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찰의학 마음편
김찬우 지음 / 군자출판사(교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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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를 명확히 특정짓긴 어려운 책일수 있겠다.

마음을 탐구한 책이니 심리학 같지만,

저자의 선한 가치관이 불교관으로 투영돼

묵상집 형태도 일부분 갖췄으니까.

이 책을 읽으며 좋았던 또하나는

익숙했지만 잊었던 불교용어들을 

저자의 현대적 해석으로 다시 음미해 봤다는 것.


저자는 이 책을 

그냥 한번에 독파하듯 읽지 말고,

하루에 한 주제씩 읽어보길 권했다.


차례에도 그 의도는 나와 있지만,

하루에 1mm씩 자라는 나무같은 마음이 되어

제시한 키워드들을 하루에 1개씩 소화해가며

100일간 성장해보면 어떻겠냐는 의도가 담겼다.


즐거움과 괴로움,

간절함, 

외로움, 

열심히,

약점,

트라우마,

참을성,

심리불안,

복,

죄책감,

두려움,

답답함,

못마땅함...


이런 96개의 단어들과 무제 4가지를 

저자의 생각을 담아 재해석 해놓고,

그걸 읽어가며 이전과 다른 

긍정의 방향으로 성장해 가란 의미.

좋은 구성 같다.


불교에 대해선 어렵게 다루지 않았고

현실에서 각자의 몫인

깨우침이나 발전에 중요할

'계, 정, 혜'를 중심으로 설명해 준 후,

100개의 키워드들을 쫓아가는 구성도 겸했다.


먼저 계, 정, 혜의 설명을 들어보자.


계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음으로써

그로인해 내가 받게 됐을지 모를

괴로움을 나로부터 줄여주는 태도.


정이란,

내 마음의 부정적 변화를 알아채기 위해

선정에 들어봄으로써 

미세한 자신의 감각들을

스스로 바라볼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


혜는,

일종의 지혜로써 

괴롭다면 

나로 인한건지 남으로 인한건지를 분별하고,

원인이 있다면 무엇이며

만일 그 인식에 오류가 있었다면

그걸 깨우치는게 가능한 상태를 말한다.


이 3가지를 가지게 됨으로써,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에 이르는 8가지 '팔정도'를

행할 수 있게 된다.


8개 단어 앞엔

'바른'이란 형용사가 들어가지만,

가시적으로 쉽게 적고 기억되기 위해

이 공통단어는 빼고 정리해 봤다.


계-말, 행동, 생활방식

정-알아차림, 집중, 정진

혜-앎, 생각


책에선,

다른 단어들을 그대로 '바른'만을 앞에 붙여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되는데,

'혜'에 관한 8정도에 관해서만은

조금 다른 풀이도 곁들였다.


바른 앎은 바른 '관점',

바른 생각은 바른 '사유'로써 말이다.


생각은 떠오르는 그 자체보다는

음미하여 이해하는 생각과정을 

말하고자 한 듯 했다.


100가지 키워드로 구성된 본문 내용은 

단어들마다 매우 간략한 구성이지만,

저자가 느낀 영감에 기초한 서술이라

단순한 사전적 정의라기 보단 

그의 가치관이 녹아 든 경향도 보인다.


많은 키워드들 중엔

'트라우마'가 가장 기억에 남는데,

기존 이해했던 트라우마 정의와는

많이 다른 저자만의 느낌도 새로와서.


저자는, 트라우마를 

일종의 콤플렉스로 이해하고 있었다.

어떤 계기로 상처로써 남은 상태로,

문제의 본질은 이 취약점을

스스로 숨기는데 있다고 봤다.

이로인해 인생이 꼬이고 비틀어졌다면 

그 이유 또한 트라우마가 자리잡은 탓도 있다고 분석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먼저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며,

기회가 될 땐 주변에

용기를 내어 사정을 알릴 것도 권했다.

드러내기 싫은 부끄러움을 내려놓음으로써

관련됐던 예민함이 무뎌질거란 것.

절대적인 약점이 아님을 스스로 이해하고,

바라보는 자세를 바꿔볼 의지를 발휘 할 때,

비로소 관점변화가 생길 수 있다고 봤다.

드러냄과 숨김의 차이,

그게 종이 한장 차이임을 안다면

인생이 편해지리란 조언도 말미에 덧붙였고.


이와는 다소 다른 내가 아는 트라우마란,

일정한 질서나 연속선상에서 살아온 인생이,

어느 순간 그 질서가 무너졌을 때

예측할 수 없다는 심리적 위축과

불안해서 살아갈 수 없을 듯한 두려움이 

기존 의지를 넘어 선 것을 의미한다.


