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무튼, 난 멜로가 체질이 아니다.  

 

<멜로가 체질>이란 드라마를 재미있다고 해서 봤다. 영화 감독이 TV드라마를 만들었다는 것도 그렇고(감독 데뷔 전 '써니', '과속스캔들'등을 썼다고 한다) 기대가 돼 봤다. 결국 난 7회까지 보고 말았다. 뭐 이제까지 봤던 멜로 드라마와 확실히 차이는 있다만 도저히 봐줄 수가 없다. 배우가 연기를 해야지 개그를 하면 쓰나 싶다. 그렇지 않아도 개그 프로그램 보면 개그맨들은 뭐 하나를 빼놔야 개그를 하지 정상적인 사고로 저런 개그가 나오나 차라리 이해가 가는데,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이 작정하고 덤벼드니 보면 볼수록 뭔가 질리는 느낌이다. 상황을 만들고 상황에 맞는 대사를 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도 그렇지만 난 이상하게도 멜로가 맞지 않는다. 남녀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기 전 갈등 은 봐줄만 한데 그러다 사랑에 빠지면 그때부터 급격히 재미가 없어진다.

 

대신 <동백꽃 필무렵>을 보고 있는데 이거 완전 내 스타일이다. 공효진도 공효진이지만 강하늘을 열렬히 좋아한다. 무엇보다 대본을 잘 썼다. 충청도 사투리를 정말 잘 살렸는데 무대뽀 사랑을 표현하는데 충청도 사투리만큼 찰진 게 또 있을까 싶다. 혹시 대본집으로 나온다면 사 두고 싶을 정도다. 

 

 2. 역사적 견해 

 

<요즘책방; 책 읽어드립니다>를 챙겨 보고 있다. 지난 번에는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다뤘는데 거기 나온 설민석과 장강명이 중요한 얘기를 한다. 독일은 나치의 역사에 대해 두고 두고 반성과 사죄를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왜 일본에게 사죄를 받지 못하느냐에 대해 설민석은 국운을 들었는데, 일본이 패망을 하고 조선에서 물러가면 전범을 잡아 들이는 건 물론이고 모든 체계를 다 없애버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일을 미국이 해야하는데 그때 하필 미국은 소련과 싸워야 하는데 일본의 힘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그러질 못했고 그것이 우린 아직도 정당한 사과를 받지 못하고 있는 거라고. 아베의 외할아버지를 비롯해 아직도 일본 내 극우 세력이 판을 치는 거라고.

 

이어 장강명은 독일이 그렇게 두고두고 사과할 수 있었던 건 나치 시대에 독일의 괴롭힘을 당했던 나라들이 2차 세계대전 이후 하나같이 국력을 키워 잘 살게 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비해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의 침략을 당했던 필리핀 등 동아시아의 나라는 일본 보다 잘 살지 못하니 사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고. 둘 다 그럴 듯한 말인 것 같다. 그렇다면 일본이 과거사에 사죄하는 날이 온다면 우리나라가 그 첫번째가 되지 않을까. 우리나라는 이제 일본의 적수가 될만하니 말이다. 

 

3. 도대체 할 수 있는데가 어디까지를 말하는 걸까.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 온 지인이 최근 친정 부모와 합쳤다고 한다. 부모님이 다 치매라서. 어머니가 조금 심하시고, 그나마 아버지는 경증이다. 그동안 바쁜 중에도 일주일에 한 두 차례씩 친정을 가곤했는데 힘에 부치기도하고 그밖에도 여러 가지 합칠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그런데 그게 왜 그리 짠하던지. 자식이 부모 모시는 게 당연하긴 하지만 때문에 더 힘들어질 거라는 것을 아니 무작정 잘한 일이라고 박수를 쳐줄 수가 없었다.   

 

"그냥 저 할 수 있는데까지만 하려구요. 나중에 요양원에 모시더라도 어떻게 처음부터 요양원에 모셔다 놓을 수가 있겠어요." 한다.그렇게 말한 게 지난 추석 하루 전날이었다. 부모님 모시기 준비 중 내 생각이 나 전화한다며. 그녀 역시도 몸이 그렇게 건강한 편은 아닌데 말이 좋아 할 수 있는데까지지 어디까지가 할 수 있는데까지며 그러다 골로 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다 바로 얼마 전 이번엔 내가 먼저 연락을 해 봤다. 워낙 바쁘게 사는 사람이라 그나마 주일이 연락하기가 낫지 싶어 했는데 역시 쉽지는 않았다. 전화를 받자마자 한숨부터 쉬는데 상황이 어느 정돈지 알 것도 같다. 그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마음을 다잡고 또 잡았을까. 부모님을 모셔 놓으니 일가친척들이 한번씩 머리를 디미는데 오시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죽을 맛이란다. 그렇게 대화 좀 이어갈까 싶었는데 어머니 목욕시켜 드려야 한다며 중간에 전화를 급히 끊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일년이면 두 세 차례는 만났는데 전화를 끊을무렵 내가 우리 언제 만나요 하며 푸념했는데 그게 그녀에겐 배부른 투정처럼 들리지 않았을까.    

