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무튼, 난 멜로가 체질이 아니다.  

 

<멜로가 체질>이란 드라마를 재미있다고 해서 봤다. 영화 감독이 TV드라마를 만들었다는 것도 그렇고(감독 데뷔 전 '써니', '과속스캔들'등을 썼다고 한다) 기대가 돼 봤다. 결국 난 7회까지 보고 말았다. 뭐 이제까지 봤던 멜로 드라마와 확실히 차이는 있다만 도저히 봐줄 수가 없다. 배우가 연기를 해야지 개그를 하면 쓰나 싶다. 그렇지 않아도 개그 프로그램 보면 개그맨들은 뭐 하나를 빼놔야 개그를 하지 정상적인 사고로 저런 개그가 나오나 차라리 이해가 가는데,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이 작정하고 덤벼드니 보면 볼수록 뭔가 질리는 느낌이다. 상황을 만들고 상황에 맞는 대사를 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도 그렇지만 난 이상하게도 멜로가 맞지 않는다. 남녀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기 전 갈등 은 봐줄만 한데 그러다 사랑에 빠지면 그때부터 급격히 재미가 없어진다.

 

대신 <동백꽃 필무렵>을 보고 있는데 이거 완전 내 스타일이다. 공효진도 공효진이지만 강하늘을 열렬히 좋아한다. 무엇보다 대본을 잘 썼다. 충청도 사투리를 정말 잘 살렸는데 무대뽀 사랑을 표현하는데 충청도 사투리만큼 찰진 게 또 있을까 싶다. 혹시 대본집으로 나온다면 사 두고 싶을 정도다. 

 

 2. 역사적 견해 

 

<요즘책방; 책 읽어드립니다>를 챙겨 보고 있다. 지난 번에는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다뤘는데 거기 나온 설민석과 장강명이 중요한 얘기를 한다. 독일은 나치의 역사에 대해 두고 두고 반성과 사죄를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왜 일본에게 사죄를 받지 못하느냐에 대해 설민석은 국운을 들었는데, 일본이 패망을 하고 조선에서 물러가면 전범을 잡아 들이는 건 물론이고 모든 체계를 다 없애버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일을 미국이 해야하는데 그때 하필 미국은 소련과 싸워야 하는데 일본의 힘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그러질 못했고 그것이 우린 아직도 정당한 사과를 받지 못하고 있는 거라고. 아베의 외할아버지를 비롯해 아직도 일본 내 극우 세력이 판을 치는 거라고.

 

이어 장강명은 독일이 그렇게 두고두고 사과할 수 있었던 건 나치 시대에 독일의 괴롭힘을 당했던 나라들이 2차 세계대전 이후 하나같이 국력을 키워 잘 살게 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비해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의 침략을 당했던 필리핀 등 동아시아의 나라는 일본 보다 잘 살지 못하니 사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고. 둘 다 그럴 듯한 말인 것 같다. 그렇다면 일본이 과거사에 사죄하는 날이 온다면 우리나라가 그 첫번째가 되지 않을까. 우리나라는 이제 일본의 적수가 될만하니 말이다. 

 

3. 도대체 할 수 있는데가 어디까지를 말하는 걸까.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 온 지인이 최근 친정 부모와 합쳤다고 한다. 부모님이 다 치매라서. 어머니가 조금 심하시고, 그나마 아버지는 경증이다. 그동안 바쁜 중에도 일주일에 한 두 차례씩 친정을 가곤했는데 힘에 부치기도하고 그밖에도 여러 가지 합칠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그런데 그게 왜 그리 짠하던지. 자식이 부모 모시는 게 당연하긴 하지만 때문에 더 힘들어질 거라는 것을 아니 무작정 잘한 일이라고 박수를 쳐줄 수가 없었다.   

 

"그냥 저 할 수 있는데까지만 하려구요. 나중에 요양원에 모시더라도 어떻게 처음부터 요양원에 모셔다 놓을 수가 있겠어요." 한다.그렇게 말한 게 지난 추석 하루 전날이었다. 부모님 모시기 준비 중 내 생각이 나 전화한다며. 그녀 역시도 몸이 그렇게 건강한 편은 아닌데 말이 좋아 할 수 있는데까지지 어디까지가 할 수 있는데까지며 그러다 골로 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다 바로 얼마 전 이번엔 내가 먼저 연락을 해 봤다. 워낙 바쁘게 사는 사람이라 그나마 주일이 연락하기가 낫지 싶어 했는데 역시 쉽지는 않았다. 전화를 받자마자 한숨부터 쉬는데 상황이 어느 정돈지 알 것도 같다. 그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마음을 다잡고 또 잡았을까. 부모님을 모셔 놓으니 일가친척들이 한번씩 머리를 디미는데 오시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죽을 맛이란다. 그렇게 대화 좀 이어갈까 싶었는데 어머니 목욕시켜 드려야 한다며 중간에 전화를 급히 끊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일년이면 두 세 차례는 만났는데 전화를 끊을무렵 내가 우리 언제 만나요 하며 푸념했는데 그게 그녀에겐 배부른 투정처럼 들리지 않았을까.    

 

4. 수렁에서 건져낸 내 친구? 

 

얼마 전, 갑자기 폰이 울려 또 스팸 전화겠지 했는데(언제부턴가 스팸 아니면 전화 올 때가 거의 없어졌다) 사이판에 서는 친구다. 어찌나 반갑던지. 전화 안 한지가 거의 3년쯤 된 것 같다. 사이판에 산지가 20년 가까이 되고, 그동안 2년에 한번씩은 서울에 왔던 것 같다. 나올 때마다 만나곤 했는데 이쯤되면 이 친구와도 멀어지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마지막 통화했을 때 사이판에 강력한 태풍으로 거의 초토화되다시피 하고 아직도 복구가 안 되고 있다고 했다. 그 나라가 자기네 나라에 사는 외국인들에게까지 도움을 줄 형편이 못 되는지라 그런 난리가 나면 사는 게 말이 아니라고 했다. 그런 말을 들으니 못 들은 척 할 수도 없고 새발의 피도 안되는 돈을 위로차 보내 줬었다. 아무리 작은 돈이라도 받았으면 받았다고 연락이라도 할 텐데 그런 것도 없고, 내가 이 친구에게 뭐 잘못한 것이 있나 찜찜해 하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얘기를 들어 보니 그동안 지난 번에 델 것도 아닌 강력한 태풍이 몰려와 그야말로 건질 것도 없이 알거지가 될 지경이었단다. 그나마 조금 나아져서 이제야 전화하는 거라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화고 통신이고 제대로 하지도 못 했단다. 문득 이상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것 같으면 우리나라 뉴스에서도 한번쯤 나올 법도 할텐데 그동안 그런 뉴스를 들어 본 적이 없다. 못 들은 걸까. 

