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과 선귤당의 대화 - '종북소선'의 평점비평 연구
박희병 지음 / 돌베개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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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말한다,
이덕무에 대해 통틀어 현시점에서 돌이켜 볼때
많은 것이 평가절하 된 듯 느껴져 심히 불편하다고.
이 부분을 읽을 땐 상당부분 저자의 견해와 일치했다.
우리의 고전들, 여기서 고전이라 함은
한글이 주로 쓰이기 시작한 이전 시대에 저술된
한문으로 쓰여진 책들을 말하고자 함인데,
이런 고전에 관심은 많으나 직독직해 할 능력이 못되기에
항상 이런 책들을 편역해 내는 오늘날의 한학자들의 노고에
매우 고마워하고 그들의 책에 감사하고 있는 입장에서
이런 고전들을 현대적인 해석과 도판으로 접할 수 있어
남의 노고를 너무 쉽게 취하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덕무.
그의 이름을 몰라야 할 사람이 많은데
상상컨데 예상외로 이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지 모른다.
왜냐면, 고전과 옛 선비들에 관한 책들이 한동안 많이 선보이면서
이덕무하면 꽤나 오르내리던 이름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이덕무란 이름도 더 알려지긴 했어도
이 책의 저자 입장에선 제대로 알려졌다 못느낄 수 있다.
왜냐면, 짤막한 일화들 속에서 그의 모습은
무식하게 책을 읽어대는 이미지로만
상당부분 인식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서론은 이쯤 접고 책을 살펴보고 싶다.
'종북소선'이란 이덕무가 연암의 글을 뽑아 일종의 평론집이다.
그걸 다시 이 책의 저자가 다시 한번 해설의 수고를 더했으니
'평론집을 위한 평론집'쯤 된다고 생각하면 맞을 듯 싶다.
이 해설집과 동시에 원본이 되는 '종북소선'도 출간됐다고 알고있는데,
여기서 왜 이 책의 저자는 '종북소선'에 이리
관심을 가질까 궁금해 질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간추려보자면, 그리고 거기에 나름의 느낌을 더하자면
박지원이란 현재 정약용과 더불어 점점 더
새롭게 인식되고 있는 문장가의 글이 중심뼈대를 이루고
박지원 스스로 평가한 자평서인 줄만 알았던
종북소선에 대해 실제 저자인 이덕무의 글을 느껴볼 수 있음으로써
독자에게 전달해 줄 수 있는 지식의 시너지가
무척 크다고 보진 않았을까 싶다.
나 스스로 짦은 평을 쓰고 있으면서도
두사람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한 고전에 대해
너무 허술한 평을 내리고 있진 않은가 내심 걱정된다.
이 책을 읽고 원본까지 읽는다면야 더욱 금상첨화겠지만
해설집만을 접한다 해도 분명 얻는게 많으리라 장담하고 싶다.

 

해설의 도구로써가 기본 골격이기에
이 책이 분명히 해설집으로써의 모습이 가득하지만
박지원의 글과 거기에 달린 이덕무의 미평은
결코 허술하지 않게 실려있다.
'미평'은 원본 상단에 일정한 칸을 만들어 두고
이덕무 자신의 평을 서술해 놓은 것을 뜻하는데
이런 미평을 포함한 모든 장치들을 역자 박희병씨는
'탁월'하고 '독창적'이라 풀이한다.

 

