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 유홍준 잡문집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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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얼마 전 창비부산에 방문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출판 30주년이 전시회를 둘러봤었다. 대학 시절, 유홍준 님의 답사기를 읽고, 우리의 역사와 문화재, 그리고 여행과 글쓰기에 대해 많은 탄성과 공감으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인지 SNS에서 본 그의 잡문집 출판 소식에 사정없이 주문! 머리글과 첫 산문을 읽자마자 "역시, 유홍준이야, 글은 이래야 제맛이지~" 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을 한 페이지씩 넘길 때마다 유홍준 님의 우리 문화재에 대한 애정이 진하게 배어 나온다. 자신을 수줍게 숨기면서 주변 모두를 하나로 보듬을 수 있는 여유와 넉넉함이 저절로 느껴진다. 그래서 한 권의 산문집을 읽는 게 아니라, 그가 세상을 보고 느끼며 살아왔던, 저 깊은 곳에서 울리는 삶에 대한 자세를 느끼게 된다. 그래서 손은 자꾸 책을 쓰다듬게 된다. "아, 난 이렇게 살 수 없을까?"

은 그리고 나를 자꾸 떠나라고 부채질한다.

"보길도 고산 윤선도의 원림인 세연정에 떨어진 동백꽃이 둥둥 떠 있을 때, 다산 정약용이 유배 시절 즐겨 찾았던 강진 백련사의 동백나무 군락지는 천연기념물 그 숲속 자그마한 승탑 주위로 떨어진 동백꽃이 가득 널려 있을 때는 가히 환상의 나라로 여행 온 것 같다."(p30)

유홍준 님이 알려준 길을 따라 다가올 초봄에는 보길도로, 백련사로 가야겠다.

에는 유머와 위트가 빠지지 않는다.

정부의 각 청장들이 모여 10만 제곱킬로미터, 즉 300억 평 정도되는 우리나라 땅덩어리에서 자신들이 관할하는 면적을 주고받는 부분(p108)이 재미있다.

"우리나라 면적 300억 평 중 3분의 2가 산이기 때문에 산림청은 200억 평을 관리합니다."

"경찰청은 에눌 없이 300억 평의 사람을 대상으로 합니다."

"우리나라 바다는 영토의 4배이나 해양경찰청은 1,200억 평을 관리합니다."

"문화재청이 직접 관리하는 것은 5대 궁궐과 40개 조선왕릉이지만 전국에 산재해 잇는 구보, 보물뿐만 아니라 300억 평 땅속에 있는 매장문화재도 관리하고, 1,200억 평 바다에 빠져 있는 침몰선 200여 척의 수중문화재도 관리합니다."

"우리 기상청은 업무 면적이 평수로 계산이 되지 않아요."

의 <제3장 답사 여적>에서는 백두산과 중국, 일본을 답사하며 느낌 점이나 후기를 모아 놨다. 한중일 삼국에 대한 편견 없는 이해와 식견이 느껴진다. 특히, 중국의 발전을 소개하며 이들이 자주 쓰는 말인 '인인유책'(사람마다 책임이 있다, p148)이라는 단어가 인상적이다.

나의 가족과 만나는 사람들, 직장에서의 일이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공동체의 문제라는 인식이 공감된다.

"거리 청결 인인유책"

"문화재보호 인인유책"

"문명 창달 인인유책"

,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는 앞서 말한 것처럼 여행과 유머, 깊은 식견과 더불어 다양한 사람들이 나온다.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 백남준, 거칠고 투박한 서민의 삶을 담은 오윤, 학전의 이끈 딴따라 김민기 등 유홍준 님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많은 이들을 느껴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 가장 집중해 읽은 것은 부록에 실린 '나의 글쓰기' 부분이었다. 아무런 인연도 없던 그를 따라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떠난 것도 다 그의 유려한 글 때문이지 싶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과장이나 가식 없이 진솔하게 풀어쓴 그의 글은 나는 물론 우리 사회를 감동시켰고, 그 덕분에 이렇게 다시 그의 책을 펼친 것이 아니겠는가.