 

마지막 통화를 할 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아직도 하고 있느냐고 했더니 하지 않고 남편이 동업으로 일을 해 그 일을 함께 도와주고 있다고 했다. 조만간 그만두고 살림만 할 거라며 이제 일이라면 신물이 난다고 했다. 왜 안 그럴까.

 

앞서 말한 지인도 그 친구의 경우도 그렇고 중년에 빈 둥지 증후군도 있다는데 과연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 자식 뒷바라지 끝났다 싶으니 아픈 부모를 모셔야 하고, 그게 끝나면 자신이 아프겠지. 이게 또 사람의 인생이란 생각을 하니 새삼 허무한 생각이 든다.

 

5. 고종의 길

 

<고종의 길>이란 연극을 봤다. 명성황후 시혜 전후 상황과 고종의 아관파천, 대한제국이란 국호를 정하기까지 과정을 보여준다. 결코 즐겁게 볼 수 있는 연극은 아니었다. 설명이 약간 과하다 싶지만 주인공을 맡은 배우의 연기 몰입도가 꽤 높다. 처음 보는 배운데 고뇌하는 고종을 제법 실감나게 잘 표현했다. 끝나고 마음이 무거워 한동안 자리에 멍하니 않아 있었다(물론 관객들 빠져나가길 기다린 것도 있긴 하지만). 그런 마음이 들었다면 꽤 성공한 연극이라고 생각한다.   

 

부인과 아버지 사이에서 방황해야 했고, 급기야 아내가 일본의 낭인에 의해 무참히 살해 당하는 것도 부족해 시신이 불태워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그걸 보고 어찌 미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할 생각을 했다는 건 새삼 대단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고종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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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2 1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12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9-11-12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댓을 남기고 나니 공개 댓글도 남기고 싶어지네요. 오랜만에 댓글 남깁니다. 반갑게...
잘 지내시죠?
저도 잘 지냅니다.

<동백꽃 필무렵>을 봐야겠군요. 채널 돌리다 제목은 많이 봤어요.

stella.K 2019-11-12 15:02   좋아요 0 | URL
<동백꽃 필 무렵> 꼭 보세요.
그거 보고 있으면 어쩐지 황순원의 소나기가 생각나요.ㅎㅎ
여기 쓰진 않았지만 혹시 웃음이 필요하시면 <천리마 마트>도 보세요.
처음엔 별로 기대 안하고 봤는데 의외로 괜찮고
몇 회까지 할지 모르지만 한 회 한 회 종반을 향해 간다고 생각하니
꽤 아쉽더라구요. 그럴만큼 재밌고 좋아요.ㅋㅋ

레삭매냐 2019-11-13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 저도 해당 프로그램을 보면서 제가
읽었던 아이히만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아무래도 대중 프로그램이다 보니 좀 더
깊이 있는 접근이 아쉽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나라의 현실에 대입해서 풀어 주지
않을까하는 기대는 하지도 않았지만 말이죠.

stella.K 2019-11-13 15:57   좋아요 0 | URL
ㅎㅎ 좀 그렇긴 하죠?
어차피 TV는 그냥 바람잡이 역할 정도 밖에는 안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게...
그래도 관심은 가더군요.
그런데 요즘엔 그것도 전 왠지 편하게 보이진 않더군요.
마치 저들만이 똑똑하고 의식있는 양 하는 것 같아서.
전 왜 이렇게 삐딱한지 모르겠습니다.ㅎㅎ
 
북성로의 밤
조두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지리에 관해서는 그다지 밝은 편이 아니어서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대구에 북성로가 있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대구의 4성으로 그러니까, 동성로, 서성로, 남성로, 북성로가 있고 그것은 100여 년 전만 해도 대구 성의 성벽이었다고 한다. 이 대구 성은 조선이 왜구의 침략에 대비해 임진왜란 2년 전인 1590년 흙으로 처음 축조되었고, 1736년에 돌로 성을 다시 쌓았다고 한다. 그 후 흥선대원군에 의해 1870년에 거의 재축성에 가까울 정도로 대대적인 보수를 하지만 30여 년 뒤엔 일본 상인들이 이를 허물고 4성로를 건설해 그 도로를 따라 점포를 세웠다고 한다. 그중 대표적인 기업이 나카에 도미주로 형제가 북성로에 설립한 미나카이 백화점이고, 소설은 바로 이곳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


1940년 대, 일본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우리나라가 광복이 되기 바로 몇 년 전을 그리고 있다. 그때 미나카이 백화점은 대구의 랜드마크였다. 책을 읽고 있노라면 요즘의 백화점과 별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돈데 1940년 대에 정말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 또는 스카이라운지가 있었을까, 이건 작가의 상상에 의한 은 아닌지 좀 의아스러웠다. 그런 것을 제외하면 소설은 일제 강점기 말을 상당히 충실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런 만큼 소설은 미나카이 백화점은 화려함 이면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에 사는 일본 사람들, 친일파 조선인들, 하다못해 독립운동에 가담한 사람들조차 어떻게 허물어져 가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사실 지금까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의 압제와 독립을 향한 의지 이 두 관점에만 치우쳐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친일과 반일, 매국과 독립 뭐 이런 프레임으로만 보려고 하는 시각이 있었다. 나 개인적으론 이런 관점에 새로운 시각을 부여해 줬던 건 <경계에 선 여인들>이란 책이었다. 물론 그것은 일제 강점기를 주제로 한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20세기 초중반의 동아시아 여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가를 연구한 책이다. 거기에 우리나라의 일제 강점기의 여성에 대한 보고서가 들어가 있는 것이다. 한 가지 놀라운 건,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에 온 일본 여성들이 그렇게 행복한 삶을 살았던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확실히 나에게 새로운 시야에 눈을 뜨게 만든다. 왜 나는 지배국의 국민들은 무조건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을까. 적어도 난 그들이 행복했을지 불행했을지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이 소설도 보면 미나카이 백화점의 사장 나카에의 딸 아나코 역시 외형적으론 부유하고 행복한 삶을 산 것처럼 보이나 그렇지 않다. 그녀는 오히려 같은 일본인 남성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다. 그렇다면 소설은 중립적이라 할 수 있다. 노태영이 친일 경찰이 되는데 그가 왜 그럴 수밖에 없는가가 나름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또한 미나카이 백화점 설립자 나카에 역시 조선인에 대한 지극히 혐오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그 밑바닥엔 자신의 나라 역시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그에겐 오로지 백화점밖엔 없다. 결국 그는 백화점을 구하기 위해 조선인 정주에게 넘기기도 한다. 태영의 동생 치영은 어떤가. 독립운동을 하니 등장인물 중 가장 멋있는 인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형인 태영을 죽이는 것이 정당한 것은 아니다. 흔들림이 없이 가장 안정적이고 성실한 인물은 노정주다. 그는 백화점도 인수받았겠다 아나코와의 사랑을 이룰 수도 있었지만 끝내 포기하고 만다.


