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기 초 칭기스칸은 자신의 나라 몽고를 세계 제국으로 만들었다. 칭기스칸의 몽고제국은 중국의 송나라를 무너뜨렸고, 러시아 일대에 킵차크 한국을 세웠으며, 폴란드까지 진격했고, 유라시아 일대와 이라크까지 영토를 확장했으며, 고려와 일본까지 침공하기 까지 햇었다. 이시기 몽고제국에 맞서 끈질긴 항전을 전개하여 침략을 막아낸 국가가 있었는데, 그 나라가 바로 베트남이다.


베트남 또한 몽골의 침입을 겪게 되었는데, 1252년 몽고군이 운남성의 대리국으로 진격하여 그곳을 점령하자 몽골과 베트남은 국경을 맞대게 되면서부터 갈등이 시작되었다. 1257년 몽고군은 홍 하 유역을 따라 남하하여 베트남을 침공했다. 베트남 국경 지대를 단숨에 돌파한 몽고군은 수도 하노이를 함락시켰다. 당시 몽고 군대가 들어오자 수도 하노이는 텅 비어 있었고, 베트남 측이 후퇴할 당시 모든 것들을 다 불태우고 떠나서 몽골측에서 얻을 것이 없었다. 거기다 베트남의 기후가 매우 더웠기 때문에 몽고군 내에서도 각종 질병으로 인하여 운남성으로 철수했다. 그 과정에서 몽고군의 침략에 대비했던 장군 쩐 흥 다오(Trần Hưng Đạo)는 철수하는 몽고군에게 대대적인 공격을 가했고, 1257년 12월 몽골 조정과 화약을 맺고 3년에 한번 입공할 것을 약속했다.


베트남이 다시 몽골 침입의 위협을 받게 된 것은 몽고가 남송을 멸망시켰던 1276년부터다. 1278녀에 재워한 년 똥과의 갈등을 겪게 된 원나라는 1280년대 초 참파(Champa)와 캄보디아를 공격했다. 당시 원나라는 참파에 원정군을 파견하면서 베트남에게 ‘길을 빌려 달라’는 것과 군량의 제공을 요구했지만 쩐 왕조는 그 요구를 거절했다. 1283년 원나라는 참파에 이르러 비자야를 함락시켰다. 하지만 참파측은 산으로 도피하여 게릴라전을 전개하면서 원나라 원정군을 고전하게 만들었고, 그런 상황은 쿠빌라이칸으로 하여금 쩐 왕조에게 “베트남 통과와 쩐 왕조 군대의 출병”을 요구하게 만들었다. 물론 베트남은 이에 거부했고, 현재 퀴논 지역에서 폭풍을 만나 원나라군의 해군이 큰 타격을 받자 베트남을 다시한번 침공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몽골의 제2차 베트남 원정이 시작되었다.


몽고는 제2차 원정에서 육로로 참파를 점령하고자 대략 50만 대군을 거느리고 광시 성을 출발하여 베트남의 록 쩌우(Loc Chau, 지금의 랑 썬 Lang Son)지역으로 진격하게 했다. 당시 쩐 왕조는 1257년 몽고의 1차 침입때 혁혁한 공을 세운 쩐 흥 다오를 국공으로 삼아 군대를 통솔하게 했다. 당시 베트남의 군대는 20만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들은 전국의 덕망있는 촌로들을 모아 설득에 나섰다. 그러나 전쟁 초기 쩐 흥 다오의 군대는 중과부적으로 몽고군에게 밀렸고, 1285년 초에는 탕롱이 함락되기도 했다.


그러나 쩐 왕조의 군대는 서울 탕 롱을 점령한 원군을 사방에서 공격하여 점령군을 수세로 몰아넣었고, 게릴라 전을 전개하여 몽고군을 고전하게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쩐 흥 다오는 많은 활약을 했다. 그는 항복하는게 어떻겠느냐는 년 똥의 물음에 최후까지 저항할 것을 권유하고, ‘격정사’를 써서 장수와 병사들에게 왕조의 위급함을 호소했다. 이런 쩐 흥 다오의 활약으로 사기를 높인 쩐 왕조의 군대는 여러 곳에서 원군을 격파하고 1285년 6월 다시 탕 롱을 탈환했다. 이렇게 하여 몽골의 제2차 침입도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베트남에서의 쓰라린 패배에 격노한 원의 쿠빌라이 칸은 당시 계획하고 있던 일본 원정을 포기하고 1287년 말에 다시 수륙 30만 대군과 500척의 함대를 이끌고 베트남을 침공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몽골의 마지막 침입이기도 한 제3차 베트남 원정이다. 쩐 흥 다오의 군대는 제1,2차 원정에서 그랬듯이 탕 롱에서 군대를 철수시켜 원나라군에 맞서 일종에 게릴라 전을 전개했고, 주민들은 몽고군이 먹을 식량을 놔두지 않았다. 거기다 원나라군의 군량 공급 선단이 오늘날 홍 가이(Hong Gai) 부근의 앞 바다에서 쩐 왕조의 군대에게 격파되었고, 배 300척이 침몰했다. 그리하여 쩐 흥 다오는 바익 당 강에서 후퇴하는 원의 수군을 맞아 일전을 벌였고, 3세기 반 전에 응오 꾸옌이 그랬듯이 강에 말뚝을 박고 만조 때 원의 전함을 유인했다가 간조때 공격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이리하여 몽골의 제3차 베트남 원정도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후 쿠빌라이칸은 이것에도 만족하지 못했기에 다시 한번 원정을 준비했지만 1294년 그가 사망하면서 4차 원정은 실행되지 않았다. 어쨌든 베트남은 30년간의 대몽고항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비록 몽고의 침략에 맞선 항쟁은 베트남 인민의 삶을 어렵게 만들었지만, 몽고의 침략을 무찌르고 승리한 경험은 베트남인들의 민족 자긍심을 한층 드높였다. 세계 제국 몽골을 한 번이 아닌 세 차례나 물리친 그들의 역사는 세계 역사에서 보더라도 전무후무한 사건이다. 베트남인들의 대몽항쟁사는 앞으로도 자랑스러운 승리의 역사로 길이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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