오늘이 어제와 같고

내일도 오늘과 같으리라는

항상성에 기댔던 기존 흐름이 있었고,

오늘 잘 된 일은 내일도 잘되리라 믿는 

개인적 믿음도 있었지만,

그런게 깨지는 상황이 트라우마라고.


불행한 사건으로 차단된 연속성이나

그로인해 기반이나 신념이 무너졌을 때

사람은 자신의 안전감에 균열이 생겼다고 인지하고,

더이상 이전과 같은 신뢰를 느낄 수 없게 된다.

난 이걸 트라우마라고 알고 있다.


아마, 내가 기존에 알고있던 이런 정의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라 부르면 

더 와닿을 정의일지 모른다.


트라우마에 여러 개의 정의가 가능하다면

저자가 말한 스스로가 부여한 약점에 관한 두려움이나,

내보이기 꺼려하는 극도의 예민함 또한

분명 트라우마의 증상은 될 수 있을듯 싶지만

내 상식과 저자의 상식이

일정부분 충돌하는 것 같아 생각이 필요했다.


저자의 바른 의지와 삶의 태도가

많은 사람들의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진정 세상은 더없이 좋아질 거 같다.

자기 맡은바 일을 해나가며

안분지족하고 선한 영향력도 나눌 수 있는 삶.


저자의 책을 읽으며

마음 따뜻하고 좋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이렇게 여러 분야에 있음을 알게 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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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처가 사랑을 밀어내지 않게 하려면 -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고 싶은 이들을 위한 심리 수업
저우무쯔 지음, 박영란 옮김 / 더페이지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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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가로막는 6가지 태도가 등장한다.


1.나는 결코 선택받지 못 할거야 (버림받음에 대한 두려움)

2.아무도 진짜 나를 사랑하지 않아 (부족함에 대한 두려움)

3.분명 나를 속이고 있을거야 (배신과 기만에 대한 두려움)

4.상대가 원하는 내가 되어야 해 (순종에 대한 두려움)

5.나는 통제당할 거야 (통제에 대한 두려움)

6.내가 원하는 사랑은 받을 수 없어 (사랑받지 못하는 두려움)


이 큰 6개의 테두리마다

세부적인 내용이 첨언돼 있어서, 

단순이 "...은 ~이다"로 끝나지 않고

그런 혼자만의 풀이를 해야했던

속마음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가장 읽는데 공을 들였던 부분은

4번의 패턴으로 봐도 좋은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과 관련한 챕터 같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한번 봐야지 봐야지 했던 영화를 

이번에야 이 책 덕에 봤다.


읽는 중간 책읽기를 내려놓고

영화 먼저 보고 다시 돌아왔는데

조금 예상과 달랐던 건,

책이 알려준 해석대로

영화를 느끼게 될 줄 알았는데

다른 해석으로 읽혀지던 내용들이 많아

관련된 첨언을 남겨본다.


책은 이 영화를 언급한 이유를,

여러 남자를 선택하고 만날 때마다

주인공의 불안 때문에

처세적인 면에서 불합리한 일들을 

겪게 됐다고 해석한 바가 크다.


해당 챕터와 연결짓기 위해 영화 중 

특정부분을 강조한 해석이라 생각은 들지만,

영화 자체로도 유명한 이 작품이

책에 일부분만 맞춰져 

조금 과하게 해석된 부분이 있다고 느낀다.


어쩌면 마츠코의 일생 속

여러 모습의 사랑들은,

책속 다른 예들과 얽혀도

다양하게 연결해 볼 수 있는

포괄적 자료같다고 본다.


저자는,

마츠코가 아버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고,

연애 중 불편한 상황을 안 만들려고

먼저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는 것 모두,

인생초기 신념이 끝내 바뀌지 않고 지속되서

그녀의 사랑법으로 굳었다고 본다.


상대방의 비위를 맞추거나 달래는 게,

어울리고 살아가기 위한 

마츠코식 생존방식이 됐다는 것.


최초 변곡점이 된 집에서의 도망침도

그동안 그럭저럭 잘 먹히던 이와같은 방법으론

위기처리 능력을 완전히 초과했기 여겨

순간 무의식 중에 당황해 벌어진 사건으로 본다.


자신에겐 유독 무뚝뚝해서 무서웠던 아버지.

반면, 병약해 동정받고 그 자체로 사랑받던 여동생.

어릴 적 생존 불안을 달래고자 시작된 

사시 눈을 만들며 입을 쭉 내미는 표정 만들기도

결국 비위 맞추기란 슬픈 생존 전략.


하지만, 어릴 적 만들어진 전략이 

성인이 된 후에도 계속 지속된 걸

저자는 안타까워 한다.