그뿐인가, 작가는 해방 이후 당시의 조선인들이 어떤 식으로 일본인들에게 보복을 했는가도 가감 없이 기술하고 있다. 그런 것을 보면 읽는 이에 따라 다소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소설이란 비록 허구라고는 하나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는 것만은 아니다. 사실 역사가 진실을 말하는 학문 같아도 그렇지 않고 오히려 편파적일 때가 있다. 그래서 사관이란 말을 써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도 본다. 역사는 사관일 뿐이다. 그러나 소설은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 실존에 대해 말해야 한다. 나는 그런 점에서 작가가 충실했다고 본다. 무엇보다 글이 안정적이고 나름 사유적이기도 하다.


그것을 통해 작가는 독자를 그 시대에 대해 애정과 통찰을 갖고 보기를 바라는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은 전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우린 등장인물을 이해할 수 있다. 읽다 보면 결국 남는 건 국가란 무엇이냐란 생각에 머문다.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는 힘없는 나라의 국민은 당연히 불행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나라면 아무리 조선을 만만히 보더라도 제 나라 백성을 조선으로 이주시키는 일은 안 할 것 같다. 물론 그때는 조선이 일본의 속국으로 영원히 그렇게 살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이란 나라는 그 이전이나 그 이후나 그렇게 만만히 볼 수 있는 나라는 아니다. 설혹 만만히 보더라도 자신의 나라가 패망을 했다면 조선에 사는 자기네 나라 국민들을 안전하게 귀국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물론 그것까지는 소설에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는 않지만 나카에를 보면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


언제나 그렇듯 역사를 볼 때 있는 나라가 부러울 때가 많다. 국민을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도록 하는 것이 국가 존립의 이유다. 그래야 문화와 역사가 이어질 수가 있고 세계 어디를 가도 무시당하지 않을 수 있다. 과연 그 참혹했던 시절을 생각할 때 국가 지도자들은 과연 그 일을 충실히 해 나가고 있는 것일까 묻고 또 묻고 싶다.

 

구한말 또는 개화기에 관심이 많다면 추천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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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7 2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9-11-08 14:21   좋아요 0 | URL
앜, 그러시군요. 저도 서울 살아도 가 본데 보단 안 가 본데가
더 많으니 어쩌면 좋을까 싶습니다.ㅠ
저도 궁금하긴 하더라구요. 대구 어디에 그 백화점이 있을까?
지금도 있나 아니면 다른 뭐가 들어섰나?
혹시 언제고 북성로 가실 일 있으시면 사진 한 번 올려 주시죠.^^

수이 2019-11-07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개화기때 꽤 임팩트 강한 인생을 살았던 거 같아요, 추천해주신 책 읽어볼게요 :)

stella.K 2019-11-08 14:32   좋아요 0 | URL
앗, 수연님의 개화기...? 궁금한데요?^^
이 책 꽤 오래 얻어와 놓고 이제야 읽었습니다.
작가의 책이 몇 권 더 있더군요.
차분하게 글을 잘 썼더라구요. 기회되면 두어권 더 읽고 싶어요.
최근엔 책을 안 내는 것 같은데 아쉽더군요.
꾸준히 내면 좋을 것 같은데...

카알벨루치 2019-11-08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학창시절에 대구의 중심은 동성로였더랬는데 지금은 많이 변한듯 합니다 내가 살았던 도시가 맞나 싶을 정도로 이질감을 느끼는 느낌입니다 북성로를 중심으로 소설이 있군요...

stella.K 2019-11-08 14:32   좋아요 1 | URL
앗, 카알님 대구였던가요? 이런...
그동안 알라딘 마을의 대구출신 3 스타 하면 유레카님과 스요님, 시루스로만
기억했는데 이제 그러면 안 되겠는데요? 4 스타로 카알님을 등극시켜
드려야겠어요.ㅎㅎㅎ
옛날에 자신이 자란 동네를 잊지 못하죠. 그래서 그런지 떠나 온 동네를
선뜻 다시 못 가겠더라구요. 너무 많이 변해있을까 봐.ㅠ

카알벨루치 2019-11-09 14:32   좋아요 1 | URL
저 빼고 북프리쿠키님 넣어서 4스타입미다 ㅎㅎㅎㅎ

북프리쿠키 2019-11-09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구 오시면 북성로 우동에 연탄불고기 사드리께요 ㅋ

stella.K 2019-11-09 15:22   좋아요 0 | URL
ㅎㅎㅎ 쿠키님,카일님 스타 아니시라고 하는데
그러고보니 쿠키님까지 5星이어요.ㅋㅋㅋㅋ

그런데 쿠키님은 북성로를 잘 알고 계시는군요.
거기에 정말 미나카이 백화점이 있었나요?
지금은 다른 게 들어섰을 것 같은데 자리가 어땠는지 궁금해요.
아, 우동에 연탄 불고기라. 5星이 함께 모이는 날 있으면
그날 한 번 뵙죠. 제 닉넴도 별과 아주 상관이 없지는 않으니.ㅋㅋ
 

1.  혹시 집에서 무슨 소리 나지 않나요?


며칠 전 책 박스를 들어냈다. 젊은 날 발품 팔아 모은 책들이었다. 그땐 지금같이 인터넷으로 책을 사던 시절이 아니었으므로 꼭 발품을 팔아야 했다. IMF가 나고 살던 집을 전세로 돌리고 2년쯤 더 산 뒤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때 4백 권쯤 되는 것을 하나도 버리지 안 하고 라면 박스 몇 개 인지도 모를 박스에 담아 이사를 왔을 땐 그것을 풀게 될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가 거실에 붙박이용 수납장이 있으니 거기에 꽂아두면 된다고 했으니까.