긴 호흡으로 읽으며 "역시, 유홍준이야, 글은 이래야 제맛이지~"라는 감탄이 절로 나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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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의 비밀 수영 클럽 VivaVivo (비바비보) 53
하이은 지음 / 뜨인돌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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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점에서 수영과 관련된 책을 검색하다가 찾은 청소년 소설로, 유광으로 처리된 번쩍이는 파란 표지엔 아주 잘 생긴 남녀 한 쌍이 수영장에서 이야기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래서 너무 비현실적이거나 만화 같은 느낌은 아닐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청소년 소설이 갖는 특징, 가령 읽기 부담 없는 분량과 머리 아프지 않고 술술 읽을 수 있지 않을지 하는 마음에 책을 펼쳤다.

고등학교 수영 선수인 유영은 최근 기록이 향상되어 한국 신기록을 세우는 등 온 나라의 주목을 받게 된다. 하지만 자신을 향한 아빠의 기대와 주변의 부담감으로 결승전에서 기절하게 되고 긴 슬럼프에 빠지게 된다. 유영은 잠시 쉴 목적으로 일반 고등학교에 다니게 되는데 이때 전학 온 무명 아이돌 그룹의 재현이 자신이 곧 있을 수영 대회에서 1등을 해야 한다며 유영에게 수영을 가르쳐 달라고 한다. 그녀는 돈만 생기면 수영을 그만두고 어디로든 도망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승나하고, 한밤의 비밀 수영 과외를 시작한다.

삼류 드라마 같은 비현실적인 주인공 조합과 조금은 뻔해 뵈는 스토리, 단편적인 인물 설정이지만, 주변의 관심이 두렵기만 한 유영과 그 관심에 목말라하는 아이돌 가수인 재현의, 상반되지만 은밀한 관계(?)가 나름 재미난다.

아무도 없는 백화점이나 마트에 들어가 자기 마음대로 난장을 부리는 상상처럼, 불 꺼진 수영장에 홀로, 혹은 단둘이 들어가 수영한다는 설정이 재미있다. 좀 손발이 오글거리긴 하지만, 청소년들이 읽기에는 두루 재밌는 요소를 갖춘 것 같다.

특히, 폭발해버린 유영과 아버지와의 고조된 갈등이 사랑과 우정, 믿음으로 하나씩 치유되는 과정이 흐뭇하다. 좀 뻔한 결말이긴 하지만,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았다는 안정감이랄까... 아무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화려한 빛과 이를 지탱하는 그림자가 항상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공감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심야의 비밀 수영 클럽>은 물과 함께하는 수영과 비슷한 것 같다. 물은 한없이 부드러운 듯하지만 차갑고 강하며, 잡힐 듯하면서도 모두 빠져나가 버린다. 이런 물에서 균형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절대 이기려거나 맞서면 안 된다. 물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나를 내려놓을 때 비로소 수영이 되고, 편안해지는 것 같다.

"팔을 쭉 뻗으며 발끝을 움직였다.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니, 부드러운 물결이 나를 감싸 안는 게 느껴졌다. 이렇게 수영을 하고 있으면 꼭 물과 포옹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묘한 편안함이 있다고나 할까."(p97)

수영을 하면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는 것 같다. 머리를 들면 몸은 가라앉고 머리를 숙이면 비로소 나아갈 준비가 된다. 팔과 다리의 힘보다 부드러움과 균형으로 물을 가른다. 물살을 가르며 나아갈 때 수영장 바닥에 박힌 타일은 흘러가 버린 시간처럼 아득하다. 거친 파도에 떠다니며 보는 해안 도심의 풍경은 가소롭다. 수영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재현의 시합을 보며 느꼈다. 결과를 내지 못했다고 해서 그 노력이 퇴색되는 건 아니라는걸. 나는 지금껏 잘해야 된다는 생각에 매몰돼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쉽게 단정 지었다."(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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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한 자전거 여행 4 - 세상 끝으로 창비아동문고
김남중 지음, 오승민 그림 / 창비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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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9박11일 일정으로 스페인 여행을 다녀왔다.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인근의 몬세라트와 시체스, 토사 데 마르와 지중해에 위치한 마요르카 섬까지 둘러보는 일정으로, 가우디와 바다를 컨셉트로 즐겁게 돌아다녔다.

