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전쟁
톰 홀랜드 지음, 이순호 옮김 / 책과함께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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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잘빠진 남정네들이 떼거리로 몰려나와서 "This is sparta!"라는 말을 우렁차게 외치며 전투를 벌이는 영화! 매번 전쟁에서 지면서도 압도적인 물량과 비열한 꼼수로 그리스군의 숨통을 죄어 오면서 "나는 관대하다!"를 외치는 이상하게 생긴 페르시아 왕! 우리가 300이라는 영화를 통하여 만나게된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피상적인 모습이다.

 

  영화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고, 그래서 영화 외적인 요소들까지도 찾아보는 사람들이면 이 영화가 당시 논란이 많이 됐었던 영화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에 이란과의 핵무기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던 시기였기 때문에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300이라는 영화는 서구의 대표를 자처하는 미국과 페르시아의 후예를 자처하는 이란의 대리전 양상을 띄게 되었다. 멋있고, 용기있는,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거는 스파르타는 미국을, 괴상한 외모를 가지고 있고, 비열하며 저열한, 그러면서도 자존심만 가득한 페르시아는 이란을 은연 중에 상징하게 되었다. 이런 설정이 확고해 졌으니 이제 스파르타의 패배는 단순한 패배가 아니라 장렬한 옥사로 미화가 된다.

 

  다만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 영화의 후속편 격인 300: 제국의 부활이 그리 흥행헤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리스가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것이 300의 모티브가 된 테르모필레 협곡 전투가 아니라 살라미스 해전이었음에도 말이다. 아마도 300에서는 대군 앞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전쟁을 벌이는 비장미가 느껴지는 반면, 후속편에서는 페르시아와 맞먹는, 아니 오히려 능가하는 아테네의 테미스토클레스 야비함 때문이 아닐까?

 

  영화 뿐만이겠는가?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 안에도 알게 모르게 이러한 사고 방식에 물들어 있다는 점을 말하기 위함이다. 요즘은 한국사도 논란이 되고 있지만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만해도 세계사와 국사는 필수 과목이었다. 그런데 세계사를 수업시간에 배워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철저하게 서구 중심적이라는 것이다. 조금 어려운 말로 오리엔탈리즘이라 부르지만 쉽게 말하자면 서구는 선, 미, 진리이고 이와 대척점에 동양을 놓고 악과 추, 야만으로 규정한다. 이러다 보니 서양애서 동양을 침략하는 것은 문명화를 위한 당연한 것이 되고, 동양에서 서양을 침범하는 것은 문명이 파괴되고 세상의 종말이 오는 것과 같은 수준의 재앙으로 여겨지게 되는 것이다. 훈족의 이동과 몽골족의 침입 앞에 서양의 여러국가들이 어떠한 태도를 취했었는지, 그리고 드라큘라 전설이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떠올린다면 좀더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렇게 책에 관한 리뷰를 시작하기도 전에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늘어 놓는 것은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입장도 기본적으로 이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페르시아의 침공은 자신을 신의 사자라고 생각하는 오만하고 미련한 절대 군주가 일으킨 불필요한 사건이요, 이에 대한 그리스의 반격은 자기 삶의 터전을 지키고 민주주의라는 절대 가치를 지키기 위한 것으로 표현한다. 물론 직접적으로 이렇게 표현하고 있지는 않다. 스파르타라는 나라가 끼어 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그렇게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책의 행간에 스며있는 내용들을 곱씹어 보면 직접적으로 말한 것보다 더 많은 분량을 이것을 위하여 할애하고 있다. 보다 객관적으로 페르시아 전쟁에 대한 사료를 제공하고 판단하게 하겠다는 의도와는 달리 그 사람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은 어쩔 수 없나보다.

 

  이런 시각이 던져주는 불편함, 많은 분량, 문체의 딱딱함, 낯선 이름들의 등장, 각 나라들의 역사를 개별적으로 설명하는 것들은 이 책을 읽는 일에 난해함을 더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읽은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페르시아 전쟁에 관한 사료들 자체가 상단히 한정적이고, 그러한 책들의 대부분도 대체로 살라미스 해전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살라미스 해전뿐만이 아니라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그리고 페르시아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성장하게 되었고, 그렇게 성장한 국가들이 왜 격돌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마라톤이라는 중요하지만 거의 언급이 없는 전투에 대해서도 어던 맥락 가운데, 어떤 양상으로 진행이 되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페르시아에 대해서 좀더 공부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단 오리엔탈리즘의 불편함을 걷어내야 한다는 수고로움은 따르겠지만 말이다. 마지막에 9.11 테러와 페르시아 전쟁을 연관시켜 생각하는 역자의 생각은 책을 덮는 순간까지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었다고 생각한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으로 그리스와 스파르타, 그리고 살라미스 해전에 관한 책들을 소개한다.

