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지기 때문에 놀러 왔지 - 조선의 문장가 이옥과 김려 이야기, 제1회 창비청소년도서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고 1
설흔 지음 / 창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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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시대를 살다 간 이옥과 김려라는 두 사람을 통해 역사의 흐름은 물론 진정한 우정과 좋은 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설이었다.  

이옥과 김려의 글을 읽다 보면 내가 그 현장에 있는 듯한 생생함이 느껴진다. 짧은 글 한 편에도 풍성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 마치 소설을 읽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을 끄는 매력이 있다. 200여 년 전의 글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당시는 그런 소설체의 글은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패관소품이라고 해서 금기시되는 시대였으니... 

정조는 성리학적 규범을 중시하는 한문체를 원했다.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임금은 <열하일기>를 써서 소설체 문체를 대유행시킨 박지원과 이를 따라 하던 김조순 같은 명문가의 거물급에게 조심하라는 의미로 문체반정을 기획하고 미미한 성균관 유생 이옥을 희생양으로 만들어 경고하기에 이른다. "봤지? 계속 까물면 너희들도 저 꼴 되니까 시키는 대로 햇!" 뭐 이런...

바로 이 대목 때문에 우리는 이옥과 김려라는 두 사람을 <멋지기 때문에 놀러 왔지>라는 소설 로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소설 때문에 인생이 뒤죽박죽이 된 두 사람이 소설로 다시 태어나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 200년 전의 억울함이 좀 풀렸으면 좋겠다. 

   
 

이옥, 그는 모진 고초를 겪었지만 비겁한 남자는 아니었다. 그는 임금의 거센 추궁에도 자신의 문체를 포기한 적이 없었다. 그 대가로 그는 길에서 인생을 보냈다. ...... 모두들 이옥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한 번만 고개를 숙이면 될 것을 쯧쯧.  (본문145쪽)

나의 삶은 그와는 반대였다. 유배를 떠나는 날까지 내게 닥친 현실을 믿을 수 없었다. 그 결정을 뒤엎기 위해 노력했고, 마지막 순간까지 목을 쭉 내밀고 임금의 은전이 닿기를 기대했다. (본문 146쪽)  

 
   

위에 인용한 글을 보면 이옥과 김려의 성격을 단박에 알 수 있다. 결국 이옥은 양반들에게는 면제되었던 군역의 의무를 해야 했고, 벼슬길에 나갈 수 있는 과거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돌게 된다. 김려는 친구의 불행이 자신에게도 튈까 봐 이옥을 모른 체했고, 임금의 명에 따라 고리타분한 형식, 비현실적인 비유, 낡은 감성이 깃든 고문체로의 변신에 성공한다. 하지만 스스로도 글을 잃고 벗을 잃었다고 한탄했으니 본심은 아니었다.  

10여 년이 지난 후 이옥과 절친했다는 이유로 불행은 느닷없이 다가와 김려에게도 유배령이 내려졌으니... 왕이 마음만 먹으면 무덤 속 정승도 파헤쳐지는 시대였으니 억울하다 말 한마디 못할 수밖에. 하지만 죽을 고생을 하며 유배지로 가는 동안 비로소 철이 든 김려. 힘든 백성들의 삶을 함께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글로 쓰면서 소설체도 살아났다. 임금이 막는다고 자유로워지고 싶어 꿈틀대는 시대의 흐름까지 막을 수는 없었던 모양.  

김려가 다시 이옥을 만나는 것은 긴 유배 생활을 끝내고 논산현감으로 있을 때다. 이옥의 아들 우태를 통해 유배를 떠난 친구에게 진 죄을 덜기 위해 유배길을 따라 떠돌며 자신의 글을 모았다는 걸 알게 된 김려는 오랫동안 찜찜했던 이옥이 진정한 친구였음을 깨닫는다. 임금의 지탄을 받을 때 외면한 자기와는 달리 힘들 때 함께 있어주려 한 이옥의 마음을 뒤늦게 알게 된 김려.  

이미 세상을 떠난 친구 대신 그의 글을 지키기 위해 비루한 아부와 청탁까지 하면서 얻은 현감 자리를 내놓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짠해졌다. 김려는 세상으로부터 괄시받고 잊혀진 이옥을 위해 그의 글을 읽어주고 문집을 엮어준다.  

