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은 연합국의 승리로 끝났다. 2차 세계대전 말기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같은 일본 본토 상륙작전을 준비했던 미국은 일본이 항복하자 일본 본토에 군대를 주둔하게 되었다. 즉 일본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 것이다. 태평양 전쟁 당시 장군이었던 더글라스 맥아더가 지휘하는 총사령부(GHQ)가 발족되었다. 미국의 일본 점령은 직접적인 군정 통치가 아닌, 기존 일본 정부의 행정기구를 활용하는 간접 통치 형태를 보였다.

 

더글라스 맥아더 휘하의 연합국 총사령부는 19459월 이래 강도 높은 전후 개혁을 추진했다. 우선적으로 군수 생산의 전면 중지, 일본 제국의 육해군 해체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 체포 등과 같은 군사적 무장해제 조치가 단행되었다. 이리하여 시데하라 내각이 성립했는데, 이 내각은 5대 개혁지령을 실행하여, 인간선언, 공직추방, 전쟁포기에 관한 기초적 발안을 만들었고, 극동국제군사재판소를 설치하기도 했다.

 

당시 맥아더는 일본 주둔 GHQ의 총책임자로써 개혁구상이 있었는데, 일본의 정치 행정적 개조, 비군사화, 경제적 비무장화, 배상 방침, 재정금융 방침 등이 그의 개혁구상이었다. 헌법의 자유주의화를 추진했고, 부인참정권을 부여했으며, 심지어 노동조합 결정을 장려했다. 일본 제국 시기 있던 비밀경찰과 치안유지법, 특고경찰 등을 폐지했고, 정치범들을 석방했으며, 교육제도도 개혁했다. 또한 일본 내의 정당 결성도 촉진 시켜 1948년엔 사회당 내각이 성립하도록 만들기도 했었다. 즉 맥아더는 이런 간접통치를 통해서 제국주의 일본은 소위 자유민주주의 일본으로 바꾸고 싶어 했던 것이다.

 

특히나 맥아더가 철두철미한 반공주의자라는 사실을 감안했을 때, 그가 단행한 전후개혁에서 노동조합을 장려한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물론 그는 철저한 반공주의자이긴 했지만, 그가 보기에도 당시 일본은 굉장히 군국적이었기에, 그러한 군국주의적인 요소를 희석시키기 위해 노동조합을 장려했다. 그러나 전후 초기 GHQ가 했던 개혁은 이런 문제점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우선적으로 맥아더측에서 했던 개혁이 간접통치에 기반한 것이었기에 전쟁전의 관료제가 되살아나게 되었고,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일본의 전범들과 마찬가지로 적잖은 책임이 있는 히로히토 천황을 절대로 처벌하지 않았다. 또한 극동군사재판도 독일에서 실행되던 뉘른베르크 재판과는 달리 많은 전범들이 풀려나고 사면받기도 했다. 특히나 731 부대를 창설하여 온갖 반인륜적 악행을 저질렀던 총 책임자 이시이 시로같은 이들이 처벌받지 않았다. 그래도 확실한건 천황제를 폐지하지 않고 처벌하지 않았지만, 최소한 그가 신이 아닌 인간이라는 믿음을 일본사람들에게 주었다는 것은 나름 긍정적인 의의가 있다.

 

더 나아가 1947년 일본에서 지방자치법이 공포되었다. 그리고 같은 시기 경찰법과 민법개정이 이루어졌다. 그 시기 일본에선 경제 민주화를 위한 움직임으로 재벌 해체와 독점 금지 심지어 농지 개혁과 노동 개혁까지 시행되었다. 어떤 면에선 자유주의적이지 못하고 일정부분 사회주의적인 요소가 들어간 이 조치는 어디까지나 군국주의의 영구 배제를 위한 경제의 비군사화가 맥아더와 미국의 점령정책 목표였다. 1947년에 제정된 교육 기본법은 군국주의 교육을 부정하고 민주주의 이념과 기회균등의 교육을 표방했다.

 

그러나 이런 개혁도 미소냉전이 격화되면서 점차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다. 특히나 1949년 스탈린의 핵개발과 마오쩌둥이 이끄는 중국 공산당의 통일은 맥아더와 미국으로 하여금 일본을 반공진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1950년 한반도에서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전후 개혁 초기에 보였던 조치들은 완벽히 수포가 되게 되었고, 맥아더는 일본은 미제 무기를 생산하는 전쟁기지로 탈바꿈시켰다. 그리고 일본 공산당과 같은 진보 정당들을 탄압하게 되었고, 일본 자위대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국가경찰 예비대를 창설했다. 이는 확연히 전후 초기에 했던 것과는 다른 조치였다. 특히나 1952년 미국과 일본이 맺은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으로 인하여 일본은 전후 초기 일본의 모습을 벗어 던졌고, 한국전쟁이 격화되면서 일본은 전후복구와 더불어 급속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했으며, 1954년에는 자위대를 창설하여 적잖은 군대까지 보유하게 된다.

 

일본의 전후 개혁에 대해 다시 정리하자면 전후 초기에는 소위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겠다던 맥아더와 미국의 바람에 따라 탈군국주의화에 기반한 개혁들이 진행되었다면, 1949년 냉전이 격화되고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어떻게 보자면 정치 체제만 소위 다당제 민주주의를 유지한 과거의 일본으로 흘러갔다. 이는 미소 냉전이라는 혼란과 긴장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동아시아적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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