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 평전
윌리엄 J. 듀이커 지음, 정영목 옮김 / 푸른숲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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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 평전 서평>

 

2017년 추석 연휴는 참으로 길었다. 긴 연휴를 끼고 읽어볼 생각으로 2주전 윌리엄J듀이커가 쓴 호치민 평전을 펼쳤다. 976페이지(각주를 빼면 844페이지)라는 압도적인 분량이 나를 짓눌렀지만 평소 호치민과 베트남 전쟁에 관심이 많던 나이기에 긴 연휴를 끼고 끝까지 다 읽었다. 베트남 전쟁은 한국현대사에 있어 아주 중요한 사건이었다.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권은 경제개발이라는 명분아래 베트남 전쟁에 개입했고 한국군 5천명이 전사하고 1만 명의 부상자 속출하였지만 그 덕분에 외화를 벌어 경제성장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한국군인들은 베트남인들을 죽이고 폭행하고 강간하고 학살하였으며 독립운동세력이 주축의 된 월맹과 민족반역세력의 주축이 된 월남의 싸움에서 미국과 더불어 민족반역세력을 지원하였다. 그렇다면 독립운동세력이 주축의 되었던 민족해방세력인 월맹과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베트콩)을 정신적으로 사상적으로 이끌었던 지도자가 누구일까? 그가 바로 평생을 민족해방과 베트남의 독립을 위해 바쳐온 호치민이다. 이 책의 내용과 호치민에 대해 이야기하고 평가하기 전에 호치민의 일생을 소개하겠다.

 

호치민 그는 1890년 응우옌 신 삭이라는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 20대의 나이에 프랑스의 기선 아미랄 라투셰 트레빌 호에 취직하여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등을 돌아다니며 노동자, 하인, 요리사 보조등 온갖 일을 하며 프랑스에서 노동운동에 투신하였다. 1919년 안남애국자연합을 창설하여 파리강화회의에 베트남 민족의 독립요구를 주장했고 1920년 프랑스 공산당에 입당하여 베트남 독립을 위해 헌신하였다. 1922<르 파리아>를 창간하여 프랑스 제국주의를 낱낱이 비판했고 1923년 모스크바로 건너가 코민테른 극동국에서 근무하며 베트남 독립을 위해 사회주의를 받아들였다. 1925년 베트남 청년회를 결성하고 광저우에 세워진 단체에서 교사로 활동하며 1926<혁명의 길>을 집필하기도 했다. 1930년 홍콩에서 인도차이나 공산당을 창당하여 반프랑스 활동에도 나섰다. 1930년 베트남에서 프랑스에 대항하여 통킹반란이 일어난 뒤 1931년 홍콩에서 영국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1930년대 까지 코민테른에서 활동하며 반프랑스 독립운동 세력과의 연대 운동을 전개하였다. 1940년 팜 반 동과 보 응우옌 지압(후에 전설이 될 명장)을 만나 베트민을 창설하였고 1940년 나치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고 독일의 동맹국 일본이 베트남을 침략하자 그때부터 대일전과 대프랑스항전을 준비하였다.

1941년 진주만 기습공격 이후 미국이 참전하고 반파시즘 전선이 형성되자 중국의 도움을 받기위해 중국으로 갔다가 스파이로 오인 하여 1년간 감옥생활을 하며 <옥중일기>를 집필했다. 1943년 석방된 이후에 연합국과 협력하여 대일전을 준비하기도 했다. 194412월 베트남 해방군을 창설하여 일본과의 게릴라 투쟁을 전개하면서 미국의 OSS와도 협력관계를 형성하여 일본과의 전면전을 준비하였다. 19458월 일본이 항복한 이후 총봉기를 일으켜 92일 베트남 독립을 선언했으나 프랑스는 베트남을 다시 식민지화 하려고 했다. 프랑스가 다시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평화적인 방법을 통해 프랑스를 몰아내려 했으나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발발했고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프랑스를 몰아냈다. 디엔비엔푸 전투당시 제네바에서 평화회담이 진행되었고 17도선을 기점으로 베트남은 남북으로 나뉘었지만 호치민은 제네바협약에 따라 2년 이내의 통일 선거를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인도차이나 문제에 지속적으로 개입하여 민족반역자 정권인 응오딘지엠 정권을 지원한다. 이에 호치민은 북베트남 안에서 토지개혁을 비롯한 사회주의적 개혁을 실행하고 토지개혁 이후 부패한 남베트남에 훈련시킨 요인들을 보낸다. 비록 토지개혁 당시 몇몇 이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지만 북베트남 인민들이 가지고 있던 호치민의 인식은 대부분 다정다감하고 친절한 호아저씨였다.

1960년 베트남 민족 해방 전선(베트콩)이 남베트남에서 자생적으로 창설됐다. 호치민은 남베트남의 부정부패와 불교도 탄압이라는 반민중적인 상황을 보고 남쪽을 해방시키려 노력하였으나 미국은 처음에는 군사요인을 파견하여 남베트남을 방어하려 했고 결국 1964년 미국은 통킹만 사건을 조작하여 베트남 전쟁을 일으킨다. 미국은 북폭을 실행하며 각종 최신식 무기와 대규모 군사를 동원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려 하지만 호치민을 비롯한 월맹군과 베트콩은 미국의 최신식 무기에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1968131일 호치민이 이끄는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은 구정공세를 감행하여 사이공의 미대사관 1층을 잠깐동안 점령하기도 했고 구정공세 1달동안 미군에게 치명적인 병력손실을 안겨주기도 했다. 구정공세로 인한 미국의 크나큰 병력 손실과 베트남 전쟁에서 이기고 있다던 린든존슨 정부의 선전이 거짓으로 드러나자 미국 내에서 반전운동이 일어나게 되어 미군은 북폭을 잠시 중단하게 되었다. 그러던 196992일 호치민은 심장병으로 사망한다. 호치민의 사망으로 베트남 인민들은 더욱더 각성하게 되었고 197212월 미국은 라인베커 작전으로 마지막 대공습을 가했지만 19731월 파리평화협정으로 미국은 베트남에서 완전 철수하게 됐으며 1975430일 베트남은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다.

