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적인 측면에서 19세기의 역사는 현재 미국이 죽을힘을 다해 끝까지 유지하고 또 세계적으로 지키려고 하고 있는 체제 자본주의(Capitalism)가 성장의 가동을 밟기 시작한 시점이다. 19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대량의 공장생산 체제에 돌입하면서 과거하고는 비교가 안 될 생산력을 보일 수 있었다물론 이러한 이면에는 노동자 계급에게 비인간적인 노동을 강요하고 아동착취여성의 중노동과 그로인한 유아사망을 급증시키기는 어두운 면이 아주 극명하게 존재했었다이러한 현실을 알게 된 철학자 카를 마르크스(Karl Marx)는 산업혁명을 통해 탄생한 자본주의 체제를 아예 타도해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생산력이 확장되자 자본주의 체제는 값싼 시장 확보와 궁극적으로 무절제한 이윤을 창출해내기 위해또 다른 것을 시도하는데 그것이 바로 식민지 확장이었다자본주의와 제국주의는 일란성 쌍둥이로써 그 궤를 같이하고 있다현재까지도 자본주의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이 신제국주의라는 형태로서2차 세계대전 이후 무수히 많은 나라들을 침략했고반인륜적인 전쟁범죄와 학살극을 벌였고 벌이고 있는 것처럼제국주의적 야욕을 유지하게 만드는 자본주의는 19세기 서구 제국주의 열강에게 그러한 욕심을 추구하게 만들었다.


1991년 미소냉전이 소비에트 연방 해체로 종결이 되면서 한국 운동권들은 대단히 충격에 휩싸였다이런 과정속에서 사회주의에서 극단적 극우주의로 사상을 전향하는 사례가 있었는데현재 반일 종족주의와 더불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망언을 일삼고 있는 이영훈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었다이영훈은 2000년 저서 하나를 출간했는데바로 한국 시장 경제와 민주주의의 역사적 특질이라는 책이다이영훈은 그 책에서 이른바 ‘19세기 위기론이라는 것을 주장했는데주장을 짧게 요약하자면 “19세기 위기론은 내부적 동력에 의한 근대 이행의 가능성이 전혀 없었고외세의 작용이 없었더라도 조선왕조는 자멸해 나가는 위기 상황에 봉착해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영훈에 따르면 19세기 위기론에 따라서 우리 역사는 필연적으로 일제 식민지 지배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로 귀결된다즉 19세기 조선이 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아 자본주의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이런 식으로 일본의 식민지배를 합리화하고 미화하기 위한 수단 내지는 목적으로 이용된 논리가 바로 19세기 위기론이다이영훈 교수는 19세기 위기론을 합리화하기 위해 드는 근거가 있다그것은 바로 19세기 논농사 생산성의 감소산림 황폐화가뭄과 흉년을 포함한 잦은 자연재해 그리고 18세기부터 따른 인구감소 등이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가장 큰 치명적인 실수가 있다이러한 일련의 논리적 구조가 결과적으로 일본 제국주의와 그리고 제국주의의 일란성 쌍둥이인 자본주의에 대한 맹신적인 옹호로 간다는 점이다이영훈이 제시한 구체적인 자료와 통계 그리고 근거 등은 차명수 교수가 반박 연구를 발표하면서 그 진실이 드러났다심지어 같은 자본주의적 시각에서 말이다우선 이영훈 18~19세기 조선의 조선왕조의 쇠퇴와 혼란했던 시기로 인해 인구 파악 능력이 약화되었을 것을 간과했다또한 18~19세기 조선의 인구가 연평균 0.62%의 속도로 증가하고, 19세기에 0.83%로 증가했던 사실도 무시했다생산성 하락의 문제도 총 생산량이 아닌 두락당 지대 수취량을 취사선택 한 것이었다즉 이영훈 교수의 연구는 이러한 일련의 문제점이 드러난 것이다.


여기서 식민사학에 대한 대응으로서 나온 자본주의 맹아론이 옳은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나의 대답은 물론 아니다자본주의 맹아론은 이른바 식민사학에 대한 반대급부의 이론 그 자체로는 의미가 있을지언정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영훈 교수가 맹신하는 그 자본주의의 논리로써조선 사회를 해석하고자본주의 그 자체를 옹호하는 논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그리고 여기에는 조선이 서구에 비해 후진적이었음을 인정하는 함정즉 서구중심적이고 근대중심적인 한계도 존재한다.


다시 이영훈의 ‘19세기 위기론으로 주제를 돌리겠다무엇보다 이영훈 교수의 ‘19세기 위기론의 문제점은 바로 그가 천박한 자본주의 논리와 제국주의 논리를 합리화 한다는 사실에 있다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이영훈이 맹신적으로 추종하는 이런 자본주의와 식민주의는 결과적으로 19세기 유럽의 제국주의적 논리와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다이러한 관점들은 결국 19세기 서구 제국주의가 타국을 식민지배하기 위해 내세웠던 논리 구조를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이다실제로 영국과 프랑스 같은 나라들이 타국을 식민 지배할 때 내세운 논리와 아주 같다예를 들면 영국의 경우 서남아시아의 강국이었던 인도를 식민지배할 때이러한 논리를 내세웠고프랑스가 인도차이나를 포함한 여러 식민지들의 지배를 합리화 할 때 내세웠던 논리가 이러했다.


이러한 지배논리에 대한 비판을 이영훈의 ‘19세기 위기론에선 단 하나도 찾을 수 없다결과적으로 이러한 문제점은 이영훈 교수의 친제국주의적 그리고 자본주의적 관점에 있고크게 보면 친서방 그리고 친미 친일적인 제국주의 관에 있다고 할 수 있다따라서 ‘19세기 위기론이라는 것은 이러한 기만과 위선 속에서 만들어진 제국주의적 논리다이영훈 교수의 친제국주의적인 ‘19세기 위기설과 이런 식민사학에 맞대응하기 위해 나온 자본주의 맹아론 둘 다 비판적으로 해석해야 한다이에 따라 역사를 유물론적이고 과학적으로 해석하는 마르크스주의적 역사관이 필요한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