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성로의 밤
조두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지리에 관해서는 그다지 밝은 편이 아니어서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대구에 북성로가 있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대구의 4성으로 그러니까, 동성로, 서성로, 남성로, 북성로가 있고 그것은 100여 년 전만 해도 대구 성의 성벽이었다고 한다. 이 대구 성은 조선이 왜구의 침략에 대비해 임진왜란 2년 전인 1590년 흙으로 처음 축조되었고, 1736년에 돌로 성을 다시 쌓았다고 한다. 그 후 흥선대원군에 의해 1870년에 거의 재축성에 가까울 정도로 대대적인 보수를 하지만 30여 년 뒤엔 일본 상인들이 이를 허물고 4성로를 건설해 그 도로를 따라 점포를 세웠다고 한다. 그중 대표적인 기업이 나카에 도미주로 형제가 북성로에 설립한 미나카이 백화점이고, 소설은 바로 이곳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


1940년 대, 일본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우리나라가 광복이 되기 바로 몇 년 전을 그리고 있다. 그때 미나카이 백화점은 대구의 랜드마크였다. 책을 읽고 있노라면 요즘의 백화점과 별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돈데 1940년 대에 정말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 또는 스카이라운지가 있었을까, 이건 작가의 상상에 의한 은 아닌지 좀 의아스러웠다. 그런 것을 제외하면 소설은 일제 강점기 말을 상당히 충실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런 만큼 소설은 미나카이 백화점은 화려함 이면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에 사는 일본 사람들, 친일파 조선인들, 하다못해 독립운동에 가담한 사람들조차 어떻게 허물어져 가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사실 지금까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의 압제와 독립을 향한 의지 이 두 관점에만 치우쳐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친일과 반일, 매국과 독립 뭐 이런 프레임으로만 보려고 하는 시각이 있었다. 나 개인적으론 이런 관점에 새로운 시각을 부여해 줬던 건 <경계에 선 여인들>이란 책이었다. 물론 그것은 일제 강점기를 주제로 한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20세기 초중반의 동아시아 여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가를 연구한 책이다. 거기에 우리나라의 일제 강점기의 여성에 대한 보고서가 들어가 있는 것이다. 한 가지 놀라운 건,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에 온 일본 여성들이 그렇게 행복한 삶을 살았던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확실히 나에게 새로운 시야에 눈을 뜨게 만든다. 왜 나는 지배국의 국민들은 무조건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을까. 적어도 난 그들이 행복했을지 불행했을지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이 소설도 보면 미나카이 백화점의 사장 나카에의 딸 아나코 역시 외형적으론 부유하고 행복한 삶을 산 것처럼 보이나 그렇지 않다. 그녀는 오히려 같은 일본인 남성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다. 그렇다면 소설은 중립적이라 할 수 있다. 노태영이 친일 경찰이 되는데 그가 왜 그럴 수밖에 없는가가 나름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또한 미나카이 백화점 설립자 나카에 역시 조선인에 대한 지극히 혐오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그 밑바닥엔 자신의 나라 역시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그에겐 오로지 백화점밖엔 없다. 결국 그는 백화점을 구하기 위해 조선인 정주에게 넘기기도 한다. 태영의 동생 치영은 어떤가. 독립운동을 하니 등장인물 중 가장 멋있는 인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형인 태영을 죽이는 것이 정당한 것은 아니다. 흔들림이 없이 가장 안정적이고 성실한 인물은 노정주다. 그는 백화점도 인수받았겠다 아나코와의 사랑을 이룰 수도 있었지만 끝내 포기하고 만다.


그뿐인가, 작가는 해방 이후 당시의 조선인들이 어떤 식으로 일본인들에게 보복을 했는가도 가감 없이 기술하고 있다. 그런 것을 보면 읽는 이에 따라 다소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소설이란 비록 허구라고는 하나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는 것만은 아니다. 사실 역사가 진실을 말하는 학문 같아도 그렇지 않고 오히려 편파적일 때가 있다. 그래서 사관이란 말을 써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도 본다. 역사는 사관일 뿐이다. 그러나 소설은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 실존에 대해 말해야 한다. 나는 그런 점에서 작가가 충실했다고 본다. 무엇보다 글이 안정적이고 나름 사유적이기도 하다.


