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플 땐 둘이서 양산을
김비.박조건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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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은 책에 대한 느낌이나 국내외의 여행, 혹은 소소한 일상을 적거나, 서툴게 그린 그림을 네이버블로그(blog.naver.com/sanmani)에 올리면서 비슷한 취미를 가진 여러 사람을 알게 되었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올려놓은 블로그를 통해 어제는 어떻게 보냈고, 오늘 읽은 책은 무엇인지, 내일은 어디로 여행을 떠날지 알게 되었다. 그러면 기껏해야 하트 모양의 ‘좋아요’나 이웃 신청, 댓글 몇 줄 남기는 것이 소통의 전부였지만, 나와 비슷한 생각과 관심을 공유한다는 것에 대한 묘한 연대감으로 오래된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반가웠다.
  박조건형 님도 이렇게 블로그*를 통해 먼저 알고 있었다. 그의 블로그에는 산업현장에서 짬짬이 그린 그림들이 가득했는데, 투박하지만 노동의 끈끈함이 묻어있는 진솔한 그림들이 인상 깊었고, 힘겹고 무력한 삶을 어떻게서든 헤쳐나가려는 그의 익살과 끈질김이 와 닿았기에 바로 이웃으로 등록하고는 놀라움과 감탄으로 블로그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던 중 그의 짝지와 함께 <슬플 땐 둘이서 양산을>을 출판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와 함께 사는 김비 님은 그의 그림에서 많이 봐왔기에 낯설지는 않았지만, ‘트랜스젠더 소설가’라는 출판사의 소개글을 보고 많이 놀랐다. 동네 아줌마 같은 편안하고 넉넉한 모습으로 건형 님을 지켜주는 든든한 동반자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박조건형 님 못지않게 힘겹게 살아왔을 거라는 생각에 이들의 이야기에 더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서둘러 서평단을 신청해 읽게 되었다. 

 

  <슬플 땐 둘이서 양산을>에서는 박조건형 님과 김비 님이 살아온 현재진행형의 삶을 번갈아가며 들려주는데, 두 분이 겪은 하나의 일을 각자의 시선으로 적고 있다. 이들의 만남과 연애, 동거와 결혼, 여행과 일상, 그리고 가족과 지인들과의 이야기가 카톡을 주고받듯이 교차된다. 마치 두 분의 이야기를 곁에서 듣는 것처럼 사실적이다.
  첫 글인 <첫 만남>은 <냉정과 열정사이>의 준세이와 아오이처럼 흥미로웠고, <나의 시작>에서는 둘의 힘겨웠던 가족사가 안타까웠다. 물론 티격태격하는 모습이나 냉전상태의 어색함도 살짝 드러나지만, 둘만의 방식으로 극복해가는 과정이 재미있다. 서로의 얼굴에 상대방의 발바닥을 자랑스럽게 갖다 대고는 익살스럽게 웃고 있는 그의 그림**처럼...

 

  특히 박조건형 님 이야기의 대부분은 우울증과 연결되어 있다. 이것이 단순한 증세인지 아니면 질병인지, 어떤 원인으로 발생하고 어떻게 치료하는지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임신과 출산 초기에 많이 힘들어했던 아내가 생각나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아내는 그때를 회상할 때면, 당시에는 극단적인 생각도 많이 했었다고 이야기하는데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아직도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누적되는 육아의 힘겨움에 몸과 마음이 다운되곤 했었는데, 한번 기분이 꺾이기 시작하면 섣불리 다가갈 수도 없었고, 내가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망막했었다. 나는 눈물을 보이며 불만을 토로하는 아내를 다독이며 도와주기보다는 도망치기 바빴던 것 같다. 지난 일을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아내의 목소리에 숨겨진 힘겨움이 느껴지기에 그저 미안하고 지금까지 잘 버텨온 것에 고마울 따름이다.

