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인터넷 창을 켰더니 얼마전 고려대학교를 자퇴한 김예슬씨에 대한 기사가 올라와 있었다. 그의 대자보를 정독한 나로서는 이 기사가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한달이 지났는데 어찌 살고 있는지, 부모님의 실망은 어떻게 이겨내고 있을지, 괜히 했다는 후회 때문에 밤잠을 뒤척이고 있는지 괜스레 걱정되던 차에 그녀의 근황을 소개한 기사이기에 더 관심을 갖고 읽게 되었다. 출판사에서 접촉을 했을까? 작은 소책자 하나를 낸 것 같다. 경향신문에서 그녀와 인터뷰한 내용의 기사 전문은 다음과 같다. 

김예슬씨 기사 전문  

http://photo.media.daum.net/photogallery/society/2008_hot_people/view.html?photoid=3899&newsid=20100414032233620&p=khan 

  그런데 말이다. 기사에 달린 댓글들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좀더 솔직하게 말하면 화나게 한다. 첫페이지에 16개의 댓글이 달렸는데, 그 중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런 것은 경솔한 짓이다라는 댓글들은 제외하고, 그럭저럭 받아들여줄만한 것들은 제외하고 상식 이하의 것들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댓글을 단 이들의 아이디는 개인의 프라이버시상 삭제했다.  










  16개의 댓글 중에 상식 이하의 댓글인지라 옮겨온 것이 6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너무 경솔한 행동이었다는 말까지 표함한다면 찬성과 반대가 비슷비슷하던지 혹은 반대가 더 많은 것 같다. 익명성 뒤에 숨어서 상대방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이러한 상식 이하의 행동들이 언제까지 계속될까? 세계 IT 강국을 외쳐대면 뭐하는가? 이렇게 상식 이하의 키보드 워리어들이 넘쳐나는데. 

  예수는 죄없는 자가 돌로치라고 했다. 과연 위에 댓글을 작성한 키보드 워리어들은 죄가 없는가? 그들은 대한민국의 미친 교육의 피해자가 아닌가? 김예슬씨가 학교를 그만두기까지 얼마나 고민하고, 힘든 결정을 내린 것인지 기사를 충실히 읽어본다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냥 그만두면 되는데 왜 대자보를 붙이고 일인시위를 했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김예슬씨는 자기 마음이 약해질까봐라고 대답했다. 마음이 약해져서 다시 받아달라고 할까봐 배수의 진을 쳤다고 했다. 스스로를 막다른 길에 몰아 넣은 것이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맘 고생이 심했을까? 부모님들의 마음, 자기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 등등 얼마나 많은 것들이 24살 여학생의 마음을 힘들게 했을 것인가? 그럼에도 그는 당당하게 소신있는 선택을 했다. 미련하지만 사회에 짱돌하나 던졌다. 비록 큰 파문을 끼치지 못했지만 모두가 두려워 아무말 하지 않을 때 당당하게 No라고 대답했다. 그 대답때문에 그녀는 충분히 손해를 보고 있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응원해 주지는 못할망정 돌을 던진다. 상식적이고 논리적으로 반대하지 않고 수준 이하의 인신공격을 멈추지 않는다. 그녀의 신념과 소신을 보지 못하고 외모를 가지고 그녀를 판단한다. 민노당의 선택을 받기 위해, 혹은 책을 팔기 위한 기회주의적 행동이라고 한다. 그런데 말이다. 고작 민노당 선택을 받기 위해서 대학을 포기할까?(민노당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민노당의 힘이 약하다는 말이다.) 차라리 열심히 올인해서 한나라당에 입당하는게 더 유리하지 않겠는가? 고작 책 몇권 팔기 위해서 대학을 자퇴하는가? 대학을 자퇴한 것이 먼저이지 책을 쓴 것이 먼저가 아님을 왜 깨닫지 못하는가?  

