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자이너 문화사 - 교양과 문화로 읽는 여성 성기의 모든 것
옐토 드렌스 지음, 김명남 옮김 / 동아시아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전 방통위 소속 박경신 심사위원이 자기 블로그에 음란물을 게재해서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었다. 투철하신 방통위 심사위원들은 박경신 의원의 블로그에 올라온 음란물에 철퇴를 가했으며, 아주 친절하신 기자들은 음란물에 손수 모자이크까지 해주시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다. 그 덕에 사람들은 도대체 그 음란물이 무엇인가 궁금해 마지 않았고, 그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많은 네티즌들은 박경신 심사위원의 블로그를 뻔질나게 드나들며 문제의 작품을 찾기 위해 발품을 팔았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치부하던 중에 자주 놀러가던 C님의 서재에서(이분이 누군지 아는 분은 다 안다. 그렇지만 잘 모르는 분들은 궁금증이 폭발해서 아마 C로 시작하는 분들의 서재를 뒤지기 시작할 것이다. 기자들의 친절이 바로 이딴 식이다.) 이 사건에 대한 글을 보게 되었고, 문제의 음란물이 무엇인지 뒤지게 되었다.(물론 아주아주 순수한 마음!!!에서 그랬음을 강조한다. ㅎㅎ) 그렇게 5분을 뒤진 끝에 그 음란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 음란물은 바로바로 이것이다. 

 

  아주 아주 발칙하고 도발적인 이 음란물은 오르세 미술관에 걸려 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이다. 작품의 이름은 세계의 근원이다. 참 우스운 것은 박경신 심사위원 관련하여 음란물을 검색하면 돌아돌아 찾을 수 있지만 네이버 검색창에 "세계의 근원"이라는 검색어를 넣으면 사진과 함께 그 내용에 대한 자세한 설명까지 단박에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진중권씨의 말대로 이번 사건을 통하여서 방통위 심사위원들과 기자들의 무식이 아주 발랄하고 상큼하게 통통 튀는 것이 만천하에 공개된 것이다. 

  서평을 쓰면서 왜 뜬금없이 이 그림과 얽힌 사건을 이야기하느냐? 이 책이 말하고 싶은 것이 이 사건에 그대로 농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방통위 심사위원들과 기자들이 비록 이 그림에 대해서 잘 몰랐다지만, 이 그림이 표현하고 있는 대상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미성년자가 아닌 이상 너무 잘 알고 있을 것이고 그래서 음란물이라는 묘한 잣대로 이 그림을 평가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면서도 음란물이라 철퇴를 가하는 것은 이 그림의 대상 즉 여성의 성기를, 그리고 그 성기가 어떤 역할을 하는 지를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은 점잖지 못하다는 의식의 표현이 아닐까?  

  예전에 군대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어느날 인사 계통을 통하여 성교육이 잡혀있으니 인사과에 소속된 모든 간부들은 그 교육에 참석해야 한다는 명령이 하달된 적이 있다.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차를 타고 이동해서 교육 장소에 도착했다. 어쩔수 없이 참석한 교육이라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는데 강사가 묘한 것을 물어본다.  

  "여러분 남자의 성기를 뭐라고 부릅니까? 자유롭게 대답해 보세요." 

  순간 침묵이 흐른다. 당시 강사는 여성이었고, 교육 대상자는 남성과 여성이 골고루 섞여 있었다. 강사가 다시 한번 질문을 하자 원사급의 상사들(대개 나이가 40후반에서 50초반 정도 될 것이다) 사이에서 장난스럽게 대답이 나오기 시작한다. 혹 음란한 이야기라 오해하실 분들이 계시겠지만 당시 분위기를 위해서 그대로 기록해 본다. "자지요" "똘똘이요" "좆이요" 등등등... 나도 남자이지만 남자의 성기를 가리키는 말이 그렇게 많은 줄은 몰랐다. 다음으로 이 강사가 던진 질문이 무엇일까? 그렇다. 충분히 예상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자의 성기를 뭐라고 부릅니까?" 