그것을 통해 작가는 독자를 그 시대에 대해 애정과 통찰을 갖고 보기를 바라는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은 전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우린 등장인물을 이해할 수 있다. 읽다 보면 결국 남는 건 국가란 무엇이냐란 생각에 머문다.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는 힘없는 나라의 국민은 당연히 불행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나라면 아무리 조선을 만만히 보더라도 제 나라 백성을 조선으로 이주시키는 일은 안 할 것 같다. 물론 그때는 조선이 일본의 속국으로 영원히 그렇게 살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이란 나라는 그 이전이나 그 이후나 그렇게 만만히 볼 수 있는 나라는 아니다. 설혹 만만히 보더라도 자신의 나라가 패망을 했다면 조선에 사는 자기네 나라 국민들을 안전하게 귀국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물론 그것까지는 소설에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는 않지만 나카에를 보면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


언제나 그렇듯 역사를 볼 때 있는 나라가 부러울 때가 많다. 국민을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도록 하는 것이 국가 존립의 이유다. 그래야 문화와 역사가 이어질 수가 있고 세계 어디를 가도 무시당하지 않을 수 있다. 과연 그 참혹했던 시절을 생각할 때 국가 지도자들은 과연 그 일을 충실히 해 나가고 있는 것일까 묻고 또 묻고 싶다.

 

구한말 또는 개화기에 관심이 많다면 추천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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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7 2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9-11-08 14:21   좋아요 0 | URL
앜, 그러시군요. 저도 서울 살아도 가 본데 보단 안 가 본데가
더 많으니 어쩌면 좋을까 싶습니다.ㅠ
저도 궁금하긴 하더라구요. 대구 어디에 그 백화점이 있을까?
지금도 있나 아니면 다른 뭐가 들어섰나?
혹시 언제고 북성로 가실 일 있으시면 사진 한 번 올려 주시죠.^^

수이 2019-11-07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개화기때 꽤 임팩트 강한 인생을 살았던 거 같아요, 추천해주신 책 읽어볼게요 :)

stella.K 2019-11-08 14:32   좋아요 0 | URL
앗, 수연님의 개화기...? 궁금한데요?^^
이 책 꽤 오래 얻어와 놓고 이제야 읽었습니다.
작가의 책이 몇 권 더 있더군요.
차분하게 글을 잘 썼더라구요. 기회되면 두어권 더 읽고 싶어요.
최근엔 책을 안 내는 것 같은데 아쉽더군요.
꾸준히 내면 좋을 것 같은데...

카알벨루치 2019-11-08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학창시절에 대구의 중심은 동성로였더랬는데 지금은 많이 변한듯 합니다 내가 살았던 도시가 맞나 싶을 정도로 이질감을 느끼는 느낌입니다 북성로를 중심으로 소설이 있군요...

stella.K 2019-11-08 14:32   좋아요 1 | URL
앗, 카알님 대구였던가요? 이런...
그동안 알라딘 마을의 대구출신 3 스타 하면 유레카님과 스요님, 시루스로만
기억했는데 이제 그러면 안 되겠는데요? 4 스타로 카알님을 등극시켜
드려야겠어요.ㅎㅎㅎ
옛날에 자신이 자란 동네를 잊지 못하죠. 그래서 그런지 떠나 온 동네를
선뜻 다시 못 가겠더라구요. 너무 많이 변해있을까 봐.ㅠ

카알벨루치 2019-11-09 14:32   좋아요 1 | URL
저 빼고 북프리쿠키님 넣어서 4스타입미다 ㅎㅎㅎㅎ

북프리쿠키 2019-11-09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구 오시면 북성로 우동에 연탄불고기 사드리께요 ㅋ

stella.K 2019-11-09 15:22   좋아요 0 | URL
ㅎㅎㅎ 쿠키님,카일님 스타 아니시라고 하는데
그러고보니 쿠키님까지 5星이어요.ㅋㅋㅋㅋ

그런데 쿠키님은 북성로를 잘 알고 계시는군요.
거기에 정말 미나카이 백화점이 있었나요?
지금은 다른 게 들어섰을 것 같은데 자리가 어땠는지 궁금해요.
아, 우동에 연탄 불고기라. 5星이 함께 모이는 날 있으면
그날 한 번 뵙죠. 제 닉넴도 별과 아주 상관이 없지는 않으니.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