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선비
정옥자 지음 / 현암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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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이 오니 땔나무가 있을 리 만무하다. 동지 설상(雪上) 삼척 냉돌에 변변치도 못한 이부자리를 깔고 누웠으니, 사뭇 뼈가 저려 올라오고, 다리팔 마디에서 오도독 소리가 나도록 온몸이 곱아 오는 판에, 사지를 웅크릴 대로 웅크리고 안간힘을 꽁꽁 쓰면서 이를 악물다 못해 이를 박박 갈면서 하는 말이, "요놈, 요 괘씸한 추위란 놈 같으니! 네가 지금은 이렇게 기승을 부리지만, 어디 내년 봄에 두고 보자!"  하고 벼르더란 이야기가 전하지만 , 이것이 옛날 남산골 '딸깍발이'의 성격을 단적으로 가장 잘 표현한 이야기다. 사실로 졌지만, 마음으로 안 졌다는 앙큼한 자존심, 꼬장꼬장한 고지식, 양반은 얼어 죽어도 겻불을 안 쬔다는 지조, 이 몇 가지가 그들의 생활 신조였다.

                                                                                         이희승<협동(1952)>

  예번 고등학교 국어 수업 시간에 들었던 수필이다. "선비=딸깍발이"라는 등식을 나의 머릿 속에 각인 시켜 준 수필이다. 이 수필 때문에 선비는 고고한 존재, 현실적인 능력이 없을지라도 여기에 굴하지 않고 무릎 꿇지 않는 곧은 사람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만일 옛날에 태어났다면 나도 선비가 되었을텐데."라는 생각을 품기도 한 적이 있었다. 나에게 잇어서 선비는 고고함과 진실과 시대의 양심이었다. 이 시대에는 선비가, 진정한 양심이 없다고 안타까워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바뀌어 갔다. 선비들이 한 일이 과연 무엇인가? 지식이라는 틀 안에 갖혀서 자기 만족이라는 가면을 쓰고 다른 이들을 착취하던 모습들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정신적으로 고고하다고 말하지만 그 실상은 무능한 자기에 대한 오만이요, 딸깍발이 보다는 양반전에 등장하는 양반과 양반 신분을 산 졸부의 모습이라는 사실에 눈을 뜨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능력없는 신분, 현실과 괴리된 이상, 철학 없는 물질, 돈으로 고귀함까지 살 수 있다는 졸렬한 정신, 이것이 우리가 그렇게도 찬양하던 과거 선비들, 양반들의 모스비 아니었던가?

  선비를 옹호하고 싶은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한다. "양반과 선비는 다르다. 선비는 고귀하지만 그 이름에 먹칠하고, 호가호위 했던 사람들은 썩은 관료들이었다."고. 그러나 양반과 선비는 분리되지 않는다. 그렇게 고고함의 상징인 이이, 율곡, 송시열 선생이, 사대부의 첫 출발점으로 이야기 되는 정도전이 과연 다른 존재들인가? 아니다. 이들은 선비이면서 관료요, 고고함의 상징이자 부패의 상징이다. 선비의 꿈이 무엇인가? 입신양명 아닌가? 입신양명을 꿈꾸고 관리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이상 선비와 관료의 구분은 무의미한 것이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선비"라는 책과 동시에 "선비의 배반"이라는 책을 샀다. 두 권을 비교하면서 읽어보았다. 이 책은 선비에 관한 긍정적인 면을, 다른 책은 부정적인 면을 바라 본 책이다. 물론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른 사람들이 아니다. 신기하게도 다른 작가에 의해서 씌여졌음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인물이 나오더라.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선비라는 책의 제목답게 선비의 업적에 대해서 개략적인 기록을 해 놓았다. 한번쯤은 읽어볼만한 책이라 생각한다. 역사책을 넘기다가 몇 년전에 보았던 그 책이 나오기에 반가운 마음에 이렇게 서평을 작성하고 있다. 젊은이들은 꼭 한번 읽어 보면 좋은 책일 것이다. 그러나 꼭 선비의 배반이라는 책과 함께 보라. 긍정과 부정의 면을 모두 바라보지 못한다면 우리는 선비에 대하여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선비는 고귀함의 상징도 아니고, 그렇다고 비천함의 상징도 아닌 이 시대의 구성원이라는 것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엄청난 착각 가운데 빠지게 될 것이다.

