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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었어
로빈 노우드 지음, 문수경 옮김 / 더난출판사 / 2024년 11월
평점 :
누가 읽더라도 기대보다 더 좋게 느낄 책임에도,
읽기도 전에 책제목만으로 읽을지 말지를 평가한다면,
그 선택폭이 좁아질 확률이 클 수 있어 안타깝다.
1985년 초판이 나왔으니
25년이 지났을 때 다시 쓴 서문을 보면,
그때가 2010년 전후일 듯 한데,
1985, 1997, 2008년 출간된 것으로 책엔 찍혀 있으니
25년째 쓴 이 서문의 정확한 연도는 2008년 일거다.
좀 오래 전 출간됐지만
살아 남은 자체가 인정받은 증거라
그래서 여러번 개정 증보판까지 냈으니
신뢰가 가서 좋다는 이유만도 아니다.
검증된 좋은 고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여러가지 장점들을,
이 책에서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데일 카네기 책 등에서와 비슷하게 느껴지는
담백하지만 핵심을 찌르는 설명들,
정확하게 필요한 건만 언급하고 그런 안목이 이 책엔 있다.
내용면에서,
이미 현재 출간되는 책들에서도 충분히 다뤄지고 있고
비슷한 내용들로 접해 본 듯 해도,
이 책엔 데일 카네기나 나폴레옹 힐 같은
저자나 시대가 탄생시킨 원전에서 느껴지는
그런 느낌처럼 기품이 있고,
오늘날처럼 윤색되고 파생되기 이전에
가장 순수했던 예전 시각으로
핵심내용을 다룬다는 느낌을 준다.
'사랑이 아닌 집착'이란 제목은
책이 줄 수 있는 것 중 하나를 담은건 분명하지만,
이 책은 전체적으로
불합리한 선택과 판단을 내릴 수 밖에 없는
한사람의 심리와 back story의 핵심을 건드리면서
필요한 해결책으로 흘러가고 있는 넓은 구조를 지녔다.
비슷한 내용들로 좋은 책들은 여럿 있지만
이 책 저자만의 느낌과는 다르다.
군더더기 없는 설명으로 관통하는 힘이 있고
필요없이 위로하거나 감정을 심으려 하지도 않는다.
울지 않는 배우의 연기에서
더 슬픔을 느끼게 되는 서사 같다.
여러 내용 중, 멜라니란 여자의 선택을 들여다 보자.
챕터제목은
'잘난 여자가 왜 못난 남자를 선택했을까'지만
못난 남자 존재자체에 누군가는
그 여자의 입장이 되어 화를 내거나
여자가 어리석다는 느낌을 주려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독자는 알아서 느낄 것 같다.
여자는 왜 잘난 여자라 해야하는지
남자는 왜 못나야 하는지.
어머니가 정신병을 가졌던 멜라니...
그녀는 어릴 때 자연스럽게
빈 공간이 된 어머니의 그 자리를 넘겨 받는다.
아버지에겐 아내와 같은 딸이자
형제자매에겐 어머니와 같은 존재가 됨으로써.
어머니는 살아있지만 유명무실 했기에 이유가 됐지만
그래서 멜라니의 어릴적 삶은 시작부터
막중한 책임으로 인해 당연히 무거울 수 밖에 없었지만
저자는 이걸 다른 각도의 이야기로 그녀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어머니는 그녀가 어릴 때 결국 자살하고 만다.
그런데 그 자살동기엔 딸의 이런 불합리한 역할이
일정부분 그리 만들었을 가능성을 말하는데,
그 설명을 듣기 전,
왜 이렇게 한 여자아이를
가혹하게 만들려 하는지부터 공감하기 싫었다.
무작정 이유를 듣고 싶지 않거나
틀린거라 부정하진 않았으나,
이 가엾은 아이에게 그런 해석을 붙이기까지 하는 자체가
정황상 맞더라도 그 방향은 피해주어야 할
일종의 멍에같이 느껴졌기 때문에.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어른스런 딸로 인해
어머니로써나 아내로써 돌아갈 자리를 잃었다고.
정신병이 있는 어머니에겐
더 불안정하게 작용했을 요소였고,
그런 구도를 아버지나 딸이 일부러 만든 건 아니지만
아버지의 책임은 1차적으로 컸으며
불쌍하지만 딸은 엄마 본인을 대신했기에
역할면에서 어머니에게 딸은
아버지와 더불어 가해자인 거라고.
그럼 딸의 인생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딸은 선했고, 능력도 있었으며, 책임감도 있고 신뢰할 만 했다.
그러나 딸은 스스로도 잘 모를 큰 핸디캡이 있는데
그건, 자신이 불행한 누군가를 책임져야
안정감을 취할 수 있는 무의식을 형성하고 있고
그게 인격의 일부분으로도 작용된다는 점이었다.
어리숙하고 착해서 나쁜 남자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그런 관계 안에서만
자신의 분명한 '역할'을 찾을 수 있어 왔기에,
객관적으로 손해보는 관계임을 알면서 맞닿드리고
그 고통 속에서 존재감을 느끼며 사는데
더 안도감을 느끼고 힘을 얻는다는 것이다.
'역경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격언처럼
긍정적 느낌과 불굴의 의지를 구현해 낸 삶 같아도
이와 비슷한 겉모습일 뿐인거지,
자신의 불행을 무의식이 받아들인 선택적 삶이며
천차만별의 내막을 가질 수 있는 개인사를 가졌음을 보여준
선의의 뒷모습을 이해해 볼 수 있는
한 여자의 개인적 슬픈 내막이었다.
이 사례 말고도
애착, 강박 등 여러가지 사례들도 등장하는데
교류분석과 많은 부분 궤를 같이 하고 있다.
해당 이론을 언급하고 있진 않지만
간단하게라도 안다면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공통적으로 적용해 볼 치유법 중
가장 크게 와닿는 조언은
'이기적이 되라'
'영성을 가져라'
'타인을 통제하고 도우려 하지 말라'
등이 있다.
이기적이라는 건,
자신이 타인에게 이타적인 부류라면
자신을 돌보는 걸 이기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에
왜곡된 함축된 의미까지 들여다보게 하는 설명으로 쓰였다.
모든 조언은
그 뜻이 무엇인지로 출발해
왜 그게 필요한가로 끝나는데,
독자의 불필요한 판단없이
살아있는 설명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좋은 구조의 배려같다.
영성도, 타인을 돕지 말라는 말도
이기심처럼 각각 설명과 이유가 따로 붙어있다.
타인을 돕지 말라는 이유를 보면
간단히는 마약 중독자가 단약을 해야하는 이유와 같다.
평생 익숙해져 있는
주변만을 도우려는 그 습관,
그것을 버려야 본인이 산다는 필요성과
자신을 위한 새로운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는
괴롭겠지만 마약을 끊듯
지속해 온 익숙한 공감능력과 동정심을 절제하란 뜻이다.
전체를 다 읽어야 와닿을 내용들이 많은데
항목만으로만 본다면 대부분 단순하지만
실상 들어가보면 세심하고 정확하다.
매우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