엄마가 말한 붙박이용 수납장은 그리 큰 것도 아니어서 반도 못 들어 가게 생겼다. 설령 꽂는다고 해도 그럼 잡동사니 물건들은 어디에 둔단 말인가. 모르긴 해도 엄마는 내가 그 책 박스를 풀지 못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또 푼다고 해도 언젠간 엄마는 읽지도 않을 책을 뭐하러 꽂아 두냐며 시마다 때마다 나를 괴롭게 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결국 알아서 하란 뜻으로 알고 이사 오던 당일 방구석에 박스채 쌓아 두었고 20년 동안 건드리지도 않았다. 그동안 난 될 대로 되란 식으로 여전히 좋아하는 책을 사서 그 박스 위에 몇 겹으로 책탑을 쌓았다. 그것도 부족해 방 여기저기 빈 공간만 있으면 역시 책탑을 쌓았다.  


물론 그동안 쌓아두기만 했던 건 아니다. 더러 안 보는 책은 사이판에 사는 친구에게도 보내기도 했고, 주민센터 도서관에도 기증하고, 또 중고샵에 팔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좀처럼 줄지 않았다. 그 사이 엄마는 안 보는 책은 더러 버리라는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난 그때마다 엄마에게도 취미생활이 있는 것처럼 나에게도 취미생활이 있는 거라며 맞서기도 했고, 때로는 완곡하게 안 보는 책은 그런 식으로 해결한다며 엄마의 말문을 막곤 했다. 그래도 표가 나지 않으니 중요한 건 바로 이사할 때 데리고 온 책 박스를 해결하는 것이다.


엄마는 쌓아 논 책 박스 때문에 방바닥이 주저앉을 거라고 했다. 처음엔 책 박스를 해결하지 않으니 엄마가 수를 쓴다고 생각했다. 집이 얼마나 허술하게 지으면 책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방바닥이 주저 않는단 말인가. 난 그야말로 머리털 나고 그런 말은 처음 들어 본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엄마의 말이 사실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는 지인은 오카자키 다케시의 <장서의 괴로움>에 보면 실제로 그런 일이 있긴 있더란다. 책을 하도 많이 모아 방구들이 주저앉았다는 것이다. 순간 난 아찔하다 못해 현기증이 났다. 엄마의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다. 내가 짐짓 근심스러운 표정을 짓자 그 지인은 아차 싶었는지 옛날 일본식 집들은 목조 건물이 많지 않냐며 지금은 철근으로 지으니 그런 일은 없을 거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하지만 우리 집도 오래전에 지어진 집이고 보면 아무리 철근으로 지어졌다고는 그러지 말란 법도 없겠다 싶었다. 더구나 오래전부터 집에선 소리가 나고 있었다. 사람의 몸도 오래 쓰면 여기저기서 뚝뚝 소리가 나는 것처럼 집도 그런 것일 텐데 점점 뭔가의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휘고 기우니까 그런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 엄마 말대로 저놈의 책 박스를 들어내 집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가볍게 할 필요가 있을 것도 같았다. 더구나 단독주택이 아니고 공동주택이고 보면 안전에 서로서로 신경 쓰지 않으면 안 된다.



2. 첫인상을 얼마나 신뢰하는가.


그렇게 마음먹어도 책 박스를 드러내기는 좀처럼 쉽지 않았다. 마음만 먹었다뿐 실행하기는 족히 2, 3년은 걸렸던 것 같다. 책이 아까운 건 고사하고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책이야 요즘 새롭게 나온 책이 더 좋지 옛날 헌책이 더 좋겠는가. 그럼에도 몸 쓰는 일엔 그다지 재지 못한 나는 엄마의 방구들 내려앉는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느끼는 현기증을 감수할망정 행동으로는 차마 옮기지 못하겠다. 그래도 올봄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 보리라 마음먹었는데 이번엔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올해 들어 몸 여기저기가 안 좋아졌고, 급기야 여름이 시작되면서 병원을 다니느라 책 박스를 치운다는 건 물 건너갔다. 하다못해 가끔씩 중고샵 나가는 것도 지난봄 이후 아예 전폐하다시피 했는데 무슨 수로 책 박스를 치운단 말인가. 그래도 열심히 병원을 다닌 덕분에 지금은 많이 낫다.


그렇게 몸이 나아지니 그동안 미뤄뒀던 책 박스 치우는 문제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언제 전화를 하면 좋을까? 이번 주냐, 다음 주냐 하다가 결국 더 이상 앞뒤 재지 않고 헌책방 한 곳의 연락처를 알아 내 불쑥 전화를 해 버렸다. 책방 아저씨는 내일 11시에서 12시 사이에 오겠다고 했다. 그 시간이라면 나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런데 아저씨는 자꾸 몇 박스냐고 묻는 것이 내키지 않는 일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혹시 온다고 해 놓고 안 오는 건 아닐까 좀 불안하긴 했지만 그냥 믿어보기로 했다. 


아저씨가 오는 시간에 맞춘다면 난 10시 반 정도부터 책탑을 해체하는 작업에 들어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아저씨가 책 박스를 들어낼 테니. 중고샵에 팔거나 주민센터에 기증하면 좋겠지만 그렇게 오래된 책을 받아 줄리 없을 것 같고 그냥 헌책방에 헐값에라도 넘기는 것이 낫다. 나는 쌓아 논 책들 중에도 다시 안 볼 책을 추려 책 박스 나갈 때 딸려 보낼 생각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시작을 했는데 순간 아찔했다. 내가 일을 너무 쉽게 본 것 같았다. 난 그저 아저씨가 책 박스를 가지고 나가기 편하게 길을 터주면 된다고 생각했고 쌓아 논 책이 얼마 안 되는 줄 알았다. 뭐든 일을 할 땐 쉽게 생각해야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쉬운 일도 평생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웬걸 일단 손에 잡히는 대로 한 움큼의 책을 내려보았는데 순간 식은땀이 날 것만 같았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그때까지 쌓아놓은 책이 왜 그리도 크게 보이는지 나는 한 없이 작아져 이러다 책에 파묻혀 내일 아침 신문에 나는 건 아닐까 싶었다. 책 정리하다 책에 깔려 죽었다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헌책방 아저씨가 들이닥쳤다. 

"왜 이렇게 일찍 오셨어요? 11시에서 12시 사이에 오신다더니..."

시계는 이제 막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사장은 끼워 맞추듯 웃음기 없는 얼굴로,

"11시잖아요."     