  두번째 질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더 뻘쭘해지기 시작했다. 괜시리 옆에 앉아 있는 여군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 "이런 젠장. 왜 이딴걸 묻는 거지?" 아까보다 두 배는 되는 정적이 흐른다음에 이번에도 원사급의 상사분들에게서 대답이 나오기 시작했다. 역시 연륜은 무시못하나 보다. "보지요" "씹이요" "냄비요" "조개요" 등등등... 와우. 먼저 던진 질문보다 더 많은 대답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괜시리 내 얼굴이 빨개졌다. 대답이 마무리 된 다음에 강사가 던진 말을 아직까지 잊지 못한다. 

  "여러분 남자의 성기와 여자의 성기를 가리키는 말이 이렇게 많은데요, 그 중에 정식 명칭은 무엇일까요? 남자의 성기는 자지, 여자의 성기는 보지입니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이게 표준어입니다. 이 사실을 이상하게 생각하니까 우리의 성의식이 비뚤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다. 자지와 보지는 음란한 말이 아니라 남성의 성기와 여성의 성기를 가리키는 표준어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이 단어들을 음란하다 생각하면서, 입에 올리기를 터부시하는 것일까? 어쩔수 없이 가리켜야 하는 순간에도 자지와 보지라는 표준어가 아니라 거시기, 거기 등등 애매모호한 말을 사용하는 것일까? 아마도 이게 성에 대한 문화적인 터부의 영향이 아닐까? 특히 여성의 성기에 대해서 더 민감한 것은 이에 대한 더 많은 금기와 공포가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면서도 모순적이게 몇몇의 동성 친구들이 모이면 EDPS를 늘어놓으면서 낄낄대는 것이 남녀 상관없이 우리 모두의 모습이 아닌가? 이 책은 이러한 성에 대한, 특히 여성의 성기에 대해 문화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여성에 대한 문화적인 선입견이 여성에 대해, 그리고 남성에 대해 얼마나 끔찍한 테러를 자행했는지 알게 된다. 갖가지 질병들을 히스테리라는 정의하기 애매한 명칭하에 묶어 버리고, 치료법으로 클리토리스 절제와 자궁 절제를 내세우는 외과의들의 모습은 끔찍하기만 한다. 더 끔찍한 사실은 2차 대전까지 이러한 치료법이 유행하고 꽤 설득력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또한 현재 아프리카에서 행해지고 있는 여성 할례가 얼마나 비인간적인 것인지, 그리고 이러한 여성 할례가 청교도적인 금욕주의가 만연했던 18~19세기 미국에서도 행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여성에 대한, 더 정확하게 말하면 여성의 성기에 대한 테러가 우리가 알듯이 일부 몰지각한 이슬람권 또는 아프리카만의 특징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행해진 보편적인 현상이었다는 것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오늘날 성인 용품 가게에나 가야 살 수 있는 바이브레이터가 초창기에는 의료기계로 발명되었고, 보급되었다는 사실이다. 

  남성이 기록했지만, 흔히 기대하듯이 음란하거나 야릇하지 않다. 저자가 성과학자이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건조하게 설명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버자이어 문화사"라는 제목과 여성의 나체가 그려진 표지 디자인은 이 책을 공공의 장소에서 대 놓고 읽기 주저하게 만든다. 오죽하면 아내가 사무실에 있는 이 책 괜히 오해받지 말고 집에 가져다 놓으라고 하겠는가? 그렇지만 나는 당당하게 이 책을 들고 다니면서 봤다. 출근할 때, 가게에 갈 때, 우체국에 갈 때 아무런 거리낌 없이 들고 다녔다. 아마 몇몇 사람들은 나를 변태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 책을 들고 다니면서 읽는 것은 내게 있어서 잘못된 성문화에 대한 작은 반항이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원제는 "The original of the world"로 세계의 근원 정도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아마 저자는 쿠르베라는 발칙한 아저씨의 동명의 그림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쿠르베 아저씨가 누구냐? 바로 요 사람이다. 요 아저씨 때문에 많은 점잖으신 분들의 무식이 탄로 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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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1-08-26 1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 한 가지 빼먹은 것이 있는데, 홍상수 감독의 "낮과 밤" 포스터에는 이 그림이 크게 클로즈업 되어 있다. 그래서 일까? 홍상수 감독의 낮과 밤이 한때 금지어로 되어 있었다. 웃기는 짜장이다.

cyrus 2011-08-26 2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예전에 세인트님 저에게 이 책을 소개하셨을 때 한 번 읽어보려고 했는데
제가 주로 다니는 도서관에는 소장하고 있지 않더군요, 제가 애용하는 도서관이
총 4곳인데,, 없었어요 ^^;; 그래도 세인트님의 글 덕분에 조금이나마
책의 내용을 알 수 있었어요. 마지막 문장, 공감합니다. 검색 순위에 쿠르베와
세상의 근원이 오르는거 보면서 참으로 어이가 없었어요.
평소에도 이런 예술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

saint236 2011-08-27 11:24   좋아요 1 | URL
저도 고민하다가 대폭 할인하던 그 순간에 건졌습니다. ㅎㅎ.
이러다가 몬드리안의 작품도 창문 디자인이라고 착각할지도 모르겠네요.

