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야의 중국견문록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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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이 없으면 내일도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글귀요, 이 책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문장이다.  

  마흔살 늦깎이로 팽팽한 젊은이들과 경쟁하면서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 중국으로 날라간 한비야의 삶은 이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중국어가 좋아서 중국어를 배우기 위하여 1년이라는 시간을 중국에서 살면서 겪었던 경험을 계절의 흐름을 따라 기록한 이 책은 그녀의 다른 책이 그러하듯이 읽기가 참 쉽다. 그러나 그 읽기 쉬운 글 가운데 인생의 묵직한 가르침이 담겨 있어서 왠만한 자기 계발서나 영성을 위한 책보다 더 깊은 깨달음을 던져 준다.   

  한 중국인 가이드와의 만남이라는 에피소드를 통하여 한비야는 우리에게 오늘을 산다는 것의 의미에 대하여 진지하게 성찰할 것을 요구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시간의 흐름 가운데 일부는 과거의 영광의 시절을 생각하면서 아 옛날이여를 되뇌인다. 어떤 이들은 한발짝 앞의 미래를 바라보면서 잘 될거야를 외친다. 과거의 영화를 그리워 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며, 희망찬 미래를 그려보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다. 다만 과거와 미래에만 내 인생의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다보니 현재라는 하나님이 주신 아주 귀한 선물을 잊고 살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더글라스 대프트가 코카콜라의 CEO에 취임하면서 했던 말도 같은 맥락이리라. 

  "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a Mystery, Today is a Gift; tha's why we call it - the Present!(어제는 역사이며, 내일은 신비이고, 오늘은 선물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present라고 부른다.)"

  우리 인생은 앞으로 다가올 신비를 위하여 현재라는 시간을 쌓는 것이고, 그렇게 쌓인 현재라는 시간이 역사가 되는 법인데 우리는 현재라는 선물에는 너무 무관심하게 살고 있지는 않는가? 째깍째깍하는 소리와 함께 과거로 변해버리는 현재인지라 그 소중함을 모르고 살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나 현재를 소홀히 여기는 만큼 우리 인생 또한 소홀히 여김을 받는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현재라는 선물의 가치는 인생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3년을 살아오면서 나는 얼마나 현재라는 선물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살아왔을까? 옛날에는 좋았는데, 걱정이 없었는데, 공부 잘 했는데라는 과거에 대한 향수로 인생의 절반을 채우고 다 잘 될거야라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희망으로 내 인생의 나머지 절반을 채우지는 않았은가? 절로 반성이 된다. 이제부터는 현재라는 아주 작지만 정말 소중한 선물을 꼭 움켜 잡아야겠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버리는 1분1초가 되지 않도록 말이다.

  지도밖으로 행군하라를 통하여 접하게 된 한비야를 그건 사랑이었네를 거쳐 중국 견문록까지 만나게 되었다. 그간 얻었던 인생의 지혜가 참 많다. 이제 내 책꽂이에는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세트가 꽂혀 있다. 이걸 통하여 또 무엇을 얻게 될 것인가?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을 안고 다음달을 기약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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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알라디너들이 나의 추천 도서를 클릭해서 글을 올린다. 그래서 나도 해봤다. 재미있어서 각 항목별로 사진을 올려 본다. 

 

   

  

 

 

 

 

  각 항목별로 추천 도서를 클릭해 밨다. 기독교 추천 도서야 워낙 동떨어진것이니 패스하고 나머지를 항목별로 클릭해 봤는데 눈치 빠른 사람은 눈치 챘겠지만 7가지 항목 중에서 샌델의 생명윤리를 5항목이나 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보관함에 살포시 담아두고 살까 말까 망설이는데 이녀석이 내 가슴에 불을 지른다. 혹, 내가 대학원에서 윤리를 전공한 것을 이 녀석이 아는 것일까? 

  또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정치 분야의 책으로는 맑스책이 나를 위한 추천 도서란다. "원숭이도 이해하는..."은 사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눌렀던 기억이 있었던 책이고. 대개 나를 위한 책이 빨갱이 도서 혹은 좌편향 도서라고 불릴만한 것들이니(물론 뉴또라이들에게 해당되는 말이겠지만) 나는 좌편향적인 독서를 하는 사람인가? ㅋㅋ 

  여하튼 샌델의 생명윤리를 꼭 사봐야 할 듯 싶다. 저정도인데 안사주면 알라디너도 아니다.  