어쩐지 빨리 서두르고 싶더니 오히려 한발 늦은 셈이 됐다. 책방 아저씨는 50대 중후반쯤으로 보이는데 진중해 보이는 것이 말수도 없어 보였다. 모르긴 해도 아저씨도 책을 좋아하다 이 업종에 뛰어든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웬만치 말수가 있으면 이런저런 얘기를 시도해 보고 싶기도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상대가 말수가 있고 없고를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 뭐 꼭 그래 주길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내 적지 않은 책 박스에 놀라며 언제부터 모은 책이냐고 물어 볼만도 한데 아저씨는 이런 일을 많이 해 봤다는 뜻인지 아니면 남의 일엔 일체 관심이 없다는 뜻인지 묻지도 놀라지도 않았다. 하지만 난 그의 말수 없음이 싫지는 않았다. 쓸데없이 말 많은 것 보다야 낫지.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을 아저씨가 대신했고, 책 박스를 내가느라 몇 번씩 오르내릴 때 나는 나대로 얼른 안 볼 책을 추려 박스에 담았다. 무슨 책을 추렸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단지 마지막으로 담은 책이 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는 것만 기억한다. 김훈의 책은 여간해서 쉽게 팔면 안 될 것만 같은데 못내 아쉬움이 남았다. 문득 그 아저씨도 자신의 밥벌이가 지겨울 때가 있지 않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원래 취미로 했던 일이 밥벌이가 되면 지겨운 법이니까. 


3. 나는, 유다일까?


책 박스를 얼추 다 나가고 정산할 순간이 왔다. 이럴 경우 책 주인이 돈을 받는 것으로 아는데 그동안 뭐가 바뀌어 오히려 수거료를 내야 하는 건 아닐까 잠시 불안했다. 하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솔직히 난 이 부분에 대해 전날 전화를 끊고 생각이 많았다. 돈을 받는다면 얼마를 받을까? 돈에 욕심내지 말자. 이렇게 실어 가 주는 것만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하고 얼마를 주건 주는 대로 받기로 하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킬로당 50원이라고 했던 것 같다. 그렇게 계산하면 만원이라는 것이다. 전날 생각했던 것도 있고 하니 받기야 받는다만 역시 마음 한쪽이 씁쓸했다. 평생 모으고, 평생 간직한 책이 고작 만원이라니. 아깝다고 다시 원상 복귀할 수도 없고. 이럴 줄 알았으면 마지막에 과외로 담은 책은 그냥 둘 걸 그랬나 싶기도 했다. 그 책들은 비교적 최근 것이라 중고샵에 팔던가 기증해도 되는 것들이다.


사람의 마음이 간사한 것이, 전날 밤까지만 해도 이 많은 책들이 내일이면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뭔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 책을 사 모으느라 들인 시간이며, 발품이며 책 한 권 한 권에 깃들어 있을 만든 사람의 영혼을 생각하면 이별식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그와 달리 정산할 때가 오자 돈을 생각하고 있으니, 마치 한때는 열렬하게 예수님을 존경했다 은 30냥에 판 유다와 내가 뭐가 다를까 싶기도 했다. 물론 그 책들이 예수님과 동급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한때는 나의 손떼를 탔고, 그 책을 구입해 뿌듯해한 적도 있을 텐데 이렇게 팔아먹고 얼마를 받을까를 생각하고 있다니. 차라리 돈을 아예 안 받는 것이 그 책들에 대한 예의는 아니었을까.  


내 손을 떠났으니 그 많은 책들은 분쇄기에서 종이조각이 되거나 운이 좋다면 아저씨의 책방 한 귀퉁이를 채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기로 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것이었으니. 이제 책에 욕심도 내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얼마를 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난 지금도 죽을 때까지 다 읽지도 못할 책들이 지금도 쌓여있다.  


4. 다시 읽지 않기 위해 읽는 책에 관하여


책 박스들이 집을 나갔으니 지금부터는 다시 책을 정리해야 한다. 그날 나는 몸이 다 나은 것이 아니라 한 번에 다하지 못하고 두 번인가 세 번을 쉬어가며 정리했다. 그러다 보니 거의 하루 종일 했다. 엄마는 내가 책 박스를 없애버린 것이 속이 시원했던지 위로 반, 놀림 반으로 "네가 고생이 많다."를 연발했다. '봐라. 네가 그리도 좋아했던 것들이 너를 얼마나 힘들 게 하는지를.' 엄마는 속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엄마의 말을 귓등으로 듣고 과연 책 때문에 정말 방구들이 주저앉았는지 확인해 보았다. 다행히도 파인 흔적은 없다. 역시 엄마는 허풍의 여왕 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역시 방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 줄 필요는 있었다. 책 박스가 있을 때 한 번 높이 쌓인 책은 웬만해서 건드리지 않았다. 어쩌다 무슨 책이 생각나서 보려면 의자를 놓고 올라가야 한다. 그러다 실수로 잘못 건드려지면 와르르 무너지기도 한다. 이제 책 박스를 치웠으니 그런 일은 없다. 올려다봐야 하는 것이 이제 내려다 보인다. 


정리를 하면서 평생 200권의 책만을 소유했었다던 수필가 피천득 선생을 생각했다. 그가 평생 2백 권의 책만 읽었을까. 그도 젊었을 때 한때는 책에 대한 욕심이 누구 못지않았을까. 더구나 그땐 책이 귀했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전에 내었던 욕심들이 줄어들게 된다. 결국 그의 남은 생은 평생 함께할 책과 그렇지 않을 책을 속아내는 것으로 삼지 않았을까. 그의 지의 정원은 그렇게 가꾸어졌을 것이다.


사람의 목숨은 영원하지가 않다. 언제 죽을지 모를 목숨 이제부터는 무엇이든 적당히 모으고 적당히 버리며 살지 않으면 안 된다. 말마따나 죽으면 짊어지고 갈 것도 아닌데 어느 날 죽게 되면 남아 있는 사람에게 짐이 되지 않겠는가. 물론 유품 정리를 대신해주는 업체도 있다지만 있을 때 잘하랬다고 조금조금씩 정리해 주면 덜 부담스러울 것이다.  


이렇게 말은 하지만 그것을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요즘 책은 얼마나 근사하고, 예쁘고, 실용적이며 합리적으로 잘 나오는가. 한마디로 탐스럽다. 정말 안 먹어도 배가 부를 것만 같다. 사실 그때 버린 책도 읽기보다 장서하다 버린 책이 태반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책을 읽는 건 지식의 축적만을 위한 것만은 아닌지도 모른다. 독서를 위해서건 장서를 위해서건 우린 어쩌면 평생 읽지 않을 책을 위해 책을 읽는지도 모른다. 이건 또 얼마나 불가능한 목표일까. 인생이 신비로운 건 해 봤자 할 수 없고 해 낼 수 없는 일에 도전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세상에 책이 얼마나 많은데 평생 읽지 않기 위해 책을 읽는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밥을 먹는 건 반드시 굶지 않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육체를 위해 밥을 먹지 않아도 되는 날 즉 죽음을 위해 먹는지도 모른다.(고 얘기하면 지나친 말장난이 되려나.) 


