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 - 10대의 사랑과 성에 대한 일곱 편의 이야기 창비청소년문학 6
김리리 외 지음, 김경연 엮음 / 창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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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색 표지가 눈에 확 들어온다. 요즘 한참 분홍색이 뜬다더니 책표지에까지... 그런데 유치하다는 생각 대신 마음이 설레는 건 왜일까? <호기심>이라는 제목과 십대의 사랑과 성에 대한 일곱 편의 이야기라는 부제는 정말 호기심이 일게 만든다. 십대 아이들에게 사랑과 성은 핑크빛이고 호기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표현일까?

우리 아이들이 아직 성과 사랑을 말하기에는 어린 탓에 책을 읽는 내내 자연스레 나의 십대가 떠올랐다. 시간과 자유는 많았으나 마냥 흘려보낸 나의 십대. 그래도 그 속에서 살포시 고개를 내미는 추억은 누군가를 좋아하고 가슴 설레었던 시간들이다.

6학년 때까지도 잘 놀며 지냈던 옆집 남자 아이가 중학교에 간 후 사내로 보였는지 3년 내내 말 한마디 안 하고 지낸 웃기는 일도 있었고, 고1 땐가 스승의날 선생님댁에 놀러 갔다가 만난 중학교 동창에 대해선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도 그 아이 소식에 귀를 열어놓곤 했다. 아니 사실은 어딘가에서 수학 선생님을 하고 있다는 중년의 그 아이(?)가 지금도 궁금하다. 덜 익었지만 십대에 경험한 사랑의 감정은 이렇듯 평생을 가기도 하나 보다.

일곱 편의 이야기 모두 요즘 아이들의 상황과 심리 묘사가 뛰어나고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 중 <첫날 밤 이야기>는 제목만으로도 살짝 얼굴이 붉어지고 궁금해진다. 가슴속에서 밤하늘 같은 그리움이 뭉게뭉게 자라나고, 무엇이 그리운지도 모르면서 그냥 그리운 열여섯 살에 듣는 외할머니의 외할머니의 첫날 밤 이야기는 콩콩콩 가슴이 뛰게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 아이들이 첫날 밤을 치르기엔 너무 이른 나이이니 할머니의 할머니 적 이야기임을 강조해야 하겠지! 

<쌩레미에서, 희수>는 '아이들의 사랑에도 조건이 있을까?'라는 물음에 답을 준다. 희수는 머리에 노란 물을 들이고, 요란한 귀걸이에 튜닝한 신발을 신고, 학교도 안 다니고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희수가 유학을 다녀온 부잣집 딸이라는 소문에 마음이 끌렸던 선우가 희수의 정체를 알면서 고민하는 이야기다. 배경을 보고 좋아한 게 아니었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선우의 모습을 보며 사랑마저도 어른들의 세상에서 배웠네 싶었다. 하지만 응달에 내놓은 듯 마음이 시리고 가슴을 도려내는 듯 아픈 걸 보면 선우에겐 조건보다 사랑이 더 앞서 보인다. 선우가 입시를 치르고 쌩레미에 있는 희수를 만나러 갔으면 좋겠다.

<공주, 담장을 넘다>에서는 공부가 지상 최고의 목표처럼 되어 있는 요즘 중고생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중1 모범생 정민이가 가출을 한다. 이로 인해 주인공 내가 재수없다고 생각했던 정민도 사실은 보통 아이들과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특히 영어 단어나 수학 공식을 외울 땐 로봇 같았지만 남자 친구를 생각하면 살아 있는 것 같다는 정민이의 말은 모든 십대들의 외침처럼 들리기도 한다. 

지금도 여전히 부모들은 십대 아이들의 성과 사랑에 대해서는 불편하다. 나도 지금 마음이야 엄청 너그러울 것 같지만 막상 우리 아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남자 친구에게 빠져 있다면 두 눈에 쌍심지를 켤 게 분명하다. 그래도 아이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기에 자기들 이야기가 가득한 이 책 한 권쯤은 책상 위에 올려놓아 주고 싶다. 어른들을 향해 꽁꽁 닫아버릴지도 모를 아이의 마음을 그렇게라도 열어주고 싶다.

그런데 내가 십대로 돌아가 요즘 아이들 식으로 사랑을 경험하고 싶다고 하면 주책이라고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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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08-01-23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 생각속에 호기심이 아마도 90%이상 들어있지 않을까요?
그것을 하나씩 증명하는 것이 어른으로 성숙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나무집 2008-01-28 13:58   좋아요 0 | URL
중고생이 되면 아이들 의식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면서도 두려워요.
감당 못할 정도면 어쩌나 싶어서요.
그 시절엔 왜 그리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는지 모르겠어요.
 
