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 - 전쟁의 기억과 분단의 미래
브루스 커밍스 지음, 조행복 옮김 / 현실문화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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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들어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최근에는 대통령 문재인이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고 난 뒤, 잠시 50% 중후반의 지지율에서 다시 70%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남북회담을 아주 극찬했다. 이로써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2018년인 올해는 남북한 정부가 수립된 지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48815일에는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고, 194899일에는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가 수립됐다. 그리고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분단은 계속되고 있으며 아직까지는 휴전 상태다. 남북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지만, 일반 국민들의 인식하는 한국전쟁에 대한 시각은 아직까지는 크게 달라지고 있지 않다. 즉 미국과 한국의 공식 견해인 스탈린의 지원을 받은 김일성이 1950625일 전쟁을 시작했는데 미국이 성공적으로 막아냈고 대한민국을 지켰다는 것이다.”로써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은 무조건 악으로만 간주되어야 하고, 대한민국은 선으로 간주돼야만 하는 시각에서만 바라보는 것 같다. 대체로 우리 국민들이 이해하고 있는 한국전쟁에 대한 인식이 아직은 거기까지 밖에 안 된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을 주제로 한 국내에서 출판된 논문이나 서적들 중에는 대체로 우익적이고 보수적인 시각이 반영된 것들이 많다.

 

작년 12월 한국전쟁에 대한 권위 있는 연구자이자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에 비판적인 브루스 커밍스의 새 책이 한글로 번역되어 출판됐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80년대 한국전쟁의 기원이라는 책의 저자로 유명한 브루스 커밍스가 2010년대 들어서 쓴 한국전쟁 서적이다. 분량은 그리 많지 않지만 한국전쟁의 핵심을 아주 잘 정리했고, 기존의 반공주의적인 시각에서 많이 벗어났다.

 

1. 미국에게는 잊혀진 전쟁

 

우리에게 있어서 6.25라고 불리는 한국전쟁은 1950625일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됐다. 한국전쟁은 19537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되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전쟁이다. 즉 어느 누구도 승리하지 못한 전쟁이라는 얘기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 전쟁에 대한 명칭은 각 나라마다 다르다. 대한민국의 경우 북한군이 T-34탱크를 몰고 내려온 날인 625일에 시작됐다고 하여 6.25전쟁이라고 부른다. 전쟁이 터지자마자 곧바로 개입한 미국은 이 전쟁은 자신들이 지키고자 했던 국가 한국이라는 이름을 따서 한국전쟁(Korean War)라고 부른다. 이 전쟁을 먼저 시작한 북한의 경우 이 전쟁을 미제국주의를 몰아내고 남조선 괴뢰 도당을 몰아내는 전쟁혹은 민족해방전쟁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북한은 이 전쟁을 조국해방전쟁이라 칭한다. 반면 북한의 멸망할 위기에 놓이자 항미원조 보가위국의 기치를 내걸고 100만 대군을 참전시킨 중국은 이 전쟁을 항미원조전쟁이라 부른다. 이렇듯 한국전쟁의 주축이 되었던 국가들 마다 이 전쟁을 부르는 명칭은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시점부터 사실상 참전했던 미국은 19537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되기 까지 전쟁에 참전했다. 많은 병사들이 한반도에 파병되었고, 전쟁기간동안 약 36천명의 미군이 전사했다. 수많은 병력이 동원되고 전사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게 있어 한국전쟁은 잊혀진 전쟁이다. 미국사회는 한국전쟁에 대해 그다지 크나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한국전쟁이 잊혀졌다는 얘기는 미국 민중의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던 제2차세계대전이나, 미국 민중의 가장 많은 비난을 받았던 베트남 전쟁에 비해 잊혔다는 얘기도 된다.

 

저자 브루스 커밍스의 주장에 따르면 체계적인 억압과 검열 때문이라고 한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당시 미국 사회는 매카시즘이라는 극단적인 반공주의에 빠져있었고, 수많은 지식인들이 공산주의자들로 낙인찍힐까봐 두려움에 떨던 시대였다. 따라서 그 전쟁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큰 위험이 뒤따랐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과 소련의 핵개발로 인하여 미국사회는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차있었다. 이를 통해 미국은 한국전에 큰 장애물 없이 참전할 수 있었다. 매카시즘 덕분에 미국은 한국전쟁 반대세력을 크게 형성하지 않을 수 있었고, 한국전쟁도 1951년 춘계공세 이후 다시 38선 부근에서 벌어지는 고지 쟁탈전 위주의 전투로 바뀌고 휴전협정이 체결되면서 미국 사람들 관심사에서 사라졌다.

