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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 10대의 사랑과 성에 대한 일곱 편의 이야기 ㅣ 창비청소년문학 6
김리리 외 지음, 김경연 엮음 / 창비 / 2008년 1월
평점 :
분홍색 표지가 눈에 확 들어온다. 요즘 한참 분홍색이 뜬다더니 책표지에까지... 그런데 유치하다는 생각 대신 마음이 설레는 건 왜일까? <호기심>이라는 제목과 십대의 사랑과 성에 대한 일곱 편의 이야기라는 부제는 정말 호기심이 일게 만든다. 십대 아이들에게 사랑과 성은 핑크빛이고 호기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표현일까?
우리 아이들이 아직 성과 사랑을 말하기에는 어린 탓에 책을 읽는 내내 자연스레 나의 십대가 떠올랐다. 시간과 자유는 많았으나 마냥 흘려보낸 나의 십대. 그래도 그 속에서 살포시 고개를 내미는 추억은 누군가를 좋아하고 가슴 설레었던 시간들이다.
6학년 때까지도 잘 놀며 지냈던 옆집 남자 아이가 중학교에 간 후 사내로 보였는지 3년 내내 말 한마디 안 하고 지낸 웃기는 일도 있었고, 고1 땐가 스승의날 선생님댁에 놀러 갔다가 만난 중학교 동창에 대해선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도 그 아이 소식에 귀를 열어놓곤 했다. 아니 사실은 어딘가에서 수학 선생님을 하고 있다는 중년의 그 아이(?)가 지금도 궁금하다. 덜 익었지만 십대에 경험한 사랑의 감정은 이렇듯 평생을 가기도 하나 보다.
일곱 편의 이야기 모두 요즘 아이들의 상황과 심리 묘사가 뛰어나고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 중 <첫날 밤 이야기>는 제목만으로도 살짝 얼굴이 붉어지고 궁금해진다. 가슴속에서 밤하늘 같은 그리움이 뭉게뭉게 자라나고, 무엇이 그리운지도 모르면서 그냥 그리운 열여섯 살에 듣는 외할머니의 외할머니의 첫날 밤 이야기는 콩콩콩 가슴이 뛰게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 아이들이 첫날 밤을 치르기엔 너무 이른 나이이니 할머니의 할머니 적 이야기임을 강조해야 하겠지!
<쌩레미에서, 희수>는 '아이들의 사랑에도 조건이 있을까?'라는 물음에 답을 준다. 희수는 머리에 노란 물을 들이고, 요란한 귀걸이에 튜닝한 신발을 신고, 학교도 안 다니고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희수가 유학을 다녀온 부잣집 딸이라는 소문에 마음이 끌렸던 선우가 희수의 정체를 알면서 고민하는 이야기다. 배경을 보고 좋아한 게 아니었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선우의 모습을 보며 사랑마저도 어른들의 세상에서 배웠네 싶었다. 하지만 응달에 내놓은 듯 마음이 시리고 가슴을 도려내는 듯 아픈 걸 보면 선우에겐 조건보다 사랑이 더 앞서 보인다. 선우가 입시를 치르고 쌩레미에 있는 희수를 만나러 갔으면 좋겠다.
<공주, 담장을 넘다>에서는 공부가 지상 최고의 목표처럼 되어 있는 요즘 중고생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중1 모범생 정민이가 가출을 한다. 이로 인해 주인공 내가 재수없다고 생각했던 정민도 사실은 보통 아이들과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특히 영어 단어나 수학 공식을 외울 땐 로봇 같았지만 남자 친구를 생각하면 살아 있는 것 같다는 정민이의 말은 모든 십대들의 외침처럼 들리기도 한다.
지금도 여전히 부모들은 십대 아이들의 성과 사랑에 대해서는 불편하다. 나도 지금 마음이야 엄청 너그러울 것 같지만 막상 우리 아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남자 친구에게 빠져 있다면 두 눈에 쌍심지를 켤 게 분명하다. 그래도 아이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기에 자기들 이야기가 가득한 이 책 한 권쯤은 책상 위에 올려놓아 주고 싶다. 어른들을 향해 꽁꽁 닫아버릴지도 모를 아이의 마음을 그렇게라도 열어주고 싶다.
그런데 내가 십대로 돌아가 요즘 아이들 식으로 사랑을 경험하고 싶다고 하면 주책이라고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