  한 시대를 구성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말 가운데에는 자신들의 정치적인 의도와 이익이 반영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아니라 변명하지 마라. 그들의 삶을 살펴본다면 이것은 극명하게 나타난다. 대체 청과 명을 섬기는 문제가 우리에게 무슨 하등의 소용이 있단 말인가? 삼학사가 왜 생겨났는가? 시대의 산물이요, 절개의 상징이라 말하는가? 아니다. 사육신은 절개의 상징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삼학사는 시대를 알지 못하고 사대주의에 빠져 자기 아집을 주장한 사람들이 아닌가? 당시 조정을 가득메우고 있던 이들의 면면이 이렇다. 명을 위한답시고, 자기 나라에게 불이익을 주는 존재가 조정의 대신이다. 명을 섬긴답시고 청나라 군에 들어가 촉 없는 화살을 날리던 현실 감각 없던 사람이 조선의 선비요, 대장이다. 이 정도면 무식이요, 매국노이다. 바른 것을 돌린다는 반정 또한 마찬가지이다. 뭐가 바르단 말인가? 자기들의 이익에 반대하면 그릇된 것이요 바로 잡아야 할 것이라는 오만함이 선비의 전유물이 아니던가? 택군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한국의 선비들의 정신적인 지주 송시열 선생은 과연 어떠한가? 정치에 얼마나 많은 폐해를 끼쳤던가? 왕을 성인으로 만들기 위하여, 아니 성인으로 만든다는 명분 하에 자신의 수족으로 만들려는 사상적인 주입의 모습이 아니던가? 그렇게 고고하다던 남인들, 사림들 또한 어떠한가? 정권을 잡자마자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았던가?

  선비는 고고함의 상징이 아니다. 봉래산의 낙락장송이 아니다. 정몽주가 아니라 이방원에 가까운 사람이다. 단지 그것을 정몽주같은 모습으로 가리고 있을 뿐이다. 이 사실을 꿰뚫어보지 못했기에 그 피해를 고스란히 민초들이 겪지 않았던가?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선비를 고고함의 상징으로 보고, 물질, 정치, 이권 이런 것들과 무관한 사람으로 오해하였듯이, 오늘날 지식인들, 대학교수들, 이들을 우리는 가치 중립적인 이야기들, 자기 양심에 따르는 이야기들만 하는 지성인으로 착각하고 있다. 여기에서 오는 피해들을 고스란히 우리가 떠맡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선비들"을 읽으면서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선비에 관한 진실"도 기억하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사육신 중 성삼문의 시를 인용하고자 한다. 조선시대의 진정한 선비 정신이라 함은 사육신의 정신 정도가 아닐까?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고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 하리라 - 성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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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 - 현대 민주주의의 위기와 선택
서병훈 지음 / 책세상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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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달 사이에 우리나라는 두가지의 커다란 선택을 했다. 대선과 총선이라는 두 가지의 선택은 향후 5년간 우리나라의 미래를 결정할만큼 커다란 선택이다. 그런데 지난 대선도 그렇고 이번 총선도 그렇고 인물이 없고, 정책이없고, 이유가 없었다. 여전히 네거티브 전략이 판을 치고 있으며, 지역주의와, 감정에 호소하는 모습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망령이 살아 있다. 한나라당의 대선후보 경쟁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어느 싸이트 포스터에 올라와있던 영화 옹박을 패러디한 그 문구가 정확할 것이다.