  또 하나 반대자의 초상도 4항목에 걸쳐 추천되었는데 왜 그런지 궁금증이 일기 시작한다. 담달에 책을 살 때 저것도 살 것 같은 불긴한 예감이 든다. 이런 젠장 살 것은 너무 많은데 지갑이 문제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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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0-08-26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하고 거의 비슷하군요^^ 근데, 기독교에 대한 책이 한 권두 없네요~

저는 담달에두 장바구니 대기리스트가 줄줄이 기둘리고 있기 때문에 패스여요~
지의 정원은 함 사볼만 해서 장바구니 넣어놨었습니다..ㅎㅎ

saint236 2010-08-26 22:51   좋아요 0 | URL
기독교에 대한 책은 워낙 차이가 많이 나서요. 좀 당황스러운 것들도 있고요.

라로 2010-08-26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하고도 거의 비슷해요. 저도 올려봐야지..

말씀대로 샌델의 생명윤리를 꼭 사보셔야 할듯요,,ㅎㅎ

saint236 2010-08-26 22:52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샌델의 생명 윤리는 꼭 사봐야 할 것 같습니다.
 
부활
유진 피터슨 지음, 권연경 옮김 / 청림출판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군대 있을 때의 일이다. 고신대를 나오신 사단 목사님께서 이런 말을 해주셨다. 

  "교회는 부활절을 제대호 지켜야 합니다. 이미 크리스마스는 세상에 빼앗겨 버렸고, 교회가 세상을 따라가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부활절만큼은 세상에서 관심을 보이지 않아 순수하게 교회만의 절기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부활의 감격을 회복하는 것이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이 책을 열어보면서 깜짝 놀랐다. 예전에 들었던 말이 여기에 써 있기 때문이다. 벌써 5~6년된 일이니 그 목사님께서 이 책을 보고 그런 말을 하신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거의 똑같은 말을 하신 것으로 보아 생각있는 기독교인들이라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고민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한다. 부활의 신앙을 회복하는 것! 이것이 교회가 본질로 돌아갈 수 있는 힘이요, 교회가 능력을 회복하는 길이며, 자기 정체성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부활 신앙을 회복하는 것일까? 

  유진 피터슨은 십자가와 부활과 우리의 삶이 결코 떨어져서는 안된다고 한다. 삶을 practice하라고 말하면서 practice는 전문적인 연습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 일상을 살아가는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 부활은 실천하는 것이라는 그의 말은 부활이 교리로 딱딱하게 포장된 것이 아니며, 전문가들이 주석을 달아서 우리에게 설명해 줘야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어려운 것도 아니며, 누구나가 식탁과 같은 실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쉬운 것들임을 의미한다. 

  교회가 부활 신앙을 잃어버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활은 왠지 비과학적인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소홀히 하기 일쑤이다. 혹은 세상의 공격으로부터 부활을 방어하기 위하여 온갖 어려운 교리와 논리들을 가져다가 설명한다. 그러나 그것들이 부활신앙을 보호하기는 커녕 부활에서 감동을 제거하여 버리고 딱딱한 것으로 만들어 박제화시켜 버렸다. 그러니 기독교인들에게 부활은 성경에서 나오는 황당한 이야기 혹은 교리로 포장된 딱딱한 이야기, 그것도 아니면 삶은 달걀을 먹는 특별한 절기 정도로 격하되어 버렸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가가 고작 이정도라면 무엇인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이제 교회는 부활 신앙을 회복해야 한다. 부활이 삶에서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삶이 위협받고 살아가는 산 자의 땅에서 삶의 고귀함과 죽음의 두려움, 그리고 부활의 승리를 매일 간직하고 느끼면서 살아야 한다. 순간순간 다가오는 부활을 싼 것으로 매도하는 사탄의 세력으로부터 부활의 감동을 지켜야 한다.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부인하는 예수님의 뒤를 따라 우리도 자신을 부인하는 삶을 살며 골고다의 언덕을 올라야 한다. 이것만이 부활을 실천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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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0-08-19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활을 실천하는 삶은 정말 어려운데 말이죠. 교회가 부활 신앙을 회복하는 것도 요원해 보입니다. 현 한국교회의 행태로 봐서는요~

아, 그나저나 쎄인트님..글 읽기가 너무 힘들어요..검정바탕에 흰 글씨...어질어질 합니다~~ㅎㅎ

saint236 2010-08-19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그럼 하양 바탕에 검은글씨로?