마녀고양이 2011-08-27 1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SXE(잃어버린 자유, 춘화로 읽는 성의 역사)라는 대형 양장책을 가지고 있는데
이거 읽을 때 집에서 혼자 보느라 정말 고생했어요... 아하하. 제가
솔직하지 못 한건 틀림없지만, 역시 교육의 힘이 워낙 강력해서 아직도 쉽진 않더라구요.

이 책 흥미가 갑니다... 저도 장바구니로.

saint236 2011-08-27 11:24   좋아요 1 | URL
그렇죠 교육의 힘이란 정말로 무섭습니다.

yamoo 2011-08-28 0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쿠르베!

그나저나 군 시절 애피소드...많이 웃었네요^^

버자이너 문화사..이 책이 첨 나왔을 때 서평도서로 받은 적이 있어요. 다른 책 읽느라고 다른 분한테 패쓰 했는데...지금도 땅을 치고 후회합니다. 받았던 책이라 사지도 못하고...도서관에서 빌려보려고 합니다...

saint236 2011-08-28 13:01   좋아요 1 | URL
이런 양서를 패스하시다니...차라리 저한테 패스해주시지...
 

  기사를 검색하다가 아주 아주 황당한 기사를 봤다. 한국의 관광 현 주소를 밝힌다는 기획 기사인데 한참 읽다가 빵 터졌다. 머니 투데이 기사는 다음과 같다. 

http://media.daum.net/culture/view.html?cateid=1003&newsid=20110812115024717&p=moneytoday 

  한국 갈 곳은 명동 쇼핑 센터 뿐이다. 맞는 말이다. 한국에서 외국인들이 주로 찾는 곳은 명동과 동대문 같은 쇼핑 밀집 지역이다. 그런데 그것이 말이 안통해서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외국 사람들이 한국에 여행와서 갈 곳이 쇼핑 센터 뿐인 경우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한국의 위상이 딱 그 정도라는 것이다. 아시아의 쇼핑센터! 홍통이나 싱가폴과 비슷한 위상이라면 얼추 들어맞지 않을까? 외국 사람들이 한국에, 특히 아시아권 사람들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기대하는 것이 딱 그 정도라는 것이다. 중국이나 일본 사람들이 한국에 오는 이유가 무엇일까? 한국의 문화를 체험하고 견문을 넓히기 위해서. 개도 안 물어갈 소리다. 그 사람들이 한국에 들어오는 이유는 짧은 시간(예를 들어 주말을 이용한 1박 2일)에 쉽게 입국해서 싸게 맛있는 음식 먹고, 싸게 쇼핑을 즐기다가 가려는 이유이다. 설마 일본 사람들이, 중국 사람들이 지리산 둘레길, 제주도 올레길을 걷기 위해서 들어온다고 생각한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물론 저축은행 국조특위에서 선심성 포퓰리즘 정책이나 혹은 국민 성금 운운하는 양반들이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둘째 아시아권이 아니라 서구권의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명동이나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이유는 관광 콘텐츠의 빈약과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김치와 비빔밥, 불고기가 알려진 계기가 무엇인가? 거액의 돈을 들여서 홍보한 결과가 아니던가? 그 외에 무엇을 더 홍보했는지 모르겠다. UN에 세계문화재로 등재하면 자연스럽게 알려지는 것인가? 거기다가 교통 도로 표지판은 어떠한가? 외국인은 고사하고 한국인도 알아보기 힘든 곳도 있지 않은가? 거기에다가 영어나 한문으로 된 표지판이 드문 것도 사실이다. 한국의 관광 산업을 육성할 목적이라면 국가나 지자체에서 감당해야 할 몫이 아닌가? 