 

따라서 한국전쟁 시기 한반도에서 미국의 벌인 만행과, 19452차세계대전 이후 조선반도에 들어온 미군정이 저지른 만행이 미국 내에서 크게 논쟁거리가 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현실 속에서 냉전 이후 미국은 북한이라는 나라를 악의 축으로 결정하는 실책을 범하였다.

 

2. 전쟁의 기원과 남북한 각 정부의 수립 과정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은 한국전쟁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 한국근현대사를 책에 아주 잘 정리했다. 브루스 커밍스는 스탈린과 마오쩌둥으로부터 병력과 물자를 지원 받은 김일성이 1950625일 대한민국을 기습했다.”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한국전쟁 이전인 남북분단정부 수립과 해방 후 분단의 비극을 매우 잘 조명했다.

 

브루스 커밍스는 한국전쟁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통치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식민지 통치 시기 만주에서 항일투쟁을 했던 세력과 만주에서 일본제국주의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세력이 나중에 분단 속에서 남북한 분단 정권을 수립했다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브루스 커밍스는 북한의 지도자이자 독재자이기도한 김일성과 북한 초기 내각 거두들의 항일무장투쟁을 잘 재조명 했다. 김일성이 후에 저지른 과오를 떠나서 그의 항일무장투쟁을 과장 없이 충실하게 재조명한 건 분명 대단하다. 커밍스의 주장에 따르면 북한의 주류 정치세력들은 만주항일무장투쟁 세력들로 구성된 반면 대한민국의 주류 정치 세력들은 대체로 친일파들이었다. 이와 같은 브루스 커밍스의 주장은 일리가 없는 주장이 절대 아니지만, 한 가지 놓친 부분이 있다.

 

대한민국 초대 내각이 꼭 친일파들로만 구성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비록 임시정부의 주석이라 할 수 있는 백범 김구가 대한민국 초대내각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그 외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계열 독립운동가들이 적잖게 대한민국 초대 내각에 들어갔다. 신익희, 이범석, 이시영을 비롯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계열 독립운동가들이 적잖게 대한민국 초대 내각에 참여했고, 사회주의자였던 죽산 조봉암도 대한민국 초대 내각에서 농림부 장관으로 활동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브루스 커밍스 교수가 책에 서술하지 않은 부분은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계열 세력들이 큰 힘을 발휘했던 것은 아니었고, 김일성을 중심으로 뭉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친일파들을 웬만큼 처벌했던 데에 비해 대한민국은 친일파들을 하나도 청산하지 못했다. 그랬기 때문에 북한은 대한민국의 친일파 청산을 문제 삼을 수 있었던 것이다.

 

책 저자인 브루스 커밍스가 이 점을 놓치긴 했지만, 분단과 한국전쟁의 본질을 잘 파악했다는 점에선 결코 부족함이 없었다. 브루스 커밍스는 해방 이후 여운형이 중심이 되어 만든 건국준비위원회와 인민위원회를 미군정이 해산한 것부터 시작하여 친일파들을 앞세워 각종 노동자 농민 투쟁을 피로 물들이고 대구와 제주도 그리고 여수 순천을 피바다로 물들인 미군정의 잘못을 아주 정확히 지적했다. 김종원을 비롯한 우익 파시스트들과 친일파들이 벌인 악행도 아주 잘 정리했다. 즉 미군정의 제국주의적인 정책을 일목요연하게 비판했다. 이와 같은 커밍스의 해석은 아주 정확하고 훌륭하다.

 

3. 전쟁의 성격과 민간인 학살

 

3년간 지속되던 한국전쟁은 민간인 학살로 얼룩져 있다. 전쟁 초기 대한민국 이승만 정부에서 벌인 최악이 민간인 학살인 보도연맹 학살로 인하여 최소 30만 명이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학살됐다. 저자 커밍스는 미국의 동맹국 대한민국이 벌인 민간인 학살을 낱낱이 밝혔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한국군과 이승만 정부에 의해서 학살당한 사람이 6.25 전쟁 당시 인민군의 학살로 인하여 죽은 사람의 숫자를 훨씬 능가한다고 한다.