  그녀의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그녀는 이 사회의 미친 교육이 만들어낸 순교자인다 아닐런지. 제발 격려를 못해줄망정 돌은 던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스스로 미친 교육 안에 밀어 넣고 한줌의 기득권층을 위해 대다수의 사람들을 희생하는 어릿광대짓을 멈추었으면 좋겠다. 푸른 하늘보다 더 시퍼렇게 멍들었을 김예슬씨의 마음을 생각하니 눈물이 시큰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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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0-04-14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짜피. 저런 댓글들을 퉁 쳐서 손가락만 나불거리는 키보드 워리어..라고 싸잡아 판단해버리면 속이 편해집니다.^^

saint236 2010-04-14 14:53   좋아요 0 | URL
속시원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인터넷 수준이 이정도 밖에 안되나 싶어서 마음이 속상합니다.

프리즘 2010-04-16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나친 익명성이 과격한 표현을 유도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자신에게 가해지는 억압을 타인에게 풀어보려는 무의식적인 행동이 아닐는지...

saint236 2010-04-16 17:29   좋아요 0 | URL
결국 폭력이란 것은 부메랑과 같은 것임을 왜 사람들이 간과할까요?
 

 

  예전에 다운받아 놓고 이제서야 다 보게 된 영화. 

  영화의 장르를 무엇이라고 해야할까? 가족 영화일까? 아니면 코미디라고할까? 그것도 아니면 정치영화라고 할까? 영화의 장르가 무엇이든지 상관없이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한번은 봤으면 좋을 영화이다.  앞으로의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테니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안봐도 되지만 내용을 알고 봐도 그렇게 손해날 것은 없는 영화이다. 일단 스릴러나 반전을 노리는 영화는 아니니까 말이다. 

  캐빈 코스트너 주연의 스윙보트는 선거에 관한 이야기이다. 스윙 보트란 선거의 판세를 확정지을 정도로 중요한 투표를 의미한다. 이 영화는 조금은 황당한 설정으로 영화를 끌어간다. 미국에서 선거가 벌어진다. 버드(캐빈 코스트너)는 정치와 투표, 국민의 의무와는 상관없이 살아가는 사람이다. 탁 까놓고 이야기해서 사회적으로 볼 대 실패자요  낙오자인 사람이다. 직장에서도 충실하게 일하지 못하고 그 결과 해고를 당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버지와는 딸리 딸이 똘똘하다. 장래 희망이 국회 의장일 정도로 똘똘하고 사회적인 이슈에도 민감하게 관심을 갖고 있다. 학급 글짓기에서 굴종과 민주주의, 그리고 국민의 의무와 자각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정도로 정치적인 식견을 가진 아이다.  

  어느날 학급에서 부모님에게 투표를 하도록 하고 그 내용과 느낌에 대해서 감상문을 적어오라는 숙제를 받게 되고 술취해 나타나지 않는 아버지 대신 투포를 진행한다. 그렇지만 예기치 못한 정전으로 투표가 오류 처리되게 되고 투표가 끝이 난다. 그런데 양쪽의 득표가 백중세인 가운데 뉴멕시코주의 선거인단 투표를 가름할 수 있는 한표가 버드의 한표임이 밝혀지면서 그의 인생은 많이 바뀐다. 그를 포섭하기 위해 두 대선후보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웃기게도 정당의 당략마저 포기하는 황당한 사건이 벌어진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버드는 자신의 투표가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는지 자각하게 되고 한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감당하게 된다.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본다. 지난 대선 때, 총선 때 우리는 국민의 의무를 저버리지 않았던가? 대한민국의 진정한 적은 미국도 아니고, 북한도 아니고 국민의 의무를 쉽게 망각해 버린 우리 자신이 아닐까?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키보드 워리어들이 넘쳐난다. 상식 이하의 비난이 난무한다. 비판이 아닌 비난이 난무하지만 쉽게 이 상황이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여전히 젊은이들은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망각한다. 지자체 선거에 대한 관심은 없다. 국민의 관심보다는 중앙에서 어떻게 전략적으로 지자체를 차지할 것인지 음모만 난무한다. 이대로 가면 분명히 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여전히 4대강 사업은 진행될 것이고, 빈곤층의 아이들은 물로 배를 채울 것이고, 대북 정책은 강경 일변도가 될 것이다.  

