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전쟁
톰 홀랜드 지음, 이순호 옮김 / 책과함께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잘빠진 남정네들이 떼거리로 몰려나와서 "This is sparta!"라는 말을 우렁차게 외치며 전투를 벌이는 영화! 매번 전쟁에서 지면서도 압도적인 물량과 비열한 꼼수로 그리스군의 숨통을 죄어 오면서 "나는 관대하다!"를 외치는 이상하게 생긴 페르시아 왕! 우리가 300이라는 영화를 통하여 만나게된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피상적인 모습이다.

 

  영화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고, 그래서 영화 외적인 요소들까지도 찾아보는 사람들이면 이 영화가 당시 논란이 많이 됐었던 영화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에 이란과의 핵무기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던 시기였기 때문에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300이라는 영화는 서구의 대표를 자처하는 미국과 페르시아의 후예를 자처하는 이란의 대리전 양상을 띄게 되었다. 멋있고, 용기있는,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거는 스파르타는 미국을, 괴상한 외모를 가지고 있고, 비열하며 저열한, 그러면서도 자존심만 가득한 페르시아는 이란을 은연 중에 상징하게 되었다. 이런 설정이 확고해 졌으니 이제 스파르타의 패배는 단순한 패배가 아니라 장렬한 옥사로 미화가 된다.

 

  다만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 영화의 후속편 격인 300: 제국의 부활이 그리 흥행헤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리스가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것이 300의 모티브가 된 테르모필레 협곡 전투가 아니라 살라미스 해전이었음에도 말이다. 아마도 300에서는 대군 앞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전쟁을 벌이는 비장미가 느껴지는 반면, 후속편에서는 페르시아와 맞먹는, 아니 오히려 능가하는 아테네의 테미스토클레스 야비함 때문이 아닐까?

 

  영화 뿐만이겠는가?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 안에도 알게 모르게 이러한 사고 방식에 물들어 있다는 점을 말하기 위함이다. 요즘은 한국사도 논란이 되고 있지만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만해도 세계사와 국사는 필수 과목이었다. 그런데 세계사를 수업시간에 배워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철저하게 서구 중심적이라는 것이다. 조금 어려운 말로 오리엔탈리즘이라 부르지만 쉽게 말하자면 서구는 선, 미, 진리이고 이와 대척점에 동양을 놓고 악과 추, 야만으로 규정한다. 이러다 보니 서양애서 동양을 침략하는 것은 문명화를 위한 당연한 것이 되고, 동양에서 서양을 침범하는 것은 문명이 파괴되고 세상의 종말이 오는 것과 같은 수준의 재앙으로 여겨지게 되는 것이다. 훈족의 이동과 몽골족의 침입 앞에 서양의 여러국가들이 어떠한 태도를 취했었는지, 그리고 드라큘라 전설이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떠올린다면 좀더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렇게 책에 관한 리뷰를 시작하기도 전에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늘어 놓는 것은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입장도 기본적으로 이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페르시아의 침공은 자신을 신의 사자라고 생각하는 오만하고 미련한 절대 군주가 일으킨 불필요한 사건이요, 이에 대한 그리스의 반격은 자기 삶의 터전을 지키고 민주주의라는 절대 가치를 지키기 위한 것으로 표현한다. 물론 직접적으로 이렇게 표현하고 있지는 않다. 스파르타라는 나라가 끼어 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그렇게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책의 행간에 스며있는 내용들을 곱씹어 보면 직접적으로 말한 것보다 더 많은 분량을 이것을 위하여 할애하고 있다. 보다 객관적으로 페르시아 전쟁에 대한 사료를 제공하고 판단하게 하겠다는 의도와는 달리 그 사람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은 어쩔 수 없나보다.

 

  이런 시각이 던져주는 불편함, 많은 분량, 문체의 딱딱함, 낯선 이름들의 등장, 각 나라들의 역사를 개별적으로 설명하는 것들은 이 책을 읽는 일에 난해함을 더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읽은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페르시아 전쟁에 관한 사료들 자체가 상단히 한정적이고, 그러한 책들의 대부분도 대체로 살라미스 해전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살라미스 해전뿐만이 아니라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그리고 페르시아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성장하게 되었고, 그렇게 성장한 국가들이 왜 격돌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마라톤이라는 중요하지만 거의 언급이 없는 전투에 대해서도 어던 맥락 가운데, 어떤 양상으로 진행이 되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페르시아에 대해서 좀더 공부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단 오리엔탈리즘의 불편함을 걷어내야 한다는 수고로움은 따르겠지만 말이다. 마지막에 9.11 테러와 페르시아 전쟁을 연관시켜 생각하는 역자의 생각은 책을 덮는 순간까지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었다고 생각한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으로 그리스와 스파르타, 그리고 살라미스 해전에 관한 책들을 소개한다.

 

 

살라미스 해전 / 스파르타이야기 / 헤로도토스 역사 / 완전한 승리 바다의 지배자(차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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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10-31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학창시절, 세계사의 관점에 대해 불만이 많았습니다. 어디다 하소연할 데도 없고. 친구와 이것이 세계사인가, 서구 역사인가라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서구 사람들이야 자신들의 입장에서 그렇게 생각한다지만, 우리가 서구의 관점을 따를 필요는 없었는데도 말입니다.

saint236 2014-11-01 18:30   좋아요 0 | URL
어릴 때부터 몸에 배어온 습관이라는 것이 무섭지요. 또한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소구 유학파들이 결국 가지고 있는 베이스가 철저히 서구적이니 말해 무엇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