yamoo 2010-08-23 13:27   좋아요 0 | URL
하양 바탕에 검은 글씨로 바꿔주세여! 헤~

saint236 2010-08-23 22:58   좋아요 0 | URL
하양바탕은 아니지만 최대한 비슷한 걸로 바꿨습니다. 이젠 눈이 좀 편하신지요?^^

yamoo 2010-08-25 01:24   좋아요 0 | URL
와~~~엄청 편합니다...훨씬 좋아여~ ^___^
아, 근데 프로필 사진 속의 여자분...와이프 이신가요? 넘 행복해 보이시네요~^^

sslmo 2010-08-26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을 pratice하라.
오늘의 문장으로 새기고 갑니다~^^

saint236 2010-08-26 14:30   좋아요 0 | URL
ㅎㅎ. 오늘의 문장이라. 그동안 두권더 봤는데 아직 서평을 안 올려서. 잠시 잠깐 참고 있습니다. 묻어가려던 책은 카드 결제 금액 때문에 9월초로. 사고 싶은 책은 많은데 주머니는 한정되어 있는 고로. 요즘 주민자치센터 도서관 이용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습니다.
 
수호지 세트 - 전10권 - 개정증보판
시내암 지음, 이문열 평역 / 민음사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알라딘에서 50% 특가로 판매한다는 찌라시(!)를 보자마자 냉큼 주문해 버렸다. 이문열씨가 지금에 와서 어떤 글을 쓰고, 어떤 정치적인 성향을 보이던 간에 그가 평역한 수호지와 삼국지는 재미가 있다. 냉큼 구매한 후 읽기 시작해서 보름만에 다 읽었다. 그동안 여러가지 바쁜 일들도 있었고, 삼국지만큼 흥미진진하지도 않고, 스케일이 장대한 것도 아니며 여기저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헷갈려서인지 삼국지보다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다. 그래도 꽤 아기자기한 맛도 있어서 다음 권에 손이 저절로 가기에 한권 한권 읽어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수호지를 어떻게 평가할까?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 홍루몽을 중국 4대 기서라고 한다. 네 권을 모두 다 읽어봤는데, 나는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 홍루몽의 순서로 재미있다고 평가를 한다. 서유기야 워낙 잘아는 "미스터 손"이 등장하는 판타지 장르의 책이고,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홍루몽은 얽히고 설킨 인간관계와 애정관계를 중심으로 소설을 풀어 나가고 있다. 역사적인 배경을 가지고 기록된 소설인 삼국지와 수호지가 그나마 비슷한 범주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둘 사이에도 차이는 있다. 삼국지가 제갈공명을 신비롭게 묘사하고는 있지만 더 현실적인 측면에 치중하고 있다면, 수호지는 요술과 법술이 전투에 공공연히 등장하는 비현실적인 모습을 보인다. 같은 야사를 모아 놓은 부분들도 삼국지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수호지는 확실하게 티가 난다. 비유하자면 삼국지는 삼국사기와 비슷한 느낌을 풍긴다면 수호지는 삼국유사와 비슷한 부류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일까? 삼국지와 수호지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삼국지가 역사의 전면에 나서서 이름을 떨치고 스러져간 메이저리거같은 스타들이라면 수호지의 등장인물들은 메이저리거가 되기를 동경하면서 트리플A에서 뛰고 있는 마이너리거라고 할 수 있다.  

  송강, 이규, 노준의, 무송, 노지심 등등 양산박의 108두령은 모두 사회 시스템에서 튕겨져 나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밝은 곳을 갈망하며,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 이름을 남기고 싶어하지만 부패한 사회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고 튕겨져 나와 어둠 속으로 숨어 들어간다.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뇌물수수, 억지수사, 특권층 봐주기, 공무원 비리 등은 그 시대의 스타플레이어가 될 수 있는 자질이 충분한 그들을 시대의 낙오자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현역으로 남아 있기 위해 애를 쓰듯이, 양산박에 모인 108두령들은 녹림에 몸을 담고 도적질을 하면서도 언젠가는 조정의 부름을 받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못한다.  