라일락 피면 - 10대의 선택에 관한 여덟 편의 이야기 창비청소년문학 4
최인석 외 지음, 원종찬 /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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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청소년기를 거치고 어른이 되었지만 순간 순간 마주하는 '선택'은 지금도 여전히 가장 어려운 일이다. 중고등 학생 시절 내게 선택은 무엇을 의미했을까? 그 시절 내 미래를 위한 큰 선택은 대부분 부모님과 선생님 뜻대로 끌려다니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슬프게도 뭔가 선택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기억이 내 청소년기엔 없다. 

자신의 선택을 고민하면서 부모님과 혹은 선생님과 혹은 세상과 티격태격하는 이 작품집 속의 아이들이 부럽다. 여덟 편의 작품 중 <라일락 피면>과 <내가 그린 히말라야시다>를 빼고는 모두 현재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앞의 두 작품도 십대 시절 한순간의 선택이 인생을 어떻게 이끌어주는지 보여준다.

<라일락 피면>은 가슴 아픈 이야기다. 역사 속의 그날, 80년 5월 광주의 한 장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문간방 학생 윤희의 죽음 앞에 숱한 물음을 던지던 석진은 자신도 도청으로 가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그날 열여덟 살 석진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석진이 도청으로 걸어가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 당시 사회를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오른다.

<내가 그린 히말라야시다 그림>은 '인생은 이런 거'라는 사실을 어린 시절 부끄러운 에피소드를 통해 담담히 알려준다. 이 작품은 화자가 두 사람이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과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 주인공 백선규는 그림이 바뀐 덕에 자신이 사생 대회에서 장원한 것을 알았지만 아무에게도 말을 못한다. 대신 자신의 진짜 실력을 들키기라도 할까 봐 남보다 더 열심히 그림을 그렸고 아주 유명한 화가가 될 수 있었다. 자기 상을 되찾지 않는다는 것은 똘똘하기 짝이 없는 요즘 초등학생에게선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일 텐데...

<영희가 O형을 선택한 이유>는 혈액형에 대한 아이들의 수다로 교실이 시끌시끌하다. 혈액형에 따른 성격에 별로 관심이 없는 나는 이 작품은 진짜 아이들 수다로 읽었다. 하지만 실제 중학생 정도 아이들이라면 혈액형에 관심도 많고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시간을 보낼 것 같기도 하다.

<너와 함께>. 한 소년이 하루 동안 방황하는 이야기로 제목 속의 '너'는 바로 '나'다. 이 작품은 공부라는 벽으로 사방을 둘러싸인 채 살아가는 요즘 아이들의 외로운 마음을 가장 잘 드러내주고 있다. 혼자 갈 자신도 없고, 함께 가줄 사람을 찾을 수도 없고, 한 걸음 한 걸음 자신이 만들어서 가야 하는 그 길 앞에서 머뭇대는 아이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  

<굿바이 메리 개리스마스>. 20~30년쯤 지나면 정말 보린이 같은 아이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동성 커플의 자식이 동성애자 아빠의 모습을 당연히 받아들이며 사는 사회가 자연스러워지려면 최소한 그 정도 시간은 기다려야 될 것 같은데 작가는 벌써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쨌거나 보린이의 당당한 모습이 보기 좋다.

<헤바>는 사춘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겪을 수 있는 사랑 이야기다. 치명적인 운명의 여신, 팜므 파탈이라는 별명을 가진 사촌누나는 아주 파격적인 삶을 살아 어른들에게는 인기가 없다. 하지만 모범생 성호의 눈에는 누나가 달라 보인다. 누나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매혹되고 만다. 결국 성호는 윤이 누나처럼 자신도 인생을 재미있게 살기로 한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포기하는 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모범생 성호가 내린 결론이다.

<쉰아홉 개의 이빨>은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재혼한 엄마 덕에 새아버지가 생긴 소년이 새아버지의 폭력 앞에서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위선적이고 가부장적이기까지 한 아버지라면 많은 아이들이 순근이처럼 책가방이 아닌 가출 가방을 준비하지 않을까?

<널 위해 준비했어>. 나라면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영화만 보는 아들을 위해 중형 자동차 한 대 값이랑 맞먹는 헬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사줄 수 있을까? 난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는 못할 것 같다. 하지만 대인공포증에 걸려 외부 세상과 단절해버린 아들을 위해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절박했을지 헤아려진다. 세상에 드문 멋진 엄마라서 나도 그 마음만은 배우고 싶다. 