 "박정희는 죽었다. 박근혜는 약하다. 개발의 후예 명박"

  많은 대선후보들이 대권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들 모두는 높은 경제성장율과 실업대책, 경기 부양이라는 정책을 내놓았다. 많은 정책들이 나왔지만 내가 보기에 정책이 없었던 것은 하나같이 "실현불가능한 정책"이기 때문이요 뭉뚱그려진 정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포퓰리즘의 특성으로 꼽는 정책들이 지난 대선에 고스란히 나왔던 것이다. 일자리 수십만개 창출, 경제 7%성장 등 내가 보기에 "저건 분명히 공수표구만1"이라는 정책들이 쏟아져나왔다. 그 중에 단연 으뜸은 허경영 후보의 정책이 아니었을까?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허경영 후보가 떠올랐다. 카리스마와 거침없는 말투, 공허한 공약 등등 파퓰리스트의 전형이 아닐까 생각한다. 저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파퓰리스트라고 말하지만 허경영 후보에 비하면 새발의 피요, 보름달 앞의 반딧불일 것이다.

  결혼 수당 1억원지급, 산삼 뉴딜 정책으로 국민 실업 완전 해결, 유엔본부 판문점 이전, 왕정 부활, 국회의원의 무급화 및 옥석 가리기, 당선 후 박근혜씨와의 결혼, 현실적인 노인수당 등 바라보기에도 화려한 그리고 황홀한 공약들이다. 자신의 IQ가 430이요, 박정희 대통령의 측근이요, 이병철 회장의 양자라 주장하는 그는 특유의 입담과 카리스마, 신선함으로 2007 대선의 돌풍이 되었다. 생각지도 못한 지지를 받았던 것이다. 누리꾼들은 그를 일컬어 "허본좌"라 칭하고 연예 프로그램들은 그를 출연섭외 우선 대상자로 올려 놓았다. 이상한 인기와 관심은 허경영 후보를 더 우쭐하게 만들었고 천만표가 사라졌다는 황당하면서도 대담한 발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의 정책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이 책을 읽어간다면 포퓰리즘이 무엇인지 더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대책없이 국민의 감성을 자극하고, 눈 앞의 이익을 보여주면서 자신에게 표를 행사하라 말하는 이들, 강력한 카리스마로, 그리고 친숙한 말로 국민의 주권을 국민에게 돌려 주겠노라 말하는 이들, 한번만 뽑아 준다면 국민을 위해서 이 한몸 다바치겠다고 하는 이들이 넘쳐 난다. 이미 몇개의 정당이라는 체제는 사라져 버린지 오래요 선거철 마다 새로운 정당들이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나고 있다. 투표하는 것마저 헷갈리는 시대이다. 공약은 넘쳐 나고 모든 사람들은 장미빛 미래를 보여준다. 자신을 선출하면 장밋빛 미래를 주겠노라 말하지만 말그대로 텅 빈 약속이다. 국민의 눈과 귀를 끌기 위한 온갖 사탕발림들이 가득한 약속들이 넘쳐난다. "국회의원 수를 1/3로 줄이겠다. 고졸 출신에게는 법을 유하게 적용하겠다. 결혼에서 금혼식까지 부부 백년해로 축하금을 지급하겠다. 자기 선거구 아이들을 100% 서울대에 진학시키겠다. 젊은이를 위한 댄스파티를 열겠다. 과외 공부를 금지시키겠다. 강화군을 단독 선거구로 만들어 강화민국을 건설하겠다."는 공약들이 나왔다. 초등학교 반장 선거도 아니고, 동네 통장 선거도 아니고 황당무계한 공약들이 나왔다. 도대체 이것을 보고 이들에게 투표를 하는 이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비단 이들뿐만이 아니다. 대운하라는 사탕을 제공한 이명박 대통령은 어떠한가? 대운하 하나로 나라 경제가 살것이라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던지고 이것이 사명인양 밀어붙이는 모습은, 그리고 여기에 대하여 투표라는 형태로 표를 던진 대다수의 국민들은 누구인가? 민주주의, 자유주의, 인민주권, 엘리트에 의한 민주주의, 대중 민주주의 등등 모든 것들을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사는 시대의 정치체제를 규명하고자 하지만 그 어디에도 우리나라는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오직 대중영합주의를 통한 정권창출만이 가득한 세상에 살고 있는 듯하다. 저자는 말한다. 한국에 포퓰리즘을 이야기하기 어렵다고. 그러나 어려운 이유가 우리 나라에는 대중 영합주의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대중 영합주의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모두 검은 것이데 그 중 어느 것이 덜 검은가를 구별해 낸다고 할까? 이번처럼 열심히 투표한 적이 없지만 이번처럼 또 그렇게 허탈해하고 속상하고, 걱정스러운 선거는 없었던 싶다. 앞으로 5년이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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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의 만감일기 - 나, 너, 우리, 그리고 경계를 넘어
박노자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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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거의 다 읽어가면서 그런 생각을 해봤다. 도대체 이 사람의 생각은 무엇일까? 만감일기라는 말 그대로 극히 개인적인 생각들을 기록한 블로그의 이야기들을 모았다. 그 개인적인 생각들이 단순히 "저 사람은 그래."라고 말하고 넘어갈 수 없는 심도 있는 이야기임은 사실인데, 도대체가 이렇게 ㅈ버렇게 써 놓은 글들의 논점을 모르겠단 말이다. 분명 지평을 넘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개인의 실존, 우리라는 집단주의, 국가와 민족이라는 민족주의적 권력, 그리고 자본주의와 모든 권력과 파쇼로부터 넘어가자는 말을 하고 있는데 왠지 이 소리가 술먹고 주정하는 소리 비슷하게 들리는 것은 나만의 생각인가?