분명 피천득 선생이 속아낸 책들 중엔 책으로서의 가치나 위용이 결코 떨어져서마는 아닐 것이다. 나 역시 그날 내 보낸 책들 중에 여전히 아직도 볼만한 책들이 다량 들어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안 볼 책으로 분류가 되는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인연을 다했기 때문이라고 밖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한때는 군침 삼키도록 좋아해 놓고 이렇게 헌신짝 버리듯 날 버리는 것이 어디 있냐고 책들이 아우성을 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인간의 마음은 갈대며 배신의 존재인 것을. 지금도 내 방엔 몇 권은 주민센터에 보내고, 몇 권은 다시 안 볼 책으로 중고샵에 내다 팔 책이 보인다. 그리고 아직 손도 못 댄 책들이 있고 새롭게 관심이 생겨 보고 싶은 아직 사지 않은 책들이 즐비하다. 그런데 내가 무슨 수로 200권만 가질 수 있을까. 이것도 수양하는 마음이 돼야 가능한 걸까.  


그렇지 않아도 저질체력에 책을 정리하느라 요 며칠 후유증에 시달렸다. 아무래도 주인에게 배반당한 책들이 저주를 퍼붓는가 보다. 미안하다. 그러나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자. 너희들은 한때나마 서점에 꽂히기도 하고 내 덕분에 나름 장수하지 않았니. 세상엔 빛도 보지 못하고 잊힌 책들이 얼마나 많은데. 지금 좋다고 사 들인 책도 언젠간 너희들과 비슷해질 거야. 그러니 너무 섭섭해 말고 너희들은 너희들의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하렴.   


가을이 돼서 그런지 아니면 그렇게 책을 내 보내서 그런지 다소 울적한 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또 요 며칠 지인들로부터 책 선물을 받았다. 난 책에서 평생 헤어 나오지 못할 운명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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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10-27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킬로그램을 걷어치우셨군요. 대단한 일입니다.
그 빈자리에 다시 책이 차곡차곡 꽂히기를 기원해야 하나 그러지 않으시기를 기원해야 하나 고민되는군요 ㅎㅎㅎㅎ
사이러스님 같았으면 얄짤없이 또 그 자리를 책으로 덮었겠지만.

stella.K 2019-10-28 19:14   좋아요 0 | URL
ㅎㅎ 스요님이나 사이러스에 비하면 전 세발의 피죠.
그런데 독서라는 건 누구와 비교할 건 아닌 것 같아요.
많이 읽지도 못하면서 책 욕심은 왜 내나 지금은 많이 자제하고 있는데
그래도 어느새 쌓이는 거 보면 신기해요.^^

희선 2019-10-28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책을 보내서 시원섭섭하실 듯하네요 잘 안 본다 해도 책은 버리기 아깝기도 해요 stella.K 님은 헌책방에 팔아서 다른 누군가한테 갈지도 모르겠네요 조금씩 정리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나가는 게 있으면 들어오는 것도 있겠지요


희선

stella.K 2019-10-28 19:18   좋아요 1 | URL
맞아요. 천천히 들어오는 것 같아도 나가는 속도가 들어오는 속도를
못 잡더군요. 이젠 장서 보다 진짜 독서를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ㅎㅎ

서니데이 2019-10-29 2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정리하느라 고생하셨어요.
저도 몇달전에 정리하면서 힘들었던 기억이나네요.
새 책은 계속 나와서 사다보면 금방 늘어나는 것 같아요. 꼭 읽고 싶은 책만 사야지 해도 그렇더라구요.
요즘 날씨가 많이 차가워요.
감기 조심하시고 좋은하루되세요.^^

stella.K 2019-10-30 16:34   좋아요 1 | URL
아, 서니님도 정리하셨군요.
할 때는 고생인데 해 놓고나면 뿌듯하긴 하더라구요.
그래봐야 그것도 잠깐이지만.ㅠ
서니님도 감기 조심하세요.^^

레삭매냐 2019-10-30 15: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KG당 50원은 너무 헐하 것 아닌가요.

맞습니다. 하긴 중고샵에 내다 파는
것도 또 주민센터에 보내는 것도 참
그렇더라구요.

요즘엔 공주에서 책방하는 동생에게
독서모임에서 만날 때보다 그리고
가끔 박스에 싸서 보내곤 한답니다.

책덜기의 지겨움이여... 그런데도 오늘
또 하나 사들였네요.

stella.K 2019-10-30 16:19   좋아요 1 | URL
ㅎㅎ 저도 놀랐어요.
근데 워낙 오래된 책이라 수거료 안 달라고 하는 걸
오히려 고마워해야죠.
자꾸 물어보는 거 보면 그 아저씨도 그런 건 딱히
달갑진 않은가 봐요. 그냥 그때 그때 매매할 수 있는
비교적 최근 책을 선호하지 않을까 싶어요.
책을 언제까지나 쌓아둘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죠.
그거 나가고 나서 저도 또 무슨 책을 읽어보나 인터넷을 뒤지고 있었죠.ㅠ

cyrus 2019-11-01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놓고도 안 읽은 책이 많아서 버리지도 팔지도 못하고 있어요... 읽긴 읽어야 하는데... 딴 짓(특히 다른 책 읽기)만 하고 있어요... ㅎㅎㅎㅎ

stella.K 2019-11-01 18:47   좋아요 0 | URL
ㅎㅎㅎ 네가 쓴 댓글 중 가장 안 어울리는 댓글이다.ㅋㅋ
네가 그러면 난 어떻겠니?
근데 내가 그렇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알라딘을 하면서부터야.
개인 이벤트하고, 서로 생일 챙겨주고, 안 보는 책 받고 하다보니
욕심이 생기더군. 알라디너라면 비슷하지 않을까?
알라딘은 참 좋은 동네야. 그지?^^