 

 

살라미스 해전 / 스파르타이야기 / 헤로도토스 역사 / 완전한 승리 바다의 지배자(차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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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10-31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학창시절, 세계사의 관점에 대해 불만이 많았습니다. 어디다 하소연할 데도 없고. 친구와 이것이 세계사인가, 서구 역사인가라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서구 사람들이야 자신들의 입장에서 그렇게 생각한다지만, 우리가 서구의 관점을 따를 필요는 없었는데도 말입니다.

saint236 2014-11-01 18:30   좋아요 0 | URL
어릴 때부터 몸에 배어온 습관이라는 것이 무섭지요. 또한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소구 유학파들이 결국 가지고 있는 베이스가 철저히 서구적이니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가뜩이나 지치는데 이건 또...

지금까지 달렸던 상식 이하의 댓글 중에 최고인듯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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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과 그의 시대 이덕일의 역사특강 1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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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포세대라는 말이 있다. 혹시 알고 있는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라는 말이다. 청년들의 현 주소가 어떤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88만원 세대라는 말도 있다. 청백전(청년 백수 전성시대)이라는 말도 있다. 이태백(이십대의 태반은 백수)이라는 말도 예전 말이고 요즘은 이구백(이십대의 90%는 백수)이라는도 이젠 시절이 지난 말이다. 이 외에도 토익 폐인을 나타내는 토폐인, 사회 생활을 하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유턴족,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듯이 어렵게 취업한 학생을 나타내는 낙바생, 부모의 등골을 뺀다는 등골탑에, 청년의 태반이 실업자와 신용불량자라는 청년실신 등 인터넷에서 약간만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청년들의 열악한 현실을 나타내는 말들이 줄줄이 나온다.

 

  실제로 우리나라 통계로 볼 때에도 최근에 14년 만에 청년 실업율이 최악을 기록했다고 한다. 10.9%란다. 청년 100명 중 11명은 백수라는 뜻이다. 게다가 대학 졸업생 10명 중 4명이 백수라고 한다. 실업율을 어떻게 통계내는지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이고, 아는 사람들은 웃기시네라면서 썩소를 한번 날려 줄 것이다.

 

  이렇게 심각한 청년 실업 시대에 어떤 이들은 청년들이 배가 불렀다고 한다. 우리 때는 하루 벌어 하루 먹기도 힘들었다 일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했다는 말을 하면서 훈계를 한다. 대표적으로 전 대통령은 청년들에게 눈 높이를 낮추어서 직장을 잡으면 될 문제라고 하면서 자신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구구절절 이야기한다. 현 대통령이 해 본것이 너무 없어서 문제라면 전 대통령은 해본 것이 너무 많아서 문제였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힘들어 하는 이들에게 왜 짱돌을 들지 않는가라면서 청년개새끼론을 들먹인다. 어떤 이들은 아프지 괜찮아 원래 젊은은 아픈거야라면서 책 장사에 몰두한다. 모두다 청년들의 현실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들이 잘났다는 말을 하면서 청년들에게 자기 생각을 강요하는 꼰대짓을 열심히 한다. 나는 그나마 곤대짓도 할만한 위인이 안되어서 그냥 답답한 마음에 안스러워 할 뿐이다.

 