작품 속의 아이들은  하나같이 어른들의 눈밖에 나거나 날 수밖에 없는 행동을 한다. 아이들이 원하는 삶은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고분고분 공부나 하는 모범생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아이들은 결코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어리지 않다. 그들 나름대로 원하는 것이 있고 선택할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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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7-11-12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소년단편집인가봐요.

소나무집 2007-11-12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고등 학생들과 그 또래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을 위한 책이에요.
 
우리는 바다로 보림문학선 6
나스 마사모토 지음, 이경옥 옮김 / 보림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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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처음 본 순간 표지가 마음에 쏙 들었다. 멀리 수평선만 보이는 넓은 바다 위에서 두 아이가 뗏목을 탄 채 어디론가 노를 저어가고 있다. 아이들의 모습은 그림자처럼 검게 표현되어 누군지 자세히 알 수도 없다. 내 아이 혹은 이웃의 아이인지도 모른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자라면서 친정엄마께 "너희들 만큼 행복한 아이들도 없지!"라는 말을 참 많이 들으면서 컸다. 사실 나는 그렇게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았지만 부모 입장에서 보면 당신이 자라던 시대보다 환경이 너무 좋다는 생각에 그런 말씀을 하신 것 같다. 그런데 이젠 내가 자식을 키운다. 자식을 키우는 입장이 된 나는 내 아이들을 보면서 친정엄마와 같은 생각을 하곤 한다. "너희들은 정말 행복한 거야!"라고 .

이젠 물질적으로 풍요롭다고 해서 다 행복한 세상이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안다. 경쟁에서 이기고 누군가보다 더 낫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 기를 쓴다. 어른들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과연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들의 자유 시간이 얼마나 될까? 5,6학년만 되어도 대입을 생각하고, 외고나 특목고 진학을 위해 학습 계획을 짠다. 공부 빼면 아무것도 할 게 없는 세상처럼 보인다.

나는 우리 아이들을 앞에 두고 "넌 공부만 하면 되니까 얼마나 행복하니?"라고 말할 자신이 없다. 공부만 열심히 해서 좋은 학교 나온다고 다 훌륭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또 그렇다고 공부하지 말라고 말할 자신은 더더욱 없다. 아직까지 나도 어떻게 사는 게 정답인지 가르쳐줄 자신이 없고, 그건 살아가면서 스스로 터득해 나가야 할 각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1980년 일본에서 나온 청소년 소설이라는데 지금 우리 현실과도 비슷하다. 나름대로 사연을 간직한 6학년 남자 아이들이 출입이 금지된 매립지에 모여 배를 만든다. 공부 잘하는 아이,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 아빠가 없는 아이, 겉으론 모범 가정이지만 아빠가 외도하는 집의 아이, 아픈 동생 때문에 주목받지 못하는 아이 등이 그들이다. 배를 만들면서는 학교에서의 모범생 구니토시는 손재주가 없어 열등해지고, 가난하고 공부도 못하는 시로는 손재주가 좋아 단번에 아이들의 부러움을 산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감을 갖게 된 시로는 태풍이 몰아치던 밤 위험을 무릅쓰고 배를 지키려다 목숨까지 잃고 만다.

시로의 죽음 이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학교올 돌아가는 아이도 있었지만 사토시와 구니토시는 금지된 매립지에서 다시 만난다. 어른들이 옳지 않다고, 가지 말라고 한 곳에서 아이들이 찾은 건 무엇일까? 아이들은 어른들을 의식하지 않고 완성된 뗏목을 타고 목적지도 없이 그냥 떠난다. 그렇게 떠나버린 아이들에 대한 뒷이야기는 어디에도 없다. 함께 떠나지 못한 걸 후회하는 마사아키가 한 달째 매일같이 매립지에 나와 친구들을 기다리는 걸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과연 바다로 떠난 아이들은 행복했을까? 친구와 함께 배를 만들면서 느낀 행복감이 내처 아이들을 떠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정해지지 않은 길을 떠나면서 아이들은 두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우등생과 열등생의 구분이 없는 자유로운 바다에서 행복을 찾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간섭은 없지만 더 많은 책임이 따르는 바다에서 아이들은 부쩍 성장을 할 것이다.