  국가가 해야 할 몫을 소홀히 하면서 의사 소통이 안되서 외국인이 한국에 오지 않는다는 말은 책임회피일 뿐이다. 관광 산업을 위해서 한국인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해야 한단 발상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지? 댓글 하나 옮겨본다. 

골수 올드 보수파들 진짜 문제다
몇년전에 영어를 공용어로 추진하고자할때
쌍수들고 반대했지..

몇만년이 흘러도 영어는 세계공통어가 될것이다.
세계공통어가 통하지 않는나라.
세계공통어를 하지 못하는나라.
뻔한결과 아닌가?

필리핀? 전체적인 소득수준은 우리보다 낮을지 모르지만
관광수입은 우리나라 몇배로 높다.
이게바로 부가가치가 높은 국가 인프라다.
  

  도대체 이게 무슨 회괴망측한 발상인지.. 외국어를 공부하라. 모르는 루저들이 쓸데 없는 발상한다는 식의 지나친 친절 주의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왜 영어만 하고, 일본어만 해야 하는가? 중국어도 하고, 말레이시아어도 하고, 따갈로그어도 하고, 아프리카 말도 해야 하지 않은가? 그게 국가 경쟁력 강화의 길이지 않은가? 왜 굳이 영어와 일본어만 해야 하는가? 웃기지도 않는 발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예전에 프랑스를 다녀온 지인이 그런 말을 했다. 영어 다 알아 듣는데 영어로 물어보면 일부러 답 안한다고. 프랑스어로 뜨문뜨문 물어보면 그제서야 친절하게 답해 준다고. 외국 사람들이 한국말을 배워서 오면 안되는 것인가? 그 나라에 갈 때 간단한 말들, 혹은 간단한 에티켓을 익히고 가는 것이 여행자의 자세가 아닌가?  

  기자가 지적한 것이 영어와 일본어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외국인에 대한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등등 여러가지 옳은 것들을 지적하기도 하지만 종종 황당해서 말도 안나오는 부분들도 있다. 외국인들에게 특히 백인들에게 지나치게 친절한 것이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가 아닐까?  

  오늘도 5천만이 영어를 모국어처럼 하는 그 날까지 달리시는 많은 분들이 계시기에 한국말은 설 곳은 잃어가고 있다. 문득 울학교 이티에서 김수로가 했던 대사가 생각이 난다. 

  "이게 고등학교 영어야? 세종대왕이 노하시겠다. 노하시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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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깨닫게 되는 것들
리처드 J. 라이더 & 데이비드 A. 샤피로 지음, 김정홍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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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을 쓰기 전에 먼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왜 자기계발서들은 하나같이 비슷하냐는 것이다. 볼까 말까 고민하던 중에 50%세일에 혹해서 구매, 정독을 했지만 솔직하게 그렇게 큰 감동을 받지는 못했다. 만약 이 책만 읽었다면 큰 감동을 받고 인생의 깨달음을 얻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불과 한달 전에 읽은 "사막을 건너는 6가지 방법"이라는 책과 왜 그렇게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지. 세부적인 내용은 분명히 다르다. 저자도 다르다. 그렇지만 여행(하나는 사하라 사막, 다른 하나는 세렝게티 평원) 중에 깨달은 것을 여행에 빗대어 설명한다든지, 혹은 뻔한 이야기를 늘어 놓는지 한다는 것은 어떻게 그렇게 판에 박은 듯이 똑같은지 모르겠다. 차이가 있다면 이 책이 직업 혹은 할 일의 선택에 초점을 맞춘 것 정도일까? 이젠 한동안 자기계발서를 읽지 말아야 할 것 같다.(얼마나 지켜질지는 모르겠지만)