  책의 리뷰에 왜 이렇게 암울한 청년 실업 이야기를 꺼내는가? 청도전과 그의 시대 가운데 이덕일씨가 끊임없이 지적했던 부분들이 이 부분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덕일씨가 청년 실업을 이야기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가 했던 논의에서 토지에 관한 문제를 청년 실업의 문제라는 말로 바꾸어 버려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이덕일씨는 정도전의 시대를 토지 문제의 시대라고 규정한다. 고려 말기를 지나면서 우리가 국사책에서 배웠듯이 한토지의 주인이 3~4명이나 되고, 권문 세가들은 토지의 경계를 산천으로 삼고 있었다. 권력이 있는 자들은 자기의 땅을 한뼘 더 늘리기 위하여 애를 썼고, 이 과정 속에서 가난한 자영농들은 몰락하여 노비가 되는 방법 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군인들에게 봉급으로 내어줄 토지가 없으니 국방이 문란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요, 세금을 납부할 자영농이 없으니 국가 재정이 파탄으로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 해결 방법은 하나 뿐이다. 왜곡된 토지 소유를 바로 잡는 것! 그렇지만 당시 권력층의 주류들은 왜곡된 토지를 바로 잡는 것을 결사 반대했다. 문제가 있다고 느낀 일부 권력층들도 토지 문제를 근본적으로 건드리기 보다는 약간만 수정하면 될 것이라고 한다. 청년 개새끼론을 외치는 이들이나, 괜찮아 아픈만큼 성숙하는 거야라면서 위하는 척하는 이들이 모두 문제의 핵심은 건드리지 않고 청년들에게 뽕을 놔주는 것처럼, 그들 모두 토지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현상 유지로 일관했다.

 

  토지 문제를 그대로 내버려 두고는 해결책이 없다고 생각한 정도전은 이성계와 손을 잡고 이 문제를 손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정도전은 꼼짝도 하지 않는 고려의 왕권을 무너뜨리고 조선이라는 새로운 국가를 건립하게 된다. 태종 이방원에 의하여 많이 왜곡되었지만 이덕일씨는 이렇게 왜곡된 부분들을 하나식 벗겨내면서 토지 문제를 통한 사회 개혁이라는 관점으로 정도전을 재해석하고 있다.

 

  이덕일씨의 책이 재미있기 때문에 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책을 읽어 내려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토지 문제를 청년 실업 문제로, 비정규직 문제로, 세월호법 문제로 치환하여도 그의 결론은 꽤나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무릇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백성들이 처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근본적으로 고치려고 하지 않고 기득권 유지에 급급하면 그 체제는 머지않아 몰락하게 될 것이다. 역사는 그렇게 발전해 왔고, 그렇게 흘러왔다. 우리 사회도 그러한 방향으로 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과정 속에서 우리 사회가 치르게 될 대가들이 너무 크다는 데 문제가 있다.

 

  나라의 지도자라는 사람들은 이 부분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을 했으면 좋겠다. 고려의 근간이 토지이듯이, 다음 세대의 근간은 청년이다. 그들을 착취해서, 비정규직으로 내 몰아서 이득을 취한다 한들 그것이 이 사회를 얼마나 유지시켜 나가겠는가? 청년 실업자와 그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심각하게 고민하고 해결책을 모색해도 시원찮을 판에 50대 정규직 8000명을 자르면 청년 백수를 2만명 넘게 고용할 수 있다는 수치를 내세우니 그저 답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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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책을 읽고 리뷰를 작성했다. 나 혼자 좋아서 끄적 대기 시작한 것이 벌써 500편이 넘었다. 그런데 그 500편을 작성하면서 기억에 남는 반응들이 있었다. 어떤 글은 블라인드 처리가 된 글도 있었다. 망우리의 대형교회인 K교회의 실명을 거론했던 글이기 때문이다. 어떤 글에는 밀덕님이 글을 남겨 주셨다. 그분의 글에서 밀덕의 향기를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 경우처럼 도대체가 이해하지 못할 태클을 만나기도 한다. 그 태클을 보면서 한마디 하고 싶다.

 

"도대체 누구냐 넌?"

 

  내용인즉슨 이렇다. 캡쳐를 해서 그대로 올려 놓겠다.

 

  소크라테스가 한 말로 알려진 악법도 법이라는 말은 실제로는 소크라테스의 말이 아니라 로마의 격언이란다. 소크라테스가 했다고 알려진 너 자신을 알라는 말도 실제로 소크라테스의 저작권을 주장할 수 없듯이 말이다. 위에서 보다시피 위에서 그런 글을 남겼다. 그런데 이런 댓글이 달렸다.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는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잘못된 정보이니 정확히 알아보고 글을 올려주세요. "라는 글에서 일단 기분이 나빴다. 이분이 글을 읽지 않고 댓글을 달았나보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생각해 보라. 나혼자 좋다고 공을 차고 놀고 있는 공간에 들어와서  "야 축구공은 차면서 놀아야지. 너 잘못하고 있어"라고 한다면 누가 기분이 좋겠는가? 다음으로 가진 생각은 이분이 난독증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의문이었다. 단 두줄 밑에 있는 글도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가끔 불쑥 들어와서, 더군다나 저렇게 지나가는 사람들이 불쑥 들어와서 이것은 아니네, 너는 좌파네라는 말들을 늘어 놓을 때마다 기분이 확 상한다. 그냥 자기 말만 확 질러 버리고 도망을 가기 때문에 그렇다. 이건 정말 무례한 짓이다. 아쿤이라는 분이 이글을 볼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이런 무례한 일들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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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4-09-03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익명으로 들어와서 그렇게 쓰고 가는 것도 어이없긴 하지만
교류하는 지인들이 대강 읽고서 어이없는 댓글 달면 더 황당해요;;;;
모르는 사람들이야 그런가 보다 하지만....