  그렇게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오매불망 조정의 부름을 기다리던 어느날, 드디어 조정의 부름을 받아 화려하게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다. 과거에는 도적이었지만 이제는 관군이 되어, 과거에는 사회 시스템에서 튕겨져 나간 사람들이었지만 이제는 시스템에 포섭된 자들이 되어 조정을 위하여 일하기 시작한다. 비록 공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그들에게 그것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고? 과거에는 아무리 화려한 승리를 얻어도 반군이요, 어둠의 세력이지만 이제는 떳떳하게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랜시간 마이너리그 몸담으면서 훈련을 하며 올라온 선수들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반짝 조커로 기용될 뿐이다. 실제로 송조정의 스타플레이어들은 따로 있었다. 동서남북 원정대를 꾸리고 반란군을 토벌하면서 그렇게 인정받기를 원했지만 결국 그들의 마지막은 토사구팽이 아닌가? 많은 두령들이 4차례에 걸친 원정 끝에 죽어 버리고, 그나마 남았던 두령들도 벼슬을 마다않고 야인이 되는 길을 택한다. 차마 그 길을 택하지 못한 송강을 비롯한 몇명의 두령들은 오래지 않아 송조정의 무능하지만 스타플레이어인 고구, 채태사 일당에게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다. 송강은 불같은 성격의 이규를 불러 자기가 마신 독주를 마시게 하고 같이 죽음을 맞이한다. 

  그 뒤를 이은 수호지 후편은 솔직하게 말하자면 없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조잡하다. 그나마 괜찮은 것을 골라 내용을 소개한 것이라는 저자의 말을 감안해서 읽는다면 다른 판본들은 도대체 얼마나 조잡한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인다. 이미 죽었던 이들이 멀쩡이 살아 있는 것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어이 없을 정도로 이야기를 억지로 끌어가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한가지 눈길을 끄는 것은 다시 모인 108두령의 생존자들이 이준이 있던 곳으로 모이고, 섬라국의 대신들이 되어 잘먹고 잘산게 된다는 내용이다. 

  왜 그렇게도 108두령이 송조정의 부름을 기다렸는가? 자기 죽을 자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원정대를 자청해서 동서남북으로 내달렸는가? 송강은 왜 자신의 오른팔 이규를 속여 독주를 마시게 했을까? 왜 후대의 사람들은 무리해서 수호지의 후기를 달아 섬라국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냈고, 108두령의 생존자들을 그곳의 대신들로 만들어 버렸을까? 

  어떻게 해서든 다시는 사회 시스템에서 튕겨나가고 싶지 않아서가 아닐까? 현실에서의 그들의 바램이 결국은 실패와 좌절로 끝나버렸기 때문에 이들의 염원을 섬라국이라는 새로운 이상향을 설정하여 들어준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것은 홍길동의 율도국이 그러하고, 임꺽정의 구월산 산채가 그러하며, 장길산의 운주사가 그러하듯이 언젠가는 깨어져버릴, 아니 현실에서는 존재자체가 불가능한 디스토피아일뿐이다. 그렇기 대문에 메이저리거를 꿈꾸는 아이너리거인 수호지 108 두령의 삶이 더 서글픈 것이 아니겠는가?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고전의 힘이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묘사가 강하고, 더 직설적인 면이 있어서 그렇지 오늘 우리 현실의 모습을 너무 정확하게 담고 있다. 곳곳에서 고구와 고아내, 채태사가 존재하며 그들 때문에 사회 시스템에서 튕겨져 나가는 108 두령들이 있고, 그나마 튕겨나가지도 못해서 짓눌리는 민초들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택동이 수호지를 정치서적으로 평가한 것이 아니겠는가? 

  무더운 여름 수호지와 보낸 시간들이 즐거웠다. 아쉬운 것은 이러한 수호지를 기록하신 그분이 지금은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작가의 작품이 작가의 사상과 현실을 반영한다는 말이 꼭 들어 맞는 말은 아닌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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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8-21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호지를 가지고 있는데, 아직도 못 읽었습니다.
세인트 님의 글을 읽으니.. 반드시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합니다.
네.. 수백년을 살아온 고전은 대단하다는 말씀, 동감합니다. ^^

saint236 2010-08-21 12:41   좋아요 0 | URL
조만간 시간을 내서 다시 한번 읽어보려고요. 매년 한번씩 앞으로 10년 읽으면 10번은 읽겠지요? 고전은 그 정도는 읽어야 맛이 느껴지더라고요.

sslmo 2010-08-26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국지는 이문열 걸로 10번은 읽은 것 같은데,
이 수호지는 이문열 거여서 한번도 안 읽었어요.

근데,첫 문장에 혹해...장바구니로 쏘옥~입니다.