한문으로 씌여진 옛 선조의 책들이
엄청나게 잊혀져 가는 중인 것으로 안다.
번역을 담당하는 기관도 있고,
어느 부분들은 해석이 완역돼 있어
웹으로 그 해석에 접근이 용이하도록
편리한 정보제공도 되고 있지만
내가 알기론 상당부분 전문가들의 시각에선
한참 못미치는 아쉬운 성과라 한다.
이런 시점에서 이런 책들의 등장은
정말 인식을 가진 이들이라면 고마워하고
반드시 곁에 두고 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타의에 의해서건, 아님 자의라면 더 좋을 그런 노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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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경제학 (반양장)
누리엘 루비니 & 스티븐 미흠 지음, 허익준 옮김 / 청림출판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슬금슬금 잊혀질듯 보였던 세계적 경제위기의 악몽이
마치 다시 재현될 듯 여기저기서 나름 이름있는 저명인사들이
한마디씩 하고 있는 걸 여러 매체에서 접하고 있다.
각자,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는 건 어느정도 자율이겠지만
책임을 질 수 있는 말도 아니고 그럴 만한 범위의 일이 아니다.
그런 와중에 늦게나마 새로운 경제사를 쓰고 있는
작금의 시대에서 그 시발점에 섰던 '루비니'를 이 책을 통해
이렇게 접해볼 수 있다는 건 한국에 사는 독자로썬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가 미국의 경제 위기를 단계별로 예언했을 때,
물론 경제학적 사건에 대해 '예언'이란 말이 적합한진 모르겠다.
여하튼, 그가 자신의 이론을 발표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당연히 귀담아 듣지 않고
그냥 한사람의 의견 정도로 치부했었고
그의 이론가로써의 진가는 일어나지 않았었다면 좋았을
'미국발 경제위기'라는 전대미문의 환란으로 인해
자의반 타의반 증명되고 말았다.
그가 누가 시키지 않은 비극의 이론을 선보였던건
분명 자의였겠지만 자신의 스타성을 목표로
그 이론이 실현되기를 바라진 않았을것이라 믿고 싶다.

여하튼, '루비니'는 일순간 세상의 어느 경제학자 보다도
더 지명도가 높아졌고 그 명성은 지속중이다.
현 시점에서 그를 바라보면서,
경제학에서도 선점효과라는게 있음을
나름 증명해 보이고 있는게 그가 아닌가도 싶다.
그런 '루비니'의 책을 언제쯤 읽을 수 있을까
생각날 때 마다 혹 나온 책이 없을까 찾아보곤 했는데
이렇게 몇년만에 그의 책을 1권 결국 만날 수 있게 됐다.

이 책을 열어보기전 그 내용을 상상했었다.
아마, 자신이 세운 이론들에 대한 과거와 미래에 존재할 자신감과
일부러는 아니지만 비관이 주를 이룬 경제학적 전망을 내놓았을 거라고.
하지만, 대부분 이런 나의 추측들은 빗나가 버렸다.
앞서 말했듯, 이 책은 분명히 '역저'다.
경제학에서 내가 생각하는 역저라 함은,
시대상황을 담은 저술이나 그에 따른 공간적 제약이 느껴지기 보단
전반적인 저자의 통찰력을 느낄 수 있는 동시에
그만의 색깔이란게 느껴지면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소 등이
책 전반에 골고루 배치돼 있어야 그렇다고 부르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분명한 '역저'다.

시중에 얼마나 많은 대중 경제서들이 많은가?
다들 나름의 읽어볼 만한 가치를 지니고들 있지만
다른 어떤 분야의 책들보다도 특히나 상당한 부피를 자랑하는게
바로 경제분야의 책들이다.
그렇다고 해도 꼭 업데이트 하듯이 비슷한 책들이더라도
읽어나가고 읽어야만 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생각보다 많은 책들의 내용이 겹치고 중언부언하는 것들이 많다.
그런 책들속에서 이 책이 단연 '역저'로써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이유라면
첫째는, 가감없는 경제역사에 기초한 서술이 되겠고,
둘째로는 '선점효과'에 가까운 '루비니'만의 이론이 뚜렷하며,
셋째로 하이예크적 사고거나 케인즈적 사고이거나에 상관없이 받아들일 만한
담대하면서 단백한 글을 책에 실었단 점을 들 수 있겠다.

매 페이지마다 아무나 사전지식없이 읽어도
무리없을 소화하고 이해할 만한 상당한 경제상식들이
나름 빼곡히 정리돼 있다, 이 부분들만 해도 상당한 듯 싶다.

이 책은 이로보나 저로보나 확실히
'읽을 가치'란게 무언인지 보여주는 책인 동시에
단 1권만의 대중 경제서를 읽어야 한다면
무엇을 선택해야 할 지 답이 되어줄 책이 돼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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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rass Verdict (Hardcover, 1st)
Connelly, Michael / Little Brown & Co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다 읽고난 후 큰 줄거리만 떠올려 보니
이 소설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한번쯤 봤었을 듯한 소재다.
하지만, 이 책 때문에라도 '미키 할러'가 등장하는
다른 작품들까지 더 읽어보고 싶게 만들었다면
이는 적어도 나에게 만큼은 분명 인정해 줘야 할
'코넬리'표 글솜씨로 보인다.