 

  “나는 아직도 내가 문학이라는 돌 하나로 무얼 할 수 있을지 잘 모른다. 돈도 안되는 걸 왜 그리 오래 붙잡고 있냐고, 어서 내다 버리라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지만, 이번 생은 그 돌을 계속 만지작거리며 살게 될 것 같다. 돈이 안 되고 걸작을 남기진 못하더라도, 울고 싶은 이들의 쪼그린 발 아래 집어 던질 수 있는 돌 하나는 될 수 있지 않을까?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김비”(p172)

 

  책 후반에 담긴 김비 님의 글에서처럼, 문학이라는 그녀의 돌은 그림이라는 박조건형 님의 돌이 되고, 또 행복이라는 그들의 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아가 이런 돌이 하나씩 모인다면 우리 사회도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힘들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리 순탄할 것 같지 않은 이 커플이 서로 돕고 의지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응원하고 싶다. 블로그와 소설, 그림을 통해 이들만의 삶을 완성해가는 모습을 오래도록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 박조건형 님 블로그 : https://blog.naver.com/buddhkun2

** 서로 얼굴에 발(박조건형, https://blog.naver.com/buddhkun2/222039346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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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수영
아슬 지음 / 애플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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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영강습을 시작한 때가 2012년 정도인 것 같다. 매일 새벽, 직장 근처에 있는 지역스포츠센터에서 한 시간 정도 수영을 배우고 출근했던 기억이 난다. 발차기부터 시작해 벽을 잡고 팔을 돌리고, 음~파하며 숨 쉬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25m 길이의 풀은 왜 그리 긴지 아무리 버둥거려도 나아가는 것도 없으면서 힘들기만 했다. 이렇게 한 달, 두 달, 세 달... 그 다음 해 겨울에는 제법 수영을 했던 것과 겨울방학을 이용해 찾은 동남아의 한 호텔에서는 아주 그럴싸하게 수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수영장에 익숙해지자 바다에 나가기 시작했다. 부력이 있는 슈트를 입고 해운대, 송정해수욕장에서 수영을 했고, 핀수영 대회도 몇 번 참가했다. 그리고 2015년에는 1.5km 수영과 40km 사이클, 10km 달리기 코스를 한 번에 돌아야 하는 트라이애슬론 대회도 완주했고, 프리다이빙을 배우면서 수심 20m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수영을 좋아하지? 문득 왜 그렇게 수영에 빠져들었는지 자문해본다. 우선 물이 좋았다. 여름철에 들렀던 해변의 뜨거움은 물론이고, 저렴하게 방문할 수 있는 동남아의 에매랄드빛 물색도 황홀했다. 수영이 가능하다면 보다 많은 것을 느끼고, 깊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카약, 윈드서핑, 스쿠버다이빙 등 바다 스포츠에 대한 접근이 훨씬 쉬울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난 발이 닿지 않는 수심에서도 편안해지고 싶었다. 물의 흐름에 나를 맞기고 튜브나 구명조끼 같은 보조기구 없이 오롯이 홀로 있는 나를 즐기고 싶었다. 일렁이는 바다에서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가 작은 미니어처와 같이 작아 보이는데, 저 좁은 곳에서 그렇게나 아등바등 살아왔던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부드러운 해수의 차가움은 나를 되돌아보게 했다.     

 

  바다에 대한 이런 그리움으로 읽게 된 책이 <오늘도, 수영>이다. 수영을 배우려는 사람이나 막 시작한 사람이 수영장에 가는 길에 잠깐씩 읽을 수 있도록 두 세 페이지 분량의 소사들이 심플하게 적혀있다. 한 손에 잡히는 크기는 핸드백이나 수영가방에도 쉽게 들어갈 것 같다. 쉬엄쉬엄, 2비트 킥을 차며 장거리 수영을 하듯 여유롭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땀 내 가득한 달리기의 끈적끈적함을 적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나 여행 이면의 가치와 깊이를 깨닫게 해주는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처럼 깊은 맛은 없다. 수영에 대한 깊은 성찰보다는 단순한 요깃거리 정도라 보면 되겠다. 그래서 지금 막 수영을 시작하려는 분이나 수영이 늘지 않거나 번거로워 포기하려는 수린이(수영 어린이)에게 권하고 싶다.

 

  수영을 먼저 시작한 선배(^^)로서 조언하자면, 최소 1년은 꾸준하게 배워야 수영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다는 것과 2년 이후에는 꼭 바다에서 수영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바다와 친해지면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으니, 오늘도, 수영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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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너머로 달리는 말
김훈 지음 / 파람북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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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은 전투와 같고,

표현은 양보할 수 없다.

<달 너머로 달리는 말>, 김훈

 

소설책의 날개지에 적힌 작가의 말로 이 한 문장으로 <달 너머로 달리는 말>은 표현되리라.

현실에 존재할 것 같지 않은 두 나라(초(草)와 단(旦))와 두 말(야백(夜白)과 토하(吐夏))의 이야기는

대결과 상생, 비유와 반어를 통해 하나의 전설이 되었다.

