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일전쟁(Russo-Japanese War)

1868년 메이지 유신을 통해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서구식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제국주의적인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870년대부터 정한론과 같이 정복을 목적으로 하는 이론들이 등장했고, 1894년에는 청일전쟁에서 청나라를 꺾고 조선과 요동반도에 대륙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일본 입장에선 눈엣가시와도 같은 존재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차르 치하의 러시아 제국이었다.

당시 러시아 제국 또한 승승장구하며 만주와 조선에서 세력을 크게 확장하고자 했고, 1895년 을미사변 이후 조선의 고종황제가 아관파천하는 일이 생기자 이를 계기로 압록강 두만강 유역의 벌목권 등 많은 이권을 따냈으며, 따라서 일본과 러시아의 충돌은 불가피한 일이 되었다. 결국 일본의 메이지 정부는 1902년 영일동맹을 맺어 러시아의 남하 정책을 저지하려 했다. 또한, 러일양국은 조선과 만주의 권익에 대해 타협점을 찾지 못했고, 이는 결국 1904년 2월 8일 일본이 러시아를 선제공격하면서 전쟁으로 이어졌다. 그게 바로 러일전쟁이다.

러일전쟁 초기 일본군은 연전연승하면서 바다와 육지, 양쪽에서 러시아군을 계속 밀어 붙였다. 러일전쟁 초기 일본은 여순항을 함락시키고 만주 중심 도시인 봉천을 공격하여 1905년 3월 10일에 장악했다. 하지만 전투 과정에서 일본군의 피해는 극심했다. 가장 유명한 전투가 당시 있던 203고지 전투가 있는데, 이곳에서만 1만 명이 전사했고, 203고지는 시체로 산이 형성되었다.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확실하게 승기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지상전보단 해전이었다.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 제국은 발트해에 있던 발틱함대를 동원했는데, 일본의 동맹국인 영국과 프랑스는 러시아 발틱함대가 수에즈 운하를 통과치 못하게 했고, 결국 발틱함대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있는 희망봉을 지나 인도양과 태평양을 거쳐 일본으로 항해를 했고, 사실상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일본 해역에 도착했다. 결국, 러시아 발틱함대는 대마도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일본 함대와 교전했고, 대패했다. 그 해전이 바로 쓰시마 해전이다. 이를 통해서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러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자 러시아 제국은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중재안을 받아들여 1905년 포츠머스 강화조약을 맺혔다. 그 결과 일본은 한반도에서의 우월권과 랴오둥반도, 그리고 사할린 남부지방을 획득하고 극동에서 확실한 패권 국가로 등장했다. 결국, 일본은 1905년 을사늑약을 체결하여 조선에 대한 식민지화를 추진했고, 1910년 8월 29일 조선을 완벽히 합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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