이때 톱니 모양의 몬세라트 산을 트레킹했는데, 푸른 하늘과 대비된 기암은 그 분위기만으로 우리를 압도했었다. 나를 둘러싼 거대한 바위는 크기는 물론이고 모양까지도 사람의 형상과 비슷해 마치 천상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는 신들의 모습 같았다. 속세에 찌든 우리가 감히 범접하기 힘든 위엄이 서려 있었고, 나의 속마음까지 꽤 뚫어보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얼마 후, 창비에서 한 책의 서평단을 모집한다는 말에 신청했는데, 책을 받고 보니 중학교 1학년 호진이가 할머니를 따라 엄마와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여행하는 내용이었다. 앗, 그런데 가만히 보니 얼마 전에 다녀왔던 몬세라트도 그 유명한 산티아고 순례길에 속한다고?

산티아고 순례길은 프랑스 생장에서 출발해 스페인 서부, 산티아고 대성당에 이르는 800km 길이의 도보 여행길이지만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의 다른 지방에서 출발하는 루트도 있다고 했다. 바르셀로나를 출발해 몬세라트를 지나는 까탈란 루트인데, 내가 마치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하기라도 한 것 같이 반갑고 신기했다.

그래서 나는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호진이의 말동무가 되어, 스페인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동행하게 되었다.

일흔이 다 된 나이에, 산티아고 순례길에 가겠다고 경비까지 마련해 놓은 할머니(조순례)를 따라 호진(신호진)과 엄마(임봉선)는 프랑스 생장으로 떠난다. 여행이란 것이 다 그렇지만 처음에는 즐겁고 순탄했지만 피로가 누적되고 할머니가 다치면서 위기가 닥쳐온다. 설상가상으로 할머니가 암 환자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여행을 계속해야 할지, 여기서 중단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지 고민하던 차에 호진이가 활동하고 있는 '여자친구'(여행하는 자전거 친구)의 도움으로 '당나귀'라는 이름의 삼륜 자전거를 만들게 되고, 이 자전거를 타고 순례길을 계속한다.

나도 여행을 좋아해 땅끝에서 강화도까지 도보여행을 시도하고, 자전거를 타고 제주도 일주와 부산에서 삼척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나흘 동안 지리산을 종주하거나 울릉도를 혜집고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사흘 이상의 장거리 여행, 그것도 도보나 자전거 여행을 떠나 본 사람은 알리라. 출발 전에 가졌던 낭만과 기대는 길어지는 여행 속에 피곤과 짜증으로 쌓이고, 먹는 것이나 씻는 것이 부족하다 보니 행세는 거의 노숙인처럼 변해 간다. 갈 길은 멀지만 계획은 어긋나고 의견도 분분해진다. 목숨마저도 아깝지 않았던 가족과 친구는 거추장스러운 짐이나 방해꾼처럼 변해버린다.

그 어려움을 알기에 호진이의 가족 여행이, 자전거 여행이 아름답게만 보이지 않는다. 결국에는 모든 문제가 잘 해결되리라는, 그래서 해피엔딩이 될 거라고 예상은 되지만, 매 페이지마다 담겨있는 고된 여정과 그 속에 남아있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깊이가 예사롭지 않다.

여행이 갑갑한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문화를 접하거나, 먼 이국땅에서 멋진 사진을 찍어 인스타에 올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여행이 갖고 있는 조금은 본질적인 역할을 생각하게 된다. 바로 자신과 오롯이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인데, 여행이 고되고 힘들수록, 일정이 길고 팍팍할수록 더 명확해지는 것 같다.

힘들고 극한으로 치닫게 되는 어려움 속에 말은 물론이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생각은 줄어든다. 오히려 오랫동안 감추어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저 깊은 곳에 숨겨진 마음들이 하나씩 고개를 쳐들며 튀어나온다. 그때 왜 그랬어? 꼭 그랬어야만 했니? 라며 되물으며 나를 부끄럽게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이런 생각마저도 들지 않는 고요함에 이르게 되고, 자신의 발걸음, 땀방울, 심장 소리에 깨어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 이것이 진정한 여행임을 알게 된다.

