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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자이너 문화사 - 교양과 문화로 읽는 여성 성기의 모든 것
옐토 드렌스 지음, 김명남 옮김 / 동아시아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얼마전 방통위 소속 박경신 심사위원이 자기 블로그에 음란물을 게재해서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었다. 투철하신 방통위 심사위원들은 박경신 의원의 블로그에 올라온 음란물에 철퇴를 가했으며, 아주 친절하신 기자들은 음란물에 손수 모자이크까지 해주시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다. 그 덕에 사람들은 도대체 그 음란물이 무엇인가 궁금해 마지 않았고, 그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많은 네티즌들은 박경신 심사위원의 블로그를 뻔질나게 드나들며 문제의 작품을 찾기 위해 발품을 팔았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치부하던 중에 자주 놀러가던 C님의 서재에서(이분이 누군지 아는 분은 다 안다. 그렇지만 잘 모르는 분들은 궁금증이 폭발해서 아마 C로 시작하는 분들의 서재를 뒤지기 시작할 것이다. 기자들의 친절이 바로 이딴 식이다.) 이 사건에 대한 글을 보게 되었고, 문제의 음란물이 무엇인지 뒤지게 되었다.(물론 아주아주 순수한 마음!!!에서 그랬음을 강조한다. ㅎㅎ) 그렇게 5분을 뒤진 끝에 그 음란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 음란물은 바로바로 이것이다.
아주 아주 발칙하고 도발적인 이 음란물은 오르세 미술관에 걸려 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이다. 작품의 이름은 세계의 근원이다. 참 우스운 것은 박경신 심사위원 관련하여 음란물을 검색하면 돌아돌아 찾을 수 있지만 네이버 검색창에 "세계의 근원"이라는 검색어를 넣으면 사진과 함께 그 내용에 대한 자세한 설명까지 단박에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진중권씨의 말대로 이번 사건을 통하여서 방통위 심사위원들과 기자들의 무식이 아주 발랄하고 상큼하게 통통 튀는 것이 만천하에 공개된 것이다.
서평을 쓰면서 왜 뜬금없이 이 그림과 얽힌 사건을 이야기하느냐? 이 책이 말하고 싶은 것이 이 사건에 그대로 농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방통위 심사위원들과 기자들이 비록 이 그림에 대해서 잘 몰랐다지만, 이 그림이 표현하고 있는 대상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미성년자가 아닌 이상 너무 잘 알고 있을 것이고 그래서 음란물이라는 묘한 잣대로 이 그림을 평가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면서도 음란물이라 철퇴를 가하는 것은 이 그림의 대상 즉 여성의 성기를, 그리고 그 성기가 어떤 역할을 하는 지를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은 점잖지 못하다는 의식의 표현이 아닐까?
예전에 군대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어느날 인사 계통을 통하여 성교육이 잡혀있으니 인사과에 소속된 모든 간부들은 그 교육에 참석해야 한다는 명령이 하달된 적이 있다.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차를 타고 이동해서 교육 장소에 도착했다. 어쩔수 없이 참석한 교육이라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는데 강사가 묘한 것을 물어본다.
"여러분 남자의 성기를 뭐라고 부릅니까? 자유롭게 대답해 보세요."
순간 침묵이 흐른다. 당시 강사는 여성이었고, 교육 대상자는 남성과 여성이 골고루 섞여 있었다. 강사가 다시 한번 질문을 하자 원사급의 상사들(대개 나이가 40후반에서 50초반 정도 될 것이다) 사이에서 장난스럽게 대답이 나오기 시작한다. 혹 음란한 이야기라 오해하실 분들이 계시겠지만 당시 분위기를 위해서 그대로 기록해 본다. "자지요" "똘똘이요" "좆이요" 등등등... 나도 남자이지만 남자의 성기를 가리키는 말이 그렇게 많은 줄은 몰랐다. 다음으로 이 강사가 던진 질문이 무엇일까? 그렇다. 충분히 예상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자의 성기를 뭐라고 부릅니까?"
