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투섬 전투 (Battle of Attu)

2016년 윤동주를 다룬 영화 동주에서 윤동주의 정친 송몽규가 학생들을 모아놓고, 태평양 전쟁의 전황을 얘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에서 송몽규는 “1943년 5월 미군이 알류산 열도 아치 섬(에투 섬)을 점령하고 미군 잠수함 부대가 진격하고 있다.”고 언급한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 장면을 그냥 넘겼을 것이다. 영화의 그 장면을 자세히 보면 송몽규가 아치 섬을 언급하며 손으로 가리키고 있는 지도의 위치는 미국 알래스카 근처에 있는 어느 섬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전투이기 때문에 오늘은 에투 섬 전투에 대해 얘기해볼까 한다.

1941년 진주만 기습 공격 이후 일본은 태평양 일대의 섬들을 점령해나갔다. 일본의 팽창 야욕은 알래스카 일대까지 퍼졌다. 일본이 알래스카 령의 에투 섬을 점령한 것은 1942년 6월이었다. 이 섬을 점령한 일본군은 이 지역에 거주하던 알류트인 42명을 훗카이도로 강제 이주 시켰다. 일본군이 이리 쉽게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은 이곳에 주둔하는 미군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본군이 이 섬을 점령한 것은 아무래도 미국의 알래스카를 압박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1942년 6월 미드웨이 해전과 1943년 2월 과다카날 전투에서 대패한 일본군은 태평양 전선에서 미군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1943년 5월 11일 태평양 전선에서 승기를 잡은 미군은 에투 섬에 상륙작전을 개시했다. 1943년 5월 21~22일에는 에투섬에 상륙한 미군을 격퇴시키기 위해 일본군 함대가 도쿄만에 모여 에투 섬 쪽으로 출발했지만, 너무 늦은 결정이었다. 1943년 5월 25일에는 에투 섬 수비대 대부분의 일본군 주력부대가 항복했다. 1943년 5월 29일 잔존부대를 이끌던 야마사키 대령은 부상병들에게 청산가리를 먹게하여 죽인 뒤 잔존병력 140명에게 반자이 돌격(덴노 헤이카 반자이 하며 착검한 총을 들고 돌격하는 자살 공격)을 명령했고, 나머지 140명은 미군을 향해 반자이 돌격을 하다가 전멸당했다. 그리고 하루 뒤인 1943년 5월 30일 에투 섬 전투는 끝이났다.

19일간 지속되었던 에투 섬 전투에서 미군 550명이 전사하고 일본군 2350명이 전사했다. 이로써 일본군은 알래스카에서도 물러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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