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급진적 자유주의자들 - 요한복음 ㅣ 복음서와의 낯선 여행 1
김진호 지음 / 동연출판사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제목처럼 그렇게 거창한 글은 아니고, 개인적인 생각을 적어본다. 먼저 이 책의 내용과 주제에 대한 제대로 된 리뷰를 보고 싶다면 얼그레이님의 리뷰를 볼 것을 권한다. 이 리뷰는 책의 내용과 주제 자체를 다루기 보다는 그 내용과 주제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적어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학교 다닐 때, 한신대 학생회와 같이 일할 기회가 있었다. 신학적인 사상이나 이런 것을 토론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친목행사로 체육대회를 여는 것이었다. 몇 학교에서 모여서 함께 행사를 준비했었는데 가장 마음에 안드는 학교가 하나 있었으니, 그것이 한신대이다. 내가 한신대를 가장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던 이유는 단순하다. 시간 약속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개념하면서 권리와 회의 진행에 대해서만큼른 철저하게 자신들의 몫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행사 당일에도 1시간이나 늦게 나타나서 아직 자기들이 도착하지 않았는데 행사를 시작했다고 화내며 언성을 높였었다.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말이다. 안병무 선생님을 존경하면서도 한신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그날부터 지금까지 쭉 안좋게 이어지고 있다.
몇년 전 후배가 결혼한다고 하는데, 그 대상이 한신대 신학과를 졸업해서 목회를 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다. 순간 당황했다. 내가 알기로 그 후배의 신앙관은 일반적인 의미로 지극히 평범하고, 보수적이었기 때문이다. 걱정이 되어서 생각이 많이 맞지 않을텐데 괜찮겠냐고 묻자 씩 웃으며 한마디 한다. "요즘 한신대 많이 달라졌어요." 그렇다. 내가 가지고 있던 한신대에 대한 것들, 민중신학, 지극히 사회참여적인 신앙이라는 것은 오늘날 시쳇말로 먹히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쓰면서 왜 한신대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을 늘어 놓느냐하면, 이 책이 가지는 한계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서이기 때문이다.
민중이라는 말은 영어 사전에도 Minjung이라고 되어 있다. 아마도 영어로 번역할 수 없는 몇 안되는 단어 중에 하나일 것이다. 군사독재 정권 시절, 교회가 성장과 부와 권력을 위해서 국가 권력과 타협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들을 축복하며 면죄부를 쥐어주던 시절, 그래도 타협하지 않고 신앙인의 양심을 지키면서 약자들과 함께 해왔던 신앙운동이요, 삶의 양태가 민중신학이라고 알고 있다. 제3세계에 제3세계 신학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민중 신학이 있다면 자랑스러워하고, 제3세계 신학을 기웃거리면서 민중신학 또한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안병무를 알았고, 함석헌을 알았으면, 문익환을 알았다. 오랫 동안 교회를 다니면서 존경할 만한 목사님들을 만니지 못했던 시절 이런 분도 있구나 생각하면서 행복했었다.
그런 나였기에 저들은 안병무 선생님의 학풍을 이어 받았구나하는 한신대 학생에 대한 막연한 부러움이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만난 그 학생은 약속을 수시로 어기는 삶의 모습으로서 나를 실망시켰던 것이다. 여기에 민중신학이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삶이 따라가지 않는 신학은 헛된 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저자인 김진호 목사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렇지만 그의 글은 나에게 왠지 공허한 말잔치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전해준다. 내가 이 책에 몰두하지 못한 이유이다.
둘째로 이 책이 가지는 한계를 보여주는 것은 후배의 이야기이다. "이젠 달라요."라는 말과 함께 순복음같다는 말은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한신대가 가지는 학풍마저 부정해 버렸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안병무 선생이 가르친 것이 결국 조용기 목사의 삼박자 구원 삼박자 축복보다 못한 것으로 취급받는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그리고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를 이 책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책에 적힌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구구절절이 옳다. 그렇지만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지 못한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공감은 고사하고 이 책이 읽히지도 않는다. 공부하기 위하여 이 책을 사야하는 학생들이라면 모를까 순수하게 요한복음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이 책을 구매하는 일은 드문 일일 것이다. 그 드문 사람 중에서도 이 책을 마지막까지 읽는 사람은 더 드물 것이다. 그렇게 더 더 드문 사람 중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무릎을 치고 읽을 사람은 더 더 더 드물 것이다. 왜? 공산당 혁명이, 맑스 레닌 주의가 대다수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에게 읽히지 못했던 것과 같은 이유다. 아무리 좋을 말을 늘어 놓고, 진리를 늘어 놓으면 무엇하냐? 이 책을 읽어야 할 사람들에게 그들이 던지는 말은 그들만의 말인것을. 독자들에게 쉽게 읽히지 못한다는 말이다. 신학 전공자들을 위해 쓴 책이라면 내 오지랖이 도를 지나친 것일테지만 만약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읽히고 싶다면 충분히 고려애햐 할 사안이다.
삶이 따르지 않는 학문, 그들만의 말 잔치로 끝나는 학문!
솔직히 급진적 자유주의자들이 갖는 한계가 아닐까? 신학이든, 학문이든, 아니면 정치든 상관없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