봤다.

결국, 남녀 구분없이 '내향적 성향' 사람에게도 적용가능하단 결론.

그러나 저자는 기존 전통사상에 입각한 여성성 안에서

ADHD인 여성이 살아가는 고통과 은폐에 들이는

노고를 그리고자 함이 더 크긴 하다.


기본적으로 ADHD로 알려진 증상들은

주의산만, 정리정돈 미숙 등이 바로 떠오르지만

책내용 중 그런건 일단 빼고 

조금 다른 각도의 내용들을 정리해 보겠다.


보통 집안에 ADHD환자가 있다면

그 한사람만이 집안의 유일한 ADHD로 보지 않는다는 저자.

왜냐면 유전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ADHD가 ADHD인 남자형제와 같이 살 경우

남성성에 밀린 여성형제 스스로 자기도 모르게

본인의 ADHD성향을 자연스레 감추고 살 확률이 커진다고 한다.

그러다 성인이 되고 각자의 삶을 꾸려가다 보면

어떤 경우엔 ADHD와 정반대의 성향으로 사는 경우도 흔하다는 입장.

체계적으로 보이고, 정리정돈도 곧잘하고, 주의력 높은 사람으로.


근데도 왜 끝까지 ADHD라 불려야만 할까?

완치라고 볼만한 조절력하에 잘 지낸다고 보는게 안 맞겠나?


저자가 말하는 ADHD환자의 핵심문제는

선천적으로 적은 도파민과 빠른 휘발성이다.

이로인한 내부적 폐해는 아무리 잘 관리하더라도

발생되고 있는거고 진행중인거다.


결국 ADHD임을 모르고 살아가는 인생도 충분히 가능은 하나

본인 스스로만 느끼는 굉장히 부댖끼는듯한 내적소진 경험과

그걸 우울처럼 느끼는 감정경험은 본인이 ADHD임을 모른다면

그냥 사는게 힘들고 자긴 독특한 사람이라 치부하며 살게 될 것이니

가능하다면 ADHD인걸 인지하고 사는게 

스스로의 삶을 관리하고 살아가는데 분명 도움이 되리라 느끼게 썼다.


그렇기에 가만히 병의 이유와 그로인한 행동들을 보면

의외로 아주 단순한 원리가 느껴진다, 

도파민 부족이란 그 단하나의 이유.


도파민의 기능은 희열을 제공하는 물질.

삶의 희열정도 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의 에너지와 기쁨을 유지하기 위해

누구는 없는 에너지를 아낄 것이고

누군가는 더 외부에서 찾으려 들것이다.


아마 전자는 무기력으로 후자는 과잉행동이 나타날 듯 싶다.


이 부분에선 ADHD에겐 선택의 문제가 끼어들법 하다.

나는 이거라도 아끼며 사는게 덜 피곤해와

나는 이거 가지고는 못산다는 부류로써의 선택.


한국 ADHD전문가의 책을 볼 땐

오히려 환자 입장속 이야기들 보다는

의사로써 ADHD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음이 먼저 와닿았다.

살아온 과정을 통해 ADHDd인지 아닌지를 파악하는 진단법은 분명 필요한데 

거짓없는 환자 본인의 정확한 설명을 듣더라도

반드시 ADHD인지를 분별하기란 참으로 

힘든게 ADHD진단이라는 전문의의 소견.


그 내용에 비해 이 책으로 더 이해해 볼 수 있던 건

의사뿐 아닌 본인이 ADHD더라도 

스스로를 구분하기 힘든 여러 다양한 이유를 떠나

마치 ADHD가 아닌 듯 보이는 별개증상들과 겉모습들도

그 이유를 잘 들여다보면 ADHD로 귀결되는게 보였기 때문이다.

이는 별도의 심리분석 케이스로 이 병을 들어볼 수 있는 듯한 느낌.


완벽주의가 나타나는 경우, 

굉장히 섬세해지는 경우,

밝고 추진력이 있는 경우, 

과감성이 떨어지는 경우


만일 ADHD란 연결고리 없이 그냥 본다면

이들은 각기 다른 증상으로 접근할 이야기들이고

그냥 사람사는 과정 중에 일어날 평범한 것들일 수 있지만

ADHD로 설명해 볼 수 있을 땐 

서로 다름이 공통된 하나로 모이는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가진 결핍을 느끼니 더 완벽해지려는 성향이 생겨나고,

덤벙대지 않으려니 섬세해지는 것도 가능했던 일이고,

떨어지는 주의력은 오히려 때론 추진력처럼 발휘될 수 있겠으나,

그로인한 잦은 실패경험은 많아지면 결국 의기소침로 발전되는.