 

저자 브루스 커밍스는 인민군의 양민학살 또한 책에서 소홀히 다루지 않았다. 그 또한 전쟁 시기 인민군의 저지른 양민 학살 또한 잘못된학살이라는 사실이라 책에서 알려주고 있다. 인민군에 의해 학살된 사람(민간인뿐만 아니라 포로도 포함된다.)은 한 몇 만 명 정도 된다고 한다. 다만 인민군의 학살은 국군이나 미군에 비하면 어느 정도 기준이 있었다. 2000년대 만들어진 진실화해위원회는 북한이나 남한의 좌익에 의한 처형도 똑같이 다루었는데, 그들의 조사에 의하면 공산주의자들의 잔학 행위가 전체 사례에서 대략 1/6에 지나지 않으며 이들이 사람을 가려가며 처형했다고 한다. 한 예로 인천상륙작전 이후 북한군과 그 협력자들은 서울, 대전, 청주 등지에서 수백 명씩 살해하여 전부 1100명을 살해했는데 대개는 억류되어 있던 경찰과 우익 청년단체 회원들이었다. 반면에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조사한 국군학살에서 수천구의 시신을 찾아냈는데, 이중 10살 미만의 어린이의 시신도 수십 구씩이나 발견되었다.

 

저자 브루스 커밍스는 자국인 미국이 한국전쟁에서 저지른 민간인 학살 또한 낱낱이 밝혔다. 19507월 미국 제1기병사단에 의해서 200명이나 되는 민간인이 노근리에서 학살되었다. 그리고 미군은 한국군의 노골적인 학살을 하도록 방지했고, 절대 막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제거하고자 했던 대상을 포로로 잡아 대책없이 넘기며 그들의 학살을 돕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한국전쟁 시기 미군이 저지른 최악의 민간인 학살은 무차별 폭격이라 할 수 있다. 2차세계대전에서 태평양전쟁 구역 전체에 투하된 폭탄 총량이 503000톤이었다. 이중 20만 톤은 일본본토에 떨어졌다. 그러나 1950~53년까지 미국이 한국전에 참전하면서 퍼부은 폭탄의 량은 635000톤이다. 거기다 북한에 쏟아 부은 네이팜 폭탄은 32000톤이고, 이걸 다 합치면 667000톤이 된다. 네이팜탄의 파괴적 효과는 베트남보다 북한에서 더 힘을 발휘했다. 그것은 북한 인구가 조밀한 도시와 도시 산업 시설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2차세계대전에서 일본 도시 60곳이 평균 43퍼센트 수준으로 파괴된 반면, 북한 도시와 마을이 파괴된 정도는 40~90퍼센트까지로 추산된다고 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한국전쟁 당시 미국은 북한을 무차별 폭격하며 북한이라는 땅을 달의 표면과 같은 땅으로 만들었다. 당시 미공군을 지휘했던 커티스 르메이의 증언에 따르면 100만 명이나 되는 민간인이 폭격으로 죽었다고 한다. 이 수치가 과장이든 아니든 간에 미국의 인정사정 없는 폭격으로 수많은 민간인이 죽은 것은 사실이다.

 

4. 이제는 반공주의적인 시각에서가 아닌 '한국전쟁이 왜 일어났는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한국전쟁을 보아야할 때이다.

 

책의 저자 브루스 커밍스는 이 책을 통해서 스탈린과 마오쩌둥으로부터 병력과 물자를 지원 받은 김일성이 1950625일 대한민국을 기습했다.”와 같이 한국전쟁을 누가 시작했는가?’라는 질문에 초점을 맞추는 시각이나 견해에 반대하여 한국전쟁의 본질을 파악하고자 했다.

 

그리고 저자 브루스 커밍스는 지난 한국전쟁 시기 북한을 굴복시키기 위해서 미국이 저지른 무차별 폭격에 대해 조리 있게 비판했다. 이와 같이 그가 가지고 있는 한국전쟁에 대한 시각은 분명 미국의 주류역사학계가 가지고 있는 시각과는 완전히 상반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국내에 있는 알라딘 인터넷 서점의 책 평점과 amazon(미국의 인터넷 소매점)에 나와 있는 이 책의 평점을 잠깐 찾아보았다. 두 사이트에서 이 책에 대해 평점을 매우 낮게 준 사람들이 이 책에서 문제 삼는 공통점은 이 책이 좌편향 적이다.’라거나 저자가 빨갱이라는 것이다. 이렇든 이 책은 한국이나 미국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한국전쟁에 대한 시각하고는 사뭇 다르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을 평가 절하하는 세력들은 기존의 반공주의적인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1953년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끝난 이후 전쟁의 위협은 한반도를 맴돌았다. 그리고 실제로 전쟁이 일어날 뻔 했다. 19681,21사건과 울진 삼척 무장공비 침투때, 1994년 클린턴 정부가 북폭을 준비했을 때, 2003년 이라크 전쟁 이후 부시 정부 안에서 북한도 공격해서 없애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을 때, 2010년 연평도 포격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리고 2017년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은 화염과 분노에 휩싸일 것이다.’라고 했을 때 말이다. 그 외에도 크고 작은 긴장은 한반도를 둘러싸고 늘상 일어났고, 한반도에 사는 국민들을 긴장관계로 몰아넣었다.