  제발 이번 선거에는 키보드 워리어가 아니라 실제로 투표하는 사람이 생겨나기를 바란다. 우리 선배들이 피와 생명을 바쳐서 얻어낸 종이 한장의 소중함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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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규 2012-06-14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스윙보트라는 영화를 우연히 보고, 생각지도 못한 감동을 받아 참으로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검색을 해보다가 선생님의 글까지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스윙보트라는 영화를 결국은 정치적으로 해석하신 내용과 선생님의 서고에 놓여진 책들(나꼼수,문재인, 공지영--)을 보면서 약간의 정치적인 얘기를 좀 더해보고 싶어서 짧게 글을 씁니다. 저는 이른바 우파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좌파에 속해 있는 성향의 사람도 아닙니다. 다만 이 나라가 올곧은 도덕과 이념이 존중받고,세계 속에서 결코 무시받지 않는, 그런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파가 볼 때는 좌파에 가까운, 어느 정도는 진보적인 그런 성향
의 사람이라고 굳이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광화문에서 촛불도 들었고,진보 성향의 사람들에게 한 표도 기꺼이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제 행동에 조금씩 회의가 들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나꼼수의 끊임없는 아니면 말고 식의 헐뜯기 방송과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언행에도 서글픈 마음이 들고 있구요. 노무현 정부가 들어 섰을 때 그를 따라 청와대에 들어간 참모들이 제일 먼저 한 얘기는 "우리는 다르다!"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6개월도 안 되어 줄줄이 뇌물 수수 등으로 형사처벌 되는 모습을 봐야만 했습니다. 자기의 낡은 이념을 이제는 버릴 수도 없는 몸의 딱지처럼 붙이고 앉아 세속의 욕심 앞에 더럽혀져 가는 진보 좌파 인사들의 모습에 우울해져 가고 있습니다. 기존 새누리당의 이른바 기득권층의 부정 부패가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눈물이 흐릅니다. 반미를 외치는 박지원,한명숙,박영선,정동영 등도 뒤로는 자식들을 미국에 보내어 미국 시민 내지는 미국에 거점을 둔 양다리걸치기시민으로 키워가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 놀라게 됩니다. 철저한 반미에 철저한 좌익을 자처했던 전 KBS사장 정연주씨는 네 명의 자식이 다 미국 시민이더군요. 그럴 것 같으면 반미를 외치지 말았어여 합니다. 반미까지도 자신의 정치적 목적 내지는 입신을 위한 세속적 도구로 사용을 하고 있는 이런 인사들의 모습에 참담해집니다.
제가 이런 얘기들을 길게 한 건 다름이 아닙니다. 표리가 부동한 행태는 진보나 우익이나 다 마찬가지더라는 겁니다. 하지만 이른바 강남 좌파라는 사람들(저도 어쩌면 그 중에 한 명이었을 지 모릅니다), 이들의 무조건적인 반정부 성향과 무조건적인 나꼼수식의 선동 정치 성향이 이제는 너무나 우려스럽습니다. 이게 정말 이 나라를 위하는 길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같은 지식인 층에서 이제는 명확한 판단의 잣대를 꺼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앞뒤없이 그냥 써갈긴 글, 죄송합니다. 최근 나꼼수의 천박함과 진보인사들의 표리 부동함, 그리고 공지영 같은 작가의 노골적인 반감드러내기 행태 등에 너무나 상처를 많이 받은 후였는데, 마침 선생님의 서고에서 그 책들을 발견을 했기에 짧게 써보았습니다. 최소한 이 나라가 이렇게 천박해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갑작스런 댓글에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saint236 2012-06-14 19:21   좋아요 0 | URL
일단 저는 무슨 판단의 잣대를 제공할 수 있는 지식인은 아니라는 사실을 밟혀둡니다. 저도 찬규님과 같은 그냥 일반 국민입니다.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날 아직 돌도 안된 딸 아이의 손을 잡고 "아빠가 미안해"하면서 울었습니다. 그런 저를 아내는 어이없어하면서 쳐다보더군요. 아마 그때부터일 것입니다. 채 5년이 되지 않았는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공부해 보고 싶어서 이런 책 저런 책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보수 인사들의 꼴통짓에 속도 상하고, 진보라는 사람들의 삽질에 배신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내린 결론이 아직 한국에서 정치적인 선택이라는 것은 최선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차악을 택하는 것이구나입니다. 물론 지금도 차악을 선택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예전에도 분명히 그런 모습이 있었지만 어느 순간인가부터 나라가 편가르기에 열중합니다. 정책을 이야기하고 정치를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내편 니편을 가릅니다. 그리고 상대방편은 타협과 대화의 대상이 아니라 멸족의 대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소통과 대화도 같은 진영 안에서나 가능한 MB산성식의 사이비 소통이 전부인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진보나 보수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더욱 선동정치와 흑색 정치가 판을 치는 것이겠죠? 그게 참 안타깝습니다.