호진이의 산티아고 순례길은 세상을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싶었던 엄마의 숨겨진 이야기이자, 그런 딸의 꿈을 펼쳐주지 못한 미안함과 인생의 끝을 향해가는 나이에 세상의 끝을 걷고 싶은 할머니의 이야기인 샘이다. 그리고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고 교류하고 싶은 호진이 자신의 바램이지 싶다.

그래서 호진이와 엄마, 할머니는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는 외부적인 여행을 통해, 자신 속에 응어리진 마음을 풀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자기로부터의 순례를 시작하는 것이다.

"먼저 걸어가는 순례자들의 등이 우리의 이정표였고, 우리의 뒷모습이 뒤따라오는 순례자들의 이정표였다. 우리가 걷는 대로 길이 만들어졌다."(p196)"

얼마 전, 내 개인 블로그와 유튜브에 지난 스페인 여행의 영상을 정리해 올리면서 당시에는 놓쳐버린 많은 이야기를 새롭게 되새김하게 되었다. 몬세라트 트레킹은 물론 140년째 만들어지고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와 뜨거운 지중해에서의 바다수영, 쇼팽의 빗방울 행진곡과 함께 둘러본 발데모사... 이 모든 것들이 어제 일처럼 선명해지며 즐거운 여행 후유증을 즐겼다.

인생은 여행이고 순례길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을 통해, 책을 통해 인생을 음미하고 나를 되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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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묻고 답하다 - 김종천 에세이
김종천 지음 / 바른북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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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에서 근무하다 보니 학생들에게 다양한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 게 사실이다. 그래서 학생들의 현재 생활을 돌아보게 하고, 세상을 보는 지혜를 배워 진로 선택에 도움을 주고자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나 지역 명사를 학교로 초청해 '미래설계 명사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유망한 전문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사장님과는 성공적인 직장생활을 위한 현실적인 방법을 고민했고, 학교가 속한 지역의 시의원이나 구청장이 방문했을 때는 지역과 이웃을 생각하는 방법을 들을 수 있었다.

  아무튼 매년 지역 명사를 초청해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에 이번에는 어떤 분이 좋을까 고민하게 되었고, 그러던 차에, 고등학교 선배 한 분이 금정구에서 규임요양병원을 운영하면서, 부산네오필하모닉오케스트라 단장까지 맡고 있다는 분이 있다면서 김종천 가톨릭대 특임교수님을 소개해 주셨다. 


  명사특강을 부탁하기 위해 만난 교수님은 '화사한 콘트라베이스' 같았다나 할까? 일단 미소 가득한 얼굴로 우리를 맞아주는 모습이 동네 아저씨처럼 편안했다. 그리고 들러오는 중저음의 목소리는 마치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콘트라베이스>에서 봤던, 크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없으면 뭔가 허전하고 구색이 맞지 않는, 음악의 깊이를 더하는 콘트라베이스의 중저음을 떠올리게 했다. 교수님이면서 병원 이사장이고 오케스트라 단장이라는 화려한 직책과는 어울리지 않는 수수한 모습은 도드라지게 튀지 않으면서, 주변을 부드럽게 포용해 감싸 안고 있었다. 

  교수님은 학생들과의 특강을 흔쾌히 동의해 주셨고, 세상과의 소통법에 좋은 말씀을 들려주셨다. 이런 인연으로 네오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도 종종 가게 되었고, 교수님의 에세이집 출판기념식에도 즐겁게 참석하게 되었다.


  <그가 묻고 답하다>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진다. '1부, 지극히 사적인 모습'에서는 김종천 교수님이 살아왔던 날을 회고하듯 서술한다. 음악에 재능을 보였지만, 부모님의 권유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게 되었고, 잘나가던 대학교수직을 내려놓고 외국 유학을 떠난 과정과 아버지의 뒤를 이어 복지사업을 이어받게 된 과정을 스무 개의 챕터로 묶어놨다. 교수님과 같이 사회적으로 활동이 많은 유명인사의 경우 개인사를 들을 기회가 잘 없는데, 지면을 통해 인간적인 면을 접할 수 있어 더 좋았다. 특히 나와도 조금은 유사한 점이 보여 더 공감이 갔다.