잘 지내시죠?

saint236 2014-09-03 10:26   좋아요 0 | URL
저야 항상 똑같이 지내고 있습니다. 님은 잘 지내고 계신가요?

transient-guest 2014-09-03 0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초기에 이런 댓글이 몇 번 달린적이 있죠. 무척 기분이 나쁘더군요. 자기하고 의견이 다르다고 '따끔하게 일침을 가한다'는 초딩스러운 반복구를 본 적도 있고, 영어를 섞어쓴다고 기분 나쁘다는 사람도 봤구요. 그래서 저는 다 지워버렸습니다. 일일이 대꾸해주기에는 시간이 아까워서 말이죠..ㅎㅎ

saint236 2014-09-03 10:26   좋아요 0 | URL
전 지우지 않고 그냥 둡니다. 반면 교사를 삼고 있지요. 난 저러지 말아야지...^^

치카 2014-09-03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로그인 안한 사람도 댓글을 쓸 수 있게 하셨군요. 그러면 이상한 덧글이 더 많더라고요. 저는 그런 경우 내 소중한 공간에 와서 쓰레기 투척한 사람으로 생각하며 덧글을 지워버리기도 합니다. 나중에 또 그거 보면 기분나빠질까봐서요;;;;

2014-09-03 0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int236 2014-09-03 10:28   좋아요 0 | URL
치카님은 닉네임으로 충분히 알 수 있지요...그나저나 원피스 전시회 취소는 안타까운 일입니다. 불주먹 에이스의 죽음도 안타깝고요...^^

낭만인생 2014-09-13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분은 무답으로 처리하는 수 박에 없죠.. 좋은 글 감사합니다.

saint236 2014-09-13 23:27   좋아요 0 | URL
무답으로 처리하여고 해도 답답한 마음에 울컥합니다.

노란가방 2014-09-22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비슷한 경우가..
로마인 이야기에서 시노오 나나미가 로마가 멸망한 원인이 기독교 때문이라는 뉘앙스로 억지를 부리는 부분을 인용하면서, 그 억지스러움이 뭔지를 써놨더니, 어떤 분이 들어와서는 제가 쓴 내용은 전혀 언급도 안 한 채, 그냥 로마가 멸망한 건 기독교를 국교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선언하고는 사라진.. ㅋㅋ
전 차분하게 왜 그 댓글이 잘못됐는지를 재댓글로 남기고 그냥 잊었습니다. 다른 분들도 그 댓글 보시고 어이없는 평은 남기지 마시라고..ㅎㅎ

saint236 2014-09-13 23:29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러려고 했는데 이건 뭐 장난도 아니고, 바로 아래 줄에 소크라테스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글을 썼는데 소크라테스가 그런말 한적이 없으니 제대로 알고 글을 쓰라고 훈계를 하더군요. 그 순간 이 사람이 내 글을 읽지 않고 이런 만행을 하는구나 싶어서....
 

  김! 장! 훈!

 

  난 그를 꽤나 좋아한다. 그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좋고, 슬픈 노랫말이 좋고, 거침없이 딴따라라 자신을 밝히는 모습이 좋다. 그의 콘서트 기획 능력이 좋고, 그래서 그를 바라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 언젠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거대한 태권브이를 설치했을 때 그가 정말 좋았다. 쉽게 말해 가수 김장훈이 좋다. 그런데 어느 순간인가부터 그가 다른 의미로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의 삶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어려운 시절을 겪었지만, 그래서 문제아라는 낙인을 찍고 살았지만 그 낙인에 함몰되지 않고 자신의 불우한 시절을 밑거름 삼아서, 자신과 같은 아이들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가 좋아졌다. 어렵게 목회하는 그의 어머니의 목회를 돕기 위해서 자신이 가진 돈을 털어 넣는 모습이 좋았다. 밝히고 싶지 않은 과거이지만 그 과거를 부정하지 않고, 당당하게 밝히는 모습이 좋았다.