 

최근 들어 한반도는 다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전쟁을 불사하겠다던 북미관계도 차츰 완화되어 2018612일에는 사상최초로 북미정상회담이 싱가폴에서 개최되기 까지 했다. 소위 보수 꼴통으로 유명한 도널드 트럼프가 김정은과 북한에게 보인 반응은 정말 의외였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과 남한의 대통령 문재인을 극찬했다. 그리고 얼마 전인 2018918에는 대한민국의 문재인 대통령이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을 이어 평양을 방문했다.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 회담은 잘 진행되었다. 이번 정상 회담에서 김정은은 조만간 서울을 방문할 것이라 입장을 표명했다. 미국의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이번 회담에서 보인 반응은 아주 긍정적이었다. 작년의 북미관계를 고려해보자면, 생각하기 힘들었던 일이 올해 들어 일어났다. 이렇듯 한반도는 다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즉 한반도 관계가 다시 변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아직까지 일반 사람들이 인식하는 한국전쟁의 본질을 보지 못한 채 지극히 우익적인 관점에 빠져있다.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가 바뀌듯이 한국전쟁에 대한 일반적인 시각도 앞으로 보다 더 넓어져야 한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선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과 같은 책들이 앞으로 더 많이 나와야 할 거고, 그런 책들이 대중들에게 많이 읽혀야 할 것이다. 이번 남북관계과 개선되는 것을 보면서 희망을 한번 가져본다.

 

분단적폐 물리치고 가자 평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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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9-27 09: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국은 건국 이래 국지적 전투에서는
졌어도 전쟁에서는 진 적이 없는 나라
였습니다.

한국전쟁은 미국이 처음으로 이기지
못한 전쟁이었습니다.

미국에게는 잊혀진 전쟁이 아니라
어쩌면 잊고 싶은 전쟁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NamGiKim 2018-09-27 10:08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미국이 최초로 이기지 못한 전쟁이죠. 그리고 미국은 베트남에서 깨지죠. 이후 미국은 승리하지 못했던 트라우마에 빠졌지만, 걸프전쟁으로 자존심을 회복했죠.

겨울호랑이 2018-09-27 19: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Ho Chi Minh 님 글을 읽다보니, 두 사람이 싸울 때 ‘누가 먼저 주먹을 휘둘렀느냐‘보다 ‘왜 싸웠는가?‘가 중요함에도 한국전쟁에서 이 질문은 제기되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NamGiKim 2018-09-27 20:03   좋아요 1 | URL
오 그랬군요.ㅎㅎㅎ 사실 그런 질문이 던져지지 못한 것은 분단이라는 현실이 가로막았기 때문이라 봅니다. 지금까지 분단이라는 모순속에서 서로에 대한 적대감을 계속 키워왔고, 그 상황에선 생각치 못한 것이겠죠. 그리고 울나라 사람들은 한반도 분단의 책임이 미국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너무 쉽게 넘기는것 같습니다. 김칫국 부터 마시는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한반도의 정세가 더 좋아지면 그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좀 더 생기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블루레이] 7월 4일생
올리버 스톤 감독, 톰 크루즈 출연 / 유니버설픽쳐스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주의 이 감상평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제 저녁 집에서 영화 ‘7월 4일 생’을 봤다. 아버지께서도 워낙 추천하는 영화고, 톰크루즈가 연기파 배우라는 사실을 증명한 영화이기도 해서 몇 주 전부터 이 영화를 꼭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영화를 보고난 뒤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고,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서 만든 베트남 전쟁 영화들은 대부분 반전성향의 영화들이 많다. 올리버 스톤이 만든 ‘7월 4일 생’또한 그 반열에 들어갈 것이다.

미국에게 있어서 7월 4일은 독립기념일이다. 1776년 영국 식민 통치에 반발한 미국인들은 7월 4일에 미국 독립 선언을 채택했다. 그 날을 기념하여 미국에서는 7월 4일을 미국의 독립기념일로 잡는다. 이렇듯 7월 4일은 미국인들에게 있어서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조국을 생각하는 날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미국인들이 의미를 두는 날인 7월 4일에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참전용사들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했던 그는 “언젠간 자신도 조국을 위해 싸우겠다.”는 대단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그의 아버지는 2차대전 참전용사였고, 그의 집안이 다니는 교회 또한 굉장히 보수적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주인공은 베트남 전쟁이 격화되자 거리낌 없이 해병대에 자원입대한다.