6학년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나오지만 중학생 정도의 아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은 떠나는 주인공들을 보며 통쾌해할 것 같다. 어쩌면 바다로 떠나고 싶은 건 현대 사회를 사는 모든 아이들이 차마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마음속에 품어놓은 다이너마이트 때문인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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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덩이 창비청소년문학 2
루이스 새커 지음, 김영선 옮김 / 창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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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농사를 짓던 우리집에선 굴을 많이 팠다. 깊이도 꽤 깊어 사다리를 놓아야 들어갈 수 있었고, 아래로 내려가면 양 옆으로 파놓아 생강이나 고구마 같은 걸 저장하는 용도로 사용했다. 그런데 그게 아이들에겐 아주 좋은 놀이 장소였다. 특히 남자 아이들에게는. 어린 시절 나도 오빠를 따라 한두 번 들어가 본 기억이 있다. 하지만 깜깜한데다 뭔가 나올 것 같은 오싹함 때문에 굴 속에 오래 머물러 있기는 싫었다. 그리고 재미있는 건 겨울이면 노루나 살쾡이 같은 동물들이 빠졌다가 밖으로 나오지 못해 굶어 죽는 일이 가끔씩 생기기도 했다. '구덩이'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갑자기 어린 시절의 그 굴이 떠올랐다.

'구덩이'라는 제목에선 뭔가 부정적인 냄새가 난다. 그래서 처음엔 제목을 뭐 이렇게 번역했을까 싶었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니 '구덩이'라는 제목이 아주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비밀을 숨겨놓기에는 구멍이나 틈보다는 구덩이가 훨씬 좋을 듯했기 때문이다. 불운하기 짝이 없는 주인공 스탠리가 끊임없이 구덩이를 파야 하는 이유가 황당하기도 하지만 결국 필연적인 운명이었음을 책을 다 읽을 즈음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이게 추리 소설을 읽는 맛일까? 이야기가 중반을 넘어가면서 자꾸만 앞으로 다시 책장을 넘기는 일이 많아졌다. 지독하게도 운이 없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소년원에 들어온 스탠리, 그리고 가족들은 모든 잘못을 이름이 같은 고조할아버지의 탓으로 돌린다. 고조할아버지가 약속을 안 지켜 집시 할멈 제로니의 저주를 받은 탓에 대대손손  불운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고조할아버지가 못 지킨 약속을 스탠리가 지켜낼 수 있을까?

하늘에서 떨어진 운동화 한 켤레가 데려다준 '초록 호수 캠프'. 소년원의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게 예쁜 이름이다. 결말이 다시 밝은 느낌의 초록 호수로 돌아올 거라는 암시가 아닌가 싶다. 갑자기 등장하는 백 년 전 흑인 양파장수 쌤과 백인 여선생 케이트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는 또 어떤 사연이랑 맞물리는 건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왜 하필이면 양파 장수인지...

힘들게 구덩이를 파며 나누는 제로와의 눈물겨운 우정이 집시 할멈과 관계 있다는 것을 캠프를 탈출해서 엄지손가락 산을 다 오를 때쯤에야 알아채고는 손바닥을 쳤다. 케이트 바로우가 사랑한 사람이 양파 장수일 수밖에 없는 사연은 또 얼마나 교묘한지 모른다. 고조할아버지의 전재산이 든 가방을 훔쳐간 이가 케이트 바로우이고, 그 가방이 초록 호수 마을에 묻혀버린 사연을 알기까지 한순간도 긴장을 멈출 수가 없었다. 스탠리가 죄없이 끌려와 이유도 모른 채 구덩이를 파야 하는 까닭. 이 모든 것에 대한 궁금증은 책장을 덮을 때쯤에야 풀리니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중간에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

4대에 걸쳐 불운에 불운을 거듭하던 스탠리의 가족은 모든 매듭을 푼 스탠리 덕분에 비로소 행복해진다. 크게 세 덩어리가 하나로 연결된 이야기지만 그 중 나는 스탠리와 제로니의 우정 이야기에 흐뭇했고, 흑인 양파 장수와 백인 여선생의 사랑 이야기에는 덩달아 마음이 설레이기도 했다.

결국 구덩이에는 소중한 것들이 들어 있었다. 우정, 희망과 행복. 그런데 그런 것들은 내가 직접 나서서 애쓰지 않으면 결코 얻을 수 없는 것들이란 사실도 아이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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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9-05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에 모든 얘기가 함축되어 있군요.
음~. 오늘도 좋은 책 소개받고 갑니다. ^^.

소나무집 2007-09-06 10:06   좋아요 0 | URL
어른들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네요.

비로그인 2007-09-05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추천 ^^

소나무집 2007-09-06 10:0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하늘바람 2007-09-06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창비 새책이인가요?

소나무집 2007-09-06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추리 소설인데 재미있어요.

프레이야 2007-09-06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창비 청소년 추리소설이군요, 재미나 보여요^^

소나무집 2007-09-20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편도 읽더니 재미있다네요.
 