정말 오랜만이다.
여지껏 법정 소설이나 영화를 아주 끊고 살았던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법정관련 소설을 재밌게 읽고 뭔가 이정도 느낌을 가져본 게.
이 책 때문에 '어 퓨 굿 맨'이나 '야망의 함정' 같은 법정영화들도
다시 한번 감상하게 됐는데 이 책만큼  재미를 건지진 못했다.

완벽한 재활을 끝낸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회복한 변호사 '마이클 할러'가 본업으로 복귀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아니 그와 더불어 일의 활력을 다시 느끼기 위해!
마이클 코넬리가 쓴 많은 책들을 말하면서
결코 빼놓을 수 없다는 '해리 보슈'도 이 책에 등장하고
시인의 주인공 '맥커보이'도 약간 등장하지만,
막강하고, 막강했던 이런 여타의 등장인물이 같이 했음에도
변호사란 직업때문에 벌어지는 일 이외엔 특별한 매력은 크게 없는
'미키 할러'란 인물 그 자체와 잇따른 활약상이
무척이나 단순하면서 이 주인공만이 만들수 있는 독특한 재미를 준다.
미국이라서 가능해 보이는 부분들 또한 나름 비중있는 흥미거리다.
이혼한 전처 중 한명을 계속 비서로 두고 있고,
(이유라면 남 주기엔 아까운 비서로써의 능력 때문?)
그런 전처의 현재 애인이자 자신의 개인 수사관이기도 한 이와는 각별한 친분.
(나름 벽도 생길만한 사이임에도 놀랍게 진솔한 관계 지속)
그리고 죽은 전임변호사의 고객이었던 패트릭이란 젊은이를 위해선
임시로 자신의 운전사로 고용해 자립할 발판을 마련해 주고
복잡해 질 수 있었던 그의 소송마저도 최대한 깔끔한 마무리를 지어 준다.

단순히 생각해 보다면,
쫓고 쫓기는 식의 전형적이고 무게감있는 범죄스릴러적 요소도 없고
도리어 다소 대중적이면서 통속적인 플롯이 많이 담겨있음에도
이런 식으로 나름의 큰 재미를 느낄 수 있게 쓴 책이라면
이를 단순 개인취향과 관련된 감상이었다고만 평하고 싶진 않다.
팽팽한 대결구도나 연쇄살인범 같은 극한캐릭터나 비등한 조연은 없지만
코넬리의 여러 책중에서도 이런 스타일의 법정 스릴러도
굉장히 매력적이게 읽힐 수 있었던 이유는,
사무적인 관계임에도 흐르는 따뜻함이나
유머,냉소, 나름의 반전 등을 고루 넣어
한 장르 소설이 가지는 스토리적 한계를 극복하면서
여러 주변적인 얘기들과 주된 법정관련 얘기를 잘 배치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는 주된 흐름을 읽지 않고 이야기를 잘 만들어내는
스토리텔러로써의 '마이클 코넬리'가 가진 능력이라 느껴진다.

제목 'Brass Verdict'을 사전엔 있으려나 싶어
찾아도 보고 없기에 유추해보려 조합도 해봤지만
읽기 전엔 그 답을 찾을 수 없었다가
책의 말미쯤에 다 가서야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코넬리가 이 책을 구상하면서 핵심으로 생각했을 핵심단어를
책제목으로 썼을것이란 생각해 봤을 때
이는 아마도 '악법도 법이다'란 소크라테스적 해석보단
클린트우드의 영화 속 '더티해리'에 가까운 해법을
더 정당성 있게 그려내고 싶었는지 모른단 생각을
책제목의 뜻을 알게되며 떠올려 봤다.
사실 난 소크라테스 적인 해법이 좀더
책의 재미를 배가시켜줬을 거라 믿고 있지만.

끝으로, 코넬리의 다른 책 중 재밌게 봤던 '시인'의 느낌이
속편인 '시인의 계곡'에선 솔직히 그만 못했었단 얘기를
'The Brass Verdict'의 감상평 말미에 덧붙여보고 싶다.
단지 속편이 가졌던 줄거리 자체의 한계 때문만이었을까?
개인적으론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어지는 속편과 전작의 번역자가 동일하지 않다.
같은 등장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왠지 2권의 책속에서
같은 듯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시인'에서의 느낌을 먼저 간직해서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난 시인의 번역가가 좀더 캐릭터를 잘 살린
번역을 구사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시인의 계곡도 시인을 번역한 이가 했었어야
두 작품이 어느정도 연장선에 했다고 더 느끼며 읽혀졌을거라 믿는다.
레이첼의 느낌은 좀더 무거워 졌고,
해리는 좀더 단순해지고 덜 입체적이 된 듯한 느낌은
번역기술의 차이라기 보단 번역자들의 정서적 차이였을지 모른다.