amuzing 2019-11-04 05: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책 내용인줄 알았어요.
저 역시 집에 책들이 너무 많아요.아이 책들로만 3천권이상
신랑이 거실에 제발 쇼파 하나 들이자고 하지만...
거실부터 방마다 한쪽 벽을 메운것들은 오직 책이죠.
정말 활용해보고자 사놓았던 육아 교구활동 도서부터 여러 활용 도서책들까지
아이들은 커가는데 ㅋㅋ 그 모든것들의 활용은 멈춘 상황
ㅎㅎ 버려야할 타이밍? 아니면 늦은감은 있으나 활용하고 버려야할 타이밍?
심히 괴로운 작업
버리기...저도 곧 해야할 상황이다보니 확 마음에 와 닿네요.
하지만서도 그럴라하니 왜 맘이 아픈지....ㅎㅎㅎㅎ

stella.K 2019-11-04 18:36   좋아요 0 | URL
와우, 3천권요! 굉장한데요?
사실 책 버리기가 쉽지는 않지만 언제고 마음의 준비가 되시면
뒤돌아 보지 마시고 확 버리십시오.
좋은 책은 앞으로도 계속 나오고 다시 채우는 건 금방이랍니다.^^

카알벨루치 2019-11-30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에 왜 제 좋아요가 없죠? 분명히 전에 봤는데....헐~ㅜㅜ

stella.K 2019-12-02 14:20   좋아요 1 | URL
ㅎㅎㅎ 그럴수도 있지요. 그래도 늦게나마 회개하는 마음으로다
해 주신 게 어딥니까? 그저 감사할다름입니다.ㅋㅋ
 

오늘 아침 뉴스를 보니 월간 샘터가 올해를 끝으로 잠정 휴간에 들어간다고 한다. 1970년 4월에 창간해서 한때는 70만부(?)까지 찍어냈던 장수 월간진데 지금은 2만부 팔기도 쉽지 않아 그 같은 결정을 했다고 한다.

 

나야 워낙에 잡지를 잘 안 읽어 미처 사 볼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가격도 싸서 웬만한 커피한 잔 가격 정돈데 휴간될 거라고 하니 섭섭한 마음이 든다. 그나마 폐간이 아니니 다행이랄까. 하지만 이렇게 휴간에 들어가면 언제 다시 나올지 알 수 없다. 

 

그동안 이해인 수녀, 고 최인호 작가 등 많은 작가들이 샘터를 거쳐 간 것으로 아는데 지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응원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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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2 2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9-10-23 14:5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실제로 보면 어떨지 모르겠는데 표지가 진짜 맘에 들더라구요.
저도 무심했어요. 이렇게 장수하는 잡지가 몇 안 될 텐데
평소 땐 관심도 없다 이런 소식 들으면 아쉬운지 모르겠어요.
속죄하는 마음으로 휴간에 들어가기 전에 사 봐야 할 것 같아요.ㅠ

니르바나 2019-10-23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월간 샘터를 20년 정기구독했던 사람으로 이건 참 아쉬운 소식입니다.
샘터가 70만 구독자가 있었던 시절은 장리욱박사, 피천득교수, 법정스님 등
가히 우리나라 최고의 필진이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의 원고가
매달 가벼운 가격으로 독자들에게
짧은 글을 읽는 즐거움을 선사하던 때라고 생각됩니다.
잡지를 만들었던 샘터 편집실은 문필가의 산실이기도 했지요.
오증자, 정채봉, 정찬주 등 샘터 편집실 출신으로 작가, 기자, 교수직으로
자리를 옮긴 분들이 다 모인다면
샘터는 좋은 잡지이자 우리 문화계의 산실이기도 한 셈이죠.
이 자리를 만든 장본인은 물론 초대 발행인이었던 김재순 선생이시구요.
샘터가 휴간된다는 소식을 듣고 생각나는대로 적어보았습니다.

잘 지내시죠.^^

stella.K 2019-10-23 15:15   좋아요 0 | URL
오, 20년 구독...?!
대단하시네요. 니르바나님 같은 분들 때문에라도 계속 나와야
할 텐데 이렇게 휴간이라니...
어떻게 구할 방법이 없을까요?
얼마 전, 옛 문필가들의 수필 모음을 읽은 적이 있는데
정말 좋더군요. 예전엔 시큰둥했는데.
어디 이런 수필 없나 기웃거려 보는데 샘터도 읽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몰라봤네요.

전 이상하게도 묘한 징크스가 있는 것 같아요.
좋아지면 없어져 버리는 거.
혹시 M 본부에서 했던 <문화사색>이란 프로를 아시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그걸 작년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얼마 전 폐지됐어요.
햇수만으로 무려 15년을 했다는데. 그러더니 샘터도 그렇게된 셈이됐어요.
있을 때 잘 하라더니...ㅠ

고맙습니다. 니르바나님도 잘 지내시죠?^^

hnine 2019-10-23 0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기사 보고서 많이 아쉬웠어요. 고3때 학력고사 보고 집에 칩거하면서 한권 두권 사모으기 시작하여 저또한 수십권 모아두었던 경험이 있거든요. 한강 작가가 그때 샘터 기자로 일했던 시절도 있었지요.
저 역시 폐간이 아니라 휴간이라고 해준 것만 해도 다행이다 싶습니다.

stella.K 2019-10-23 15:22   좋아요 0 | URL
와, 한강 작가가요...?
알고보면 샘터가 조그만 해도 저력있었네요.
모아두신 거 지금도 가지고 계신가요?
지금 나오고 있는 잡지들도 언제 폐간될지 모르니
좋아하는 잡지 잘 모아둬야 할 것 같아요.
h님의 식견이 부럽네요.

수이 2019-10-23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샘터 저도 정말 좋아했는데 아 가슴 아프네요. 휴간이어도.

stella.K 2019-10-23 15:23   좋아요 0 | URL
그래도 희망을 버리시면 안 되요 수연님.
이렇게 좋아하고 기다리는 사람이 많으면 언제고
또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땐 저도 애독자가 되어보겠습니다.ㅠ

blanca 2019-10-23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아프네요. 저도 종종 사보다가 최근들어 잊고 있었어요...

stella.K 2019-10-23 15:43   좋아요 0 | URL
그러셨군요. e북으로는 옛날 것도 나오는 모양인데
종이책으론 세 권 정도는 확보할 수 있겠더군요.
저도 좀 사 봐야겠어요.
빠른 시길 내에 다시 나오길 기대해 봐야죠.ㅠ
 
하루키의 언어 - 더없이 꼼꼼하고 너무나 사적인 무라카미 하루키어 500
나카무라 구니오 지음, 도젠 히로코 엮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인터넷에서 발견하고 600페이지가 넘는 것을 보고 솔직히 좀 식겁했다. 어느 정도 도톰한 책을 선호하긴 하지만 6백 페이지는 좀 부담스럽다. 하지만 하루키의 많은 저작물을 생각할 때 6백 페이지는 결코 두꺼운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발췌독을 하게 되지 않을까 했다. 그런데 웬걸, 막상 받고 보니 풋 웃음이 나왔다. 책 모양이 좀 특이한데, 손바닥만 한 단어 카드 묶음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정말 "야레야레, 하루키."란 말이 절로 나온다. 여기서 야레야레란 "이런, 이런" 뜻이라고 한다. 