두번째 질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더 뻘쭘해지기 시작했다. 괜시리 옆에 앉아 있는 여군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 "이런 젠장. 왜 이딴걸 묻는 거지?" 아까보다 두 배는 되는 정적이 흐른다음에 이번에도 원사급의 상사분들에게서 대답이 나오기 시작했다. 역시 연륜은 무시못하나 보다. "보지요" "씹이요" "냄비요" "조개요" 등등등... 와우. 먼저 던진 질문보다 더 많은 대답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괜시리 내 얼굴이 빨개졌다. 대답이 마무리 된 다음에 강사가 던진 말을 아직까지 잊지 못한다.
"여러분 남자의 성기와 여자의 성기를 가리키는 말이 이렇게 많은데요, 그 중에 정식 명칭은 무엇일까요? 남자의 성기는 자지, 여자의 성기는 보지입니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이게 표준어입니다. 이 사실을 이상하게 생각하니까 우리의 성의식이 비뚤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다. 자지와 보지는 음란한 말이 아니라 남성의 성기와 여성의 성기를 가리키는 표준어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이 단어들을 음란하다 생각하면서, 입에 올리기를 터부시하는 것일까? 어쩔수 없이 가리켜야 하는 순간에도 자지와 보지라는 표준어가 아니라 거시기, 거기 등등 애매모호한 말을 사용하는 것일까? 아마도 이게 성에 대한 문화적인 터부의 영향이 아닐까? 특히 여성의 성기에 대해서 더 민감한 것은 이에 대한 더 많은 금기와 공포가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면서도 모순적이게 몇몇의 동성 친구들이 모이면 EDPS를 늘어놓으면서 낄낄대는 것이 남녀 상관없이 우리 모두의 모습이 아닌가? 이 책은 이러한 성에 대한, 특히 여성의 성기에 대해 문화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여성에 대한 문화적인 선입견이 여성에 대해, 그리고 남성에 대해 얼마나 끔찍한 테러를 자행했는지 알게 된다. 갖가지 질병들을 히스테리라는 정의하기 애매한 명칭하에 묶어 버리고, 치료법으로 클리토리스 절제와 자궁 절제를 내세우는 외과의들의 모습은 끔찍하기만 한다. 더 끔찍한 사실은 2차 대전까지 이러한 치료법이 유행하고 꽤 설득력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또한 현재 아프리카에서 행해지고 있는 여성 할례가 얼마나 비인간적인 것인지, 그리고 이러한 여성 할례가 청교도적인 금욕주의가 만연했던 18~19세기 미국에서도 행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여성에 대한, 더 정확하게 말하면 여성의 성기에 대한 테러가 우리가 알듯이 일부 몰지각한 이슬람권 또는 아프리카만의 특징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행해진 보편적인 현상이었다는 것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오늘날 성인 용품 가게에나 가야 살 수 있는 바이브레이터가 초창기에는 의료기계로 발명되었고, 보급되었다는 사실이다.
남성이 기록했지만, 흔히 기대하듯이 음란하거나 야릇하지 않다. 저자가 성과학자이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건조하게 설명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버자이어 문화사"라는 제목과 여성의 나체가 그려진 표지 디자인은 이 책을 공공의 장소에서 대 놓고 읽기 주저하게 만든다. 오죽하면 아내가 사무실에 있는 이 책 괜히 오해받지 말고 집에 가져다 놓으라고 하겠는가? 그렇지만 나는 당당하게 이 책을 들고 다니면서 봤다. 출근할 때, 가게에 갈 때, 우체국에 갈 때 아무런 거리낌 없이 들고 다녔다. 아마 몇몇 사람들은 나를 변태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 책을 들고 다니면서 읽는 것은 내게 있어서 잘못된 성문화에 대한 작은 반항이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원제는 "The original of the world"로 세계의 근원 정도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아마 저자는 쿠르베라는 발칙한 아저씨의 동명의 그림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쿠르베 아저씨가 누구냐? 바로 요 사람이다. 요 아저씨 때문에 많은 점잖으신 분들의 무식이 탄로 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