이 책의 감상평 끝에 다소 관계없는
'시인'이나 '시인의 계곡'과 관련된 번역을 언급했던 이유는
이 책에선 좀더 주인공들의 개성을 잘 살릴 수 있을
그런 번역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 때문이다.
의역이나 번역자체를 말하려는게 아니다.
단지, 작품 전체를 통해 등장인물들이 뿜어내는 미묘한 느낌을
잘 살려 번역해내는 게 모든 번역물의 핵심사항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것이 독자가 좀더 책을 재밌게 여기느냐 아니냐로 이어질 수 있는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하니 말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내 주관적 해석이기도 하지만.

이 책의 번역본이 나왔을 때,
'미키 할러'나 '해리 보슈', '월터 엘리엇'까지
책 전체를 통해 느껴지는 그 느낌으로 좀더 잘 살아나 있길 바란다.
순간 월터 엘리엇의 느낌이라면
영화'추적'에 등장하는 '마이클 케인'같은 모습이 떠올려 지는데
이도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느낌일 뿐이다.

재밌게 읽은 이 책도 어서 빨리 좋은 번역을 거쳐
'마이클 코넬리'시리즈를 좋아하는 독자들을 위해
국내출간이 된 그의 작품목록 속에 들어갔으면 좋겠단 바램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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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팅 클럽
강영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소녀스러운 이야기가 있을거라 상상했었다.
엉뚱한 딸과 낙천스런 엄마사이에 갈등을 재밌게 풀어내면서
결국 깜찍한 해피앤딩으로 얘기를 마무리 하지 않을까란 상상.

결론적으로 일부는 맞았고 상당부분은 이 예상을 빗나갔다.
그렇지만, 한가지 크게 맞았다고 할 만한 것은
비극적으로 보여질 수 있는 상황들을 희극적으로 묘사한 건 아닌가 싶은
그 글솜씨에서 내가 했던 착각과 상상을 합리화 하고 싶다.

다소 자전적인 얘기가 근거가 됐고,
저자 스스로 지금 쓸 시점이 아닌데 쓰게 됐다고 생각하기에
모든 등장인물에 관한 이니셜화와 더불어
불행한 듯 보이지만 담담하게 희극적 흐름으로 얘기를 흐르게 한 것은
어느 정도 자기 보호본능적인 글쓰기 의도는 아니었나 싶다.
그렇지만 작가의 뛰어난 점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재미를 그 때문에 놓치지 않았고, 애매한 듯 솔직한 부분이 많았으며
실화가 많이 실려있는 듯 하지만 소설이 가지는 상상의 나래를
맘껏 이용함으로써 사실적 소재는 소재대로 살리면서
여성 작가 특유의 느낌을 살린 자신만의 단단한 소설을 써냈다는 것.

엉뚱한 듯 살아온 주인공의 삶에
내가 보기엔 진정한 행복은 없어 보였다.
매 순간 운도 좋아 보였고 고비도 매번 잘 넘었으며
크게 잘못될 수 있었을 순간에선 나름 넘지않은 선이 존재했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주인공 그녀의 인생 흐름은
행복보다는 힘들지만 살아내야 하는 삶 자체를 더 많이 보여주는 듯 했다.
가정의 행복, 평범한 친구들, 평탄한 성장과정 등
이 중 어떤 것도 그녀에겐 쉽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이렇게 보이는 그녀의 삶이
읽는 동안엔 그리 슬퍼보이지 않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작가의 글힘 덕분이라 생각한다.
되돌아 생각해 보니, 자살을 시도하는 주인공 친구의 삶은 그렇다치고
그녀의 남편을 보는 독자나 작가 스스로 큰 우울함을 심어놓지 않은건
어느 정도 이 책이 지닌 타자스러운 냉담함이 아니었나도 싶다.