아버지를 포함한 타인의 감정만을 신경쓰다

제일 중요한 자신의 감정은 더이상 

스스로 조차 어른답게 해석할 수 없게 된 

인지부조화처럼 묘사했다.


대부분 수긍할 수 밖에 없을 판단들.


하지만, 실제 영화를 직접 보고 나니

비슷하지만 분명 다르게 와닿는 부분들도 많았다.

그래도 저자 덕분에 이 영화를 

일부러라도 끝까지 다 보게돼 좋았던 건,

책이 연결한 마츠코 부분 이외에도

책 이곳저곳의 내용들과 연결해

영감을 줄 만한 마츠코 인생스토리들이 많아

책에서 느껴지는 깊이가 풍부해진 기분도 들었다.


마츠코의 인생 앞에

'혐오'라는 글자가 붙는 제목인 건,

그녀가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쁜 얼굴, 뛰어난 몸매, 중학교 교사.

특별히 흠 잡을게 없는 시절을 보내는 와중에도

그녀는 타인의 일들에 선한 해결사가 되려는 듯한 

묘한 안절부절 함을 보인다.


그런데, 주변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순수하게 다가서거나 존중하는 이가 없다.

그런 사람들 뿐임에도 

20대까지의 그녀는 

시종일관 사람들을 순수게 바라본다.


뒷끝이라곤 없고, 당혹스러움은 있는.


타인과의 경계가 모호하고,

자신의 마음을 상대의 마음에도 투영하는,

자기인식엔 무척 서툰 

안타까운 순진함을 보여주며. 


환경으로 만들어졌을까 아님 타고난 팔자인가?


못했어도 그냥 굴러갈 법도 한 인생일텐데 

잘해도 계속 특별한 꼬이는 이유는?


그저 외로워야 할 운명도 있을까?


글쎄...영화 속 가상의 주인공이지만 

결코 드물지만은 않을 인물설정 같다.


영화에 후반부에 나오는 본인 대사 중에

가장 핵심이라고 와닿는 부분이 있다.


자신은 '혼자'이지만 않으면 된다고 읊조리는...


혼자여서 지옥, 

같이 있어도 지옥이라면,

같이 있는 지옥을 택하겠다는 선택을 한 그녀. 


아무도 없는 불꺼진 집에 들어서며

빈방에 항상 '다녀왔습니다'라며 

허공 속 인사를 해야하던 마츠코였기에...


책의 선택대로 

불안을  제일 크게 놓고 볼 수 있는 영화지만,

'외로움', '애착', '심리적 경계'를 메인주제로 놓고

그 심리를 들여다 봐도 될 영화라고 생각한다.


영화리뷰가 아닌 책서평이니

책의 또다른 부분과 연결시켜 보자면,


가스라이팅이 될 수도 있다는 보살핌의 맹점과 

무조건적 포용 또는 무조건적인 사랑의 갈구는,

마츠코에겐 책 정도의 확실한 구분은 없고

한 사람이 보일 수 있는 포괄적 행동으로써,

 

보살핌은 익숙한 처세로 선택한 것이고,

무조건적 포용이란 그녀의 선함이 반영됐으며,

조건없는 사랑은 자신도 그렇게 대우받고 싶던 희망사항이었다.


그렇지만, 타인과 상호작용에 전부 실패하면서

최종적으로 마츠코의 인생엔

'혐오'스럽다란 단어가 붙는다.


마츠코는 사는 내내 불행하고 불안했고 

기준없이 맞춰주기만 했던 인생을 산 듯 보이지만,

53살에 숨을 거둔 마츠코를 알던 사람들은

그녀를 다르게 평가하며 영화는 끝난다.


사실, 마지막 사랑에서 실패 후,

그녀는 사랑뿐 아니라 더이상 사람자체를 믿지 않는다.

모든 마음을 거두고 이웃의 눈길조차 증오한다.

변해버린 스스로를 바꿔보고자 정신과도 다니고 

우연히 재기의 기회도 갖지만 새드엔딩.

혼자인게 싫던 그녀는

스스로 세상과 이별한다.


어쩌면 그녀의 마지막 인생관은,

사랑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제2의 기회를 놓치진 말라는 

책의 큰 주제와 같다는 생각도 든다.


사랑을 바라보는 책속 심리적 핸디캡들이

인지행동분석에서 쓰이는

스키마 해석이나 도식치료와도 상당히 유사하다.


저자 본인의 사랑경험도 담겨 있어

독자와 저자가 가상으로 만나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며 대화하 듯 

상상하며 읽어도 좋은 책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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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 4285km, 가장 어두운 길 위에서 발견한 뜨거운 희망의 기록
셰릴 스트레이드 지음, 우진하 옮김 / 페이지2(page2)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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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도에 한 여성이 홀로 큰 백팩을 메고

미국 한 지역을 도보여행하기 시작했다.