책의 후반부에서 정리된 ADHD들을 위한 해법 중

가장 근간이 되는 이야기는 '시스템'이었다.

삶을 운영해가는 본인만의 시스템.

본인이 만든 시스템만이 안정을 주고 실수를 줄여주리라는

ADHD환자라면 본인을 위한 셀프패턴을 만들라는 내용.


ADHD란 명제를 오히려 들어내고 읽으면

아무나 읽어도 좋은 책도 될 수 있다.

외냐면 그냥 심리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참고할  

여러 각도에서 잘 분석한 책처럼 볼 수도 있겠으니.

그런면에서 반대로 단순 심리문제가 아닌

이유가 있었던 문제라는 ADHD가 가진 전제는

누군가에겐 오랜 방황을 멈추고 

없었던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

축복 아닌 축복의 진단명이 ADHD라고도 느낀다.


내향적인 성격과 ADHD 모두에 관심이 있다면

여성ADHD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읽어도 좋을 책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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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사랑이 없다면, 그 무엇이 의미 있으랴 - 에리히 프롬편 세계철학전집 4
에리히 프롬 지음, 이근오 엮음 / 모티브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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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된 책에 주관적 서평을 올립니다]


일단 이 책은 에리히 프롬 책 원문 자체가 아닌

한국저자가 에리히 프롬 책들을 읽고 느낀 바를 쓴 에세이다.

에리히 프롬의 여러 저작들 안에서 좋은 점들을 발견한 저자가

각 책들에서 자신이 느낀 바들에 본인의 철학을 투영해

어떻게 소화했는지를 본인만의 언어로써 소개한

일종의 에리히 프롬에 대한 헌정느낌의 책이라 본다.


여기에 더해 좀더 특별했던 건,

에리히 프롬의 책들은 각권마다 다른 내용들인데

이 책에선 '사랑'이란 공통된 주제로 

에리히 프롬의 모든 책들을 하나의 주제처럼 

서로 비슷한 관점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게 구성했기에

저자의 그런 발상을 공유하는 차원에서

독자 각자가 음미해보게 한 부분이었다.


한때 '사랑의 기술'을 진짜 연애나 사랑방식을 알려주는

매우 단순한 책쯤으로 알았다가 놓쳤던 나인데,

실제 그 사랑의 기술을 늦게 읽게 됐을 땐

예상과 달리 내용이 굉장히 방대하고 깊어 놀랐었다.

공감되는 부분들에선 데미안만큼 특별했던 경험도 했고.

관련된 사유들을 더 넓혀보고 싶었던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란 책에 

뭔가 더 추가해 읽을게 없을까 고민했다가 선택한 책이다.


이 책엔 사랑을 주제로 여러 이야기가 실려있지만

그냥 순서대로 읽어나가며 나도 모르게 들던 생각은

왠지 불경에서 느껴지는 이타적인 관점측면이

이 책에서도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타인에 의해 영향받아 그 결과로

자신이 이리 행동하고 생각하고 느끼게 된게 아니라

본인 스스로에 의한 선택이었고 결정에 의해서였다는 논리.

책 전반적으로 깔린 이런 사랑에 대한 철학들에는

조망적 사고가 깊게 베어있다는 생각도 들게한다.


에리히 프롬의 

'이해는 사랑의 핵심이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는

사랑할 수 없다'는 인용구를 전제로

저자가 펼친 해석부분을 보면,


상대가 내게 특별했던 첫이유가 있었고 

그것 때문에 유일무이한 사랑이 시작됐고 커졌다고 느낀다.

이는 원인을 내 선택이 아닌 외부에서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사랑의 정의.

그런 사랑은 어느 순간 그 기존의 빛이 바래버린다.

모든게 변한거 같고 본인 스스로도 변해버린것 처럼 느끼면서.

그러나 사실 변한 건 본인 마음뿐.

못난 짓을 해도 좋았고, 자신과 달라서 좋았던 게

지금은 이해하기 싫어졌을 뿐이다.


완벽했기에 사랑이 시작됐고 가능했던게 아니라

불완전함 까지도 포용했던 때가 있었다는 말.

그 유지의 원천은 바로 이해였으며 

그게 사랑의 기술이라 설명하려는 책.


'왜 이렇지?' 

'내가 예전엔 뭘 못 본거지?' 

'뭘 잘못 판단했던거지?'


이게 진짜 고민이 아니라 

그냥 이해하기가 싫어진 걸 

지금의 원인으로 설명해보려 한다걸 제공해준다.