어떤 일에 몰두하다 보면 왜 이렇게 집중하고 있는지 모호해질 때가 있다.

무엇을 위해 달려가는지, 이쪽이 맞는 것인지 자신도 혼란스럽지만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되돌아갈 수도 없다.

지나간 시간은 먼지처럼 흩어지고, 다가올 시간은 기약할 수 없는

나이가 되어버린 김훈(1948년생) 작가의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달 너머로 달리고 싶으나 현실과 이상, 시간과 공간이라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우리의 역사, 인간의 삶이 아니던가.

최근 건강이 나빴다는 작가의 인터뷰가 기억난다.

그리고 초와 단의 지형이 한강을 사이에 두고 나뉜 서울을 생각나게도 한다.

소설 속 이야기를 쫓아가기보다 그 위에 비친 '달리는 글'을 따라가야 하겠다.

소설은 새로움이고,

김훈은 후퇴할 수 없다.

초(草)는 야생과 같고,

단(旦)은 지킬 수밖에 없다.

술은 채워야하고

잔은 비울 수밖에 없다.

독자는 읽어야 하고,

독서는 기다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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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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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의식중에 행해지는 차별을 통해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한마디로 "기울어진 세상에서 익숙한 생각이 상대방에게 모욕이 될 수 있음"(p37)을 지적한다.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평등하고 차별을 싫어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그럴 의도가 없었음에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우리들의 차별을 다양한 연구결과와 구체적인 사건으로 제시한다. 그래서 우리는 사회적 관습이나 습관, 고정관념이나 편견, 혹은 무지와 부주의로 악의적 의도는 없었지만 차별을 행하는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내가 일하는 곳은 특성화고로 옛날에는 실업계, 전문계로 불렸 직업교육 중심의 고등학교다. 그래서 대학진학보다는 자신만의 전문기술을 배워 졸업과 함께 기업에 취업해 사회적으로 독립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 하지만 여전히 학벌 중심의 사회가 견고하고, 학부모 대부분이 자녀들의 대학진학을 원하고 있어, 특성화고를 일반계고(인문계고)에 갈 수 없거나 탈락한 학생들이 가는 학교쯤으로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공부에 관심이 없고 놀기 좋아하는, 심지어는 문제 학생들이 모여있는 곳이 특성화고라는 편견을 심화시키고 있다.

  그래서인지 특성화고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이 책을 읽는 동안 따라다녔다. 특성화고에 대한  이런 편견은 졸업 후에도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며 사회적인 차별을 낳았고 이는 특성화고의 원래 취지였던 취업과 사회생활을 더욱 어렵게 했다. 기업은 특성화고 출신을 꺼리게 되고, 학부모는 자녀들의 특성화 진학을 말렸다. 물론 공부에 기초가 부족하고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친구와 다투는 등의 문제도 있지만, 이는 일반계고에 진학한 학생도 마찬가지 겪는 문제다. 일부의 문제를 전체의 것으로 일반화시키지는 말아야겠다.

  특성화고의 직업교육은 우리 사회를 근대화하는데 많은 밑거름이 되었다. 국·영·수 성적은 조금 낮을지 몰라도 전자, 컴퓨터, 기계, 관광, 조리, 보건, 행정, 미용 등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해 나갔고, 이런 작은 기술과 노동이 우리 사회를 윤택하게 만들었으니 이보다 큰 보람과 행복이 어디 있겠는가... 

 

  특히 장애인 문제에 대해서는 더 큰 벽에 가로막혀 있다. 장애인은 비장애인의 도움을 필요한 수동적인 존재로 인식해 보살피고 보호해야 하는 대상으로만 생각해왔다. 장애라는 말을 함부로 쓰면서 부족과 결핍, 모자람의 대명사로 웃어넘겼다. 이런 인식들은 부지불식 간에 우리들을 선량한 차별주의자로 만들었고. 그럴 의도가 없었음에도 누군가를 상처 입게 했다. 특별한 의도 없이 호수 위로 던진 자갈은 몇 번의 물수제비를 거쳐 아득한 곳의 상대를 다치게 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차별을 이야기하지만, 실상은 우리들의 무지와 편협, 이기심을 꼬집는다. 아무리 공정하고 차별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자신의 생각과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는 없다. 오히려 민주적이고 정의롭다고 자만하는 사람일수록 더 좁은 시각을 갖고 있을 확률이 높다.

