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양 여운형 평전 - 진보적 민족주의자
김삼웅 지음 / 채륜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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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진보적 민족주의자 몽양 여운형 평전 서평

내가 몽양 여운형이란 인물에게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던 것은 2015년 1월 아는 사람의 추천으로 드라마 '서울 1945'를 보고나서 부터 였다. 배우 신구가 연기한 몽양 여운형은 정말 멋있고 포스가 넘쳤다. 드라마를 통해서 "몽양은 살아생전 조국의 자주독립과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살아온 위대한 지도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이는 내가 지금까지 몽양 여운형을 존경하게 되는데 크나큰 영향을 주었다.

서울 1945를 다 보고 난 후 난 몽양 여운형의 매력에 빠져 서울 1945에서 그가 나오는 파트를 자주 돌려 봤고 간혹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그러던 중 난 몽양 여운형 평전은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고 2015년 김삼웅 선생께서 쓰신 몽양 여운형 평전을 읽게 됐다.

난 이 평전을 3번 이상 읽었다. 2015년 8월달에 처음 읽었고 2016년 3월에 한번 더 읽었으며 2017년 7월에 다시 한번 더 읽었다. 저자가 워낙 한국 현대사쪽 인물 평전을 주로 쓰는 사람이고 책도 워낙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쉽게 쓰는 사람이라 책을 읽을때마다 책 내용이 눈에 쉽게 잘 들어왔었다. 책을 읽으면서 단순히 해방 이후의 여운형 뿐만 아니라 그 전의 여운형에 대해도 심층적으로 알게 되었다.

몽양 여운형이란 인물은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다.1886년 경기도 양평에서 양반집 아들로 태어난 여운형은 20대가 되던 시절 집에있던 노비를 해방시켰다. 1910년 일제가 조선을 병합하자 여운형은 중국으로 가서 남경금룽대학에서 유학 한 뒤 1918년 신한청년당을 조직했고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김규식을 대표로 파견함으로써 2.8 독립 선언과 3.1운동에 불씨를 제공했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건국될 당시 임시정부에 들어가 활동했고 일본고위층의 초대를 받았음에도 도쿄에가 그들과의 회담에서 조선독립을 역설함으로써 일본에서 유학하는 조선 유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920년대에는 독립군 창설을 위해 노병회를 만드는데도 기여했고 조선독립을 역설하기 위해 모스크바로가 레닌과 트로츠키를 만나기도 했었다. 뿐만 아니라 몽양 여운형은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을 최초로 우리말로 번역했다. 중국혁명에도 관여했던 여운형은 손문, 장개석, 모택동과도 교우했고 베트남의 독립영웅 호치민과 만나 협력하기도 했다. 여운형은 동남아시아와 필리핀에서도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1920년대 중국에서 거주하면서 몽양 여운형은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노력했고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연결망이 되기도 했다. 1929년 체포되어 국내에 압송됐고 3년간 감옥생활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몽양 여운형은 쾌활함을 버리지 않고 주변 죄수들과 간수들까지 감동시키게 만들기도 했다. 1933년 석방된 여운형은 조선중앙일보 사장에 취임 했고 스포츠 관련쪽으로도 많은 투자와 정성을 아끼지 않았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나가게된 손기정 선수도 가지전 몽양을 만나 조언을 들었고 손기정 선수가 우승하자 몽양 여운형의 조선중앙일보는 가장 먼저 일장기를 지워 보도했다. 그 결과 조선중앙일보는 폐간되었다.

1937년 중일 전쟁이 일어나자 여운형은 일본의 패망을 예상했다. 1940년 일본정부과 중국과의 협상을 위해 여운형에게 부탁했지만 단번에 거절했다. 1941년 진주만 기습공격 이후 1942년에 있던 미국의 두리틀 공습을 목격한 여운형은 일제 패망을 확신하고 주변사람들에게 얘기했다. "허위사실 유포죄"로 일본 형무소에서 1년간 감옥생활을 했다.

석방된 여운형은 1944년 국내에서 건국동맹 농민동맹을 조직하여 일제의 패망을 대비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계획했던 국내진공작전에도 가담하고자 했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하기 전 여운형은 조선총독부 엔도 총감과 만나 회담한 뒤 일본의 항복 한 이후 자신의 만들어 놓은 조직인 건국동맹을 건국준비위원회로 발전 시켜 국내치안을 담당했다. 미국과 소련이 들어온 한반도는 분단의 위기에 놓였음에도 여운형은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했다.

1946년 모스크바 삼상회의 이후 찬탁과 반탁 싸움이 심해질 시기 여운형은 좌우합작 운동을 전개했다. 숱한 괴한들의 노골적인 테러와 위협에도 여운형은 통일정부수립을 위해 끝까지 노력했지만 좌우합작은 극좌 극우 양쪽에서 공격받았고 결국 1947년 7월 19일 혜화동 로터리에서 암살당한다.

이처럼 몽양 여운형은 일제시대에는 독립운동 해방 이후에는 좌우합작을 통한 남북통일정부수립을 위해 노력했다. 훌륭한 업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몽양은 우리역사에서 많이 잊혀졌다. 무엇보다 그의 라이벌이었던 이승만은 여운형의 업적을 감추려 했고
박정희 정권 시기에도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았다.
그리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여운형의 존재를 너무나도 모른다.

이 책은 2015년 박근혜 정권이 국정교과서를 추진할 당시 김삼웅 선생께서 쓰신 책이다. 안타깝게도 이 책이 출판되었던 시기에는 국정교과서를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보였고 국정교과서를 추진했던 교수 권희영은 여운형에 대해 "여운형과 같은 좌파가 주목 받아선 안된다."라고 하며 여운형을 역사속에서 감추려 했다.

여운형에 대해 개인적으로 공부하면서 느꼈던게 있다. 여운형이라는 인물과 그의 업적은 참으로 대단하지만 여운형이라는 인물을 일반인들이 이해하기에는 상당한 역사적 지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여운형을 주제로한 영화가 지금까지 만들어지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위대하지만 업적에 비해 잊혀진 몽양 여운형 이제는 역사속에서 재조명 받을 때가 왔다. 이 책은 여운형을 이해하는데 있어 읽어야할 필수서적이다. 여운형 관련 책들이 국내에 많이 있지만 대개는 너무학술적이거나 대개는 절판된 책들인 경우도 있다. 여운형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먼저 읽고 다른 여운형 서적을 읽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앞으로 여운형 선생이 일반인들에게 좀 더 알려지길 기대하고 한국 역사속에서 재조명 받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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