나꼼수, 공지영, 기타 진보적인 인사들의 천박한 발언은 그냥 저잣거리의 해학이라고 이해하시면 안될까요? 그런 세상도 있고, 그렇게 스트레스를 풀 수도 있구나 정도로 이해하셔도 되지 않을까요? 오히려 그런 해학이나 비난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고소 고발을 남발하는 여유없고 속좁은 권력자들을 비판해야 하지 않을까요? 오히려 사람을 그렇게 자꾸 천박하게 느끼도록 몰아가는 권력자들의 모습에 서글픔을 느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습니다. 강남 좌파, 리버럴 좌파, 샴페인 좌파, 캐딜락 좌파! 이런 것에 너무 실망하지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들도 결국은 정치인입니다. 정권 획득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하는 정치인이라는 말이죠. 통진당의 당권파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최선을 택할 수 있는 지혜를, 그것이 어렵다면 차악을 선택하는 영악함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실망하고, 짜증난다고 포기하는 것이 가장 비겁한 행동이 아닐까요? 님의 고민이 남의 고민이 아니라 저의 고민이고 이 땅을 사는 일반인들의 고민입니다.

참고로 저는 노무현 정부의 인사들을 진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유 시장 주의자이지 진보주의자는 아닙니다. 아무리 많이 쳐줘야 중도 우파정도? 물론 조중동이나 한나라당에서 보면 좌파겠지만 말입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데이비드 실즈 지음, 김명남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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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무언가 있어 보이는 제목이다. 게다가 표지도 깔끔하면서 심플하면서 아름답다. 거친 촉감도 좋다. 그래서 하이드님이 이달의 아름다운 표지로 선정을 했던가? 먼저 표지를 펴면 몇 장에 걸쳐서 추천사가 적혀있다. 감동적, 휴머니즘적, 유머러스, 과학적, 천재적 등등 온갖 찬사들로 치장되어 있는 추천사들이 일렬 종대로 늘어서 있다. 문학 동네에서 알라딘신간 서평단으로 그리고 나에게까지 이 책이 건네지게 된 이면에는 나도 일렬종대 가운데 동참하라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참 고민이다. 만약 내 돈주고 이 책을 샀다면 불같이 화내고, 똥밟았다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아직 책을 보는 안목이 부족하겠다고 투덜대고 말겠지만, 서평을 써달라고 받은 책이기 때문에 고민을 좀 해본다. 좋은 평을 썽줘야 하는 것인가? 나도 일렬 종대에 동참해야 하는 것인가? 잠깐 고민 끝에 그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고작 책 한권 때문에 독자로서의 양심이랄까, 혹은 투덜거림을 잊어버린다면 안하느니만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서두에 한참 잡설을 놀어 놓는 이유는 책이 마음에 안들기 때문이다. 