  이런저런 리뷰들을 살펴보면서 역시 박노자라 말하지만 이상하게도 나에게는 그다지 큰 울림이 다가오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이미 NL과 PD라는 개념조차 사라져 버렸는데 NL을 말하고 비판적인 사회주의를 이야기하고 민족과 국가를 넘어서 만민 평등주의를 말하는데, 그리고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는 말은 때려치우라는 말들은 하는데 솔직히 무슨 말인지 알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다지 현실성은 없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물론 현실적이지 않다는 생각으로 나아가야 할 질을 포기한다는 것은 무책임하고 비겁한 일인 것을 알고 있지만 도대체 이건 계산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득 이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은 생각들을 하고 살아가고 있구나, 삶에서 나타나는 것들을 쉽게 포기하거나 지나치지 않고 열심히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부끄럽게 만드는 저자의 삶의 방식이다. 사회에 민감한 지식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다. 민감하기만 하다. 딱 거기까지다. 파워가 없다. 선동도 없고 뭔가 빠졌다고 할까? 카산드라의 예언이라 할까? 마치 예전에 한 선배가 했던 말들이 생각이 난다. 이 선배는 참 똑똑했다. 말도 잘하고, 생각도 깨어 있고, 사회를 향한 뛰어난 열정도 있고, 남자인 내가 봐도 참 멋있는 사람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 선배와 이야기를 하면 자신도 모르게 그 선배에게 빠져들곤 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이다. 빠져들긴 하는데 행동이 안된다. 왜냐하면 이 선배가 가장 진지하게 이야기할 때는 술먹고서 이야기할 때였기 때문이다. 내용은 진실이지만 주절거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나를 뛰어 넘고, 우리를 뛰어 넘고, 국가와 민족을 뛰어 넘고, 모든 경계를 뛰어 넘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은 나도 동감한다. 나뿐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이 동감할 것이다. 그러나 왜 안 뛰어넘을까? 왜 자신들만의 테두리를 만들어 가는 것일까? 현실은 다르기 때문이다. 인간은 비빌 언덕, 즉 안전을 위해서 자신들만의 틀과 구획을 만들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동안 이렇게 만들어 온 시스템이 과연 포기될 것인가? 아닐 것이다. 지구촌이라는 이상을 믿고 있는 것일까? 이상은 이상이다. 차라리 이상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보완하는 것이 더 바랍직하지 않을까? 물론 이것이 힘들다는 것은 아다. 저자도 분명히 지적하였다. 자칫 정신을 잃으면 이도저도 아니게 된다고. 그러나 나는 아직도 이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 생각한다. 물론 현실성 있는 대안이 있다면 나는 기꺼이 나의 생각을 포기할 것이다.