 

4. 수렁에서 건져낸 내 친구? 

 

얼마 전, 갑자기 폰이 울려 또 스팸 전화겠지 했는데(언제부턴가 스팸 아니면 전화 올 때가 거의 없어졌다) 사이판에 서는 친구다. 어찌나 반갑던지. 전화 안 한지가 거의 3년쯤 된 것 같다. 사이판에 산지가 20년 가까이 되고, 그동안 2년에 한번씩은 서울에 왔던 것 같다. 나올 때마다 만나곤 했는데 이쯤되면 이 친구와도 멀어지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마지막 통화했을 때 사이판에 강력한 태풍으로 거의 초토화되다시피 하고 아직도 복구가 안 되고 있다고 했다. 그 나라가 자기네 나라에 사는 외국인들에게까지 도움을 줄 형편이 못 되는지라 그런 난리가 나면 사는 게 말이 아니라고 했다. 그런 말을 들으니 못 들은 척 할 수도 없고 새발의 피도 안되는 돈을 위로차 보내 줬었다. 아무리 작은 돈이라도 받았으면 받았다고 연락이라도 할 텐데 그런 것도 없고, 내가 이 친구에게 뭐 잘못한 것이 있나 찜찜해 하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얘기를 들어 보니 그동안 지난 번에 델 것도 아닌 강력한 태풍이 몰려와 그야말로 건질 것도 없이 알거지가 될 지경이었단다. 그나마 조금 나아져서 이제야 전화하는 거라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화고 통신이고 제대로 하지도 못 했단다. 문득 이상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것 같으면 우리나라 뉴스에서도 한번쯤 나올 법도 할텐데 그동안 그런 뉴스를 들어 본 적이 없다. 못 들은 걸까. 

 

마지막 통화를 할 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아직도 하고 있느냐고 했더니 하지 않고 남편이 동업으로 일을 해 그 일을 함께 도와주고 있다고 했다. 조만간 그만두고 살림만 할 거라며 이제 일이라면 신물이 난다고 했다. 왜 안 그럴까.

 

앞서 말한 지인도 그 친구의 경우도 그렇고 중년에 빈 둥지 증후군도 있다는데 과연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 자식 뒷바라지 끝났다 싶으니 아픈 부모를 모셔야 하고, 그게 끝나면 자신이 아프겠지. 이게 또 사람의 인생이란 생각을 하니 새삼 허무한 생각이 든다.

 

5. 고종의 길

 

<고종의 길>이란 연극을 봤다. 명성황후 시혜 전후 상황과 고종의 아관파천, 대한제국이란 국호를 정하기까지 과정을 보여준다. 결코 즐겁게 볼 수 있는 연극은 아니었다. 설명이 약간 과하다 싶지만 주인공을 맡은 배우의 연기 몰입도가 꽤 높다. 처음 보는 배운데 고뇌하는 고종을 제법 실감나게 잘 표현했다. 끝나고 마음이 무거워 한동안 자리에 멍하니 않아 있었다(물론 관객들 빠져나가길 기다린 것도 있긴 하지만). 그런 마음이 들었다면 꽤 성공한 연극이라고 생각한다.   

 

부인과 아버지 사이에서 방황해야 했고, 급기야 아내가 일본의 낭인에 의해 무참히 살해 당하는 것도 부족해 시신이 불태워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그걸 보고 어찌 미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할 생각을 했다는 건 새삼 대단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고종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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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2 1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12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9-11-12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댓을 남기고 나니 공개 댓글도 남기고 싶어지네요. 오랜만에 댓글 남깁니다. 반갑게...
잘 지내시죠?
저도 잘 지냅니다.

<동백꽃 필무렵>을 봐야겠군요. 채널 돌리다 제목은 많이 봤어요.

stella.K 2019-11-12 15:02   좋아요 0 | URL
<동백꽃 필 무렵> 꼭 보세요.
그거 보고 있으면 어쩐지 황순원의 소나기가 생각나요.ㅎㅎ
여기 쓰진 않았지만 혹시 웃음이 필요하시면 <천리마 마트>도 보세요.
처음엔 별로 기대 안하고 봤는데 의외로 괜찮고
몇 회까지 할지 모르지만 한 회 한 회 종반을 향해 간다고 생각하니
꽤 아쉽더라구요. 그럴만큼 재밌고 좋아요.ㅋㅋ

레삭매냐 2019-11-13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 저도 해당 프로그램을 보면서 제가
읽었던 아이히만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아무래도 대중 프로그램이다 보니 좀 더
깊이 있는 접근이 아쉽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나라의 현실에 대입해서 풀어 주지
않을까하는 기대는 하지도 않았지만 말이죠.

stella.K 2019-11-13 15:57   좋아요 0 | URL
ㅎㅎ 좀 그렇긴 하죠?
어차피 TV는 그냥 바람잡이 역할 정도 밖에는 안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게...
그래도 관심은 가더군요.
그런데 요즘엔 그것도 전 왠지 편하게 보이진 않더군요.
마치 저들만이 똑똑하고 의식있는 양 하는 것 같아서.
전 왜 이렇게 삐딱한지 모르겠습니다.ㅎㅎ