우리들의 스캔들 창비청소년문학 1
이현 지음 / 창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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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서 중학생 시절은 어땠나 생각해 본다. 사춘기에 질풍노도의 시기라지만 그런 말들은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주인공 이보라만큼이나 평범하고 눈에 띄지 않는 모범생으로 무사히(?) 학창 시절을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나는 승범이처럼 눈에 띄게 공부를 잘하지도 않았고, 창은이처럼 든든한 백이 있거나 은하처럼 아버지가 무섭지도 않았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분명 분출하고 싶은 열정이 숨어 있었다. 단지 그 열정을 내지를 대상도 없었고 사실 그게 뭔지도 몰랐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하지만 요즘의 중학생 아이들은 다르다. 열정은 많으나 공부에 눌려 뿜어낼 수가 없다. '요즘 얘들 노릇하기 힘들다'는 주인공의 고백이 없더라도 그들의 생활이 만만치 않다는 걸 누구나 안다. 마냥 어린 초등 학생도 아니고 '분명한 건 아무것도 없는 어정쩡한 시기'여서 더 힘든지도 모른다. 학교가 싫고 공부가 지겨운 아이들 앞에 튀는 교생이 나타났다. 미혼모에 홍대 앞 클럽에서 노래까지 부르는 별난 교생이 바로 주인공 이보라의 이모다.

0205 비밀의 방. 2학년 5반 아이들의 인터넷 카페다. 별로 드나드는 아이들도 없던 카페에 교생에 대한 사진과 교실에서 인호를 때리는 담임의 동영상이 뜨자 학교가 발칵 뒤집힌다. 여기서 학교의 문제점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학교 체면을 구겨놓는 교생이나 선생님들의 잣대에 어긋나는 아이들은 교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죽은 듯이 엎드려 있도록 강요받는다. 담임의 세련된 양복 주름보다도 못한 대접에 아이들은 할 말을 잊는다.

아이들의 속마음은 들여다보지 않고 뭐든지 멋대로 해석해버리는 학교에 정나미가 떨어질 만도 하다. "너희들이 나에 대해 뭘 알아? 모두 죽여버리고 싶어! 학교 따위 불을 질러버리고 나한테 한대로 고대로 돌려주고 싶어!" 가출하면서 남긴 은하의 비명은 은하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진실은 뭔지도 모른 채 아이들의 등을 떠밀고 시원해하는 학교의 태도에 한숨이 나온다. 말문을 닫아버린 수많은 은하들은 이제 어디로 돌아가란 말인가?

카페에 올라왔던 담임의 폭력 동영상이 외부에 공개되고 기어이 문제가 된다. 닉네임의 가면 아래 숨어 있던 아이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귀머거리 어른들에게 진실을 깨우쳐준다. 보라는 난생 처음 뺨까지 맞으며 학교를 그만두어야 할 사람은 담임이라고 당당히 외친다. 튀고 싶지도 않았고 밟히고 싶지도 않았던 보라와 아이들의 용기 덕분에 담임은 학교를 떠난다. 정말 장하다. 2학년 5반!

한쪽에선 오로지 공부만을, 또다른 한쪽에선 폭력과 무지가 난무하는 곳이 바로 현재 우리 학교의 모습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아파온다. 그리고 세상도 변하고 아이들도 변했는데 꿈쩍도 하지 않는 듯한 학교가  답답하다. 보라의 이모처럼 용기 있는 이가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우리들의 스캔들>은 공부만 강요하는 선생님과 부모들에게 한방 먹이는 청소년 소설이다. 살아서 꿈틀대는 아이들의 언어는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공부에 지친 아이들은 자신들의 교실 이야기에 스트레스도 확 날려버릴 수 있을 것 같다. 공부가 지겨운 모든 중학생 그리고 공부 못하는 학생은 존재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선생님과 학부모가 함께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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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6-18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학생이 읽으면 좋겠네요. 재미있어 보여요^^

씩씩하니 2007-06-18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핸드폰에 게임에 그리고 학원에 지쳐있어도...
가슴 속에 열정을 숨겨둔 청소년이 있어 우리 미래에 희망이 있는거겠지요..
이런 성장소설들이 좀 많았졌음 좋겠어요~~

전호인 2007-06-19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름이 우선 아이들로 하여금 혹심을 갖게 만드네요,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네요.

소나무집 2007-06-21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재미있어요. 아이들이 좋아할 거예요.
씩씩하니님, 맞아요. 아이들이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책들이 많이 나올길 바라는 마음에 저도 동감입니다.
전호인님, 6학년 정도만 돼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