'라이팅 클럽'이라는 제목 때문인지
많은 책들이 조연처럼 등장하고 그 중엔 '노동일기'같은 주연급도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관계들이 글로 인해 맺어지고 떠올려지는게 많다.
그렇지만 글보단 주인공의 인생에 더 관심이 집중된 소설이랄 수 있다.

책을 다 읽은 소감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군더거기 없고 깔끔하 소설'

일상적인 삶을 그렸는데 이만큼 군더더기가 없기 쉽지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그럴 수 있다는 것 때문일까
앞으로 이 작가의 또다른 책에 대해서도
더 큰 기대를 걸고 싶게 만드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녀가 예전 큰 문학상을 받았건,
앞으로 굉장한 판매부수를 자랑하는 작가가 되건 안되건
분명한건 사소한 주제지만 거기서 가치있게 느껴지는 글을 써낸다고
독자로써 느껴지게 만드는 글을 써내는 작가란 느낌을 준게 중요친 않을지.
재밌기에 대중적인 그렇지만 깊이가 있는 '담백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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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포밍 Transforming
브뤼노 자로송 외 지음, 강미란 옮김 / 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애플북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제나 사람이 문제다.
내 자신의 문제도, 사회적 문제도, 그리고 경영일선의 문제도
넓게 본다면 그 중심엔 언제나 사람이 있다.
당연한 얘기겠다 싶으면서도 파고 들수록
점점 더 복잡할 수 밖에 없을 관점이다.

프랑스인 저자들이 공동작업으로 펴낸 이 책의 논점은
경영일선에서 성과를 내기 위한 전제조건을 다뤘다고 보여진다.
그들이 제시한 그 전제조건이란?
한마디로 정의돼 있긴 하지만 그 정의를 완벽히 단정짓기엔
책 전체에서 말하고 있는 얘기 모두가
허리에 묶은 끈들처럼 하나하나 서로 연결된 느낌이 든다.
생각해 보니 저자들의 말들처럼 정말 그렇다,
대부분의 경영자들은 협력을 얘기하며 진정으로 독려하는데
직원들 일부는 같은 방향을 다른 일부는 자기만의 방향으로
각자의 힘을 쏟으면서 그 경영이란 항해 중인 회사란 배 속에
그들의 몸과 정신을 싣고 동상이몽 중에 있다.

저자들은 말한다.
딜레마적인 상황들을 다 어떻게 할 것이냐고.
일관된 하나의 힘을 만들어 내자고 말하는 동시에
각자의 역량 또한 고취시켜야 함을 역설해야 하고,
열린 마음을 가지라 하면서도 규범준수를 역설해야 하며,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동시에 자율 또한 강조하는 역설 말이다.
권위에서 확신으로, 이로부터 다시 참여와 수용에 이르기까지
이 4가지 관점에서 주로 다뤄지는 저자들이 바라보는 경영의 도(道)는
일리가 가면서 동시에 복잡하고 모호하다.
잘못된 전개와 결론이라서가 아니라 원래 복잡한 인간중심 조직얘기를
책 1권으로 완벽한 결론을 낸 다는 거 자체가 부조리다.
"Case by Case" 그리고 이것들의 연속되는 처리와 이어짐이니.

저자들은 한가지 완벽한 결론보다
개략적인 결론을 도출해 놓은 것과 동시에
그 과정 중에서 보여주었던 사고의 확장을 중시한다.
권위를 얘기하면서 그것이 구시대적인 해악이 아니라
어느 관계에선 도리어 약이 될 수 있음도 보여주고,
참여의 긍정적인 면과 함께 이로 인해 야기되는 혼란도 함께 논의한다.
즉, 모든 발전과정의 단계마다엔 각각 일장일단이 있음을 거론하면서
그 자체에 묶이기 보단 생각을 달리 해보고 느껴봄으로써
뭔가에 대한 상황대처 능력을 스스로 만들어 내고 업시키길 유도하는 듯 하다.

앞서 말했듯 흔히 서점에서 볼 수 있었던 그런 경영서가 아니다.
말그대로 프랑스저자들의 프랑스적이라 느껴지는 논리 전개를
기존에 접해봤을 사고들과 비슷하면서도 단연 차별되게 보여준다.
명쾌하고 일목요연함을 바라는 독자에게 보다
애매함 속에서 파생될 수 있는 무궁무진한 생각의 가지뻗기를
가치있게 느껴보길 원하는 독자에게 매우 큰 기쁨을 줄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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