  저자도 벗어나지 못한 경계를 우리에게 벗어나라 하는 것은 기만이다. 자신은 한국이라는 테두리에 갇혀 있지 않다 말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의 경계를 넘어서 지구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사상, 진정한 사회주의하는 잣대 도한 하나의 틀일 것이다. 그의 지난 삶의 경험들 또한 하나의 틀이다. 이런 것들을 뛰어넘지 못하는 한(생각이 멈추지 않는한, 죽지 않는한) 여전히 우리는 나도 모르게 어떤 틀 가운데 살고 있는 것이다. 어떤 틀이 덜 비관적이냐의 차이만 있겠지만 말이다.

  이 서평을 쓰고 있는 지금도 만감이 교차한다. 무슨 물인가 끄집어 내야하는데 잘 안풀리는 기분이랄까? 그러나 한 가지만은 확실하게 알았다. 나는 아직까지도 나의 틀을 고수하고 있구나. 다른 사람의 틀은 너무나 쉽게 거절하고 있구나.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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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왜 비쌀까 - 미술품 경매에서 위작소동까지, 미술에 대해 당신이 생각하지 못했던 몇 가지
피로시카 도시 지음, 김정근.조이한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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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예술이란 반이 사기다. 속이고 속는 것이다. 사기 중에서도 고등사기이다. 대중을 얼떨떨하게 만드는 것이 예술이다."

  古백남준의 말이다. 예술은 원래 사기다. 이만큼 예술을 잘 정의하고 있는 말이 더 있을까? 예술이란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 너머의 것을 보여주는 면에서 본다면 신기루이고 한편의 멋진 사기극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자유로운 정신을 거기에 심는 것이며,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고 모든 사람에게 유쾌한 파국을 주는 것이 예술의 본질일 것이다. 우리가 프랑스의 축구를 일컬어 아트(행복한 눈물/리히텐슈타인/2002년 86억 5천만원)싸커라고 부르고, 음식을 정말 잘하는 사람을 일컬어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하고, 아무도 모르게 관객들을 속여 넘기는 마술사를 보면서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다 말하는 이유가 아마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은 한마디로 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과 모든 감각을 사로잡아서 현실에 대한 감각을 떨어뜨리고 새로운 세계에 있다는 열광을 줄 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면에서 예술은 철저하게 사기가 되어야 한다. 대중을 얼떨떨하게 만들 수 있는 고등 사기인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요즘 세간에 시끄럽게 회자되고 있는 삼성의 모든 사건들도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도 모르도록 교묘하게 사람을 속여 넘기는 수법도 대단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데 아니라고 잡아 떼며 사실을 없는 것으로 만드는 삼성의 모습과 국회의원들의 모습 또한 예술의 한 경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삼성의 비자금을 이야기하면서 대두된 것이 미술품 사재기이다. 예전부터 말은 많이 돌았다. 삼성그룹의 미술관에는 수많은 예술품들이 소장되어 있다고, 그 중에는 암거래를 통하여 불법적으로 획득한 물건도 있을 것이라고. 하루 이틀의 소문은 아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그거 가쉽으로 처리가 되었던 것이다. 썬데이 서울에나 등장할 법한 이야기로 치부되었는데 삼성특검을 통하여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모든 것이 사실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소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 제일 큰 쟁점은 리히텐슈타인의 1964년 작 "행복한 눈물"이라는 미술품이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이번 사건이 아니었다면 나는 결코 리히텐슈타인이 누구인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며 행복한 눈물이라는 작품이 그렇게 유명한 것인지 몰랐을 것이다. 그저 만화책에 나오는(씬시티 류의) 한 장면을 보고 똑같이 그렸나 보다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통하여 행복한 눈물이 얼마나 고가의 그림인지 알게 되었다. 2002년 11월 한 익명의 사람에 의해서 715만 9500달러(한화로 약 86억 5천만원)에 판매되었다는 것이다. 아무도 그 행방을 몰랐는데 이 그림이 한국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문제의 핵심인 삼성에서 말이다. 삼성의 것이 아니라고 서미 갤러리 대표 홍송원씨가 말했다지만 한국에서 아무도 그말을 믿는 사람은 없다. 분명 삼성의 것이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삼성의 수법은 이젠 고전이 되어서 더이상 예술의 경지를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정말 별 것도 아닌 작품을 사는데 86억 5천만원을 쓰는 것을 보면서 도대체가 이해가 안된다. 모나리자같은 르네상스 시대의 원본을 사는데 이정도 돈이 든다면 그래도 이해가 되지만 1964년 작을 사는데 이정도의 돈이 든다는 것 솔직하게 이해가 안된다. 도대체 미술품이라는 것이 그리 비싸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현대화가의 작품이 그렇게 비싸게 팔리는 것도 이해를 못했다. 도대체 그 사람들은 무슨 정신구조로 이런 것을 사는 것일까? 단돈 몇 백만원이 없어서 학교를 휴학하고 군대에 가는 젊은이들을 바라보면서, 88만원 세대에 살고 있는 20대의 젊은이들을 바라보면서(이 미술품을 사는 가격이면 88만원 임금을 받는 사람 9830명의 임금이다) 저깟 그림이 이렇게 비싼 값에 팔리는 것이 과연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해본다.