  나의 아버지 또한 지역에서는 제법 인지가 있었던 교육자(^^)로 외동아들인 나에 대한 기대도 무척 컸었다. 젊은 나이에 맨손으로 일궈낸 학교였기에 어떤 일보다 최우선이었다. 가족은 물론이고 몇 번을 도전했던 국회의원의 열망보다 앞선,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렇다 보니 학교를 수성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아들에 대한 기대도 상당히 높았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많이 부족하고 모자란 나였기에 아버지의 실망을 컸으리라.

  이런 생각들이 겹치다보니 아버지를 이어 영파의료재단(규림요양병원, 마음향기병원)을 운영하고 발전시켜 온 김종천 교수님이 남다르게 느껴졌다. 부모 세대의 가업을 이어 받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이를 잘 키워내는 것은 더욱 힘들다. 주변의 시선과 자신의 한계를 수시로 느껴야하고, 높은 이상에 비해 부족한 현실을 절감해야 했다. 특히 사람의 몸과 마음을 다루는 일이다보니 그 어려움이 오죽했을까.


  '2부, 지극히 공적인 현안'에서는 최근 부산 MBC의 <자갈치 아지매>에서 '김종천의 신나소 신나세' 코너를 출연하며 이야기했던 내용을 문답 식으로 적어놨다. 우리 금정구의 문제인 동시에 부산의 문제이고, 나아가 우리나라가 풀어야 할 숙제, 열 일곱 가지를 적어놨다. 저출산, 고령화는 이미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어, 어린 아이들이 뛰어 놀아야 할 공간은 노인들의 자리가 되거나 우범지역으로 전락했다. 이렇게 학생 수는 급속하게 감소했지만, 추락한 교권으로 수업은 더욱 어려워졌다. 1인당 부양인구는 점점 늘어나는데, 연금 고갈에 대한 불안까지 겹쳐졌다.

  책에서는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의 문제를 인식하고 공감과 대화, 다양한 정책과 지원을 통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계속 이야기한다. 아마도 교수님께서 각종 포럼이나 온오프라인 활동을 통해 지속적으로 이야기했던 우리 지역의 고령화 문제와 낙후된 구서동 터미널의 개발과 침례병원, 금샘로의 정상화, 낙후된 서금사지구의 발전시켜야 한다는 내용과도 일맥상통하지 싶다.

  교수님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 모든 문제가 일사천리로 해결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웃과 지역의 문제를 돌아보고 개선하고자 하는 우리들의 목소리가 합쳐준다면, 금정구, 아니 부산은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김종천 교수님의 가치는 이사장이나 교수, 단장과 같은 화려한 직책보다는 지역의 앞날을 걱정하고 고민하는 금정구민이자 부산 시민이라는 점이 아닐지 싶다. 국가를 위한다는 거창한 명분이나 그럴싸한 정치적 타이틀보다는, 우리 소시민과 함께 부대끼며 이들의 소리를 직접 들으려는 친절한 옆집 아저씨의 모습을 열렬히 응원한다. 중저음으로 음악같은 세상의 깊이를 더하는 콘트라베이스처럼 사회의 밑바탕이 되는 든든한 기둥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가 묻고 답하다> 출판기념회(2023.12.02.)에서


김종천 교수의 <그가 묻고 답하다>


금정전자고(금샘고등학교) 미래설계 명사특강-김종천 교수님의 <소통으로 세계를 향하다>

특강 영상 링크 : https://youtu.be/EpP_QqHbcLI?si=lhh81SLGFcSTaO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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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환 2024-10-29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마서3장23절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4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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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체코슬로바키아(현재는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를 중심으로 벌어진 '프라하의 봄'이 중요 배경이기에 이것부터 살펴보는 게 좋겠다.