우정도 관계도 점점 쿨하고 가벼워지는 세상에 가볍지 않은 책이다. 그리고 따뜻하다. 이옥과 김려, 두 사람을 통해 힘들 때 외면하지 않는 것, 묵묵히 인정해주고 따르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진짜 우정이라는 걸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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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샘 2011-06-09 0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이가 닮고 싶은 조선의 고집쟁이들>>! 제가 서평을 쓰고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네요. 소나무집님 글을 읽으니 갑자기 이 책에서 이옥을 만난 듯한 생각이 들었는데... 아, 그렇네요. 이옥이 거기 있었네요. 책을 읽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기고 있습니다.

소나무집 2011-06-13 15:21   좋아요 0 | URL
우정에 대해서, 진정한 친구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주니까 아이들에게 권해볼 만한 책이에요.

순오기 2011-06-09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주 월욜 토론도서라, 어제 이 책 다 읽었는데 김려가 풀어가는 이옥 이야기더군요.
시대를 앞서간 소설가 이옥이 소설 속에서 재조명 되었지만 생각보다 이옥에 대해 많은 것이 드러나지 않아 아쉬웠어요.
희망찬샘이 말하는 어린이가 닮고 싶은 조선의 고집쟁이들도 봤고요.^^

소나무집 2011-06-13 15:24   좋아요 0 | URL
읽으셨군요. 아이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진정한 우정에 대해 배웠으면 좋겠더라구요. 한 권의 책에서 한 가지만 깨달아도 남는 장사니까...
 
작은 발걸음 창비청소년문학 35
루이스 새커 지음, 김영선 옮김 / 창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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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이 작은 발걸음(Small Steps)이다. 사방에서 큰 꿈을 가지라고 부추기고, 심지어는 마트에서도 통큰 상품을 성공의 미끼로 내세우는 크~은 세상에 작은 발걸음이라는 말은 쉽게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도대체 뭔가 잘못된 건 아닐까? 

결론부터 말하면 잘못된 건 하나도 없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큰 꿈에만 의미를 두고 그 큰 꿈들을 향해 맹목적으로, 벌떼처럼 달려가는 듯한 세상에 작은 경고를 하는 듯하다. 눈에 띄지 않는 작은 발걸음이 왜 소중한지 몇 안 되는 등장 인물을 통해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참 아름다운 소설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작은 발걸음>은 폭력 전과로 초록호수라는 소년원에 가서 1년 동안 구덩이만 팠던 겨드랑이가 사회로 돌아와 적응해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주인공은 시어도어라는 본명이 있지만 전작인 <구덩이>에서 붙은 겨드랑이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린다. 특히 초록호수에서 만났던 엑스레이라는 친구 때문에 과거를 숨길 수도 없다. 결국 엑스레이 때문에 또 암표 사건에 휘말리게 되기도 하고.

겨드랑이는 흑인이다. 거기다가 소년원에 다녀온 전과자라서 부모마저도 불신하지만 사회 적응 프로그램에 따라 열심히 일을 하면서 학교에 다닌다. 그러다가 앞집으로 이사 온 뇌성마비를 앓는 지니라는 백인 소녀를 만난다. 지니는 초등학생인데 겨드랑이를 흑인이라거나 전과자라는 편견 없이 순수하게 옆집 오빠로 받아들인다. 겨드랑이도 지니에게 장애인이라서 불쌍하다는 생각보다는 도움을 주고 싶어할 뿐이다. 둘이서 주고받는 솔직한 대화들이 여러 차례 나오는데 편견과 좋은 관계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한다.

우여곡절 끝에 겨드랑이와 지니가 카이라라는 아이돌 가수의 콘서트에 가게 되었을 때 이 둘의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은 미국이라는 사회가 아직도 얼마나 흑인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는지 깜짝 놀라게 만든다. 다행스럽게 겨드랑이가 시장님과 콘서트의 주인공인 카이라의 눈에 띄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지만 겨드랑이로서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겨드랑이는 지니 덕분에 미국 최고의 아이돌 가수인 카이라를 만나고, 믿을 수 없게도 카이라가 겨드랑이에게 솔직한 편지를 보내면서 둘의 관계가 발전하게 된다. 서로 너무 다른 세계에 로서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며 살 수 없었던 카이라는 겨드랑이에게는 자신의 연출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화려한 삶 속에 가려진 카이라의 외로운 내면은 연예계 스타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결국 어이없게도 카이라와 겨드랑이를 이용하려는 어른들 때문에 둘의 관계도 끝이 나고 말지만 경호원을 따돌리거나 후드티를 사는 장면, 둘이서 어설프게 사랑을 주고받는 장면들이 영화처럼 스윽스윽 지나간다. 진짜 영화로 만들어져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각거리와 흥미진진한 요소들이 많다.  