  이런 생각에 이 책을 샀다. 왜 미술품이 가격이 비쌀까? 원판이 복사판보다 낫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현대 작가의 작품이 오랜 세월을 버틴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보다 비싼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질문에 대하여 이 책은 대답을 해주고 있다. 미술품의 가격이 올라가는 것은 결국은 돈의 논리, 자본의 논리라는 것이다. 예술을 예술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환산하여 본다는 것이다. 이것을 가지고 얼마나 큰 돈을 벌 수 있을까? 이것이 얼마나 비쌀까? 몇년 후에 팔면 얼마만큼의 이익이 보장될까? 이러한 자본의 논리를 가지고 예술을 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치라는 사람은 온갖 것들을 팔아 치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본이 예술가를 키우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참 웃긴 일은 한 작가가 이러한 세태에 일침을 가하기 위하여 통조림에 자신의 똥을 담아서 전시를 했다는 것이다. "미술가의 똥"이라는 제목으로 작품을 출품했는데 이것마저도 돈을 주고 사버렸다는 것이다. 이미 예술은 돈이 좌우하고 있다. 정치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을 조금 비틀어 본다면 예술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 사람들이 비싼 돈을 주고 그것을 사는가? 왜 명품에 열광하는가? 자기의 지위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백만장자가 되었는데 유서깊은 혈통도 아니고 자신에 대한 고귀함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돈으로 예술을 사고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 자신이 마치 고귀한 존재인양 행동하는 허영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도오하에 나오듯이 허영에 빠져서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것이리라. 이런 면에서 본다면 古백남준 화백의 이야기는 정확하게 예술을 표현하는 말일 것이다. 물론 그 내용은 정반대의 것이겠지만 말이다. 예술은 그것을 돈을 주고 삼으로 인해서 자신을 마치 고귀한 존재인양 허영에 빠지게 만드는 진정한 사기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졸부 근성이라고 밖에 표현이 안된다. 아무리 미사여구를 붙인다 해도 삼성 이건희 회장 일가의 미술품 수집은 졸부근성이라고 밖에 표현이 안된다. 진정한 고귀함을 갖지 못하고 고귀함을 가진채 하기 위한 비싼 사치품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이 책을 덮으며 "원래 예술이란 반이 사기다. 속이고 속는 것이다. 사기 중에서도 고등사기이다. 대중을 얼떨떨하게 만드는 것이 예술이다."라는 古 백남준 화백의 이야기가 귀를 떠나지 않는다. 당당하게 예술은 사기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진정한 고귀함, 자유로움이 그 안에 묻어 있기 때문이 아닐가?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안받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술 자체가 주는 즐거움에 흠뻑 빠져있는 자유 정신, 창조 정신의 자신감이 아닐까? 예술을 바라보는 우리 안에도 이러한 자유와 창조의 정신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예술은 사기"라는 古 백남준 화백의 이야기를 진정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유쾌하게 웃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ps. 참고로 이 책의 번역이 너무 어렵게 되어 있다. 미술에 관한 대중적인 책이라면 용어와 학파에 관한 이야기도 설명을 해줬으면 좋지 않았을까? 또한 말이 너무 어렵다. 조금은 쉽게 번역할 수 있지 않았을까? 마치 학생들에게 번역 숙제를 내주고 그것을 모아 책을 낸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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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면서 2011-06-29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故백남준으로 쓰셨더라면 조금 더 좋았겠고요.