그러나 그가 참전한 베트남 전쟁은 자신의 아버지가 참전했던, 2차세계대전과 같은 전쟁이 아니었다. 1967년 다낭항에서 전투를 치르던 주인공은 미군에 의해 죽거나 부상당한 베트남 민간인들을 목격한다. 그 상황에서 살아있던 아기를 구하려 했지만, 결국 후퇴하라는 상관의 명령 때문에 후퇴했고, 거기 있던 갓난아기는 미군의 포격에 죽고 만다. 다낭에서 전투를 치르던 주인공은 크게 부상당했다. 결국 그는 휠체어 신세가 되어버렸다. 1968년 구정 공세 이후 미국 내에서도 반전운동이 격화 됐다. 워낙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랐던 주인공은 초반엔 반전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베트콩 지지자들로 간주하며 매우 경멸했다.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돌아왔을 당시에는 매우 기뻤지만 둘로 분열되어 있는 미국을 보게 되었고, 초반엔 전쟁 지지자들을 지지한다. 그러나 그는 미국 정부가 국민들을 속였다는 사실을 점차 알게되었고, 그가 어릴 때부터 인연이 있던 여자친구를 만나 반전운동에 참가했다가 반전 참전용사들과 반전운동가들을 대하는 미국 정부의 대응을 보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벌어지는 미국 정부의 무차별 폭력을 본 뒤 자신이 믿었던 가치관이 점차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를 계기로 주인공이 가지고 있던 베트남 전쟁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그와 동시에 그는 베트남에서 받은 충격으로 인하여 PTSD로 고생한다.

온갖 고생과 정신적 충격을 받은 끝에 주인공은 반전운동가가 된다. 주인공은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베트남 전 참전용사로써 반전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닉슨의 정책을 비판한다. 닉슨의 재선을 시도하자 그는 연설현장에 찾아가 베트남 전의 진실을 호소한다. 무었 때문에 왔냐는 어느 기자의 질문에 주인공은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제가 여기 온 건 이 전쟁이 잘못됐다는 걸 말하기 위해섭니다. 이 사회는 나와 내 형제들에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이 나라가 국민들을 기만했습니다. 우린 그 거짓말에 속아 10000km나 떨어진 베트남까지 가서 가엾은 소작농들에 맞서 전쟁을 치렀습니다. 당당한 저항의 역사를 가진 자신들의 독립을 위해 지난 천 년간 투쟁해온 베트남 사람들과 말입니다. 이 정부의 지도자라는 자가 얼마나 역겨운지 말로 표현하기조차 힘듭니다. 사람들은 미국이 맘에 들지 않으면 떠나라고 합니다. 전 미국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현 닉슨 정부에 대해서는 사랑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 정부는 부패하고 썩어빠진 도둑집단입니다. 저들은 강간범이자 강도입니다. 이제는 묵인하지 않겠다는 말을 하기 위해 우린 여기까지 왔습니다. 진실을 말하려고 여기 까지 왔습니다. 베트남에 있는 미군들을 살해하고 있는 저들에게 진실을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닉슨 지지자들은 진실의 불편함을 느끼고 주인공과 일행들에게 “빨갱이”라는 욕설을 퍼붑는다. 영화 ‘7월 4일 생’은 베트남 전쟁이 미국인들에게 어떻게 다가왔고, 어떻게 사회적인 변화를 불러왔는지를 아주 잘 보여준다. 무엇보다 애국심에 빠져있던 일반 미국인이 어떻게 해서 반전운동에 나서게 되었는지를 아주 잘 보여줬다. 영화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서 미국 사회의 깊은 반성과 전쟁의 비극, 전쟁이 개인에게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미치는 영향 그리고 “우린 잘못된 전쟁에 참가했다는 사실”을 얘기해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주인공이 베트남으로 가기 전인 영화 초반에 베트남에서 미군을 지휘하던 윌리엄 웨스트모어랜드의 인터뷰가 나온다. “2차세계대전 당시 그리고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당시 일본군과 프랑스군에 맞서 싸워 이긴 베트콩들을 제거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보는 기자의 질문에 웨스트모어랜드 장군은 “동굴에 사는 건 모두 제거 될 수 있습니다.”라고 답변한다. 그러나 현실을 그게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장면을 그리 깊게 보지는 않겠지만, 미국의 베트남에서 저지른 제국주의적 실수를 아주 정확히 보여주는 장면일 것이다. 정말 감동적이고 깊은 여운을 남겨주는 영화를 봤다. 영화 ‘7월 4일 생’은 앞으로도 반전을 호소하는 명작으로 기리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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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9-26 1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 빔 벤더스의 사진집에서 원작자와
뉴욕에서인가 당구를 치는 것을 보고
원작을 찾아본 기억이 나네요.