살인의 피해자가 될 뻔했던 큰 사건을 뒤로 하고 카이라도 겨드랑이와의 대화에서 얻은 힌트로 노래를 만들어 재개를 한다.<작은 발걸음>은 통 크게 살려다 수갑을 차고 마는 어른들에게 날리는 시원한 펀치다. 작은 발걸음이 중요한 건 작은 발걸음을 따라가다가 발견한 실마리 하나하나나를 쌓아올렸을 때 더 탄탄한 행복이 따라오기 때문은 아닐까?  중요한 건 작은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어요.
내가 완벽하게 아는 것은
아주 조금밖에없어요..... 

하지만 나는 작은 발걸음으로 걸어요.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에요.
나는 작은 발걸음으로 걸어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요.
나 자신을 추스르며 내딛는
작은 발걸음.
어쩌면 길을 따라 가다가
실마리를 발견할지도 몰라요.....
 
오늘 하루를 무사히 버티고 상처를 받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바랄 수 있는 최선 같아요.
운동복에 뿌려진 커피 얼룩처럼
정해진 패턴은 없어요.
모든 것이 불확실해요.
버텨내기가 힘들어요..... 

그러나 작은 발걸음으로 걸어요.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에요.
나는 작은 발걸음으로 걸어요.
노는 법도 잊어버렸지만요.
나 자신을 추스르며 내딛는
작은 발걸음.
어쩌면 따라 가다가
실마리를 발견할지도 몰라요....(카이라가 부른 노래 가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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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6 0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나무집 2011-04-08 10:15   좋아요 0 | URL
정신 연령이 청소년이 되려면 아직도 머나먼 아들 말만 듣고 재미없는 줄 알았다가 재미나게 읽은 책이에요.

2011-04-08 1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국어 교과서 작품 읽기 고등 세트 (최신판, 전5권) (특별부록 : 국어 교과서 작품 읽기 고등 가이드북) 국어 교과서 작품 읽기 시리즈
고화정 외 엮음 / 창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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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교과서가 중학교는 작년부터 23종으로 늘었고, 고등학교는 올해부터 16종으로 늘어났다. 사실 엄마 입장에서는 아이들이 다양한 문학 작품을 접하겠구나 하는 생각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한 가지 교과서로 공부할 때는 어느 정도 범위가 정해져 있지만 교과서가 16종류나 된다는 것은 수능을 포함해서 전국 단위의 시험 문제는 교과서 밖에서 나올 확률이 크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요즘은 영어나 수학은 잘하는 아이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성적이 비슷비슷하고, 최상위권 성적은 오히려 국어에서 판가름난다고 한다. 영수에 비해 공부에 투자하는 시간도 적지만 책읽기를 게을리한 아이들은 좋은 성적을 낼 수 없다는 이야기다. 두루두루 책읽기를 못하는 아이들이라도 국어 교과서 속에 나온 원작만이라도 충실하게 읽어주기를 바라는 게 엄마의 마음이지만 시간이 많지 않은 고딩에겐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국어교과서가 16종류나 된다니...  평소 책읽기를 꺼리는 아이들이라면 한숨이 푹푹 나올 일이다. 어렸을 때부터 책읽기가 몸에 배여 있어 차근차근 폭넓게 읽기 실력을 쌓아놓은 아이들도 다른 학교 교과서에는 어떤 작품이 실려 있을지 궁금할 것 같다. 모든 작품이 다 실려 있는 것은 아니지만 창비에서 나온 <국어교과서 작품 읽기- 고등편>을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될 듯. 

소설 두 권, 수필 한 권, 시 한 권으로 이루어진 <국어 교과서 작품 읽기 - 고등편>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고등학생은 사사건건 부모의 간섭을 받을 정도로 어린 아이들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아이들 스스로 미래와 인생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넓은 생각의 바다로 이끌어주는 수준 높은 작품들이 원문 그대로 실려 있는 걸 보면. 그래서 "아니, 요즘 고딩 국어에 이런 작품들이 실린단 말이야!" 하면서 깜짝 놀랐다. 