지나오면서 2016-02-24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古박남준 무식한시빡세끼

saint236 2016-02-25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타에 대해서 이렇게 몰상식하게 말하는 사람은...자신도 오타를 내고 있다는 것은 아는지...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 삼성은 무엇으로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가
프레시안 엮음, 손문상 그림 / 프레시안북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또 하나의 가족, 대한민국 최고, 불패의 삼성, 관리의 삼성 등등 삼성을 표현하는 수식어들은 정말 많이 있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 두터운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모습을 일컬어 삼성 공화국이라고도 부른다. 삼성의 영향력을 놓고 본다면 맞는 말이다. 대한민국에서 삼성을 빼놓고 살아가기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어디를 가도 이름을 빼놓지 않는 것이 삼성이다. 그러나 그 이름이 항상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름답지 못한 모습으로 비추어 지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위의 사진은 얼마전 방영된 이미미 광고였다. "어부에게 바다는 생활, 연인에게 바다는 낭만, 아이들에게 바다는 놀이터, 삼성중공업에게 바다는 가능성"이라는 표어를 가지고 아름답고 감동적인 광고였다. 광고만 본다면 정말 감동적이고 미래를 향해 도약하는 삼성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광고가 나왔던 시기를 살펴본다면 결코 그렇지 않다. 삼성의 미래나 가능성이라기보다는 삼성의 변함없는 오만함과 함구하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 광고가 방영되던 시기에 삼성중공업의 선박에 의한 사상 최악의 기름유출 사고가 일어났다.

  많은 어부들이 일자리를 잃고, 생계를 잃고, 전 국민의 관심이 쏠렸지만 삼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다 말은 했다. 자신들은 잘못이 없노라고. 문제의 배는 하청업체의 배였노라고. 도마뱀 꼬리 자르기식의 삼성의 행태는 겨코 글로벌하지도, 정당하지도, 아름답지도 못하다. 구질구질하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리라.

  많은 시민단체들이 삼성에 대하여 고발해왔다. 방송은 물론 얼마 전에는 공범자였던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이 있었다.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에서는 김용철 변호사를 도와서 검찰과 삼성이 변해야 한다 주장하면서 그 비리를 폭로하였다. 그러나 삼성과 검찰은 여전하다. 법과 질서를 지켜야 하는 검사와 판사는 떡검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되고, 한때 검사스럽다는 신조어가 생겨 최고의 욕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삼성은 여전히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 있다. 그러나 그 돈은 자신들의 이익에 사용될 뿐이지 자신들의 책임이나 잘못을 인정하는 일에 결코 사용되지 않는다.(태안 기름 유출 사건처럼) 어느새 권력의 맛을 알아버린 삼성은 이건희 회장을 필두로 정치, 경제, 언론, 사법의 전방위적인 로비와 영향력을 통하여 이 사회를 통제해 나가고 있다. 정부의 정책을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손봐준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 될 정도이니 말이다.

