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Netflix)에 있는 쿠바 리브레 스토리(Cuba Libre Story)’라는 다큐멘터리를 봤다. 평소에 쿠바에 대해 관심이 많은 필자로썬 참으로 반가운 다큐멘터리였고, 바쁜 와중에도 이 다큐멘터리를 챙겨봤다. 다큐멘터리는 쿠바 역사의 시작부터 오바마 정부 시기까지의 쿠바 역사를 다뤘고, 8부작으로 구성됐다. 8부작 안에는 수백 년간의 스페인 식민지 지배와 수십 년간의 미국의 식민 지배를 받아온 쿠바의 역동적인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식민지 지배에 맞서 자유와 독립 행복을 찾아나서는 쿠바의 역사는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 매우 가까이 있는 쿠바는 수백 년간의 스페인 식민지 지배와 50~60년간의 미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나라다. 1492년 인도와 향신료를 찾기 위해 쿠바를 방문한 콜럼버스는 그 지역 원주민들을 노예로 만들었다. 이게 바로 수백 년간 이어질 스페인 지배의 시작이었다. 스페인의 식민지 지배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이 죽어나갔다. 1898년에 일어난 미서전쟁(American Spanish War)은 사실상 미국과 스페인 이 두 제국주의 국가 간에 일어난 식민지 쟁탈전이었고, 전쟁의 승자가 된 미국은 쿠바에게 독립을 약속했다.

 

그러나 미국이 부여한 독립은 또 다른 식민지배의 시작이었다. 미국의 기업들은 쿠바를 경제적으로 잠식해 나갔고, 쿠바를 사실상 자신들의 식민지로 만들었다. 쿠바에 대한 미국의 식민지배는 냉전시기에도 계속됐다. 그러던 1959년 이런 미국의 지배에 결정타를 날린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게 바로 피델 카스트로와 체게바라가 주도한 쿠바 혁명이었다. 이들은 1956년부터 1959년까지 대략 3년간 쿠바의 정글속에서 게릴라전을 벌여왔고, 1959년 수도 아바나에 입성함으로써 혁명을 성공시켰다.

  

쿠바 혁명이 성공한 이후, 정권을 잡게 된 피델 카스트로는 쿠바에 있는 미국 기업과 마피아들의 생산수단을 국유화 하여, 쿠바 인민들을 위한 여러 조치를 실행했다. 당연히 미국 정부는 카스트로 정권의 이런 조치에 경제제재를 걸었고, 쿠바와의 수교를 끊어버렸다. 이렇게 해서 쿠바는 수십 년간 미국과 적대적인 관계에 놓여 있게 되었던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 다큐멘터리는 쿠바의 총체적인 역사를 다루고 있다. 다큐멘터리는 쿠바 망명자와 같은 우익 성향의 인물들을 인터뷰하기도 했지만, 쿠바 혁명에 참가했던 혁명 세대들까지 인터뷰했다.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는 어떤 면에선 우익적인 시각을 강조하기도 한다. 예를들면 쿠바의 카스트로가 우상화를 했다던 지 혹은 독재와 사치를 부렸다는 얘기를 강조하는데, 솔직히 사치나 호화스러운 생활 문제라면 쿠바 위에 있는 나라 미국 정치인들이 더하면 더했지 절대로 들 하지 않았다. 솔직히 이런 시각은 필자에게 약간의 불편함을 줬다.

 

이런 약간의 오류 내지는 우익적 관점을 배제하면 이 다큐멘터리는 정말 잘만든 다큐멘터리라 할 수 있다. 물론 위에서 상술한 문제가 있지만, 쿠바의 무상의료나 그외의 사회주의적 성과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다큐멘터리는 쿠바가 사회주의 국가의 보루로서 서 있다는 사실도 얘기하고 있다. 그리고 쿠바 혁명에 참가하거나 쿠바를 지켜왔던 이들의 인터뷰를 통해 쿠바 사회주의가 아직도 건재하다는 사실을 알려주기도 한다. 따라서 필자는 이 다큐멘터리를 대체로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1959년 쿠바 혁명 성공은 미국에게 있어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혁명 이전의 바티스타 정권은 말 그대로 이승만이나 응오딘지엠,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마르코스, 수하르토처럼 미국에게 충성을 다하는 인물이었다. 따라서 미국에게 있어 쿠바는 자신들을 가장 잘 따르는 구가 중 하나였다. 그러나 카스트로와 체게바라가 주도한 혁명이 성공하면서 모든게 바꼈다. 더 이상 쿠바는 미국에게 경제적으로 복종하지 않았고, 사회주의적인 변화를 통해 이에 저항했다. 그러자 미국은 혁명정권이 된 쿠바를 전복시키고자 여러가지 교활한 수법을 사용한다.

