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에서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최초의 징후 중 일부는 민권운동으로부터 나왔다. 아마도 흑인들은 정부로부터 겪은 경험 때문에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다는 정부의 주장 전부를 불신하게 됐을 것이다. 1964년 8월 초에 린든 존슨이 통킹만 사건에 관해 국민들에게 말하면서 북베트남을 폭격한다고 발표하던 바로 그 날, 미시시피 주 필라델피아 인근에서는 흑인과 백인 활동가들이 그해 여름에 살해된 민권운동가 3명의 장례식을 치르고 있었다. 연사 한 명은 존슨이 아시아에서 무력을 사용한다고 따끔하게 지적하면서 이를 미시시피의 흑인들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비교했다.
1965년 중반 미시시피 주 매콤(McComb)에서는 이제 막 베트남에서 자기 학우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흑인 젊은이들이 전단을 배포했다.
“미시시피 주에서 모든 흑인이 자유롭게 되기 전에는 이곳 흑인들 중 누구도 백인들의 자유를 위해 베트남에 가서 싸워서는 안 된다.
이곳 미시시피의 흑인 소년들은 징병을 감사히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어머니들은 자기 아들이 전쟁에 나가지 않도록 용기를 북돋워 주어야 한다. 미국의 백인을 부자로 만들기 위해 산토도밍고(Santo Domingo)와 베트남에서 우리의 목숨을 걸고 다른 유색인을 죽이라고 요구할 권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
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마라가 미시시피 주를 방문 유명한 인종차별주의자인 상원의원 존 스테니스(John Stennis)를 “진정으로 위대한 인물”이라고 치켜세우자, 백인과 흑인 학생들은 “베트남에서 불타 죽은 어린이들을 기억하라”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행진을 벌였다.
학생비폭력조정위원회는 1966년 초에 “미국은 국제법을 위반하면서 침략정책을 추구하고 있다”고 선언하면서 베트남에서 철수하라고 요구했다. 그해 여름, 학생비폭력조정위원회의 성원 6명이 애틀란타의 병무청에 침입한 죄로 체포됐다. 그들은 유죄를 평결받고 몇 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같은 무렵, 학생비폭력조정위원회 활동가로 이제 갓 조지아 주 하원의원에 당선된 줄리언 본드(Julian Bond)는 전쟁과 징병에 공공연하게 반대하는 발언을 했고, 주 하원은 그의 발언이 선발징병법(Selective Service Act)을 위반하는 것이며 “주 하원에 대한 불신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 그의 의원직을 박탈했다. 대법원은 헌법 수정조항 1조에 의거해 본드에게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그의 의원직을 되찾아 줬다.
흑인 권투선수이자 헤비급 챔피언으로 미국의 위대한 운동선수 가운데 하나인 무하마드 알리는 이 전쟁이 “백인의 전쟁”이라면서 군 복무를 거부했다. 권투협회는 그의 챔피언 타이틀을 박탈했다. 마틴 루터 킹 2세는 1967년에 뉴욕의 리버사이드 교회(Riverside Church)에서 소리높이 외쳤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 미친 짓거리를 끝내야 합니다. 지금 당장 그만둬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자녀이자 고통받는 베트남 빈민들의 형제로서 말합니다. 국토가 불모지 상태가 되고 집들이 부서지고 문화가 파괴되고 있는 저 사람들을 대신해 저는 말합니다. 국내에서는 희망이 산산조각나고 베트남에서는 죽거나 타락해야 하는 이중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미국의 빈민들을 대신해 저는 말합니다. 우리가 취해 온 행로에 대해 아연실색해버린 세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저는 말합니다. 한 사람의 미국인으로서 저는 이 나라의 지도자들에게 말합니다. 이 전쟁의 주도권은 우리에게 있다고.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한 주도권은 분명코 우리에게 있다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