  조용기, 곽선희, 김홍도, 김국도, 김대중, 김영삼!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 앞에 4사람은 대형 교회 담임 목사요, 뒤의 두 사람은 전직 대통령이다. 6사람의 공통점을 나는 노욕이라고 본다. 조용기, 곽선희, 김홍도, 김국도 네 사람 모두 우리 나라의 내노라하는 대형 교회의 담임목사로 한국 개신교회의 양적인 성장에 큰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다. 소위 말하는 한국 개신교의 거목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이 네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인정하기 싫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말년의 그들의 모습은 평생 이룩해 온 모든 것들을 뒤엎어 버리고 있다. 소위 얼굴에 똥칠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 네 사람이 신문에 어떤 뉴스들을 만들어 주고 있는가? 조용기 목사는 국민일보, 스포츠 투데이 등 가족 비리로, 곽선희 목사는 유명한 3억 벤틀리로 그리고 이명박 정권으로, 김홍도 목사는 말만 하면 다 아는 PD수첨 길 잃은 목자로, 동생 김국도 목사는 교단장 자리를 두고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김대중, 김영삼은 어떠한가? 두 사람 모두 군부 독재 정권과 평생을 싸워 우리나라 민주화에 이바지한 사람이다. 그렇지만 본인들과 그들을 존경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대통령이라는 권력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여, 결국에는 타협해 버리고 말았다. 김대중과 김종필의 연합이 말이 되는가? 그렇게 연합할 것이면 애초에 왜 박정희와 대립각을 세웠는가? 박정의는 안되고 김종필은 되는가? 김영삼은 어떠한가? 전두환과 그렇게 대립각을 세우더니 노태우와 연합하지 않았는가? 전두환과 노태우를 감옥에 보냈다고 연합한 사실이 면죄를 받는 것은 아니다.  

  이 두부류의 사람들이 처음부터 그렇게 이익을 좇아 살아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순수하게 하나님에 대한 헌신의 마음을 가지고 목회를 했고, 그 결과 대형 교회로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여러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있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의 순수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김대중, 김영삼도 처음부터 정치적인 득실을 따라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순수한 마음으로, 국민의 대변자라는 자각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의 말년이 노욕을 점철된 이유가 무엇인가? 왜 두고두고 신문에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때중이와 땡삼이로 비웃음을 사는가? 이들의 인생의 목적이 욕망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인생의 목적이란 무엇인가? 

  목적은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일상에서 마주치는 모든 경험 속에서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정신적 핵심이다.(136p) 

  목적 의식을 가지고 살다보면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의 성공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문제는 그 때부터 발생하기 시작한다. 저자의 표현대로 하자면 목적 의식을 가지고 살다보니 얻는 것들이 꽤 되고 그것들을 가방에 하나 둘씩 집어 넣기 시작하니 어느새 가방이 꽉 차는 단계에 이른다. 이제는 필요없는 것들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채워 넣는 가방을 풀고 다시 싸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 단계에서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목적이 가방 채우기로 변질되는 것이다. 이렇게 변질되는 순간 우리는 목적을 잃고 방황하기 시작한다. 중요한 것은, 특히 어느 정도 목표를 달성했다고 생각이 드는 순간 중요한 것은 목적이 욕망으로 변질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목적과 목표는 다른 것이다. 목적은 궁극적인 것이라면 목표는 단계적이고 일시적인 것이다.) 

  나는 얼마나 이루었을까? 무엇을 채우며 살아가는가? 그렇게 채운 것들이 그저 나의 욕심은 아닐까? 혹 나는 목적이 아니라 욕망에 휘둘려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잠시 멈추어서서 점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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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28 0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int236 2011-08-28 13:05   좋아요 0 | URL
장자도 그분이 추천한 책을 봐야 할 것 같다는 말에 빵 터졌습니다. 그 정도로 분야를 꿰고 있는 것은 아무리 뭐라고 해도 대단한 일인 것 같습니다.
 
급진적 자유주의자들 - 요한복음 복음서와의 낯선 여행 1
김진호 지음 / 동연출판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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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처럼 그렇게 거창한 글은 아니고, 개인적인 생각을 적어본다. 먼저 이 책의 내용과 주제에 대한 제대로 된 리뷰를 보고 싶다면 얼그레이님의 리뷰를 볼 것을 권한다. 이 리뷰는 책의 내용과 주제 자체를 다루기 보다는 그 내용과 주제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적어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학교 다닐 때, 한신대 학생회와 같이 일할 기회가 있었다. 신학적인 사상이나 이런 것을 토론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친목행사로 체육대회를 여는 것이었다. 몇 학교에서 모여서 함께 행사를 준비했었는데 가장 마음에 안드는 학교가 하나 있었으니, 그것이 한신대이다. 내가 한신대를 가장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던 이유는 단순하다. 시간 약속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개념하면서 권리와 회의 진행에 대해서만큼른 철저하게 자신들의 몫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행사 당일에도 1시간이나 늦게 나타나서 아직 자기들이 도착하지 않았는데 행사를 시작했다고 화내며 언성을 높였었다.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말이다. 안병무 선생님을 존경하면서도 한신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그날부터 지금까지 쭉 안좋게 이어지고 있다.  