 

이처럼 호치민은 프랑스 독립운동, 사회주의 운동, 항일투쟁, 1차인도차이나 전쟁 그리고 베트남 전쟁까지 20세기 역사의 격동의 현장 속에서 베트남 민중들을 위해 독립을 위해 투쟁해온 사회주의자이자 민족주의자이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저자 윌리엄J듀이커의 말대로 반은 간디 반은 레닌일지도 모르겠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박정희 정권 시절 대한민국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였다. 그리고 그 베트남 전쟁은 우리나라 경제에도 영향을 줬지만 1975년 월맹이 승리로 끝나면서 박정희 정권은 월남 패망의 예시를 들며 대한민국의 국민들을 반공으로 세뇌시키는데도 영향을 주었다. 그 반공교육으로 인하여 호치민 혹은 베트남 전쟁과 월맹군에 대한 중립적이고 양심적인 평가가 이단자 취급 받을 정도로 세뇌의 골의 매우 깊었다. 그리고 그 여파는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박정희식 반공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들은 호치민이 어떤 인물인지 혹은 베트남 전쟁에서 월남이 왜 망할 수밖에 없었는지 기본적인 사전지식이 없다. 그렇기에 박사모와 수구세력들은 자주 월남패망을 예시로 들어 진보적인 인사를 베트콩과 같은 취급하는 경우가 있다. 난 이들의 주장에 결사반대한다. 월남패망을 예시로 들며 호치민과 월맹을 사악한 악마 취급하는 것은 굉장히 어리석은 짓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월남의 응오 딘 디엠 정권은 미국의 세력 확장을 위해 만들어진 부정부패한 정권이다. 그랬기에 1963년 월남 내에서 일어난 군부 쿠데타를 미국의 케네디 정부가 상황 진전을 위해 묵인하기도 했을 정도이다.

 

둘째 월남 정권은 근본적으로 국민들에게 지지를 받지 못했고 정권 반대파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하고 탄압하며 독재를 일삼던 오직 부르조아 계급들을 위한 정권이었다. 심지어 북부베트남이 무상몰수 무상분배에 입각한 토지개혁을 단행할 당시 그에 걸맞은 토지개혁안을 월남의 정권은 내놓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지주 자본가 계급들이 토지개혁을 결사반대했을 정도다.

 

셋째 월남의 정치 지배층들은 프랑스식민통치때는 친 프랑스파의 길을 걸었던 민족반역자 출신들이 대부분이다. 그에 비해 호치민을 비롯한 월맹의 지도자들은 평생을 베트남 독립을 위해 바쳐온 애국지사들이었다.

 

3가지만 살펴봐도 월남의 정권은 부정부패와 민족반역의 극에 달한 집단이자 미제 앞잡이 정권이었다는 사실이 명명백백히 들어난다. 그렇다면 월맹과 호치민이 한계가 없었던 것일까? 정답은 물론 아니다. 1930년대 호치민은 반프랑스 운동을 전개하면서 베트남의 여러 반프랑스 세력들과 결합하려고 했으나 유난히 차별하는 집단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트로츠키주의자들이었다. 호치민과 베트민은 유난히 트로츠키주의자를 매우 경계하고 배척했다. 심지어 필요에 따라선 숙청했다. 스탈린이 트로츠키와 정치반대파를 숙청했듯이 아주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트로츠키주의자를 숙청한 건 아니지만 트로츠키주의자를 강경적으로 배척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시대가 트로츠키주의를 이단으로 간주하던 시대였기에 호치민도 그 시대적인 흐름을 못 벗어났다는 한계라고 본다. 트로츠키주의자를 배척했던 호치민의 행보에는 조금의 아쉬움이 남지만 평생을 독립투쟁과 민족해방에 한평생을 바쳐온 호치민을 높게 평가하고 싶다.

 

이 책은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대사관에서 일하던 공무원이 30년간 수집한 자료를 가지고 쓴 호치민 평전이다. 비록 분량이 너무 많아 읽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하고 중간에 읽었던 내용을 종종 까먹기도 했다. 국내에 번역된 호치민 평전은 OSS에서 활동하며 호치민을 직접만난 참전용사 찰스 스펜이 쓴 호치민 평전과 이 사람이 쓴 호치민 평전이 전부고 전자는 절판된 지 오래됐다. 둘 다 괜찮은 서적들이지만 찰스 스펜의 호치민 평전은 절판됐기에 힘들더라도 이 책을 매우 추천해주고 싶다. 저자가 이 책을 쓰기 위해 미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 베트남에서 자료를 모와 충실하게 쓴 정성이 보이고 역자의 번역 수준도 매우 높은 것 같다. 무튼 이 책과 같은 훌륭한 서적들이 앞으로 많이 나오길 바라며 우리세대가 베트남과 호치민을 바로 앎으로써 한국이 당당하게 베트남 전쟁의 만행을 깊이 반성하며 베트남 정부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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