  체코슬로바키아의 역사에서 소련은 아군에서 적군으로 바뀌는 미묘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 소련은 2차대전 막바지에 독일의 점령하에 있던 체코슬로바키아를 해방하기 위해 진군했던 천사 같은 존재였지만, 종전 후에는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화에 깊숙이 관여하게 되어 반감을 사게 된다. 이때 체코슬로바키아의 둡체크의 개혁(1968년)을 통해 민주화 운동이 시작되었지만, 소련의 무력 침공으로 무산되었다. '프라하의 봄'은 이 7개월 동안을 일컫는 말로, 세계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박정희 정권 후반(1979년)에 터져 나온 민주화 열기(5.18 광주민주화운동)를 '서울의 봄'으로 비유해 표현하기도 한다.
  아무튼 급변하는 시대 상황을 알면 소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

  책은 무거운 시대 상황 속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만큼이나 가벼웠던 사랑'을 이야기한다. 순박했던 테레자는 가벼운 사랑을 찾아다니던 바람둥이 토마시에게 첫눈에 반하지만, 그녀는 토마시가 자신에게 좀 더 충실하기를, 깊고 무거운 사랑을 원했다. 그리고 토마시가 가볍게 만나던 사비나 역시, 모험적인 삶을 동경하는 유부남 프란츠와의 밀회를 즐기고 있다.
  테레자가 원했던 깊은 사랑과 이를 단순한 놀이 이상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던 토마시는, 앞서 말한 체코와 소련의 정치적 상황과 비교되면서 교차한다. 자신에게 자유를 안겨 주며 영원히 자기편인 줄 알았던 상대방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을 더욱 구속하고 통제하려는 존재가 되었다. 가볍게 시작한 사랑은 깊은 존재감으로 다가오고, 현실을 마주하는 시선의 작은 차이는 서로 간의 상이한 성장 과정과 생활방식으로 무거운 거리감을 만들었다.

  프란츠는 부인 마리클로드에게 사비나와의 사랑을 이야기하며 의무감처럼 유지해오던 부부관계를 끝내지만, 정작 사비나는 뜨거운 정사 뒤에 프란츠를 떠난다. 그 뒤 프란츠는 혼자만의 자유를 만끽하며 다른 젊은 여자를 만났고, 파리에 머물던 사비나는 전 연인이었던 토마시와 테레자의 부고를 듣게 된다.

  가정이라는 견고한 울타리 안에서의 사랑은 허울만 남긴채 사그라들었고, 대신 가볍게 시작된 외도가 점차 그 깊이를 더해간다. 사랑은 형식이나 방향도 없이, 의도하지 않게 흘러가면서, 나름의 이유와 가치를 스스로 찾아내게 된다. 가볍게 시작된 사랑은 깊은 존재로 남게 되었다.

  소설은 텍스트가 난해하고 철학적인데다, 화자의 시점과 시간이 뒤섞여있어 등장인물 간의 심리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었다. 외국 소설이 갖는 번역 과정에서의 거리감인지, 나의 짧은 문해력으로 인한 이해 부족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각 문장이 가진 세부적인 의미를 파악하기보다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문장과 챕터 간의 흐름을 따라가는 편이 밀란 쿤데라의 글을 이해하는 쉬운 방법인 것 같다.

  하긴 청소년 소설이나 에세이의 쉬운 책도 좋지만, 이런 두껍고 이해하기 힘든 책도 읽어 줘야 내 정신의 폭도 깊어지지 않을까 한다. '참을 수 없는 독서의 어려움'이랄까! ^^

  유명한 책인데 명작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보니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보는 경우가 많았는데, 내가 이전에 읽었던 <책은 도끼다>(박웅현)에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대한 글이 있다고 해서 다시 읽어봤다.
  확실히 전문가의 설명을 들으니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막연하게 흘려 읽었던 문장들의 관계와 의미가 이해되면서 단순한 사랑놀이 뒤에 숨겨진 다양한 연결고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밀란 쿤데라가 말한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를 오가는 사랑의 깊이를 가름해볼 수 있었다.
  이렇게 중도에 읽는 것을 포기해버릴까도 생각했던 506쪽에 이르는 책을 겨우 마무리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명작이라는 말에 집었고, 사랑에 취해 읽었지만, 난해함에 포기하려던 책을 주변의 도움으로 다 읽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니, 참을 수 없이 가벼웠던 텍스트가 거부할 수 없는 무게로 다가오는 것 같다.

  "그들은 피아노와 바이올린 소리에 맞춰 스텝을 밟으며 오고 갔다. 테레자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p506)
  결국 토마시와 테레자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인 서로를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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