이 여행 자체를 길게 설명하기 보다는 

도중에 만난 그녀를 보며 넘겨집던

'후버 타임즈', 일명 방랑자나 노숙자에 관한 

기사를 쓰는 한 남자가 그녀에게 계속 던졌던 

노숙자와 관련 질문을 떠올리며,

그녀가 어떤 상태로 여행중이었는지 

한번 추측해봐도 틀리진 않을 듯.

대화를 나눈 뒤 그는

한봉지의 노숙자 구급식량을 나눠주고 떠난다.


책 속 주인공 이름은 '셰릴 스트레이드'.

이혼 때 자기 이름에 어울릴 새 성이 스트레이드.

이훈 후 그녀는 한국으로 따지면 

국토종단 쯤의 여행을 시작한다.

미국 중 척박하고 자급자족이 어려운

자연을 선택한 셈이 되버려서,

스스로 생존하며 목적지로 가는 트랙킹이 됐다.


그녀가 이걸 시작한 이유는,

사는게 힘들어서, 

자신이 망가져는게 느껴져서

뭐라도 해야 존재의미를 찾을 수 있어서다. 


이미 영화는 오래전에 나왔는데

그 원작이 이번에 늦게 소개됐다.

혹시 모른다. 

나만 몰랐을 뿐이지, 

이미 소개됐던 책의 복간일지도.


책과 영화를 이제 다 본 입장에서

느낌이 좀 복잡해졌다.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읽은 셈인데

해석이 달라지는 서사가 꽤 많았다.


영화의 가장 첫장면은 

거의 산 정상에 오른 주인공 리즈 위더스푼이

실수로 벗어 놓은 등산화 한짝을

떼굴떼굴 아래로 굴러가게 만든 실수. 

순간 신경질적으로 화가 나 버린 그녀는

나머지 한짝은 더 멀리 던져 버린다.

이 장면에서 아무 설명도 없었지만 

전달되는 느낌이 꽤 있었는데,

책에선 그 영상의 느낌과는 달랐다.


영상에선 

주인공의 불안정한 모습과

자신에게 도움 안되는 선택을 하는 걸 보여주며,

가고자 하는 내면적 수행길의 초입이며

완성시점은 아닌 걸 분명 느낄 수 있었고,

무모함, 자책, 화풀이 등에서

등산화 없이는 갈 수 없는 곳을 걷고있는 이가

한짝이 굴러 떨어져 가져오기 힘들어졌다고 해서

나머지까지 버려버리는게 잘못돼 보였다.

그리고 나서는, 슬리퍼를 테이프로 발에 감아 

등산화 대신 신고 가게 되는데

그게 기지를 발휘하는 걸로는 느껴지지 않더라.


헌데 책에선,

이유가 한마디로 타당했다.

신발을 도저히 찾을 수 없어서 그냥 했던 행동이었을 뿐.

영화에선 아래로 찾을 수 있을 지역으로 굴러가는 정도지만

책에선 찾을 수 없는 곳에 깊게 떨어지듯 

절벽에서 놓쳐버린 느낌으로 표현됐다.

그러니 적선하듯 나머지 한짝 마저도 던져버린 셈.


2개의 모습 중 원작이 당연 맞고 따라야 하겠지만

이 작은 해프닝은 영화가 내겐 더 좋았던거 같다.

왜냐면 부족하고 무모한 주인공이 

한번에 잘 다가오게 그려냈으니까.


주인공 셰릴 스트레이드는

20대에 어머니를 잃고 크게 방황을 시작했다.

끊임없이 흔들리고 후회하기를 반복하게 됐는데

점차 모르는 남자와 잠자리까지 가지며

더 큰 쾌락을 위해 마약까지 한다.

당시 감정을 묘사하는 그녀는

마약을 했을 땐 모든게 잊혀지고

죄책감도 더는 없이 극도로 행복했다고.

모든 건 복없는 엄마의 운명일 뿐이고

자신을 학대한 아버지 탓이 단초가 됐다고 미루면 됐다.

하지만 마약기운이 깨고 모든게 사라졌을 땐

맨정신에 느끼던 불안감과 공허함보다

훨씬 크게 부풀려져 자신을 더 힘들게 덮쳐 왔다.


그러다 한 심리 상담가와 상담도 하게 된 그녀. 

이것도 책은 좀더 상세하고

영화는 단촐하게 정곡만 찌른다.


이건 영화로 요약하자면,


자기 식대로 추모하려는 건 알겠는데

왜 자신을 벌주는 식으로 하느냐며 묻는 상담가.

그러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냐는 질문에 멈칫하게 되고

누구로부터 떨어져 나간 기분이냐는 질문엔 얼어버린다.