 

  사재를 털어서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광고를 내는 모습도 좋았고,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과 함게 하는 모습이 좋았다. 싸이와의 관계 때문에 비난을 받으면서 아파하는 그의 인간적인 모습이 좋았고, 힘든 결정이지만 훌훌 털어버리는 모습이 좋았다. 또한 세월호 사건 앞에서 온갖 미사여구를 사용하여 잘 해보겠다 말하지 않고 유가족들과 함께 아픔을 겪는 그의 모습이 좋았다. 단원고 아이들을 찾아가 피자와 치킨을 사주는 모습도 좋았고, 세월호 희생자의 유해를 찾기 위해 온갖 어려움을 다 감당하는 잠수부들을 찾아가서 격려하는 모습도 좋았다. 죽은 아이의 꿈을 이루어 주기 위해 그 아이가 생전에 노래 부르던 거위의 꿈을 같이 부르는 모습도 좋았다. 처음에는 김장훈 목소리가 왜 그렇지? 그동안 너무 많이 쉬었나 생각했지만 음악에 대해 문외한이 내가 듣기에도 그 아이와 같은 톤으로 화음을 맞추는 것은 쉽지 않았을텐데 기꺼이 그 일을 감당하는 모습이 좋았다. 더군다나 가수가 주연이 아닌 조연이 되어서 그 아이의 노래를 서포트 해주는 모습은 내게 큰 감동이었다. 함께 모인 유가족들 앞에서 "축복합니다"라는 노래를 울먹이며 부르는 모습은 나도 울게 만들 정도로 좋았다.

 

  그러다가 어느 신문 기사를 보게 되었다. 김장훈이 단식을 시작하면서 여러 신문이 인터뷰를 했지만 뉴스엔조이와 했던 인터뷰 기사는 나로 하여금 그가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품게 만들었다. 뉴스엔조이는 기독교 계열의 진보 신문이다. 굳이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다른 신문들처럼 손가락질 받을 이유도 없고, 그가 인터뷰를 한다고 할지라도 많은 사람들이 보지 않을 수도 있는 신문이다. 그렇지만 그는 너무 많은 인터뷰를 해서 인터뷰를 고사하려다가 기독교 신문이라는 말에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그가 했던 많은 말들이 있지만 가장 마지막에 그가 했던 말이 내 머릿속을 맴돈다.(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97280)

 

"교회가 세상 속에 뛰어들어서 치열하게 잘 살아가며, 세상을 더 빛나고 아름답게 해야 하지 않습니까. 기독교인이라고 말은 하면서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기독교인입니까."

 

  왜 교회가 가만히 있는가라는 그의 말은 계속 내 맘을 후벼판다. 날 부끄럽게 만든다. 믿는대로 살자고, 그것이 한국에서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고,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할 모습이라고 생각하던 내게 그의 말 한마디는 날 자꾸 부끄럽게 만든다. 난 뭐했지? 이런 생각이 내 맘을 계속 아프게 한다.

 

  믿는 대로 산다는 것, 우는 자들과 함께 운다는 것이 얼마나 쉬우면서도 힘든 일인지 뻔히 알기 때문에 나 하나쯤이야, 아직은 아니야라면서 애써 외면하던 나를 광화문으로 돌려 세운다. 그의 그 말 한마디 때문에 운전을 하면서도 굳이 광화문 앞으로 지나간다. 그리고 기도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만져 주시기를, 내가 그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도록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물론 아직도 난 단신 캠프를 찾아가지 않았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그들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만간 7살, 6살 짜리 아이들과 그곳을 찾아가려고 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이들을 잊지 말기를 당부하고 싶다.

 

  김장훈!

 

  그가 있어 다행이다. 예수의 정신으로 사는 그가 있어 다행이다. 최소한 세월호 유족들과 함께 아파하고, 힘들어하고, 울고 있는 그가 있어서 다행이다. 세월호 유족들이 김장훈 때문에 작은 위로나마 받을 것 같기에 다행이다. 다만 그가 있는 그 자리에 그가 아닌 다른 이가 없는 것이 마음 아플 뿐이다. 아니다. 내가 없는 것이 부끄러울 뿐이다. 오늘 따라 윤동주 시인의 참회록이 자꾸 입가를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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