작년에 <중1 국어교과서 작품 읽기> 편을 읽을 때도 창비의 세심함에 놀랐는데 고등편 역시 실망시키지 않았다. 문학 작품과 연관된 다양한 자료들과 현직 국어 선생님들의 친근한 작품 안내글이 꼼꼼하게 실려 있어 교실에서 직접 국어 수업을 듣는 듯한 느낌이 든다. 

  
<고등소설>에는 상하권으로 나뉘어 모두 14편의 감칠맛나는 작품이 실려 있다. 재미있는 것은 소설만 제시한 것이 아니라 요즘 아이들이 관심 있어 하는 만화, 영화, 사진 등을 소개해서 함께 읽을 수 있도록 했다.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를 읽기 전에 박흥용의 만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을, 성석제의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읽기 전에 영화 <맨발의 기봉이>를 제시해 서로 연관성을 찾아보도록 했다.      

                    
<고등수필>은 모두 42편의 수필을 다섯 가지 주제로 나누어 묶어놓았다. 사색을 하며 나를 찾아볼 수 있는 작품,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볼 수 있는 작품, 가슴이 따뜻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자연과 이웃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내용의 작품들들 읽다 보면 인생은 경쟁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슬며시 들곤 했다. 작품 뒤에 실린 독후 활동에서는 현재 나의 삶과 연관지어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했다. 

<고등시>는 모두 100편의 시가 실려 있는데 나는 이 부문이 가장 좋았다. 사실 시를 읽고 금방 뭔가를 깨닫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특히 교과서에 실린 시들은 학생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의도들이 있는데 그런 의도가 금방 파악이 안 되면 시와 아이들의 관계는 물건너 가는 게 아닐까 싶다. 바로 그런 염려를 다 알고 있다는 듯 관련있는 시 두 편마다 선생님들의 친절한 해설이 달려 있다. 나는 해설을 먼저 읽고 나서 시를 읽었더니 훨씬 더 편안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국어교과서 작품 읽기 - 고등편> 시리즈의 목적은 책을 읽고 학과 성적을 올리는 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학생들이 시, 소설, 수필 한편 한편을 문학 작품으로 읽으면서 삶의 위안을 받고 미래를 살아갈 지혜와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 작품 수가 만만치 않으니 여유가 있는 중3이나 고1 정도에 미리미리 읽어두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국어선생님들께서는 작품을 분석하고 쪼개놓는 법을 가르치기 전에 아이들에게 문학 작품을 즐길 수 있는 재미를 더 먼저 가르쳐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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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011-01-11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이런 페이퍼를 읽다보면 아이한테 보여줘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더 읽어보고 싶어지는걸까요?
중학편부터 하나 하나 읽어봐야겠어요.
좋은 정보 늘 감사해요^^

소나무집 2011-01-12 09:29   좋아요 0 | URL
도은이는 아직 멀었으니까 도서관에서 빌려다 보세요.
중학교 교과서 작품도 수준이 꽤 높아요.^^
 
인생은 오묘한 수학방정식
클레망스 강디요 지음, 김세리 옮김 / 재미마주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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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이라.... 그다지 나랑 친하게 지내지 않은 분야가 수학책이다. 처음 책을 받아들고는 책도 얇고 그림 위주(그것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졸라맨 캐릭터)의 책이어서 아이들 책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나보다 먼저 책을 본 딸아이가 자꾸 질문(나도 못 알아듣는)을 하길래 자세히 보니 띠지에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이라고 되어 있다.  

한마디로 이 책은 수학책이 아니다. 하지만 수학을 전혀 모르면 이해할 수 없는 책이기도 하다. 수학 개념에 인생을 빗대어 풀어낸 철학책이기 때문이다. 수학이나 인생 둘 다 관심이 없다면 아예 이 책을 펼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수학이나 인생 중 어느 한쪽이라도 관심이 있다면감탄을 안 할 수가 없다.  


남녀가 만나서 아이가 태어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다."둘이 합쳐서 하나가 된다."는 개념을 사칙연산(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으로 설명해준다.  

남자와 여자는 증가되기(곱하기) 위해 침대 속에 들어가 남자 위에 여자(분수) 혹은 여자 위에 남자(분수)가 되어 자신들의 반쪽씩을 나누어 준다. 증식과 조합을 거친 세포들은 아홉 달이 지나면 엄마 뱃속에서 빠져 나온다.(뺄셈) 결국 탄생은 빼기다.  