다름을 인정한다는 건 

그냥 상대를 그 존재자체로 봐주는 것이고,

이해해 준다는 의미 안에는

감정이 아닌 '기술'로써의 사랑이 

같이 담겼다고 느껴지도록 글을 썼다.


개인적으로 에리히 프롬의 사랑이 기술이 좋았던 건

사랑의 기술을 배울 수 있어서는 아니었다.

러블리한 내용도 결코 아닌 사랑의 기술이란 책은

굉장히 철학적인 책일 뿐이니까.

정통적인 심리학 내용이고 사랑뿐이 아닌

폭넓은 인간관계 자체를 들여다보고 있어 좋았던 책.


그렇기에 사랑의 기술을 사랑관련 튜터리얼로 보지 않지만,

이 책뿐 아니라 에리히 프롬의 책들 안에서 

사랑이란 주제로 각자의 이해나 욕심이 관여된 

주관성 측면을 사랑완성의 방해물로 해석한 저자의 정서엔 

앞서말한 불경같은 고요함의 정서가 느껴지게 하는 

묘한 부분들이 있는거 같았다.


사랑을 분노나 애착과 연결해 다룬 글들도 있는데

그런 글들에선 누군가를 향한 '기대'라는게

상대에게 잘못 부여한 존재이유고 존재가치로 설명됐다.

그로인한 고통유발 또한 자초한 것이란 설명도.

상대를 인정하게 됐던 건 스스로 성립한 주관때문이니까.

결국 스스로 키워서 벌어진 내적 갈등이란 말.


사랑의 많은 부분들이 타인으로 인해 느껴지는거라 생각하고 산다면

결국 사랑은 실망과 결별로 끝날수 밖에 없을거란 생각도 든다.

  

잘못된 평가기준을 안고 산다면 

언젠가는 사랑했던 타인이 미워질 때가 오고

관계란 얼마나 복잡해질수 있고 방향성을 잃게 될지

생각해 보게 만들어주는 잔잔한 에세이들이다.


에리히 프롬의 책들 중에선 

사랑의 기술이 가장 인상적이었었지만

사랑을 매개로만 종합정리한 이 책 구성도 나쁘지 않았다.


'사랑의 기술' 뿐만이 아닌

에리히 프롬의 철학을 고루 접해봤을 저자가

그걸 하나로 묶어볼 수 있을 키워드로

'사랑'을 선택하고 쓴 이 책은

타산지석의 감정으로 자신과 타인을 생각해보게 하는

깨달음의 순간들을 염두하고 쓴듯 하다. 

밖을 좀더 순수함과 만족감으로 바라보고 

이해해 보는데도 도움 되도록 말이다.


순수한 생각들을 정리한 깔끔한 글이라 느껴지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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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이 되는 한국의 산나물 50
이상각 지음 / 아마존북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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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가 제공한 책 써보는 주관적 서평입니다]


산나물 정보라는 목적성이 뚜렷한 책임에도 

예상못한 서평의 글느낌이 너무 좋았다.

결국 산나물을 언급이지만, 끼어있는 맥락들에

삶과 자연을 의식해 볼 수 있는 저자의 생각들이 많아 

의도치 않게 내 생각이 산기운을 받고 

흡사 정화되는 느낌도 들정도로 좋았다.


몇주 전엔 사두었던 건나물로 반찬을 만들었다.

해봐야지 해봐야지 늦장 부리다 드디어 뜯은 건나물 재료.

생각보다 손이 많이 안 갈거 같았는데

삶고 찬물에 몇시간 식히는 과정까지 필요해 

요리 전부터 들인 시간만으론 공을 들인 반찬만들기가 됐다.


책에선 이런 건나물들을 '묵나물'이라 부른다.

묵이란 뜻이 아마 묵혔다 먹을 수 있게 

데쳐서 가공한 나물이란 뜻을 담았을텐데,

묵나물로 부르는 건 처음 본터라

혹시나 묵나물이란거와 건나물의 차이라도 있어

오독이 될까 나름 신경써서 용어를 다시 살폈기도.

내가 해먹은 나물은 더덕취였는데 책엔 없다.

내가 보고도 혹시 놓친건 아닐까 했는데 이 역시나 없었고.


책엔 50가지의 산나물이 실렸는데

의외로 나물들 이름 중 모르는 이름보다

아는 이름들이 더 많았다.

그만큼 한국사람으로써 나도 이미 봤거나 먹어본 것들이란건데

어쩌면 그런 의미에서 내가 거쳐온 산나물들에 대해

이 책 내용들이 어느 면에서는 복습처럼도 느껴졌다.


책에 산나물 삽화들이 매 나물들마다

두드러지게 여러장이 실리진 않았다.