책은 10달러의 적은 비용으로 대면했던 

심리상담이었던 건 동일한데,

꽤 믿음가는 만남으로 묘사되면서

당시 그 안에서 있었던 대화를 

큰 기복없이 자세히 그린 편이다.

위에서처럼 순간 파고 들어가

취약점을 건드는 건 없다.


그녀가 겪는 여행 중 사건과 만남들을

천우신조가 필요할 정도는 아니지만,

때때로 만나 도움을 준 사람들을 소중히 간직하며

결국 자신이 계획한 코스의 종주를 마친다.

그리고 그 곳에서 후일 재혼 결혼식까지 하게 되고.

시간이 지나 가정도 잘 꾸려갔음을 알려준다.


어쩌면 이정도도 오픈하는게

스포일러가 될수 있겠지만,

이건 스토리로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닌

회고록에 가까운 책이기도 하고,

결말을 안다고 해서 추리소설 같은 비밀이 

노출된다고 생각하진 않겠다.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그려지는 이 책에서

마지막 그녀의 말은 정리를 위해 꼭 필요하고,

책을 읽으려는 사람들에겐

오히려 마지막에 담긴 얘기가

책을 읽게 될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본다.


그녀는 그냥 체험적으로 알았냈다.

멋있는 자연속이 아니라

척박한 땅에서 사서 고생하고 나니,

자신이 짊어졌다고 생각했던 

삶의 고뇌가 부질없었다는 걸.

그러르모 그냥 살아내야 한다는 걸.

편하게 살아간다는 건

많은 걸 애써 일부러 노력하지 않며 

건드렸다 말면 멈춰버리는 물웅덩이 같은 

감정선으로 살아내는 일이란 것을.


과정이 있기에 결말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과정을 잘 따라가다 필요한 결말을 만날 수 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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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극단에 서는가 - 우리와 그들을 갈라놓는 양극화의 기묘한 작동 방식
바르트 브란트스마 지음, 안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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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를 경제문제로써만이 아닌

인간관계와 심리관계가 가진

역학적 측면에서 바라보게 돕는 책이다.


양극화가 존재하기 위해서

크게 5가지 역할을 상정했다.

이는 이론적 접근과 입장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고

궁극적으론 갈등해소를 위한

실질적인 양극화 전략을 채택하는데도 

가시적인 도움을 준다고 판단된 도구다.


5가지 각각의 역할엔 모두 장단점이 있다

기회와 함정 등 각 역할의 작동방식마다 

장단점이 대가처럼 따른다.

역할에 옳고 그름은 없다.

왜냐면 우리 모두가 한번쯤 

그 모든 역할을 다 해보았다고 생각될 만큼

고정적이지 않은 입장을 대변하니까.

그렇기에 그냥 역할의 작동방식을 보여줌으로써

각 역할을 선택할 때 조금더 

타인까지 배려하며 고심할 수 있게

도우려는 것 뿐이라 밝히는 저자.

무심결에 선택하는 것보단 

훨씬 나은 선택이 되리라 희망하면서.


1. 주동자

양 극단의 가장 끝부분에 존재.

해당하는 극단적 사고에 연료를 공급하는 임무를 띤다.

극단적인 양 극의 리더역할이 주동자다.

유의하면 좋은 건, 

그 반대쪽 극(polar)엔 반드시

똑같은 일은 하는 반대사고의 주동자가 존재하기 때문.

양극은 생각은 아주 확고하며, 

대부분 도덕적으로 자신이 옳다고 믿음으로서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결코 99%도 아닌 100% 자신이 옳다고 생각으로 선동함으로써.

이런 확신이 같은 극쪽엔 에너지를 공급한다.

주동자는 토론이나 논쟁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가능한 새로운 이슈를 양산해

자신의 정당성을 지속하고 제시하는데만 관심이 있다.

반대쪽은 정반대로 공통점이 없다는 것만 부각시켜

어느 쪽에 설지만이 선택사항인 비교대상일 뿐.

주동자는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면 리더 역할을 잃게 되므로

상대를 고려하는 주동자는 눈에 보이지 않을 수 밖에 없다.

주동자가 행동을 바꾸는 것은 체면을 잃는다는 것과 다름 없기에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스스로에게 단점은 이런 주동자는 항상 눈에 띤다는 것.

그로인해 때론 본인의 희생이 요구될 수 있다.

주동자의 심리는 매우 독특하기에

도덕적 독선은 동기를 부여함과 동시에

자신과 타인의 에너지가 되지만,

양극단 안에서 벌어지는 자체 역학의 변덕은

주동자의 앞날마저 알 수 없게 만들수 있다.

