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이후 만주에 있던 소련군은 대규모의 진공 작전을 전개했다. 몇 개월 전부터 전쟁준비를 마친 소련군은 곳곳에서 명실상부 일본군 주력부대나 다름없던 관동군을 손쉽게 궤멸시켰고, 만주와 중국 일부, 몽골, 남사할린, 쿠릴열도 그리고 한반도 북부까지 진격했다. 이러한 진격은 작전을 개시한지 불과 10일도 안 되는 사이에 전개됐다. 당시 만주에서 군사작전을 지휘한 인물이 있었다. 그가 바로 알렉산드르 바실렙스키다.
알렉산드르 바실렙스키는 1895년 9월 30일 러시아 볼가 강 유역에 있는 이바노프 주 노바야골리티하에서 성직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성당 성가대의 지휘자로, 나중에 러시아정교회 신부로 임명되었을 정도로 신앙심이 깊은 인물이었다. 수입이 좋지 않았던 바실렙스키의 가족은 어려서부터 형제들과 농장에서 일해야 했고, 바실렙스키도 마찬가지였다. 1909년 여름 신학교를 졸업한 바실렙스키는 아버지의 말에 따라 또다른 신학교에 입학했다. 이 시기 그는 학생운동과 자본가의 착취에 반대하는 파업 시위 같은 각종 활동에 참가했고, 이런 경험은 바실렙스키에게 큰 변화를 주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그는 군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1915년 2월 모스크바로 가서 훗날 프룬제 군사 아카데미로 이름이 바뀌는 알렉세예비치 군사 학교에 들어간다. 거기서 4개월 동안 속성 훈련을 받았고, 졸업 후 곧바도 예비군에 배치되어 준위 계급장들 달았다. 1916년 그는 전선에 투입되어 오스트리아-헝가리 연합군과 전투를 치렀고, 러시아 제국 군대가 연이어 패배하면서 후퇴를 거듭했다. 그러던 1917년 11월 10월 혁명과 부대 안에 있던 볼셰비키 세력의 영향을 받은 바실렙스키는 계급장을 내놓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1919년 4월 적백내전이 격화되자 징집되어 붉은 군대의 군관에 임명되었다. 이렇게 하여 소련 붉은 군대와 그의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붉은 군대에 들어가게 된 바실렙스키는 이른바 소련-폴란드 전쟁에서 전투를 치렀고, 부대내에서 활약한 공로를 인정받아 군단장, 참모 등을 거쳐 소장자리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바실렙스키는 군인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1939년 소련의 침공으로 시작된 소련-핀란드 전쟁 즉 겨울전쟁에서 총참모부의 작전부 부부장 신분으로 겨울전쟁 작전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겨울전쟁 이후 바실렙스키는 히틀러와 독일이 가장 위험한 적이 될 가능성을 염두해두고 있었는데, 그의 예상은 1941년에 실현되었다.
1941년 6월 22일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 바실렙스키는 작전부장과 참모부총장에 임명된다. 그해 10월 초 그는 모스코프스키 지역으로 가서 후퇴한 부대를 모아 방어 전선을 구축하기도 했다. 모스크바 공방전 당시 작전 참모팀의 책임자였던 그는 뛰어난 성과를 올려 중장으로 승진하기에 이른다. 1942년 5월 소련 참모총장이 된 바실렙스키는 전쟁 중에 나타난 여러 가지 문제를 구체적으로 해결하는 데 힘썼고, 스탈린그라드 전투에도 참가하여 1943년 2월 2일 독일군 수십만 명을 포위하기도 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 이후 바실렙스키는 각 부대의 지휘관들과 함께 돈바스 전투, 쿠르스크 전투, 크림 전투 그리고 벨라루스 전투 등을 지휘햇다.
벨라루스 전투는 소련이 겪은 전투 가운데 가장 규모가 컸으며, 준비 과정에서 이른바 바그라티온이라는 명칭을 가진 바그라티온 작전 계획을 세웠다. 이 작전을 통해 소련군은 군사 본부가 더욱 효과적으로 각 부대를 제어할 수 있게 하고, 새로 편성된 부대의 사령관을 맡을 인재오 추천했다. 이 작전이 성공함에 따라 벨라루스 전체가 독일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1945년 4월 바실렙스키는 극동 작전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으며, 그해 7월엔 소련 극동군 총사령관에 임명되었다. 그해 8월에 있던 작전에서 바실렙스키는 150만 명 이상의 소련군을 지휘하여 만주에 있던 일본 관동군을 궤멸시키기에 이른다. 결국 일본은 1945년 8월 15일 소련의 만주 진격에 따라 전의를 잃고 항복을 하게 되었다.
전쟁 이후 바실렙스키는 참모총장, 국방부 제1부부장, 국방부 총감 등의 직위를 거쳤고 소련의 군사력을 강화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 이렇게 남은 여생을 보내던 바실렙스키는 1977년 2월 5일 사망하여, 소련군에서 세웠던 공로에 따라 모스크바 크렘린 벽 묘지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