아무런 대의명분도 없이 시작한 전쟁에서
결국 망신만 당한 두 제국의 민낯을 드러
냈다고나 할까요.

NamGiKim 2018-09-26 21:06   좋아요 0 | URL
베트남 전쟁에 대해 공부하다 보면 정말 제국주의 국가들의 뻘짓이 보이죠. 프랑스도 미국도요
 
폭력적인 미국의 세기
존 다우어 지음, 정소영 옮김 / 창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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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 폭력, 전쟁, 무기개발, 제국주의로 얼룩진 미제국주의의 추악한 역사>

미국이라는 나라가 초강대국으로 부상하게 된 계기는 제2차세계대전 이후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나치독일과 일본제국을 패망시키는데 이바지했던 미국은 전쟁이 끝나고 난 뒤 소련과 경쟁했다.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미국은 자신들의 적이 사라졌다 생각했지만,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1991년 걸프전쟁을 기점으로 미국은 중동분쟁에 개입했고, 2001년 9.11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에 개입했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중동분쟁은 현재진행형으로써 아직도 미국은 중동분쟁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 책은 미국이라는 한 제국주의 국가가 1945년 제2차세계대전 이후부터 지금까지 저질러 제국주의적 폭력과 비상식적인 무기개발 그리고 자신들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들이 저질러온 침략과 학살에 대해 낱낱이 고발하고 규탄한다. 그 중 하나는 ‘대리전과 대리 테러’라는 제목의 장에서 다루는 음험하고 추악한 만행들이다. 냉전기 미국은 남미에서 자신들을 지지하는 친미괴뢰정권들을 세우기 위해 남미에 있던 사회주의 세력과 혁명세력들을 무력과 친미파들을 앞세워 박살냈다. 마치 8.15 해방 이후 제국주의 국가 미국이 남조선에서 이승만이라는 미제국주의자와 총칼을 앞세워 여운형 선생과 같은 좌우연합 통일 세력의 염원과 당시 제국주의에 맞서 저항하던 사회주의 세력과 수많은 노동자 농민의 투쟁을 무자비하게 짓밟았듯이 말이다. 쉽게 말해 남미에서도 4.3항쟁이나 여순항쟁 그리고 대구 10.1 항쟁같은 반제국주의 투쟁과 노동자 농민의 항쟁이 있었고, 미제와 미제 앞잡이들에 의해 아주 철저히 짓밟혔다는 얘기다. 그리고 미국의 저지른 그런 제국주의적인 만행은 “하나같이 반공주의의 이름”아래 일어났다. 그러나 이런 미제국주의의 탄압과 전술전략이 남미에서 실패한 사례가 있다. 피델 카스트로와 체게바라라 일으킨 쿠바혁명이 바로 그것이다.

쿠바혁명으로 인하여 미국은 바티스타 친미괴뢰정권을 지키는데 완전히 실패했다. 그러자 미국은 쿠바를 봉쇄했고, 심지어 망명자들 출신들을 동원하여 쿠바를 침공했었다. 그리고 처참히 패배했다. 냉전 후반기라 할 수 있는 197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 후반 사이 미국은 ‘콘도르 작전’을 개시하여 친미반공국가를 만드는데 이바지했다. 그 과정에서 수만 명 이상이 남미에서 학살당했다. 마치 한반도에서 수많은 민간인들이 반공이라는 이름아래 목숨을 잃었듯이 말이다. 미국이 자신들의 반대세력을 고문하기 위해 만든 매뉴얼이 있는데, 이는 너무나 끔찍해서 읽다보면 눈이 돌아갈 정도다.

미국의 이러한 만행들은 1991년 걸프전쟁 이후에도 반복됐다. 2001년 9.11테러로 인하여 충격에 휩싸였던 미국과 호전광 조지 부시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했다. 그리고 미국은 여러 전쟁범죄들을 일으켰고, 지속적으로 중동분쟁에 군사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21세기 초반부터 오늘날 까지 치른 중동분쟁에서 사망한 미군 병사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합치면 대략 7000명 이상이 된다. 특히 아프가니스탄은 아직까지도 엄청난 교착상태에 빠져 전투가 지속되고 있고,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고 있다.