 

1961년 미국의 존F케네디 정권은 1500명으로 구성된 쿠바 망명자들을 상륙시켜 침공을 가했다. 이게 바로 피그스만 침공이었다. 피그스만 침공은 실패로 끝났다. 피그스만 침공 이후 미국은 쿠바 정권을 군사적으로 전복시키기 위해 대규모 군사작전을 바탕으로 한 쿠바 상륙훈련을 전개했다. 즉 카스트로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미국은 군사적으로 준비했던 것이다. 결국 쿠바에게 있어 선택지는 하나였다. 당시 미국과 체제 경쟁중이던 소련과의 관계를 넓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피델 카스트로는 소련의 흐루쇼프 서기장으로 부터 대규모 군사원조와 경제원조를 받았고, 1962년에는 미국 영토 코앞에 핵미사일을 배치했다.

 

사실 소련과 쿠바가 미국 앞에 핵미사일을 배치한 것은 미국이 소련 국경 근처인 터키에 핵미사일을 배치하여 수도 모스크바까지 날릴 수 있는 거리를 확보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소련도 쿠바에 핵미사일을 설치했던 것이다. 결국 이렇게 빚어진 쿠바 미사일 위기는 소련이 미국에게 굴복하게 됨에 따라 일단락되었다. 사실 카스트로는 소련과 미국이 자기들끼리 협의한 것에 매우 분노했지만, 소련의 흐루쇼프가 그를 달래는데 각고한 노력을 했다. 그는 카스트로를 소련에 초대하여 전국적으로 돌아다니게 했고, 소련에서 최고 훈장이기도 한 레닌 훈장을 수여함과 동시에 영웅으로서 아주 극진한 대접을 해줬다. 뿐만 아니라 쿠바에 대한 경제적인 지원도 늘려 쿠바가 사회주의 국가의 한 보루로서 설 수 있게 도왔다.

 

이렇게 해서 쿠바는 미국의 탄압과 억압속에서도 사회주의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쿠바도 1991년 사회주의 국가 소련이 붕괴되면서 경제난이 왔었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등의 사회주의 정책을 포기하지 않았고, 현재까지도 버텨냈다. 또한 쿠바는 국제주의 원리에 따라 의사들을 보내 여러나라와 협력하고 그들을 지원했다. 대표적으로 우고 차베스의 베네수엘라에 대한 지원이 그러했다. 1970년대 쿠바는 앙골라 내전에 개입하여 혁명세력을 군사적으로 지원하기도 했다.

  

이처럼 쿠바는 사회주의 국가로서 자신들의 의무를 다했다. 쿠바 리브레 스토리를 통해 이런 역사를 보다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다큐멘터리에 나온 쿠바 혁명 참전용사의 한 인터뷰가 생각이 난다. 그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과거에도 가난한 사람의 편에 서서 싸웠습니다. 나는 그것이 정의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나는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설 것이고, 제국주의 압제에 맞설 것입니다.”

 

눈물이 나올 정도로 감동적인 발언이다. 이 발언에서 쿠바 인민들 대다수가 가난한 인민들과 약자의 편에 서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자유와 독립 그리고 행복을 찾아나서는 쿠바의 역동적인 역사에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쿠바 혁명을 성공시켜 그런 사회주의적 가치를 지켜온 피델 카스트로가 참으로 존경스럽다. 필자는 그렇게 살다가 2016년에 생을 마감한 그를 매우 존경한다. 대체로 반공주의적인 정서가 강한 한국에는 쿠바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았다. 아마 대다수 한국인이 생각하는 쿠바의 이미지란 낙후 내지는 가난일 것이다. 그러나 쿠바는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 지배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국가들이 이뤄내지 못한 가치와 인권을 이룩했다. 이게 바로 자본주의 국가들과 사회주의 쿠바의 차이다. 쿠바의 역동적인 역사를 알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이 다큐멘터리를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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