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곡』을 읽으면서 가지를 친 책들이 또 쌓였다. 열린책들에서 나온 『신곡』상·중·하권을 갖고 있는데, 구스타프 도레의 판화와 상중하권이 합본으로 재출간된 『신곡』을 샀다. 도레의 판화 때문에! 다른 책에서 보던 판화하고는 다르게 선명하고 디테일한 선들이 살아있다. 벽돌 책이어서 패복(佩服)하며 읽을 수 없다. 갖고 있던 작은 책에는 마음껏 줄도 긋고 메모도 했다. 이제 소장 책이 따로 있으므로.
『신곡』에 수록된 구스타프 도레의 판화
『명화로 보는 단테의 신곡』을 먼저 구입했었다. 이 책은 시를 이야기 형식으로 쉽게 풀어쓰고, 『신곡』을 소재로 한 그림들을 함께 소개하고 있어서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여기에도 구스타프 도레의 판화가 소개되고 있다. 윌리엄 블레이크나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들도 많이 수록되어 있어 후대의 예술작품에 많은 영향을 준 단테의 위력을 실감하게 된다. 단점이라면 도판에 대한 소개가 상세하지 않은 점이다. 지옥과 연옥 천국의 구조도를 잘 그려 놓아서 텍스트를 통해 상상할 수 없던 지점들을 이미지화해서 이해할 수 있다.
아르떼에서 나온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중 『단테』는 민음사 『신곡』을 번역한 박상진씨가 단테의 생애와 사랑, 정치 활동, 망명, 작품에 관하여 기행문 형식으로 쓴 글들이다. 다른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단테와 관련된 지역을 여행하며 그의 삶의 자취를 그린다.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과 그가 세례를 받았던 산 조반니 세례당, 그가 공부했던 산타크로체 성당과 산타노벨라 성당, 베아트리체를 마주쳤던 아르노 강변, 도시의 성곽과 베키오 다리 등 피렌체의 풍경을 스케치 하고 있다. 망명시절 머물렀던 도시들과 지났던 길들, 특히 마지막 머물렀던 라벤나를 여행하며 단테에 대한 이탈리아인들의 자부심을 느낀다. 단테의 가문과 당시 피렌체의 경제, 정치, 외교적 상황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단테의 죽음과 그의 유해를 되찾아 오려는 피렌체 후손들의 노력과 빼앗기지 않으려는 라벤나 시민들의 모습이 아이러니하게 다가왔다.
단테 알리기에리의 『새로운 인생』을 영어로 번역했던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는 “『신곡』에서 베아트리체의 역할을 온전하게 이해하려면 『새로운 인생』에 대한 지식은 필수적”(14p 『새로운 인생』 민음사)이라고 말한다. 아홉 살 때 만나 몰래 사랑을 키운 단테는 그녀에 대한 사랑을 시로서 적고 작가의도를 함께 적어 놓았다. 정혼자가 정해진 그에게 베아트리체는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이었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수 없는 그의 안타까움이 때로는 치기와 같은 행동으로 감출 수 없는 슬픔으로 시의 곳곳에 묻어나고 있다. 그녀의 죽음 이후 마지막으로 시를 쓰면서 “그녀에 관해 좀 더 훌륭하게 말할 수 있을 때까지는, 이 더없는 축복을 받은 사람에 대해 더 이상 아무 얘기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내 목숨을 몇 년 더 연장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다면, 그녀에 관해 여태껏 어느 여인에 관해서도 써진 적이 없는 바를 쓰는 것”을 희망한다. 아마도 그것이 『신곡』에 나타난 베아트리체의 모습일 것이다. “은총의 주인이신 주님의 선하심으로 내 영혼이 이곳을 떠나 그 여인의 영광, 즉 세세 만세토록 축복을 받으실 주의 얼굴을 끝없이 바라보고 있는 그 복된 베아트리체를 바라볼 수 있기를 기원한다.” (107p 『새로운 인생』 민음사)
이 책에 함께 수록되어 있는 조반니 보카치오의 「단테의 생애」에 대한 글은 열렬한 찬양으로 바쳐지고 있다. 피렌체의 르네상스 전성시대의 작가 보카치오는 단테의 삶과 금서가 되었던 작품들이 전해지는 과정에 대해서 보다 상세하게 전하고 있다. 시간적으로 단테의 시대와 가까웠던 인물의 글이라 귀한 근거 자료가 되는 반면 열광적인 태도 때문에 과장된 면이 있지 않을까하는 우려감을 갖게 한다. 『신곡』을 쓰기 시작한 시점에 대해 조금 상이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로마의 가장 아름답고 가장 유명한 딸 피렌체의 시민들은 나를 그 달콤한 품안 밖으로 내동댕이치는 것이 즐거웠으니(나는 그 품 안에서 태어났고 내 삶의 절정기까지 부양되었으며, 진심으로 나는 그곳의 좋은 평화와 함께 그곳에서 피곤한 내 영혼을 쉬고 내게 남은 시간을 마무리하고 싶다), 나는 순례자로 거의 구걸하면서, 이 언어가 퍼져 있는 거의 모든 지방들에 갔으며, 내 의지와는 달리, 종종 부당하게 상처받은 자의 탓으로 돌려지는 운명의 상처를 보여주었다. 사실 나는 돛도 없고 키도 없는 배였으며, 고통스러운 가난에 불어오는 메마른 바람에 이끌려 여러 항구와 포구들, 해변들로 옮겨 다녔다.”(23p 『향연』 단테)
귀향에 대한 소망과 망명자의 외로움이 묻어나는 이 글이 수록된 작품은 『향연』이다. 그의 작품들의 바탕이 되는 사상이나 작품의 동기를 읽을 수 있다. 성찰의 깊이가 느껴지는 글들이 담겨있다.