  착각하지 말자. 우리는 민주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그래서 조직과 절차가 필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자신에 대한 지나친 자만을 버리고 저 멀리, 사회 전체를 내다봄으로써 기울어진 세상을 자각해야 할 필요가 있겠다.

 

  30페이지에 달하는 빼곡히 적힌 주석과 참고문헌은 이 책을 쓰기 위한 노력들을 여실히 보여준다. 마치 무의식중에 뱉어버리게 되는 일상 속의 차별을 꼼꼼히 걸러내겠다는 김지혜 작가님의 의지를 보는 듯 했다. 지금은 이런 꼼꼼함과 세세함으로 세상에 만연된 차별과 싸워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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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 세트 - 전4권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
김홍모 외 지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 / 창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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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주 월요일이 5·18민주화운동기념일(40주년)이라 한국사 선생님과 함께 5·18 영상을 만들어 올렸다.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신군부와 맞섰던 5·18민주화운동 : https://youtu.be/xTW9PBcCixM)

 

   그리고 조금 전에는, 얼마 전 아들과 함께 보려고 사 뒀던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을 꺼내 들었다.

   총 네 권으로 이루어진 역사 만화 시리즈로 <빗창>(김홍모, 제주 4·3), <사일구>(윤태호, 4·19), <아무리 얘기해도>(마영신, 5·18민주화운동), <1987 그날>(유승하, 6·10민주항쟁)으로 구성되어 있다.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세트, 4)

 

   오후에 5·18 관련 영상을 편집하며 영상의 내용을 들었던 터라 <아무리 얘기해도>(마영신, 5·18민주화운동)부터 먼저 집어 들었다. 전두환 신군부 세력에 맞서 민주화를 끌어냈던 광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리 오래된 역사도 아니고 많은 책과 영화로 만들어진 사건이라 많이 들어봤지만 정작 그 의미와 가치를 잊거나 혼동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아무튼 이번 기회를 통해 다시한번 되세겨볼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다.

  특히 신·구세대가 느끼는 5·18의 차이가 만화에 잘 녹아 있는 것 같다. 군사독재와 학살, 조작과 은폐, 위선과 같은 거대한 소용돌이로 각인된 기성세대와는 달리, 신세대는 스마트폰에 넘쳐나는 짤방처럼 단순한 호기심과 이야깃거리로만 인식하고 있는 넘사벽의 현실을 안타깝게 보여준다.

 

   <빗창>(김홍모, 제주 4·3)은 해방 직후 제주도에 일어난 일들을 주목한다. 4·3 사태가 왜 일어났는지 살펴보고 어떤 아픔이 있는지 해녀의 빗창(전복을 채취할 때 사용하는 도구)을 소재로 푸른 바다와 함께 그려놓았다. 크게 숨을 들이쉬고 제주의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특히 수묵화처럼 붓으로 그린듯한 거친 느낌이 아주 신선했다. 거칠면서 섬세하고, 투박하면서 부드러운 붓 맛이 일품이다.

 

<빗창>(김홍모, 제주 4·3)의 한장면

   <사일구>(윤태호, 4·19)는 이승만 정권의 부정과 독재에 맞선 항쟁으로 1960년 일어났다. 5·18과 마찬가지로 드라마와 영화로 많이 소개되었는데 <유지광>, <장군의 아들>, <야인시대> 등과 같이 이승만 정권 막바지의 혼란기를 다룬다.

   <사일구><이끼>, <미생>을 그린 윤태호 작가의 작품이라 그림에 눈에 익었다.

 

   마지막으로 읽은 책은 시간상으로 가장 최근인 <1987 그날>(유승하, 6·10민주항쟁)이다. 특히 최근에 광주에서의 비극에 대한 책임을 묻는 공판이 있어 많은 논쟁거리가 되었다. 물론 여기 출두한 전두환은 꾸벅꾸벅 졸며 모르쇠를 일관해 다시 한번 국민의 지탄을 받았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이한열 열사의 죽음으로 촉발된 6·10민주항쟁은 전두환이 물러나게 했지만, 그의 후계자격인 노태우가 등장함으로써 6월의 봄은 짧게 끝나버렸다.

      

   역사는 계속 반복된다. 4·3, 4·19, 5·18, 6·10으로 이어진 민주화운동은 아직도 진행 중인 것 같다. 최루탄이 터지고 총알이 날아니지는 않지만, 사회 곳곳에는 여전히 부조리와 맞선 사람들이 있다. 공권력이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기업과 단체, 개인이 각종 폭력의 주체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것이다. 민주화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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