사람은 이렇게 떨어져 나왔기 때문에 서로 이으려고 하고 책을 읽으려고 하고 침대에서도 일어나려고 하는데 이 모두가 선을 이어 보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관계를 만들어가는 게 아닐까 싶다. 

태어난 아이는 모르는 것들을 알아가기 위해 만남을 시도한다. 점을 그리고 선을 긋다가 동그라미를 그리게 된다. 아기가 동그라미를 그렸다는 것은 자아, 즉 '나는'이라고 말하는 시점인 것이다. 점과 선과 원은 위대한 수학자들의 삶을 매료시킨 대상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수학을 싫어하는 나조차도 위대한 수학자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는 얘기란 말인가? 

뺄셈으로 인해 세상에 태어난 인간은 내적으로 공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데 그것을 채우기 위해 외부의 것을 내부로 가져가는 과정, 즉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해진다. 이해하기 위해 부여받은 능력이 바로 자유분방한 사고인데 이 속에서 논리가 생겨나는 것이라고 한다.  

기하학, 논리, 함수, 복소수, 벡터 개념 등이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과 일치한다는 게 정말 신기하고, 책의 제목처럼 오묘하다. 고교 시절 어렵다고만 생각했고, 학교 졸업과 함께 제일 빨리 잊어버렸던 수학 개념들을 그동안 내가 살아온 인생과 연결지어 생각하니 갑자기 쉬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다시 수학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고... 

이 책을 보면서 난 수학적인 머리가 없다고 생각하던 중에 위로가 되는 글을 발견했다. "머리가 비었다는 것은 두뇌가 비어 있다는 게 아니라 들어 있는 것을 서로 연결짓지 못할 뿐이다."  앞으로는 연결짓는 연습을 좀 더 해야 할 듯.

문과를 나온 내가 접해보지 못난 기하학이나 복소수 같은 개념도 졸라맨 캐릭터로 표현된 단순한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다지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인생과 수학 둘 중 어느 하나라도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있는 중고생과 어른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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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교과서 작품 읽기 중1 세트 (최신판, 전3권) (특별부록 : 국어 교과서 작품 읽기 100% 활용하기) 국어 교과서 작품 읽기 시리즈
김규중 외 엮음 / 창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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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영어 수학은 잘하는 아이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성적이 비슷비슷하고, 성적이 판가름나는 과목은 오히려 국어라고 한다. 영수에 비해 공부에 투자하는 시간도 적지만 책읽기를 게을리한 아이들은 좋은 성적을 낼 수 없다는 이야기다. 두루두루 책읽기를 못하는 아이들이라도 국어 교과서 속에 나온 원작만이라도 충실하게 읽어주기를 바라는 게 엄마의 마음이지만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더구나 7차 개정 중학교 검정 국어 교과서가 올해부터는 23종으로 늘어났다.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어떤 출판사 국어 교과서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배우는 내용이 달라지게 된다는 이야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다른 학교 국어 교과서에는 어떤 작품들이 실렸을지도 궁금하다. 학교별 교과서를 다 찾아볼 수도 없고, 또 아무리 훌륭한 작품이 실렸다 해도 아이들이 교과서를 들고 다니며 읽지는 않을 것 같다.  

이런 엄마와 아이들의 마음을 창비에서 알아주었다. 23종 교과서 출판사 중 한 곳으로 창비가 참여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관심이 많았는데 고맙게도 23종 교과서 속에 나온 작품을 한꺼번에 읽어볼 수 있는 기회까지 마련해주었다. 이번에 중학교 1학년 과정이 나온 걸 보니 앞으로 학년별로 다 나올 모양이어서 더 반갑다.  

창비에서는 23종 국어 교과서에 들어 있는 소설, 수필, 시 들 중에서 중학교 1학년 아이가 읽었을 때 재미있으면서도 감동을 맛볼 수 있고, 시험 점수가 아닌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들로 골라 단행본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다른 출판사가 아닌 창비에서 만든 책이기에 더 믿고 읽을 수 있다. 더불어 우리 아이가 갈 중학교에서도 창비 교과서를 선택했길 바라는 마음...^^   

작가나 작품 목록만 보아도 국정 교과서 1종일 때보다 내용이 많이 다양해진 것을 알 수 있다. 작가 중 반가운 이름들도 많이 눈에 띈다. 한마디로 국어 공부할 맛이 나는 교과서로 변한 것 같아 문학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흐뭇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작품 선정 과정에 오랫동안 아이들과 함께 해온 현직 국어 선생님 100여 명이 참여했기 때문에 더 믿음이 간다. 맨 뒤에 보면 참여한 선생님들의 명단은 물론 작품이 실린 교과서와 원작 출판사에 대한 정보까지 실려 있다.  
 