자기들이 필요하다 생각하면 희생을 요구하니

애매한 상태에서는 환영받을 수 없는 요소다.


2.동조자

양 끝단의 주동자와 제일 가까운 자리에서

긴장구역을 만든다.

주동자가 흑백논리를 펴고 

긴장구역에서 선택하게 만들 때

동조자로써 활약이 생긴다.

동조자는 완전한 찬성이 아닌

일단 양 극단 중 한 영역을 선택한채 활동을 지속한다.

극단적이지 않고 주동자와 차이가 있음을 스스로 표출한다.

주동자가 요구하면 일부 찬성하는 모습을 보이나

주동자와 동조자는 역할 분리가 돼 있다.

장점은, 

양쪽 진영에서 최고의 것만 취할 수 있고

양극화의 바깥쪽에 존재하면서 지지자에도 속할 수 있다

완전히 극단적이지 않아 언제나 토론할 준비가 돼 있다.

이건 동조자 스스로가 후하게 스스로를 평가한 것이고,

이들은 순진하지 않으며, 

위기가 임박하면 행동에 나서 

한쪽에 뼈를 묻는 선택을 한다.

단점은, 

결국 자신의 색깔이 드러남으로써

어디를 지지하고 어떻게 느끼는지가

상대 진영에 드러난다는 점이다.

정해진 후 주저함과 망설임은 배신행위로 보일 수 있기에

마치 주동자의 태도와 위치처럼 일방통행에 동의하지만

주동자가 너무 멀리 갔다고 판단시엔 거리를 두며

자신의 독립적 사고와 판단 능력을 잃지 않으려 한다.

동조자의 분위기와 열기는 주동자가 가장 잘 판단한다.

어떤 의미에선 인간의 생물학적 측면에서

흑백사고를 이해하고 친구와 적을 구별해야

생존 가능성이 커진다는 의미에서,

동조자란 이런 생물학적 반사작용에

굴복한 사람이라 볼 수 있다.

위험이 다가오면 안전하기를 바라는게 인지상정이라

홀로 서기 보다는 무리에 둘러쌓이길 

선호하게 되는 면도 생긴다.

논거로 정당화 하기 바쁘고

상대의 부정적인 정보만 채택한다.

또다른 동조자의 특징엔

자신이 옳다고 말하는 걸 동의하는 

그런 사람을 포착하는 능력이 있다.


결국, 주동자와 동조자는

생산적인 토론엔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이상적으론 중간지점에 도달해야 

모두의 관점에서 중심이 될 수 있는 대화 가능성이 있고

그래야 모두 공감할만한 질문과 딜레마가 형성 될텐데,

이들의 사고방식은 본인들을 위해 2분법적이여야 하므로

합리적인 토론이란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다음 나올 방관자의 필요성이 생긴다.


3.방관자

양 극으로 치우친 주동자와 동조자 사이에서

거리를 두면 그 중간지대가 생기고, 

여기엔 어느 편도 들지 않는 회색지대가 있다.

간단하게 이를 무관심이라 표현한다.

어떤 극쪽의 주동자의 말에도 

감명받지도 않고 귀담아 듣지도 않고

게임 자체에도 관심이 없다.

혹은 반대로, 너무 강한 참여의식 때문에 

명확한 선택을 주저하는 게 방관자로 나타날 수 있다.

방관자들을 움직이는 건 뉘앙스지 

방관하게 만드는 무관심이 아니다.

즉, 중간에 있는 이들은 

선택적이고 의도적으로 중간에 머문 이들다.

차이와 참여로써 색깔을 드러내지 않고

중립성으로 스스로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부류.

주동자들은 이들을 목표로 삼지만 반드시 원하진 않는다.

왜냐면 자신과 다르게

흑백논리로 접근하지 않는 사람이라 

동화되지 않는 눈엣가시이기도 하니까.

방관자 자체는 스펙트럼이 다양하지만

공통점은 눈에 띄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

그냥 단순히 목소리를 내지 않음으로써 

방관자란 무리로 묶이게 된다.

흑백논리의 장점은 가시성인데

이게 정체성과 확신을 느끼게 해주는 요소다.

이런 가시성은 사람들에게 동기가 되어주고

궁극적으론 의사소통의 촉발선도 된다.

결국 어느 한쪽의 흑백논리에 

선의를 갖고 접근하느냐가 방관자의 존재적 딜레마.


4.중재자

앞의 3가지 역할은 긴장지대에 속하지만,

중재자는 양극화에 대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고민하고 생각하는 부류로써 

관찰하고 결함을 찾아낸다.

결함을 이유로 개입하고 대화를 주선하고자 노력한다.