  우선 이 책이 인문학으로 분류된 이유를 모르겠다. 내용은 에세이다. 자기 아버지 이야기, 자기 이야기, 어릴 때 농구한 이야기, 지금은 어떻게 늙어가고 있는지 등등 정말 사소한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늘어 놓는다. 어느 부분에서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의 유언만을 모아 놓았다. 중간중간 과학적인 사실들(대체로 인체의 성적인 부분들에 관한 이야기이지만)이 끼워져 있지만 그것을 가지고 이 책을 인문학으로 분류하는 것은 넌센스가 아닐까? 문학으로 분류하는 것이 오히려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또한 이 책은 정말로 두서가 없다. 300페이지가 조금 넘는 분량으로 내용은 자기 삶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진도는 철학책을 읽는 것보다 더 안나간다. 편집과 구성이 이해가 안된다. 그리고 문맥이 많이 끊긴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들이 쌩뚱맞게 들어가 있다. 한참 자기 아버지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어느 작가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전혀 자연스럽지 않다. 번역하면서 혹시 몇 페이지씩 빼먹은 것 아닌가라는 의심이 들정도로 문맥이 맞지 않는다. 마치 책 한권을 다쓴다음 그것을 믹서기에 넣고 약간 거칠게 갈아서 다시 늘어 놓은 것 같다. 솔직하게 어설픈 무협지 한권만 못하다. 여기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찬사들이 주어진 것인지 모르겠다. 

  그 복잡한 내용을 읽고 간신히 저자의 생각을 끄집어 내 본다. 우리는 언젠가 다 죽는다, 인생은 생식과 번성을 마치고 나면 죽음으로 달려간다는 지극히 파괴적이고 비관적인 결론이다. 인생 뭐 있어, 죽으면 그만인데. 대충 이정도가 되지 않을까? 보통 죽음에 관한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 낸다면 인생의 유한성을 이야기하면서 열심히 살자는 시각과 어차피 죽을 거 뭐하러 열심히 사는가라는 허무주의적인 시각으로 양분되는데 이 책은 철저하게 후자이다. 그러다보니 이 책을 덮고 나서 갖는 생각은 이렇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그래서 어쩌라구? 

  참 재미없는 책이다. 내용도 없다. 기억에 남는 건 일렬 종대의 찬사문구뿐. 서평단 도서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읽지 않았을 책이다. 마지막으로 서평을 추천하면서 남긴 코멘트는 꿈보다 해몽이다. 어쩌면 내가 이 책을 소화하지 못할 정도로 무지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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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2010-04-09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단... 그래서 이런생각도 해 봅니다.
"우리는 읽었다. 그래서 어쩌라구~"

saint236 2010-04-09 17:08   좋아요 0 | URL
서평단 왈 "서평쓰라구..."
맘에 들지 않아도 책을 읽고 서평을 써주는 것(비록 좋은 서평을 써주는 것은 아닐지라도)이 서평단의 책임이 아닐까요.

비단길 2010-04-13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서평단이지만. 이책 받고서 서평단 계속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했다는. 다행히 두번째 책은 제대로 된 책이 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문학동네의 이름이 아까운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님의 평가의 100프로 공감하며, 쥐어짜듯 감상문을 올렸을 몇몇 서평단에게 안타까움도 느낌니다. 저는 고민끝에 쓰지 않기로 했는데, 다들 열심히 쓰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서평이 하나도 안올라오면 어쩌나 내심 걱정했다는...)

saint236 2010-04-13 22:03   좋아요 0 | URL
솔직하게 의무감으로 읽은 책입니다. 처음 제 서재에 놀러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기억의집 2010-04-21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리뷰 읽고 덧글 올릴려다가 지금 올려요. 요즘 이상하게 바뻐서....
김명남씨 정도면 상당한 번역가인데도 그런가요?
김명남씨는 과학책쪽은 알아주거든요. 저는 이 양반이 번역한 과학책은 제법 읽어봐서 이 양반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거든요. 이 양반이 지난 번에도 다른 분하고 이야기했지만 관계대명사 문장을 상당히 잘 잡아주거든요.
그런데 그 어려운 과학책도 잘 잡아주는 분이
에세이같은 이 책 번역은 그렇게 허접한가요?