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 작품 읽기 3종 세트로 책표지도 모두 깔끔하니 마음에 든다. 교과서에 실릴 때는 줄이거나 고친 부분을 찾아내어 원문을 살렸고, 내용이 어려워 풀어쓴 경우에만 교과서 속 원문을 그대로 따랐다고 한다.      


수필은 130편 중 44편으로 1부에는 나와 가족, 2부에는 이웃과 사회, 3부에는 여행기와 전기와 고전 작품이 실려 있다. 어려운 낱말은 주석을 달아놓아서 대충 넘어가지 않도록 했고, 작가에 대한 설명도 빼놓지 않고 있다.  

작가 중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박지성, 안철수, 장영희, 한비야, 박원순, 윤구병 님의 글이 보여서 무지 반가웠다. 이들의 단편을 읽고 나면 원작을 찾아 읽고 싶은 마음이 물씬물씬 든다. 그리고 초등학교 때 충실하게 독서를 한 아이라면 이미 접한 작품도 만날 수 있다. 고맙게도 중간중간에 작품을 읽어보고 직접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볼 수 있는 독후 활동 코너도 있다. 

      
소설은 모두 12편으로 1부에는 심리와 갈등, 2부에는 정서와 분위기, 3부에는 역사적 상황을 다룬 작품이 실려 있다. 나비를 잡는 아버지(현덕), 육촌 형(이현주), 동백꽃(김유정), 항아리(정호승), 학(황순원), 수난 시대(하근찬)) 등 재미는 물론 소설의 참맛까지 알게 해주는 작품들이다. 

소설의 경우는 작품마다 다양하고 재미있는 독후 활동이 실려 있어서 이 부분만 충실히 한다면 논술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특히 학교 선생님들이 이 독후 활동 부분을 잘 활용해서 수업한다면 아이들이 국어 교과서에서 배운 문학 작품을 어른이 되어서도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는 모두 45편이 실려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함께 읽으면 좋은 짝꿍 시를 같이 실어놓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김소월의 <가는 길>이라는 시와 함께 윤동주의<새로운 길>이라는 시를 함께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시를 읽고 나서 한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간단한 활동도 실려 있다.

시를 읽다 보면 가끔 어디에 초점을 두고 읽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는데 이 책에서는 아이들의 그런 어려움을 알고 감상 길잡이도 함께 실었다. 직접 선생님의 강의를 듣는 듯 다정한 투의 글이어서 시를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다.  

김소월의 <가는 길>에 붙은 내용은 "여러분은 올레길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올레는 제주도의 해안가를 따라 걷는 여행자를 위한 길입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지요. <가는 길>은 어떤 길일까요? 누군가 사랑하게 되면 걷게 되는 그리움과 망설임과 아쉬움이 뒤섞인 갈등과 고민의 길이 아닐까요?"이다. 이 길잡이 부분만 읽는 것으로도 생각이 깊어질 것 같다.

아이들과 국어 공부를 해보면 원작을 제대로 읽은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는 작품 내용을 이해하는 것 자체가 다르다. 원작 전체를 읽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교과서에 실린 작품집을 가까이 두고 손 갈 때마다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중학교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던 6학년 딸아이가 이 책 세 권을 하루 종일 들고 다니면서 "중학교에서 배우는 것도 별 거 아니네!" 하는 걸 보니 중학교 1학년은 물론 6학년 아이들이 예습용으로 구비해두고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출판사의 바람대로 이제는 아이들이 주제나 소재를 외우는 국어 공부가 목적이 아닌 작품을 즐기는 즐거운 국어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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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5-13 0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우리 막내 학교에서는 창비 국어를 채택했어요.
창비 책이 선정되는데 나도 한 몫 했고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 아인 3학년이니 창비책으로 못 배운다는...
이렇게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으로 모아 낸 책이 있으니 정말 좋으네요. 추천 꾹~

소나무집 2010-05-13 09:18   좋아요 0 | URL
아쉬워라. 창비국어로 수업을 못하다니...
교과서 국어책에 들어 있는 교육 목적의 상업적인 책이 아니라 그냥 수필집, 단편소설집, 시집으로 읽어도 좋을 작품들이어서 정말 강추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