합리적이라면,

항상 정반대끼리는 견해와 비전을 교환하는게 가능해야 하고

서로의 분명한 차이점과 유사성도 이해하듯 알고 있어야 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중재자의 무기는 '반대 담론'이란 치유법이자 도구로,

반대의견을 다각적으로 고려하게 만들어

주동자와 동조자가 중재적 입장을 취하도록 

노력하고 유도해서 만들려 한다.

주동자가 반대담론의 발언권을 인정한다면 그건

중재자들이 자극이 되줄 원인제공도 할 수 있어서이지

그들의 순수함에 동화됨이 아니다.

대화의 기회는 주동자에게만 있는데 중재자가 오해하는 건,

협곡 중간에 붕 뜬 상태의 다리를 짓는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공중에서 중간쯤 시작된 붕뜬 중재는 마무리 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

즉, 성공할 희망이 없는 임무와 같다.

중재자의 활약은 결국 주동자의 단독발언만 확장시키기도 한다.

중재자와 비슷한 역할엔 언론이 있는데

미디어는 양극화의 기폭제 역할도 한다.

왜냐면 눈에 보이는 가시성 라인을 만들어 줄 수 있기 때문에.

진정한 토론이 아닌 논쟁만을 보여줄 뿐임에도 말이다.

즉, 연료공급 역할을 하지 않는 본질적인 중재자 역할도 필요하지만 

실제 현실에선 거의 불가능한 존재다.


5.희생양

양극화가 과도해지고 심각해질때 생겨나는데

양극화의 역학이란 

동조자가 많아지면 중간자는 감소하는 식.

기세가 강해진 동조자는 새로운 주동자가 되어

기존 주동자가 통제력을 포기하게 할 수 있는데

이런 상황은 일종의 내전이다.

이럴땐 중간지대는 접근 금지구역이 된다.

중간지대 허용범위를 기준으로 

양극화 압력을 측정할 수 있는데,

그 허용도가 '0'이 될 때 희생양이 생긴다.

즉, 반대측에 관용이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됐다는 말.

희생양이 양극단에 존재하지 못하는 건 

거긴 오직 적의 존재만 있지 

희생양이란 용어는 없기 때문이다.

희생자가 있을 중간지대엔 중재자가 존재하므로

중재자들이 희생양 후보에 딱 맞는다.

올라간 긴장도에 첫 희생자는 결국 중재자가 되고

이런 시기의 중간지대는 위험지대다.

변덕과 조바심 때문에 주로

공격해도 주로 방어만 한다고 여겨지는

공적인 위치의 중재자들이 희생양이 된다.

죄책감과 분노를 해소하는 

비운의 안전장치로 활용되는 셈.

희생양이 되어가는 중재자는

자신의 말이 타인에게 닿기 바라지만,

양극화 된 분위기 안에서의 의견전달은

오로지 주동자와 동조자가 원하는 말만 해야 존재한다.

양극화 때 중재자의 의견은 주동자 쪽에서 들을 땐

마치 비판하거나 반박하는 적의 전령처럼 보이기에

희생양의 운명은 생존이 희박해진다.


결국 이런 5가지 요소로 그려볼 수 있는 

양극화 각 진영의 구도와 대립은

해법을 위해 갈등의 구조를 가져와 풀어보고 있다.


갈등과 양극화는 수면에 떠있는 빙하로 표현된다.

떠서 눈에 보이는 건 갈등, 

수면 아래의 빙하는 양극화.


갈등의 성장 및 쇠퇴 사이클은

양극화에 적용가능한 이론으로 보며

갈등은 다음과 같이 크고 줄어든다.


준비→강화→악화→유지→재연결→인정→화해


산 정상을 타고 내려오는 그림으로 상상할 때

유지가 꼭대기 정상이 될 것이다.


평화상태의 반대가 갈등은 아니라고 설명하는 저자.

만일 그렇다면 갈등은 대하기 싫은 부정적 의미만 있을 뿐이기에

생각의 전환이 꼭 필요한 대상이 갈등이라고 전한다.


양극화를 막기 위해선 타이밍이 전부일 수 있고,

변화시키기 위해선 어젠다를 바꾸는 식으로

목표, 주제, 위치, 어조

이 4개 항목의 변화로 양극화를 완화시킬 수 있다고 본다.

이 느낌은 변화보다는 상쇄의 느낌에 가까웠다.


혼자선 쉽게 해 볼 수 없는 이론을 접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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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의 마법 - 상상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든 현실로 만드는 방법
율 스탠리 앤더슨 지음, 최기원 옮김 / 케이미라클모닝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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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의 힘이란 챕터 중에 

짧지만 강한 느낌의 문장부터 요약해 본다.


"한 개인이 자기 존재에 관련된 

모든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면,

개인적 책임만 증가시킬 뿐이다.