이 책에서는 2차세계대전과 한국전쟁 그리고 베트남전쟁에서 미군이 행한 무차별 미간인 폭격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일본에게 행한 미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각각 수십만의 민간인이 사망했다고 한다. 독일의 드레스덴 폭격과 일본의 도쿄 대공습만 보더라도 적어도 2만에서 10만사이의 민간인이 미군의 폭격으로 무차별 학살당했다. 베트남 전쟁에서는 남북합쳐 약 200만명의 베트남 민간인들이 사망했다. 이들 중 대다수는 미국의 융단 폭격과 고엽제 투하로 인하여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무차별 폭격은 베트남에서 보다 한국전쟁에서 더 효율적이었다 한다. 2차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서 전략폭격을 지휘했던 커티스 르메이 장군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북한과 남한 양쪽에서 도시란 도시는 거의 다 불태웠어요. 100만 명 이상의 민간인들을 죽였고 700만 명 이상을 고향에서 내몰아서 그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더 많은 비극이 일어나게 된 거죠. (폭력적인 미국의 세기p.73~74)

커티스 르메이 장군이 제시한 수치가 과장이든 아니든 간에 한국전쟁 시기 미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학살당한 민간인은 엄청 많았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미군의 무차별 폭격은 걸프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에서도 반복됐고, 지금도 계속 미국에 의하여 반복되고 있는 중이다.

“폭력적인 미국의 세기”는 이와 같은 미국의 만행을 아주 잘 고발한 책이다. 저자는 풍부한 지식과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책 두께에 견줘 많은 것을 알려 준다. 미제국주의의 역사가 궁금한 독자에게 아주 유용한 참고서가 될 것이다. 200페이지 안팎의 짧은 분량이지만 그 짧은 분량 안에 정말 많은 내용을 압축적으로 잘 담고 있다. 책 분량에 비해서 읽으면 얻는 것이 훨씬 더 많은 책이다. 단점보다 장점이 더 큰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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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남북회담이 평양에서 열렸습니다. 그래서 어제 이 책을 인터넷 구매했습니다. 이런 시기일수록 학습을 해야 남북관계를 더 정확히 분석하고 대비할 수 있으리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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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호찌민인가? - 베트남의 진실이 위기의 한반도에게 묻는다
송필경 지음 / 에녹스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지금으로부터 43년 전인 1975년 4월 30일 북베트남은 사이공을 함락시킴으로써 외세를 몰아내고 남북통일을 이룩했다. 1965년 베트남 전에 개입한 미국의 요청으로 대규모의 전투부대를 파병한 대한민국의 박정희 정부는 75년 월남이 해방되자 이를 계기로 반공주의를 강화하고 반독재투쟁을 전개하던 민주인사들을 대대적으로 탄압했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들은 베트남 전쟁을 단순히 “자유민주주의을 수호하기 위해 싸운 전쟁, 경제발전에 기여한 소중한 전쟁 혹은 공산괴뢰 월맹이 자유월남을 적화시키게 된 전쟁”으로 인식했고 군사독재의 끄나풀이었던 대한뉴스는 박정희 전두환 시절 민주화 투쟁하는 학생과 지식인들을 월남패망을 예시로 들며 대중매체를 통해 지속적인 반공반북 선전을 하였다. 박정희 전두환의 반공선전의 여파로 지금까지도 자유한국당과 박사모세력들은 월남패망을 들먹이며 반공선전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고 베트남 전쟁을 보다 큰 틀에서 바라보려는 사람들은 종북좌파, 좌경, 용공분자로 몰아붙인다.

사실 수구세력의 이러한 반공선전 때문에 대학교 1학년 때까지 난 베트남 전쟁을 단순히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미국이 참전한 전쟁”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던 중 다른 자료를 접하고 리영희 선생이 쓴 책과 베트남 전쟁과 호치민 관련한 서적을 여러권 읽으며 나의 생각은 점차 변했고 한평생을 베트남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헌신한 호치민 아저씨를 매우 존경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왜 호치민인가” 저자 송필경 선생님을 알게 되었고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박정희 전두환의 반공주의로 인하여 대한민국 사람들은 오랜 시간 동안(혹은 지금까지도) 베트남 전쟁과 북베트남의 지도자 호치민을 단순히 이데올로기적인 관점에서 보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관점은 베트남 전쟁의 진실과 본질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매우 불필요한 관점이다. 우선 베트남의 역사를 볼 필요가 있다.