saint236 2010-04-21 11:59   좋아요 0 | URL
번역이 허접하다기보다는 원문이 허접하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내용이 두서 없어요. 한글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단락단락이 연결이 안된다고 할까요? 번역은 이정도면 꽤 깨끗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억의집 2010-04-21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그리고 세인트님 낼 모레 500기기짜리 외장하드 세일하던데..이게 지금 14만원 돈하는데 500기기 정도면 많이 들어가나요? 그리고 500기기가 한 십만원이면 싸게 사는 것인가요?

saint236 2010-04-21 11:58   좋아요 0 | URL
10만원 정도면 적절한 가격이고요, 조금 더 발품팔고 여기저기 찾아보면 9만원대까지 내려가긴 하지만 10만원 정도면 괜찮습니다. 왠만한 영화가 avi파일이 700메가 정도고요, DVD화질 버전이 1.3~1.5기가 정도 하니까 대략 영화로는 400편~450편 정도, mp3파일은 엄청나게 많이 들어갑니다. 요즘 대세가 500기가 외장하드입니다. 1테라 외장하드는 아직....

기억의집 2010-04-21 12:19   좋아요 0 | URL
음 그렇군요. 외장하드 하나 장만하려고 하는데 마침 알라딘에서 세일한다고 하길래 괜찮다 싶어서 여쭈어 보았어요. 세인트님의 조언 고마워요^^
 

  요즘 텔레비전만 틀면 천안함 침몰에 대한 뉴스가 넘쳐난다. 백령도 부근에서 PCC-722 천안함이 칠몰했다. 1220톤급의 초계함인데 솔직하게 이게 어느 정도 크기인지 잘 모르겠다. 침몰한 배의 재원이나 무장이 무엇이었는지도, 연평해전에 참석했었다는 사실도 관심이 없는데 텔레비전에서는 이런 것까지 가르쳐 준다. 참 친절한 뉴스씨이다. 천안함과 관련되어 많은 의문점들이 제기된다. 

  첫째, 침몰 원인이 무엇인가? 침몰 원인에 대한 설명은 크게 다섯가지이다.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이냐, 암초와 충돌해서냐, 피로파괴냐, 미군과의 훈련 가운데 발생한 오폭이냐, 해군판 김일병 사건이냐. 그 중 제일 마지막 해군판 김일병 사건이라는 말은 워낙 황당한 발상이다 보니 금방 사그라들었고(어처구니 없게도 해군판 김일병일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친절한 뉴스씨이다.), 미군과의 훈련 중 오폭에 의한 것이라는 말은 굳건한 한미 동맹에 초를 치는 말이기 때문에 언론보도 통제가 되었다. 해군 2함대에 미군 이지스함 2척이 입항했고, 독수리 훈련을 하고 있다는 것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 북한이 천안함 침몰후 보인 유일한 대응은 한미 독수리 훈련 실시를 강력하게 비난한 것이다. 암초도 아니라고 하고, 정비를 잘했으니 피로 파괴일 수도 없다고 한다. 물론 북한이 넘어와서 어뢰를 발사한 것도 아니라고 한다. 분명 배는 침몰했다. 그리고 침몰 원인이 있다. 그런데 침몰 원인 5가지가 모두 아니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모두 맞다고 한다. 군에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침몰 원인을 찾으려고 한다, 지금은 이렇다 말하지 못하겠다고 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다. 언론은 북한 어뢰 발사로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다. 그럴듯한 시나리오가지 쓴다. 50~60대 층을 겨냥하여 명백한 북한의 도발이라고 호소한다. 그럴수도 있다는 내용을 실제로 그렇다고 믿도록 편집해서 계속 방영한다. 오늘 9시 뉴스에서도 그랬다. "북한의 어뢰에 의해 침몰했을 수도 있다."라는 말을 하면서 북한에서 사용한 어뢰는 아마 직접 타격식이 아니라 버블제트형일 것이라는 둥, 어뢰로 침몰하는 배를 CG처리 했는데 배의 함수에 722라는 숫자를 적어넣어 마치 천안함이 이렇게 북한의 어뢰로 인하여 두동강 났다고 결론을 내린 것 같다. 마치 현장을 직접 본 듯이 말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가능성이 제일 높다는 말이지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언론은 좀더 자제해야할 필요가 있다. 

