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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삶은 보통의 날들로 이루어진다 - 리추얼이 만드는 일상의 회복력
펄 카츠 지음, 정영은 옮김 / 북다 / 2025년 12월
평점 :

[출판사 제공도서에 쓰는 주관적 서평입니다]
키워드는 단 하나로 '리추얼(의식, 루틴)'뿐이지만
전체내용은 이 하나에서 출발해 방사형으로 퍼지며
모든 사생활과 연결되는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일상속 반복적인 모든 일들이 평온을 준다는 논리로써.
일단, 리추얼의 의미를 보자면
무언가를 할 때 같이 행해지는 행동속 모든 과정들로,
만일 그걸 이루는 10가지 과정들이 있다고 할때
이들 하나하나는 다 리추얼의 구성요소들이다.
아침에 이를 닦는다로 상상해보자.
(책에선 가장 먼저 스타벅스 주문을 예를 들었지만)
일어나서, 화장실로 가고, 자신이 신는 신발을 신고,
오른손잡이는 오른손으로 왼손잡이는 왼손으로 칫솔을 잡겠고,
치약을 짜고 컵을 들며 이를 닦은 후엔
헹구는 동시에 젖은 칫솔을 정리하고 손도 닦는다.
이 하나하나의 행위들은 다 모였을 때
'이닦기'라는 일상 속 리추얼 1개를 만들어 낸다.
책이 수많은 간단한 리추얼들까지 상세히 말하진 않는다.
결혼, 군생활, 죽음, 연애 등 좀더 굵직한 주제들만으로도
책이 말하는 리추얼들은 넘치니까.
그러나 리추얼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 내야 할 때,
난 앞서 말한 이닦기 같은 걸 떠올리며
책이 설명하려 정답이었다고 기억할 것 같다.
리추얼...
그렇다면,
제목으로 언급한 단단한 삶과 보통의 날 중
리추얼은 어떤걸 더 대표하는가?
당연히 리추얼은 보통의 날이어야 한다,
왜냐면, 그런 날들이 모여 단단한 날이 된다는 논리의 책이니까.
일상의 리추얼인 그런 행위들이
우습지 않을 때 평화와 안정을 선사받을 수 있음으로.
죽음과 같은 무거운 사건도 리추얼이 되고
이닦기처럼 매일의 일상도 리추얼이 될 수 있는 건,
누구나 다 경험하는 일상이긴 하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
죽음...
그 리추얼은 장례식이다.
장례식은 죽은 이를 떠나보내는 예식이지만
저자는 시신 없는 장례식을 경험케 하는
사고사 때문에 치뤄진 경우를 예로 들며,
그렇게 누군가를 잃었다는 경험을
산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건
보통의 장례절차가 주는
그 리추얼을 경험하게 되기 때문으로 본다.
그런데,
떠난 누군가가 진짜 떠났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건
그를 향한 깊은 그리움도 이유는 될 수 있지만,
물리적으로 고인이 부재해버린 장례식이 생긴다면
그것이 주는 완결되지 않은 미완결 절차의 탓으로도 봤다.
죽은건 알겠으나 그 죽은 이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아무도 확인할 수 없게 된 장례식.
그건 떠나보내야 할 사람들에게 일종의 준비를 뺏는다.
추모하긴 하지만 1, 2, 3이었야 할 과정 중
1이 빠진 2와 3으로만 치루어진 미완결성이 남긴 느낌.
그건 장례의 리추얼이 가진 절차가 완성되지 못했기 때문.
리추얼이란 반드시 완결성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러나 구성의 완결이 결국 리추얼이라 생각드는 건
구성요소가 모두 맞물릴 때 하나의 리추얼은 완성되니까.
결국, 리추얼이 단단한 삶을 만들수있게 하는 건
본인이 누려왔던 상식이나 루틴이 지속되는
어떤 리추얼을 지속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큰 의미 없이 받아들였던 사소한 것들 모두엔
사실 저마다의 리추얼이 담겼었음을 다시 돌아본다.
은연중에 행하고 있던 일상속 리추얼들이
다 별볼일 없게 모여 한 인간의 삶을 만드는 기분.
그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고 있다는데 당연 동의하고.
자각하지 않고 산듯 숨겨졌던 많은 종류의
리추얼들을 자각하는 것에서 감사와 평온함이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