그럼에도 몇몇 산나물들은 대표 사진 이외에도

꽃대가 올라있는 모습들이나 

열매같은 사진들도 추가로 실려있는데,

이것들도 대표사진처럼 정보차원에서 올렸겠지만

그냥 먹거리 소개로만 보기에는 

꽃들과 열매일지 모를 그 추가 사진들이 참 이뻤다, 

그 색깔, 모습들 하나하나...


저자는 각 산나물마다의 적당한 채취시기와

생육과정들을 중복되더라도 소개하는데,

그렇기에 계절에 따라 공통적으로 들어둘 말들도 존재한다.


봄나물들을 그냥 생으로 먹기에 적당하나

여름과 가을로 이어지는 기간에 채취한 나물이라면

나름의 독성이 있을 수 있어서 식용으로 먹을 땐 

데쳐서 독성을 빼는 등의 방법이 필요하단다.

저장 또한 앞서 말한 묵나물의 방법일 땐

살짝 데쳐서 그늘에 말려 보관하게 되는데,

이렇게 하여 계절에 상관없이 먹을 수 있게 저장되고

이걸 다시 다시 물에 삶고 담가두면

오히려 원래 가진 향보다 더 진한 느낌도

느낄 수 있다고 전한다.


산나물...이들을 꼭 약용으로 부르거나 먹어야 할까?


어떤 요소들도 그냥 다 몸에는 필요한 것들인데

무엇을 약으로 부르는 건 인간의 기대같아서.

그럼에도 그 마음은 이해가 간다.

약용이라는 그 말에 더 믿음을 갖고 

먹는 나물에 몸에 좋으리라 의미를 두려는 그런 마음.


실려있는 딱봐도 산나물인 것들과 대비되게

비비추나 원추리는 동네 관상용으로 많이 볼 수 있는 식물들.

이미 상식적으로 약용식물인 걸 알고는 있었는데

책에 소개된 이 식물들이 동네에서 볼 수 있는

도시속 비비추와 원추리와 동일하며 먹어도 될런지는 살짝 의문.


여러 산나물 중 이름 때문에 기억에 남고 인상적이던

'풀솜대(지장보살)'이에 관한 내용을 인용해 적어본다.


솜대, 지장보살로 불리는 이 산나물은 

한방에선 사슴이 먹는 약이라 하여 녹약이라고 부르는 약재.

낙엽이 쌓이고 습한 곳에서 자라는 다년생이라고 하니

그말만 들어서는 버섯과 비슷한 환경에서 잘 사는 듯 했다.

옆으로 자라고 줄기는 20~50cm까지 군락을 지어 자란다.

윗쪽이 비스듬이 휘어지고 흰색 꽃도 피는 식물.


잎에 솜털이 달렸다고 해서 솜대라 불리고

보릿고개 때 뿌리로 죽을 쑤어 먹었다고 하여

지장보살(고통에서 구해주는 자비로운 보살)로 불린 식물.

나물의 이름이 지장보살이라니...


처음엔 지장보살이란 이름을 보고 궁금했고 

그 뜻을 읽고나서는 아련했던 식물.

누가 이 나물 하나를 처음 지장보살이라고 불렀을지...


그냥 사전처럼 활용하게 되거나

나물에 관심있는 사람들만

찾아 볼 내용들이겠지 예상하고 접했는데,

식물도감처럼 읽어나가던 어느 순간부턴

동호회라도 따라나서 나도 나물을 직접 캐러 

가보고 싶은 마음이 커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는 건강이나 나물욕심만도 아니다.

그냥 귀한 살아있는 책에서 본 산나물들이

하나하나 귀한 인연들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지나치면 풀인데 산나물로 들여다보니

하나하나 다 사람에겐 쓰임이 있는 나물들.

하나가득 뜯어오면 환경 해치는 일이라 

나라차원에선 막기도 한다는 뉴스도 들었다.

그런데도 한번쯤은 가서 직접 보고 싶었다.

그냥 먹기만 하는게 아닌 이 식물들이 사는 그 장소에서.

딸 땐 미안하다고 해야할까, 고맙다고 해야 할까...


그냥 나물이 이상하게 땡기는 요즘이라

필요해서 읽어보고 싶어졌던 책인데

머릿말부터 이어지는 내용들까지 

자연의 고마움도 새삼 많이 느끼게 해주고 

현재의 내 식생활도 반성해 보게 한 의미있는 독서였다.

누구라도 아무 목적없이 한번 읽어보는 것도 추천한다.

자연속 산나물이라 불리지만 왠지 

알고 싶어질 식물들기도 하다는 생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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