  몇년 전 후배가 결혼한다고 하는데, 그 대상이 한신대 신학과를 졸업해서 목회를 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다. 순간 당황했다. 내가 알기로 그 후배의 신앙관은 일반적인 의미로 지극히 평범하고, 보수적이었기 때문이다. 걱정이 되어서 생각이 많이 맞지 않을텐데 괜찮겠냐고 묻자 씩 웃으며 한마디 한다. "요즘 한신대 많이 달라졌어요." 그렇다. 내가 가지고 있던 한신대에 대한 것들, 민중신학, 지극히 사회참여적인 신앙이라는 것은 오늘날 시쳇말로 먹히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쓰면서 왜 한신대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을 늘어 놓느냐하면, 이 책이 가지는 한계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서이기 때문이다.  

  민중이라는 말은 영어 사전에도 Minjung이라고 되어 있다. 아마도 영어로 번역할 수 없는 몇 안되는 단어 중에 하나일 것이다. 군사독재 정권 시절, 교회가 성장과 부와 권력을 위해서 국가 권력과 타협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들을 축복하며 면죄부를 쥐어주던 시절, 그래도 타협하지 않고 신앙인의 양심을 지키면서 약자들과 함께 해왔던 신앙운동이요, 삶의 양태가 민중신학이라고 알고 있다. 제3세계에 제3세계 신학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민중 신학이 있다면 자랑스러워하고, 제3세계 신학을 기웃거리면서 민중신학 또한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안병무를 알았고, 함석헌을 알았으면, 문익환을 알았다. 오랫 동안 교회를 다니면서 존경할 만한 목사님들을 만니지 못했던 시절 이런 분도 있구나 생각하면서 행복했었다. 

  그런 나였기에 저들은 안병무 선생님의 학풍을 이어 받았구나하는 한신대 학생에 대한 막연한 부러움이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만난 그 학생은 약속을 수시로 어기는 삶의 모습으로서 나를 실망시켰던 것이다. 여기에 민중신학이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삶이 따라가지 않는 신학은 헛된 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저자인 김진호 목사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렇지만 그의 글은 나에게 왠지 공허한 말잔치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전해준다. 내가 이 책에 몰두하지 못한 이유이다. 

  둘째로 이 책이 가지는 한계를 보여주는 것은 후배의 이야기이다. "이젠 달라요."라는 말과 함께 순복음같다는 말은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한신대가 가지는 학풍마저 부정해 버렸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안병무 선생이 가르친 것이 결국 조용기 목사의 삼박자 구원 삼박자 축복보다 못한 것으로 취급받는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그리고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를 이 책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책에 적힌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구구절절이 옳다. 그렇지만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지 못한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공감은 고사하고 이 책이 읽히지도 않는다. 공부하기 위하여 이 책을 사야하는 학생들이라면 모를까 순수하게 요한복음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이 책을 구매하는 일은 드문 일일 것이다. 그 드문 사람 중에서도 이 책을 마지막까지 읽는 사람은 더 드물 것이다. 그렇게 더 더 드문 사람 중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무릎을 치고 읽을 사람은 더 더 더 드물 것이다. 왜? 공산당 혁명이, 맑스 레닌 주의가 대다수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에게 읽히지 못했던 것과 같은 이유다. 아무리 좋을 말을 늘어 놓고, 진리를 늘어 놓으면 무엇하냐? 이 책을 읽어야 할 사람들에게 그들이 던지는 말은 그들만의 말인것을. 독자들에게 쉽게 읽히지 못한다는 말이다. 신학 전공자들을 위해 쓴 책이라면 내 오지랖이 도를 지나친 것일테지만 만약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읽히고 싶다면 충분히 고려애햐 할 사안이다.

  삶이 따르지 않는 학문, 그들만의 말 잔치로 끝나는 학문! 

