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뒤 세계는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냉전체제가 들어섰다. 이러한 냉전의 대립은 좌우익간의 내전 형태로 표출되기도 했다. 이런 좌우익 대립은 어느 유럽의 한 국가에서도 나타났다. 그 나라가 바로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역사로 잘 알려진 그리스다.

 

2차세계대전이 한참이던 1941년 나치독일은 그리스를 점령했다. 나치독일이 그리스를 점령하자, 이에 반발한 그리스인들은 나치독일에 대항하기 위해 그리스 인민해방전선을 창설했다. 이들은 민중의 지지를 받는 데 성공했고, 나치독일에 맞서 게릴라 투쟁을 전개했다. 2차세계대전이 끝나가던 1944년 8월 그리스는 나치로부터 해방됐다. 당시 동유럽 전역에서 진격해오던 소련군을 막기 위해 대다수의 독일군 병력들이 철수했고, 그해 10월 그리스에는 영국군이 상륙했다. 영국군은 수도 아테네에 입성했다. 당시 그리스는 영국군을 해방군으로 보지 않았다.

 

나치독일이 떠난 이후 그리스에는 연합정부가 세워졌지만, 영국은 군사개입을 통해 대중적인 민족해방전선을 제지했다. 거기다 그 연합정부는 우익 군주독재국가의 형태를 뗬다. 따라서 반체제인사들이 투옥되고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제거되자 체제에 반대하는 사회주의 계열의 민족해방 운동이 성장했고, 이는 충돌로 이어졌다. 이게 1차내전의 시작이었다.

 

사회주의자들은 수도 아테네와 제2의 도시 테살로니키를 제외한 그리스 전지역을 장악했지만, 영국과 우익독재세력들은 이를 진압했다. 그리고 1945년 2월 얄타회담 시기 그리스 사회주의자들은 자신들의 패배를 인정했고, 군대를 해산시켰다. 1946년 3월 총선이 치러졌고, 아주 간신히 국왕파가 승리했다. 이는 다시 좌우갈등으로 번졌고 결국 내전이 일어났다.

 

1946년 사회주의 세력은 게릴라전을 다시 재개했다. 1946년 후반이 되자 사회주의자들은 인구 700만의 나라에서 17000명 이상의 군대를 모았고, 5만 명 이상의 지지자와, 약 25만 명의 동조자를 끌어 모았다. 당시 사회주의 세력의 봉기에 대처하기 힘들었던 영국은 그리스 내전에 미국을 끌어들였고, 미국은 그리스 내전에 개입한다.

 

1947년에 전투는 더욱 격렬해져 그리스 국군과 우익세력들은 북 이필로스, 그리스령 마케도니아와 텟살리아에서 대규모의 습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내전에 개입한 미국은 1947년의 마지막 5개월 동안 아테네 우익 정부에 대포와 급강하 폭격기, 네이팜탄 등이 포함된 7만 4000톤의 군사 장비를 보내줬다. 미국의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이 이끄는 250명의 장교단이 전투 현장에서 그리스 군대를 조언해주며 도왔다. 밴 플리트는 게릴라들을 고립시키고 그들의 지지기반을 제거하기 위해 농촌 지역의 그리스인 수천 명을 강제로 소개하는 정책에 착수했고, 이는 게릴라들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다.

 

그런 미국의 지원을 받은 그리스 국군은 1948년 작전지역을 펠로폰네소스 반도, 아티카까지 확대했다. 그 과정에서 그리스 국군은 마을들을 초토화시키는 작전을 벌였고, 수많은 난민들이 발생했다. 결국 그리스 내전은 미국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은 우익독재 세력이 승리했고, 1949년 사회주의 계열 게릴라들은 괴멸됐다. 이후 그리스는 미국 기업들의 자본이 밀려들어왔고, 1974년 민주화가 되기 이전 까지 우익군사독재시기를 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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