그렇기에 매번 바뀔 수 밖에 없는

부수적인 것들에 휘둘리지 말고

계속 덧없음에도 끊임없이 변화하려는 

그 본질부터 파악한 후 

의식적 확장을 깨달아야,

성장과 발전을 유도하는 

열망상태에 놓일 수 있다."


즉, 조물주로부터 부여받은 

권능같은 내재된 힘으로써

스스로를 해방시켜야 한다는 것.


옮기고 보니 신비주의 특성이 가득한 말이긴 하다.


하지만, 

맨처음 언급된 계속 갈등을 한다는 건

안고 가야할 문제만 

양산시킨다는 말은 

심도깊은 성찰이다.


고유의 특성이란 챕터에선,

살면서 자기와 관계된 일에 

수없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인간인 이상,

결국 마음 속에 어떠한 이미지라도 품게 되고 

그걸 가시화 시키며 살아가게 된다며,

자기만이 가진 특정방식으로 챗바퀴 돌듯 

계속 비슷한 생각방식을 고수하는 한 

그 방식 때문에 부여된 듯한 

관성적 삶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내면의 의지나 바램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근본적인 방식을 바꾸긴 어렵다고 봤다.


그러므로, 단지 

내면 시야만이 그런 삶의 방식을 바꿀수 있기에,

이어서 의식확장을 이야기 하고자 하는 저자.


정신기제(精神機制) : 

두려움 or 불쾌한 정황 or 욕구 불만에 직면하였을 때,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하여 자동적으로 취하는 

적응. 도피, 억압, 동일시, 보상 등으로 인해

계속 원하지 않는 결과를 경험하는 것)


정신 기제에 의해 

가슴 졸이다가 결국가선 놀란 일을 겪거나

마음 아픈 상황이 만들어지고,

불평은 하지만 어느 하나도 나아지진 않으며 

그럴 기미도 안 보인다는 말과 함께,

이런 경향을 비유한 말로


"아무도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은,

자신도 어느 누구일지라도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즉, 상대가 싫어 내가 피해야 했고

그렇게 대처하는 듯 보이지만,

자신에 대한 심한 열등감이

상대로부터 나를 감춘다는 뜻 같았다.


결국, 혼자여서

어떤 나아갈 원동력을 부여받지 못함으로 풀이된다.

 

대담하지도, 

패기가 넘치지도, 

상상력이 풍부하지도 않은 

수동적인 삶을 살아가며,

사시나무 떨듯 떨게 만들 부정적 망상에 

정신이 사로잡혀 있다고도 풀이하던 저자.


이런 식의 자신 때문에 

스스로 브레이크 잡게 되는 수많은 제약,

마음 속에 품은 모든 선과 악은

자신이 품은 이미지로부터 만들어진다.


마음상태는 결심에 좌우되지 않고,

외부 세계에서 그 불편한 대상을

만나거나 피하려 할 때 오히려,

그 싫은 대상으로부터 직접 영향을 받게 됨으로써

악영향이 지속된다고 봤다.


어쩌면 무서운 설명이다.


회피는 더 큰 문제를 낳는다는 말이기도 하고,

그렇게 지속된 모면이 

인생에서 저절로 해결되진 않을

숙제를 남긴다는 설명이라.  


이어진 설명에선 칼 융을 언급하며,

인간에겐 본능적으로 의식퇴행이 일어날 수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힘에 붙이더라도 

앞으로 나아가게 될거라고 봤다.


인간이라면 가지는 

병, 공포, 죄책감, 적대감, 좌절감 등은

동물같은 무감각함을 지니지 못했기 때문이며,

표면적 자아의 한계를 못 뛰어넘고

인식확장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면서 저자 본인의 고충을 토로하는데

이런걸 설명하고 이해시키기가

너무도 어렵다는 고백이었다.


자아와 자기(자각적&자기중심적&이기적인 자아)가

서로 별개라는 상식처럼 받아들인 고정관념을 

바꿔주기 힘들기 때문이고,

이 둘이 서로 다르단 것에 집중되지 말고

자아나 자기 모두가 분리될 수 없이 

한몸에 같이 존재함을 받아들이란 논리.


자아와 자기가 가진 문제는

의식의 얇은 벽을 넘어서는 것만이 방법일 뿐

분리해 해석하려는 노력을 한다면 전혀 효과없고

의식확장만이 초월적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반복 강조한다.  


다소 예전 분위기가 나는 구성의 책이긴 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에크하르트 툴레가

고전 반열에 오를만한 책이라며 극찬하는데는

내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가치가 있다고 믿고

긍정적 공감을 위해 노력해 볼 필요는 있다고 느꼈다.


의외로 재밌고 와닿는 바도 많았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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