  솔직히 급진적 자유주의자들이 갖는 한계가 아닐까? 신학이든, 학문이든, 아니면 정치든 상관없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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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가방 2011-08-10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다 그런 건 아니겠지요.
전 '삶이 따르지 않는 학문'보단 '삶으로 구현해 낼 수 없는 학문(혹은 신앙)'이 실제에 더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정말로 자기들이 말하는 대로 믿는다면 결국 아무 것도 믿지 않아야 하는 그런..

saint236 2011-08-11 11:11   좋아요 0 | URL
삶으로 구현해 낼 수 없는 학문이라..왠지 공감이 가네요. 여하튼 기독교인으로서 느끼는 가장 큰 안타까움은 삶과 신앙 사이의 괴리입니다. 쉽지 않다고 포기해서는 안되는데..말만 잘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네요.
 
도전하라 한번도 실패하지 않은 것처럼 - 두려움을 긍정의 에너지로 바꾸는 마인드 컨트롤 10단계
수잔 제퍼스 지음. 하지현 옮김 / 리더스북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낭만 인생님께서 7월 9일에 올려 주신 글 제목이 "5분 만에 책 한 권 읽는 법"이다. 아래에 링크를 건다.

  http://blog.aladin.co.kr/Pansees/4908545 

  그때만 해도 "굳이 이렇게까지 책을 봐야 할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일단 돈이 아깝고, 다음으로는 책 내용이 그렇게 단 시간내에 외워질까 싶어서이다. 며칠 뒤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낭만 인생님이 이야기한 책 읽기 방법에 딱 어울리는 책이었다. 별 다른 내용이 없고, 중간 중간에 책 내용을 요약하는 부분이 있어서 앞 부분을 전혀 모른다고 해도 내용의 90%를 이해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괜시리 복잡하게 도표가 나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용이 행간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읽어야 하는 심오한 것도 아니었다. 딱 5분 만에 읽기에 좋은 그런 책이지만 쓸데 없는 고집, 즉 나는 이런 책일지라도 정독을 하겠노라는 굳건한 결심을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말이다. 몇 시간에 걸쳐서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 쓰나미와 같은 짙은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돈이 아까와서 책을 정독하기 시작했는데, 책을 산 돈이 아깝다는 생각만 했지 책을 보느라고 버린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낭만 인생님의 글에서처럼 5분만에 읽어도 무방한 책이 분명히 있다. 그것도 정말 많다. 주변에 널린 자기 계발서들이 대부분 이런 범주이다. 이런 책들만 골라서 보다 보면 인문 서적이라든지 고전은 보기가 싫어질 것 같다. 당장 입에는 달콤하지만 결국은 남는 것이 별로 없는 것이 자기 계발서가 아닐까? 이런 자기 계발서들이 넘쳐나는 도서 시장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계속 이런 식으로 나가면서 제 살 깎아먹기 밖에 더 되겠는가?  

  여하튼 이 책처럼 5분만에 책을 읽는 방법이 계속 생각이 나게 만든다면 책을 독서의 즐거움이 아닌 유용성을 기준으로 선택하게 되지 않겠는가? 유용성이 극에 달한 결과 5분만에 책 읽는 방법이 자주 사용될 것이고, 다시 그런 책을 선택하게 되는 등 악순환이 반복되지 않겠는가? 그냥 시간이 아까울 뿐이고, 이 책을 산 내 판단을 후회할 뿐이고, 돈은 아까울 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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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8-07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인트님 말씀대로 자기계발서는 정말 중요한 내용만 훑어보면 5~10분 만에 다 읽을 수
있는거 같아요, 저도 자기계발서를 읽게 되면 5분은 안 되더라도 정말 10~20분 안에는
읽거든요, 사실 저도 예전에는 자기계발서을 마냥 좋다고 읽어본 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읽다보니 시중에 나오는 자기계발서의 내용 형식도 알게 되고 결국에는
제목과 표지만 다를 뿐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왠만하면
자기계발서는 정말 좋은 책 아닌 이상 구입은 안 하고 도서관에 대출해서 읽어요. ^^

saint236 2011-08-07 10:25   좋아요 0 | URL
저도 한동안 자기계발서들을 많이 샀는데 요즘은 약간은 뜸합니다.

노란가방 2011-08-10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럴 땐 중고책 판매를 시도해보시면 좀 낫지요.. ^^;;

saint236 2011-08-11 11:12   좋아요 0 | URL
이상하게 중고책 판매는 안하게 되더라고요. 한번 산 책은 빌려주기는 해도 모아두는 기벽이 있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