  둘째, 북한이 천안함을 공격했다면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다른 침몰 원인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이유들이 제기되지만 지금 모든 관심은 북한의 어뢰에 의한 것이라는 데에 가 있으니 거기에 맞추어 생각해보자. 상식적으로는 한미 독수리 훈련에 대해서 강한 반발감을 보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혹은 가능성이 없지만 김정일의 군부 장악 능력이 약화되어 강경파들이 독자적으로 벌인 행위라고 볼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는 과거 간첩 사건의 재연이라는 것이다. 위기에 몰린 한국 정부가 위기 탈출용으로 북한에 요청했고 북한이 너무 과도하게 행동했다는 설이다. 물론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지만 이 이야기를 믿는 사람들도 분명이 있다. 그것도 극소수가 아니라 꽤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사건 때문에 4대강도, 한명숙 총리 공판도, 상수형의 좌파 발언과 묵언 수행도, 그리고 무엇보다 지자체 선거도 모두 조용하게 되었다. 지조없는 야당들도 모든 정치적인 행위들을 접고 천안함에 올인하게 되었다. 그런데 솔직하게 묻자. 천안함 사건이 4대강보다, 지자체장 선거보다, 한명숙 총리 공판보다 더 중요한 사안인가? 그들의 죽음을 폄하하는 발언은 아니다. 그들의 죽음은 국가의 안보를 지키기 위한 숭고한 것이다. 그리고 철저하게 진실은 규명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국가의 모든 대소사들을 다 때려치우고 올인할 정도로 중요한 사안인가? 여야가 자기들의 정치적인 행위를 모두 포기하고 올인하고 박터지게 싸울 사안인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의도했든 아니든 결국 천안함 사건은 정국 전환용 사안으로 이용되어 버렸다. 그러니 북한에게 사주한 작품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는 것도 이해가 된다. 

  천안함 사건을 바라보면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몇명이 죽었다는 것이 아니다. 국가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을 기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가 발표한 것에 대해서 도무지 믿지 않는다. 국가 기밀이라면 왜 국가 기밀이라고 따진다. 이렇다 말하면 저것이 아니냐고 한다. 그럼 저것인가 보다 그러면 그게 말이나 되냐 이것이 아니냐고 한다.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는다. 온통 음모론만 커질 뿐이다. 대통령의 말도 신뢰를 잃었고, 군의 말도 신뢰가 없다. 국방장관의 말은 시알도 안먹힌다.(아마 여의도에 신의 아들들이 많아서 인지도 모른다.) 국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어덯게 회복할 것이냐가 가장 큰 문제이다. 그런데 여지것 해온 일들을 볼 때 그것은 참 지난한 일일 것 같다. 차라리 2함대 사령부 앞에 명박 산성을 다시 한번 쌓는게 더 쉬울 것 같다. 

  천안함 사태를 바라보면서 내가 내린 침몰의 원인은 이것이다. 모두가 아니라고 하고 가능성이 없다하니 이것이 가장 설득력 있는 침몰 원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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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책읽기, 다독술이 답이다
마쓰오카 세이고 지음, 김경균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갑자기 육두문자가 튀어 나왔다. "네 멋대로 해라, 네 마음대로 해라." 이런 의미의 말이지만 이 책을 읽고 난 다음의 내 느낌을 확 전달해줄 말을 고르다 보니 이렇게 쓰게 되었다. 어찌되었든 책을 보고 난 후 내가 가졌던 생각이 가장 적절하게 표현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창조적 책읽기"라는 말에 끌렸다. 다독술이 답이라는 말에도 호기심이 마구 생겨났다. 알라딘 5기의 마지막 책이 뭔가 대단한 것이 왔다고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 독서에 관한 책이라는 찜찜한 구석이 있었지만 뒤로 미뤄두고 이 책을 읽음으로 인해서 내 독서 인생에 무언가 중요한 전환점이 생길 것 같아서 기대했음도 사실이다. "부의 미래"라는 엘빈 토플러의 책을 살 때 같이 근무하던 후배가 알라딘을 소개시켜줬고, 아무 생각없이 알라딘에서 책을 산 나는 2년동안 알라딘에서 놀기 시작했다. 첫해에는 30권인가 50권인가 읽었고, 다음해에는 70권인가 80권을 읽었고, 올해는 100권을 목표로 열심히 달리기 시작했다. 알라딘 서평단에 선정되면서 내 책읽기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요즘 살아가는 재미가 "책질"인지라 독서에 관한 책, 그것도 창조적이라는 어마어마한 단어를 사용한 다독술에 관한 책이었기에 기대했지만, 이 책은 내 기대감을 깨끗하게 배신했다. 