사실 난 하루키의 작품을 그리 많이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이렇게 한 번씩 하루키에 관한 책이 나오면 관심이 간다. 세상엔 저명한 작가들도 많고 그 작가의 저작물은 물론이고 그에 관한 책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하루키만큼 많이 나오는 작가가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렇게 하루키 한 사람에 대한 부가가치는 생각보다 큰 것 같다. 오죽하면 이젠 하루키스트 또는 무라카미 주의자란 말이 있을까. 이만하면 (전에도 느끼긴 했지만) 그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도대체 하루키가 누구라고 글 깨나 쓰는 먹물들은 그에 관한 책을 쓰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일까. 이 책도 보라. 사전식으로 정리하긴 쉬운 일인가.


그런데 반해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막상 하루키 자신은 자신이 이룬 문학적 업적에 대해 덤덤한 자세를 견지한다. 그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지만 특별한 표정이 없다. 웃는 얼굴도 없지만 찡그리는 것도 없다. 어떻게 그렇게 한결같을 수 있을까? 그렇게 많은 책을 쓰고 번역을 했음에도 글쓰기가 천명인 양 흔들림이 없다. 그렇게 많은 책을 냈다면 앓는 소리나 잰 척을 해도 누가 뭐랄 사람도 없을 텐데 그는 항상 똑같은 표정을 짓는다. 난 그저 내가 할 일을 할 뿐인데 뭐가 문젠 가요 하는 식이다. 글쎄, (너무도 유명한 얘기가 되어버렸지만) 젊었던 어느 날 야구장에서 튀어 오르는 야구공을 보면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날부터 글을 썼다고 했는데 도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런 마음을 매일 골 천 번을 먹어도 끝내 어느 지점에서 절필하고 문단에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작가도 수두룩 빽빽한데, 어떻게 하루키는 나이 70이 넘도록 한결같은 자세를 유지하며 그처럼 많은 사람들의 총애를 받는 작가가 될 수 있는지 부러워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그는 야구공이 튀어 오르는 순간 우리가 모르는 번개를 맞았는지도 모른다. 작가가 되기로 한 것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 번개 말이다.


아무튼, 그런 하루키의 한결같음을 재수 없어하는 사람도 있는가 보다. 하지만 하루키가 그와 정반대의 사람이 되어도 똑같이 싫어하지 않을까? 또 누구는 하루키가 그런 자세를 유지하는 건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이 배어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앞서 말한 대로 그의 작품을 별로 즐겨하진 않지만 하루키 자체는 존경하는 쪽이다. 이 세대가 어떤 세대인가? 책을 정말 안 읽는다. 이건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일본도 책을 안 읽기는 마찬가지인가 보다. 그럼에도 하루키는 그것에 크게 상관하지 않고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이상 꾸준히 글을 썼고 책을 냈다. 내가 그를 존경하는 건 그것이다. 그의 문학적 업적 때문도 아니고, 그가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기 때문도 아니다. 꾸준히 책을 낸다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어떤 신인 작가 또는 작기 지망생에게 용기를 주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많은 책을 냈어도 그의 시작은 데뷔작 한 권에서 시작이 되었을 테니까.   


그는 이제 문학에 있어서만큼은 하나의 왕국을 건설했다. 그야말로 하루키 월드다. 거기에 하루키스트도, 무라카미 주의자도 있는 건 당연해 보인다. 우리는 일본의 모든 것을 싫어할 수 있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하루키만큼은 싫아할 수 없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너무 하루키만 추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 역시 그만의 독특한 문체를 갖기까지 실상 미국 문학에 그 기원을 두고 있으니까. 특히 스콧 피츠제럴드. 많은 사람들이 하루키스트, 하루키언을 자처할 때 그는 피츠제럴드언이었다. 그는 미국 문학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미국 작가들의 작품만 번역했다. 그렇다면 우리도 하루키를 따라서 미국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실제로 책을 보면 하루키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번역을 했음을 볼 수가 있다. 그리고 그는 번역이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 말은 사실이다. 그러고 보면 하루키스트가 되려면 정말 바쁘겠구나 싶기도 하다. 영어도 잘하고, 번역의 기술도 배워야 할 테니. 뭐 그게 아니어도 하루키가 좋아한다는 미국 문학은 꿰뚫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에 관한 책들이 많기도 하지만 이렇게 사전식으로 일목요연하게 나오기는 이 책이 처음인 것 같다. 개인적으론 기대 이상이었다. 물론 저마다 온도차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루키에 대해 웬만큼 아는 사람은 이 책이 뭐 대단한가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설은 나름의 장점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취약한 점도 없지 않다. 즉 내가 알고 이해한 게 맞나 싶을 때가 있다. 특히 장편 같은 경우 이 사람이 그 사람 같고, 내가 이해하고 있는 내용이 맞나 작가의 서사를 따라간다는 게 가끔 버거울 때가 있다. 물론 독자의 자유 중 오독의 자유도 있다지만 딴 데 가서 남의 다리 긁고 있는 것도 작가에 대한 예의는 아닐 것이다. 그 책에 대한 사전 정보를 어느 정도 알면 오독률을 줄여 볼 수도 있고, 읽지 않은 책에 대해 읽은 척할 수도 있을 테니 이런 책 한 권쯤 옆에 끼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매 페이지마다 삽화가 그려져 있는데 그것도 꽤 즐길만하다.

 

참, 우리가 언제부턴가 자주 쓰는 '소확행'은 알고 봤더니 하루키가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글에서 '작지만 확실한 행복' 뜻으로 처음 쓰기 시작한 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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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0 1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9-10-10 19:45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러게요. 정말 작죠?
소설 싫어하는 사람은 하루키 정말 최악일 수도 있어요.
실제로 오래 전 저 아는 사람은 읽다가 머리에 쥐났다고 하더군요.
근데 전 이 책 정말 괜찮았어요.아무 생각없이 읽기만 하면 되니깐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