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시대, 문자의 종말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나”
문자제국 쇠망약사/ 이남호 지음/ 생각의 나무
박영석기자 yspark@chosun.com
활자의 쇠락, 문화의 천박화, 지성의 종언을 바라보는 문학평론가의 시선은 씁쓸하다. 컴퓨터·휴대폰·MP3·디지털 카메라 같은 전자제국의 병정들이 문자라는 무기로 세상을 지배했던 책을 완전 무장해제시키고, 인간의 의식마저 규정하는 현실. ‘문자제국…’ 저자 이남호(58) 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정보화의 속도만큼 우리 사회 문자 문화가 쉽고 빠르게 허물어져 가는 것은, 서구 근대화의 특징인 합리적 이성(logos)에 대한 훈련이 부족했고 충분히 내면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변화에 감각적으로 적응해 온 데다 특유의 ‘새것 콤플렉스’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이다”라고 했다.
“합리적 이성, 정신적 가치에 대한 전면적 부정과 해체 현상이 곳곳에 보입니다. 기존의 것을 ‘다 비켜!’ 하는 식으로 몰아내는 것은 재원시화(reprimitivization)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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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남호 교수는“문학이란 곡식이 자라는 예전 문자의 들판에는 내면적 사유, 아름다운 서사, 이성에 대한 신뢰, 진·선(眞·善·美)에 대한 존경과 성실한 추구가 있었다”며 이미지·사운드가 지배하는 세태를 안타까워한다. (이덕훈기자 leedh@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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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는 월드컵의 본질을 스포츠의 위력·승리·축제라기보다 전자문화의 완승으로 파악한다. “2002 월드컵은 구텐베르크 은하계(문자문화)가 마르코니 성운(전자문화)에 영역을 내줬음을 알린 상징입니다. 월드컵 첫승과 종로서적 최종 부도라는 두 거사가 그해 6월 4일 한날에 일어났다는 것, 지식인들이 월드컵 문화에서 당혹감·무력감을 보인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지요.” 그는 ‘꿈★은 이루어진다’처럼 기호(★)가 담긴 구호가 저항감 없이 받아들여진 것은 전자문화의 세상으로 전환했음을 대변하는 사례라고 말한다.
그는 대학 사회 내 ‘문학 끼워팔기’에 대해서도 개탄한다. “배타적 관계를 접어두고 문자교육에 전자매체를 이용한다거나, 더 많은 수강생을 끌기 위해 ‘문학의 이해’ 과목을 ‘문학과 영상’으로 바꾸는 일이 흔합니다. 문학·독서로 대표되는 문자문화는 전자문화와 공존할 수 없거든요.” 이 교수는 이성적 사유와 인식 도구인 문자의 위상이 축소되면서 창작욕이 감소하는 악순환을 가져오고, 스포츠 칼럼·만화·드라마 대본을 문학 장르로 보는 ‘창작 개념’의 변화가 생길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문자에 대한 연민을 담은 책을 낸 이유에 대해 “포스트 모더니즘·신식민주의 같은 상이한 현상들에 대해 ‘전자문화’라는 큰 틀이 요즘의 변화를 이해하는 하나의 관점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며 “우리가 어디로 어떤 이유로 가고 있고 잃고 있는 게 무언지 고민을 던지고 싶다”고 했다.
그의 책엔 고독한 내면적 고뇌를 상실한 책, 조잡하기만 한 지성, 인류 최고·최선의 유산인 이성과 문자를 스스로 파묻는 과정에 대한 불쾌함이 가득하다. 이 교수는 “문자의 몫이 줄고 변질될 전자제국의 속성을 알고 대비하려면, 먼저 인간의 소중한 근본 가치를 냉정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