그가 지금에 와서 어떤 글을 쓰고,어떤 정치적인 성향을 보이던 간에 그가 평역한 삼국지는 재미가 있었거든여~^^

saint236 2010-08-26 14:29   좋아요 0 | URL
수호지도 재미있기는 합니다. 단 개인적으로는 삼국지만큼 재미있지는 않습니다. 병아리 눈꼽만큼 삼국지가 더 재미있습니다.^^
 
예배인가, 쇼인가! 규장 A. W. 토저 마이티 시리즈 1
A. W. 토저 지음, 이용복 옮김 / 규장(규장문화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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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드컵 이후로 대세라는 말이 유행한다. 북한의 축구 선수 정대세 때문일까?  대세라는 말은 아마 트렌드 정도로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한국 교회의 대세는 무엇일까?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한국 교회 예배의 트렌드는 무엇일까? 찬양집회가 아닐까? 화요모임, 목요모임, 마커스 찬양 집회, 어노인팅 등등 곳곳에서 정기적인 찬양집회가 열린다. 많은 젊은이들이 그곳에 참여하고 발매하는 음반은 거의 모두 사고 열심히 듣는다. 그리고 그 찬양들을 교회에서 부르고자 한다. 그뿐이겠는가? 개 교회에서도 찬양단을 육성하기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여력이 되지 않는 교회들도 모두 예수 전도단이나, 다리 놓는 사람들, 마커스와 같은 찬양단을 목표로 맹렬히 연습을 한다. 그러나 대다수는 그러한 수준에 이르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세는 찬양집회이다. 그뿐이겠는가? 열린 예배, 구도자 예배, 소모임, 알파 코스, 두 날개, 셀 등등 교회 안에는 온갖 프로그램들이 넘쳐난다.  

  왜 그럴까? 왜 그렇게 한국 교회에는 많은 프로그램들이 넘쳐나는 것일까? 아마 너도나도 큰 교회를 꿈꾸기 때문일 것이다. 교회가 양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나무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양적인 성장에만 목숨을 걸고 있는 이 사실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양적인 성장에만 목숨을 걸다보니, 예배에 집중하지 못한다. 예배가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다른 것들을 바라보게 된다. 하나님께 집중하지 않고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면서 마음이 분주하다. 교회 부흥에, 혹은 교회 일에, 혹은 부서 일에 분주하다. 그러다 보니 예배를 하는 순간에도 예배를 하는 척 하지 마음을 다하여 예배하지 못한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도구화와 더블 스탠더드이다.  

  예배에 실해하니 하나님이 예배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도구가 되어 버렸다. 지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하여 지역구 내의 이 교회 저 교회를 기웃거린다. 신앙이 없어도 교회에 가서 경건한 척한다. 기독교든, 천주교든, 불교든 하나에만 제대로 집중하는 사람이 진짜 신앙심이 있는 사람일텐데 이런 사람들은 오만하고 독선적이라고 사람들이 싫어한다. 더군다가 그 사람이 기독교인이라면 더 그렇다.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 다니면서 나는 포용력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지지도와 인기를 얻기 위해 애쓴다. 그런 사람의 마음에 과연 하나님을 예배하는 마음이 있겠는가? 하나님을 그저 출세의 도구, 인기를 얻기 위한 도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부적으로 여길 뿐이다. 

  예배 실패의 두번째 결과는 더블 스탠더드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교회에서는 거룩함의 기준으로 생활하고, 말하고, 사회 속에서는 세속화의 기준으로 살아간다. 그러니 말과 행동이 생황이 다른 신앙인이 넘쳐날 수밖에 없다. 오히려 교회 안에서도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다. 세상 속에서 보다 더 살벌하고 더 뒷끝이 넘치는 곳이 교회가 되어 버렸다.  

  교회가 프로그램, 찬양팀, 양적 성장이 아니라 예배에 집중하길 원한다. 토저가 던지는 말도 이것이다. 연예 산업, 홍보 산업, 마케팅에 물들지 말고 오직 예배에 집중하라는 말, 쇼가 아니라 예배를 드리라는 토저의 말이 더 깊이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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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0-08-18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 공감합니다!!! 진짜 교회에는 프로그램들이 넘치죠. 전 그런데 하나두 참석하지 않습니다. 무슨 무슨 집회는 그리 많은지...다~끼리끼리 모이는 사교 집단 같습니다. 하나님은 들러리에 지나지 않는 다는 걸 오랜 교회 생활을 통해서 느꼈습니다.

한국교회에 문제 없는 교회는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배의 본질을 회복하지 못했다고 보여집니다. 정말, 정말 많은 공감이 가는 리뷰입니다~

saint236 2010-08-19 09:50   좋아요 0 | URL
본질로 돌아가지 않으면 "독사의 자식들아"라는 꾸지람이 교회에 떨어지지 않을까 두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