  이만한 영향력을 끼치는 삼성이 왜 그렇게 아름답지 못한 이름을 떨치는 것일까? 조금만 투명하게 된다면, 조금만 욕심을 버리면 이 사회에 많은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이고, 굳이 수십억씩 쏟아붓지 않아도 아름다운 이름을 얻게 될것인데 왜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 간단하다. 삼성은 이건희 회장 일가의 욕심을 위하여 이용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요지는 분명하다. 이건희 일가와 삼성은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 기업의 가장 큰 문제인 세습을 용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기업 총수 2세들이 거의 무너진 이유도 이것이 아닌가? 실력이 아닌 혈연에 의한 막가파식 세습이 기업의 경쟁력을 다 깎아먹고 이 땅에 경제 위기를 몰고왔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책임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갔던 것이고. 삼성왕국의 게릴라들은 끊임없이 이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의 로비에 흔들리지 말라고. 삼성이 일류기업이 되기 위해서 많은 것들을 개혁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책의 표지를 보면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 표지 하나로 작금의 현실을 이렇게 잘 표현할 수 있다니. 삼성 왕관을 쓰고 왕좌를 차지하고 있는 이건희 회장, 일찍부터 온갖 비리와 편법을 사용하여 자신의 자리를 다지고 있는 이재용 상무. 이들은 욱일승천기의 배경처럼 보이는 줄무늬를 배경으로 하나의 욱일승천기를 만들고 있다. 삼성불패, 삼성공화국, 삼성에 의한 사회의 통치, 그리고 이러한 삼성의 정점에는 이건의 일가라는 오만함과 독선이 이 표지 하나레 그대로 묻어 있는 것이다. 이 표지 하나에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모든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것 같다.

  또한 이 책의 내용도 감동이지만 그 책 사이사이에 들어가 있는 만평또한 촌철 살인급이다.

  "법은 만민에게 평등한 것이 아니라 만명에게만 평등하다."는 노회찬 의원의 일갈은 우리의 속을 시원하게 만들어 주는 일갈임과 동시에 삼성과 검찰에 던지는 사자후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일곱 게릴라들의 목소리는 모두 이와 동일한 것들이다. 삼성에 대하여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만들어 주는 책이자, 있는 그대로의 날것을 적은 책이다. 어설프게 신문을 읽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책들이다. 법, 경제, 정치, 언론, 노조 등등 전방위에 걸쳐 있는 삼성의 비리를 고발한다.

  마지막으로 이책을 읽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사제단 신부님들의 이야기를 인용하고자 한다. 이 땅에서 삼성을 상대로 싸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며 무모한 일이고, 많은 것들을 희생해야 하는 일인지를 잘 알고 있는 이 땅의 게릴라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이야기이기에 인용하고자 한다.

  "이런 내용을 말하면서 자캐오가 바로 김용철 변호사라고 얘기했다. 그랬더니 교유들이 불편해했다. 우리 성당에는 젊은 사람들, 배운 사람들, 부자들도 많이 있는데, 신부님이 그런 말씀을 하면 이 사람들이 불편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너그러이 판단해달라고 그러더라.

  맞다 불편해할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이 진짜 부자라면 그 부탁을 감안하겠지만 그들은 부자가 아니다. 자신이 부자라서 현상 유지하고 싶고,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고, 차선으로 이회창 후보라도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고, 신문은 모름지기 조중동이어야 한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모두 착각이다.

  그래서 내가 그랬다. 사목은 다른 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좋은 일이 있으면 함께 기뻐하고 축하하며 궂은 일이 있으면 함께 슬퍼하고 눈물 흘리고 장례식에서는 장지까지 쫓아가주는 것이다. 그런데 김용철 변호사 일은 궂은일이기 때문에 간 것이다. 기변호사가 자신이 털어놓은 진싱을 받아 주는데가 없어서 사제단까지 찾아왔는데 사제단마저 모르쇠해버리면 이 사람을 버리는 것이다. 불쌍하고 슬픈 영혼 찾아왔는데 어찌 외면하겠는가라고 말했다."

  "우리는 지는 데 익숙하다. 외로운 데도 익숙하다. 아무리 소리치고 머리깎고 굶어도 사회는 꿈쩍도 안한다. 우리는 열매를 보고 하는 게 아니다. 봄이 됐으니 씨 뿌리고 밭을 가는 것이다."

  이 땅에서 삼성을 상대로 싸우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요, 고난을 자처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게릴라"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게릴라들이 결코 주저앉지 않았으면 좋겠다. 함께 해주는 사람들이 있고, 열매가 아닌 시기가 됐기 때문에 씨를 뿌리는 마음으로 당당하게 맞서길 바란다. 응원하는 한사람으로서 나도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이들의 싸움이 진전을 거둘 수 있도록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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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9-03-26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 노회찬 의원을 그리워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