  책장은 술술 넘어간다. 앉아서 4~5시간이면 충분하게 읽을만한 책이다. 내용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것이며, 편집이 성기다는 의미다. 지은이 마쓰오카 세이고를 옮긴이는 독서의 신이라고 떠받는다. 하루에 한권씬 일고 서평을 쓰기로 작심하고 초과해서 목표를 달성했다고 하니, 더군다나 소장하고 있는 책들이 몇 만권을 넘어간다하니 내공이 심상치않은 사람임은 확실하다. 그런데 궁금한 건 내가 이 사람의 책읽는 방법에 대해서 왜 알아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책 읽는 방법에 대한 몇가지 원칙을 소개한다. "목차를 꼭 읽어라. 키북을 찾아라. 한 사람이 맘에 들면 한 놈만 조져라. 비슷한 내용의 책을 몇권씩 같이 읽어라. 책은 두번 이상은 읽어라. 밑줄 그으면서 읽어라. 연표를 작성하면서 읽어라." 등등등. 저자가 권해주는 책읽는 방식은 결국 재미있게 책을 읽기 위해서이다.  

  그렇다. 독서의 가장 큰 의미는 재미다. 책속에 길이 있다는 말 예부터 성현들이 한 말이지만 난 솔직하게 이 말 때문에 책을 읽는 것이 아니다. 취미 생활이다. 그냥 재미다. 물론 여러가지 습득하는 것들은 부가적인 것들이지만 그것이 목표가 아니라 재미다. 한권을 다 끝내고 서평을 쓸 때의 그 짜릿함. 전공서적이나 내 일을 위해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니라 단순히 재미를 위해 읽는 책들, 그리고 읽고 난 다음 소화가 되었든 안되었든 끄적거려보는 과정. 솔직하게 난 이게 독서의 목적이고, 이유이다. 물론 나도 원칙이 있다. "전공서적이 아닐 것, 일과 상관 없는 것일 것, 만약 여기에 연관된 책이라면 카운트하지 말 것, 주로 인문 사회 분야를 팔 것, 그 외에는 닥치는 대로 읽을 것" 등등. 이게 내가 독서하는 방식이고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잡식성 독서이다. 

  어릴 때부터 시험을 보면서 자란 사람인지라 답이라는 말에 무척 민감하다. 정답 아니면 오답! 대충 이런 느낌이랄까? 저자가 "다독술이 답이다"라는 표현을 쓰면서 호기심을 유발하지만, 난 이 말이 너무 부담으로 다가온다. 저자의 오만 같아서 눈살을 찡그린다. 여러가지 흥미로운 내용과 해볼만한 것들이 나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고 기분이 나빠지는 것은 순전히 답이라는 말 때문이다. 독서의 답을 원하는가? 꼴리는대로 해라. 그게 답이다.  

ps. 다른 알라디너들에게도 답이라는 말이 무척 거슬렸나 보다. 서평단의 서평들이 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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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3 2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int236 2010-04-03 23:17   좋아요 0 | URL
그렇죠 솔직한 서평이 제일 좋은 거죠. 일단 누군가 보기 전에 자기가 먼저 만족해야 하는 것이 서평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