에리히 아우어바흐의 『단테』는 그의 생애와 작품들에 대해서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보다는 무겁고 학적인 글들로 채워져 있다. 에리히 아우어바흐가 『미메시스』에서 말하는 현실의 모방이라는 관점에서 단테의 글들을 분석하고 있다. 미메시스를 보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차이와 그 역사를 기록한다. 베르길리우스와 단테가 창조한 저승의 차이를 논한다. 단테가 중세의 미메시스를 뛰어넘고 있는 점을 지적한다.
특별히 단테의 스틸 누오보(청신체) 시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프로방스의 연애시로부터 이탈리아 북부의 스틸 누오보 시가 영향을 받았고, 그 길목에 귀니첼리와 카발칸티가 있었으며, 단테는 완성했다. 라틴어에서 벗어나 이탈리아 속어로 쓰여진 이 시들은 이탈리아 문학에 큰 기여를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셰익스피어를 떠올리게 된다. 단테는 이 작업에 대한 의지를 『향연』이나 『신곡』에서 여러 번 강조하고 있다.
“하늘과 땅이 도움을 주었으며
여러 해 동안 나를 야위게 했던
이 성스러운 시가 혹시라도,
싸움을 거는 늑대들의 적으로서
어린 양처럼 잠들어 있던 나를 우리
밖으로 몰아냈던 잔인함을 이긴다면,
이제 나는 다른 목소리, 다른 모습의
시인으로 돌아가, 내가 세례 받았던
샘물에서 월계관을 받을 것이다.”
(216p 「천국」 제25곡 1~9행)
그리고 단테의 초기 시와 그 이후의 변모에 대해서, 『신곡』에 담겨진 주제와 역사, 과학, 심리, 예술, 철학, 신학을 총망라하는 지식의 향연에 대하여, 등장 인물들이 전하는 메시지, 알레고리 등을 분석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도움을 많이 받은 책이다. 피구라 리얼리즘에 대한 설명은 신곡을 이해하는 창이 되었다.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와 이탈리아의 역사를 참고하기 위해 꺼낸 책이 민혜련의『르네상스』이다. 미술사를 공부할 때 읽었던 책인데 피렌체와 단테를 중심으로 읽으니 새롭게 다가왔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와 교황의 세력다툼, 겔프와 기벨린으로 양분된 권력투쟁, 이탈리아 도시들의 이합집산의 흐름을 읽었다. 단테가 피렌체에서 추방되는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프리드리히 1세와 교황 알렉산데르 1세의 권력다툼, 시칠리아 공주와 하인리히 6세의 정략결혼으로 강해진 황제의 세력에 대한 교황의 견제, 강력한 중앙집권 정치를 하려했던 황제에 맞선 북부 이탈리아 도시들의 연맹 등, 200년 이상 흘러온 정쟁의 골은 깊어진다. 상업과 수공업으로 부를 축적하고 있던 중립도시 피렌체는 황제와 교황이 서로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야 할 중요한 지역이 되었다. 단테는 정치에 입문하면서 도시의 당파를 통합하고 피렌체를 자치 도시 국가로 세우는데 힘을 썼으나, 교황의 야욕에 맞서 반대파인 백당의 일원이 된다. 결국 그는 교황에 의해 피렌체로부터 추방당하고 망명자의 신분이 된다. 아펜니노 산맥을 넘지 않고 계속 귀향을 시도하지만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산을 넘게 되는 그의 생애는 이탈리아의 당시 상황을 알지 못하고는 생생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피렌체와 그 도시의 풍경, 예술을 알기 위해 주문한 책이 이다. 신곡을 읽다보면 미술가들도 여러 명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단테는 「지옥」편에서 피렌체의 건축물이나 아르노강, 다리, 성벽 등을 비유로 사용하고 있다. 화가 조토와는 가까이 지낸 것으로 알려지는데 신곡에 나타난 이미지들은 조토의 그림에서 받은 인상이라고 한다. 『신곡』의 곳곳에 나타난 단테의 회화적 표현은 그가 보고 영감을 받은 그림들의 영향이라는 생각이다. 조토의 종탑, 기베르티의 천국의 문, 브루넬레스키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의 돔, 베키오 다리, 천정화 등을 보면 피렌체 여행을 꿈꾸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