베트남은 2천년 전부터 중국의 침략에 저항해온 역사다. 수많은 중국의 침략에 저항했고 13세기 칭기스칸의 몽고군대가 아시아 대륙을 정벌할 때 베트남은 몽골의 지속적인 침략을 막아냈다. 명나라와 청나라의 침략에도 굴복하지 않았던 나라가 베트남이다. 그러던 중 산업혁명으로 자본주의 제국이 된 프랑스가 19세기 중반 베트남을 침략하였고 베트남을 3등분(북부는 통킹, 중부는 안남, 남부는 코친차이나)하여 식민지화 하였다. 이와 같은 프랑스의 지배 하에서 베트남의 위대한 영웅 호치민이 1890년 베트남의 시골마을 킴리엔에서 태어났다. 프랑스의 식민지 통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민중은 프랑스 제국주의에 저항해왔다. 호치민도 20대 때부터 독립운동을 해왔다. 1940년 나치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자 히틀러의 동맹국 일본은 인도차이나 반도를 점령했다. 호치민을 비롯한 베트남의 애국자들은 베트남 독립 동맹(베트민)을 창설하여 일본에 저항해왔고 1945년 9월 2일 미주리호에서 있을 일본의 공식항복 서명식에 맞추어 호치민은 독립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강대국들은 이를 무시했고 프랑스는 베트남을 다시 식민지화 하려다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패배하였고 결국 베트남에서 물러났다. 프랑스가 떠난 뒤 베트남은 남북으로 분단되었고 원래는 2년 이내에 통일을 위한 선거를 해야 했지만 미국은 민중성이라고는 1%도 없는 민족반역자 반공정권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며 분단을 구축했다. 그러던 중 1964년 통킹만 사건을 구실로 미국은 베트남 전쟁을 일으켰고 북베트남에 대규모 폭격을 감행하였다. 1965년부터 미국의 지상부대가 상륙하였고 1967년에는 54만9천명의 미군이 남베트남에 주둔하였다. 그리고 프랑스를 대신하여 싸우게 된 미국은 수많은 전쟁 범죄와 학살 그리고 폭력을 자행하였다. 1968년 1월 31일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은 구정공세를 감행하여 “베트남 전쟁에서 이기고 있다.”는 미국의 선전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전세계에 알렸고 미국 내에서는 반전운동이 일어났다. 결국 미국은 1969년부터 군대를 철수하기 시작했고 1972년 크리스마스에는 대규모의 융단폭격을 가한 뒤 1973년 1월 파리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나서 베트남에서 철수 했다. 미국의 대대적인 지원에도 부정부패와 비리를 일삼던 남베트남 정권은 결국 1975년 4월 30일 사이공이 함락당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처럼 베트남의 역사는 2천 년간 중국의 침략에 맞서 저항해왔고 몽고군의 침략도 막아냈으며 프랑스와 일본 그리고 미국의 침략까지 막아냈다. 즉 베트남 전쟁에서 북베트남이 미국을 몰아내고 통일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도 이와 같은 위대한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북베트남의 지도자 호치민은 1969년 9월 2일 심장병으로 죽었지만 호치민이 베트남 인민들에게 보여준 친 민중성과 따뜻함 그리고 베트남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열정은 베트남 인민들을 자발적으로 침략자들의 야만적인 행위에 저항하게 만들었고 미국을 몰아내고 베트남의 통일을 이룩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무시한 채 베트남 전쟁과 호치민을 단순히 이데올로기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짓이다. 베트남의 위대한 지도자 호치민 그는 비록 잘살지 못하는 나라의 지도자였지만 그가 민중에게 보여준 진심과 따뜻함 마음 그리고 베트남의 자유와 독립을 향한 열정은 분명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있다. 그리고 미국의 용병으로 베트남 전에 참전하여 온갖 범죄와 민간인 학살을 일삼았던 우리의 과거도 분명 반성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저자 송필경 선생이 베트남 평화 기행을 배경으로 한 기행문에 가깝지만 대한민국의 반공주의자들이나 수구세력들이 베트남 전쟁과 호치민에 대해 얼마나 잘못알고 있는지를 아주 잘 알려주는 좋은 책이다. 무엇보다 한국인이 쓴 책 중에 호치민을 주제로 한 몇 안 되는 매우 좋은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반공주의에 입각하여 틈만 나면 월남패망과 보트피플 같은 얘기만 외치는 대한민국의 수구적폐세력들의 논리와 지식이 얼마나 흠이 많은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고 책의 저자 송필경 선생님처럼 베트남 평화기행에 꼭 동참하고 싶어졌다.

무튼 이 책은 베트남 전쟁의 본질과 호치민을 아주 정확히 잘 파악하고 있는 매우 좋은 책이다. 비록 절판되었다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베트남 전쟁과 호치민을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본다. 이처럼 좋은 책을 써주신 저자 송필경 선생님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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